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I (마가복음 서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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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Mark 1:9–11 NKRV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서론

본문 배경: 9절

장소적 배경

오늘 본문은 ‘그때에’ 라고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은 지난 주 우리가 살폈던 본문의 내용과 연결되어서 오늘 본문을 바라보도록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에 대한 장소적 배경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 장소는 바로! 세례 요한이 도시를 향해서 외쳤던 장소!, 세례 요한이 교회를 향해 외쳤던 그 장소! 입니다.
세례 요한이 도시를 향해서, 교회를 향해서 뭐라고 외쳤죠?
네, 바로 그만해 이러다가는 다 죽어~! 라는 것으로 복음 앞에 나아오라! 라는 것이었고,
세례 요한은 그 외침을 바로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세례 요한이 죄 사함을 받게하는 회개의 세례를 외치고 있을 그 때, 그러니까 사람들이 나아와서 자기 죄를 자복하고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받는 그 때에 그 곳에서! 예수님께서 지금 세례 요한에게로 와서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출신 배경

다음으로, 오늘 본문 9절은 앞에서 살폈던 것처럼 그 때에 라는 말로 시작한 뒤, 예수님께서 어디서부터 오셨는가?하는 출신의 배경을 언급합니다.
Mark 1:9 NKRV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처음 만났다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두가 나이 계급장을 다 띠고 모두가 동일한 대학생이지만, 동일한 학교는 아니라고 가정했을 때, 제가 대학생으로서 제 자신을 소개한다면, 가장 먼저 뭐 부터 언급하게 될까요?
바로, 어느 대학을 다니는가?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소개할 것 같습니다. 저는 대신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주안 입니다. 나이는 34살이고, 취미는, 특기는 등등의 소개를 이어나가게 된다는 것이죠.
바로, 이와 같이 우리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가?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 소속이 나의 가치와 나의 환경에 대한 사전 지식을 제공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사람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저는 대신대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사전 정보를 통해서 여러분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들어보지 못한 곳을 다니고 있구나, 공부를 지질이도 안했겠구나 라는 사전 정보를 얻게 됩니다.
반면, 제가 소개하면서 서울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주안 입니다. 라고 소개했다면, 여러분들은 오?! 이야 저사람 공부 좀 했나보네? 중고등학교때 전교 5등 안에는 들었겠구나라는 사전지식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오늘 본문 9절에서 예수님의 소속은 바로 “갈릴리 나사렛"입니다.
이 장소적인 의미를 살피면, 제가 예전에 설명 드린 적이 있는데, 갈릴리 나사렛이란 지역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어떤 곳으로 평가 받던 곳인가요?
갈릴리에 대한 이스라엘의 인식은
Isaiah 9:1 NKRV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Matthew 4:15 NKRV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방의 갈릴리"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영토에 속해있지만 그들의 혈통이 순수한 유대인이 아닌 혼합된 유대인들 혹은 더 나아가서 이방인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그런 존재들이다 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예수님은 갈릴리 그러니까 이방인의 도시의 나사렛 출신이라 밝히는데, 갈릴리가 이방인의 도시라면, 이 나사렛에 대한 인식은 좋을까요? 나쁠까요? 네, 나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오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요한복음 1:46 (NKRV)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라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 9절이 보여주는 모습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그 모습이 타당하다. 합당하다 라고 인정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 9절에서 기록된 예수님에 대한 출신적 사전지식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이 갈릴리 나사렛 사람이었다라는 것, 그것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나아오셔서 세례를 받는 것이 지극히 마땅한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입니다.
왜요? 갈릴리 나사렛은 오염되고 혼탁하며, 정통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쉽게 설명해서 갈릴리 나사렛 출신은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이방인들의 피가 혼합된 타락한 존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제제기: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셔야 했을까요?
분명 지난 주 우리가 살폈던 막 1:1-8 에서 세례 요한이 베푼 세례의 모습은 죄 사함이 필요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복음이었습니다.
그런 그 복음 앞에 지금 예수님이 나아오셔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받는다? 다르게 이야기 하면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라는 의미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죄를 지으셔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들을 일으키게 되고, 그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어 얻은 구원이 아무 쓸모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그 예수님이 죄를 지은 분이시다?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은 가짜가 되고, 예수님의 부활이 가짜가 되면, 예수님의 부활이 보여주는 그 실체,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과 같이 우리의 죄를 이기고 우리가 다시 살아나게 되어서 죄로부터 완전한 승리를 얻게 될 것이라는 그 목적과 희망, 소망 또한 가짜가 되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가장 중요한 기초가 사라져 버리는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셔야 했을까요?
마 3:13-15 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그 상황에 대해 또 다른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고, 이 정보는 왜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동일하게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셔야 했는가?에 대한 답을 알 수 있는 힌트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Matthew 3:13–15 NKRV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는가? 하는 문제의 해답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해답은 바로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세례를 주고 받음으로 인하여서 이루게 될 모든 의는 무엇 일까요?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왜? 굳이 죄도 짓지 않으신 예수님께서 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받으시면서까지 이루려고 하신 ‘그 모든 의’는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본론

