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8새벽] 나는 이러하오니 날 구원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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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543 어려운 일 당할
때
본문: 시86:1-4 (구p.865)
하나님, 새 날을 허락하시고 움직일 수 있는 환경과 힘과 여건들을 주장하심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더욱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삶의 여러 곤고한 문제들로 무거운 짐 진 자들이 있습니다. 간절히 주님의 도우심을 사모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외면치 마시고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이 시간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에게 친히 교훈하여 주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시편 86편은 ‘고라 자손의 시 모음집’에 있는 유일한 다윗의 시로, 교만한 자에게, 포악한 자의 무리에게 포위된 위기 상황을 하나님께 토로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는 기도시이다. 1-4절 말씀을 보면, ‘나는 이러이러 하오니, 주께서 내게 이러이러 해 주소서’라는 형태를 반복하며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절에서는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2절에서는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주를 의지하는 종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3절에서는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으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4절에서는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라고 한다. 이것들을 요약하면 ‘나는 이러이러 하오니, 응답해 주시고, 보존해 주시고,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나를 구원해 달라’는 것이다.
‘나는 이러이러 하오니...’라는 구조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하나는, ‘다윗이 지금 어떠한 상황에 처했는지’ 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런 상황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믿음이 어떠하였는지’ 이다.
먼저, 다윗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 1절 말씀을 보라.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다’라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가난과 궁핍’은 옷이나 먹을 음식, 그리고 돈이 없어서 어렵게 된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의 ‘가난과 궁핍’은 물질적인 어려움을 넘어, 영적으로나 심적으로나 모두 어렵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 즉, 다윗은 어려움 속에서 생존을 위해 허덕이고 있고, 동시에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자신의 안전을 결코 지켜낼 수 없다는 것에 대해 극도로 불안한 상태에 놓였다. 한 마디로, 다윗은 하나님 이외에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는 그런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 상태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 오늘 본문 14절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이다.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친다.’ 라는 것과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다.’ 라는 말은 같은 뜻으로, 여러 사람들이 다윗의 생명을 취하려고 위협 중에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원수가 되어 내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도 극도로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데, 본문의 말씀처럼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일어나 다윗의 목숨을 위협하니 얼마나 두려웠을 것이며 또한 얼마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겠는가? 이처럼 다윗은 도저히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피 말리는 환난 속에 처해 있었다.
이와 같은 환난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하였는가? 1-4절을 보면 크게 두 가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먼저 다윗은 2절에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라며 기도하였다. 세상 그 누가 감히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의 경건함을 자랑할 수 있을까. ‘하나님, 내가 하나님 앞에 나름대로 경건하게 살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나를 구원햐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다윗은 지금 하나님 앞에 이와같은 뻔뻔한 태도로 도움을 간구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렇게 다윗이 이처럼 말하는 이유는 스스로 교만해져서 자신에게 구원받을 권리가 있다는 식의 말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는 경건하오니’라는 표현은 같은 절 하반절에 ‘주를 의지하는’ 이라는 표현과 짝이 되고 있다. 또한 3절에 종일, 쉼 없이 주께 부르짖는다고 하였는데, 그 부르짖음의 밑바탕이 되는 믿음과도 연결되며, 4절에 ‘주를 우러러 본다’ 라는 표현과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나는 경건하다.’ 라는 말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경건생활이나 종교생활 등에 심취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는 의미가 된다.
즉, 다윗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지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악한 자들처럼 자신이 하나님 앞에 교만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불신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경건한 자이다. 상황이 너무나도 답답할지라도, 한숨만 나오는 현실이라 하더라도, 불안할지라도, 억울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것이다. 이러이러할지라도 오직 하나님만 붙든다는 것이다.그렇기에 다윗은 이러한 확신과 믿음으로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윗은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하였는가? 2절 하반절에 ‘나는 주를 의지하는 종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라며 기도하였다. ‘나는 종이오니’라고 하였는데, 다윗은 오늘 기도에서 하나님을 철저히 ‘내 주’라고 하고,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한다. 심지어 다윗은 16절에 ‘주의 여종의 아들’이라고 표현하면서 자신이 모태에서 출생할 때부터 하나님의 종으로 태어났음을 고백한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이 철저히 자신의 주인 되심을, 반대로 자신이 철저히 하나님의 종 됨을 강조하며 기도하였다. 그럼, 왜 다윗은 철저히 주종관계를 기반으로 하여 하나님께 기도한 것일까? 고대 문화에서 종과 주인은 한데 묶여 있는 개념이었다. 왜냐하면 종은 주인에게 복종과 순종을 바치며 살아야 하는 주인에게 속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종들은 주인의 것들을 잘 활용하여 주인을 섬기고 주인을 기쁘시게 했다. 이것이 종의 의무이지 않는가? 종이 주인의 소유된 자로서, 주인을 섬기며 주인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종의 의무라고 한다면, 반대로 주인의 의무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소유인 종을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것이다.
다윗이 왜 철저히 주종관계를 기반으로 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가? 그것은 자신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이 없이는 결코 자신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가 철저히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종으로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에,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자신을 돌보시며 구원하실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윗은 피 말리는 환난 속에서도 주인 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그의 종으로서 하나님께 보호와 돌보심을 간구한 것이다.
성도여러분, 다윗이 그와 같은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신실하신 하나님, 주인 되신 하나님에 대해 알았고 또한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고, 그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날개 아래에 환난 당한 자기 백성을 품으실 것이며, 하나님의 품 만이 세상 가장 안전한 안식처가 될 것을 그가 믿었기 때문이다. 만약 다윗에게 그 믿음이 없었다면 환난 날에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에게 그 믿음이 굳건히 서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다윗은 환난을 통해 더욱 더 신실하신 하나님과 자신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깊이 체험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 우리의 인생 속에서 어려움과 환난등의 시기들은 찾아온다. 그 순간에 접어들 때는 누구나 힘겹고 누구나 괴로울 수 있다. 왜 우리의 아버지께서 이러한 연단의 시기를 주시는 것인지, 사랑하는 자녀에게 왜 이토록 힘겨운 시간을 허락하시는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마치 욥처럼 말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 것도 없기에 분명 우리가 맞게 되는 시련과 어려운 기간은 하나님의 허락 