본문 해설

오늘 본문 10-1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신 후 일어나는 결과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Mark 1:10–11 NKRV
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 10-11절은 크게 세 가지를 표현하며 나타내고 있습니다.
10-11절을 원문에서 보면 이렇게 번역됩니다.
“또, 그가 그 물에서부터 올라오는 그 즉시 그는 그 하늘들이 찢어지는 것을 보았고, 그 성령이 그에게 비둘기처럼 내려 오시는 것을 그는 보았다. 그리고 그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었다. (중간점) ‘바로 너는 나의 사랑하는 그 아들이다. 내가 너로 인하여서 기뻐한다.’”
오늘 본문은 크게 세가지를 말합니다.
먼저는 그 하늘들이 찢어졌다라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그 성령이 그에게 비둘기처럼 내려왔다라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가지를 통해서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는가?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인하여서 이루게 될 그 모든 의가 무엇인가를 짐작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찢어졌다.

먼저, 하늘들이 찢어졌다라는 말을 우리는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늘 개역개정에서는 하늘이 갈라졌다라고 조금은 순화된 표현을 쓰고 있지만, 원문에서는 하늘들이 찢어졌다라고 표현합니다.
즉, 누군가에 의해서 서로 서로 굳건하게 잘 연결되어 있는 그 하늘을 쫘악하고 찢었다라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왜? 마가는 오늘 본문 10절에서 하늘들이 찢어졌다라는 거친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마가는 지금 마치 이전에 사용되었던 어떠한 이미지들을 떠올리도록 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뚜둥 탁"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넷플릭스를 떠올리게 되는 것과 같이 하늘이 찢어졌다라는 말은 이전에 사용되었던 하나의 사건을 떠올리도록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당시의 사람들은 하늘이 찢여졌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과연 어떤 사건 혹은 말씀을 떠올렸을가요?
그것은 이사야 64:1-2 입니다.
Isaiah 64:1–2 NKRV
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2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기기 시작하면서, 이스라엘은 타락하게 되었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멸망하여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서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선포하시고, 그 말씀을 따라 회개하고 돌이키는 그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에 대한 예언과 약속을 주셨습니다.
즉, 이사야 64:1-2 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때,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회복되어질 그 때를 말씀하시는 것을 떠올렸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이사야 64:1-2 말고 신약에 이르러서 ‘위에서부터 아래로 쫘악 하고 찢어졌던 일이 발생한 한 사건’을 떠올리도록 합니다.
어떤 사건일까요? 위에서부터 아래로 쫘악 하고 찢어졌던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성소의 휘장입니다.
막 15:38 을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Mark 15:38 NKRV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라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그러나까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예수님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가실 때, 그 때에 성소의 휘장 그러니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로막고 있던 그 가림막인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쫘악하고 찢어졌다라는 것을 우리는 떠올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것을 통해서 이루실 그 모든 의가 바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던 그 성소의 휘장과 같이 그러니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이가 휘장으로 가리어져 막혀 있었던 것이 찢어짐으로 인하여 회복된 것처럼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회복시키시기 위해 오신 분이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의'라는 단어와 관련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자신을 의롭다라고 지칭할 때, 그 기준은 바로 율법입니다.
즉, 그들이 얼마나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내는가?라는 것을 가지고 그들은 자신이 율법을 잘 지켰기에 의로운 자다라고 이야기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마 5:17 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라는 것입니다.
Matthew 5:17 NKRV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라고 말이죠.
즉,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가 회복된다는 것은 바로 마 5:17 이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모든 율법을 완전하게 하심으로 인하여서 성취하신 그 의, 그 의가 우리에게 우리에게 전가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만날 수 있는 이 자리 가운데 초대되었고,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라는 것이죠.
큰일입니다.
아직 절반 남았는데...
절반은 다음주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셔야 했던 그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함'이었고, 예수님께서 이루려고 하시는 그 모든 의가 무엇인지를 10절의 ‘하늘이 찢여졌다’라는 것을 통해서 그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우리가 받아 누리는 복음, 즉,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는 자들이 되었음을 나타내줍니다.
예수님께서 죄인과 같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그 모습은 하늘이 찢어짐으로 인하여 우리가 얻게 된 그 모든 의를 드러내 주는 것이고, 모든 율법을 완전하게 하심으로 인하여서 얻게되신 그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들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셔야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 앞에 두려움 없이 설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죄인이 받아야 할 그 회개의 세례를 받으심으로 인하여서 성취되어질 약속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루신 그 의를 통해서 우리는 오늘 설교의 제목과 같이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평가, 혹은 기쁨의 찬사를 당당하게 누릴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감사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들이 얻고, 누리시는 이 ‘의'는 예수님의 수치 당하심으로 인하여 얻어진 의이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명예와 권력, 권위를 버리시고 또 버리신 결과로서 얻어진 것입니다.
이런 의를 누리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과연 여러분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의'를 전가해주신 그 예수님의 의의 모솝과 동일한 의를 누리고 계시는 모습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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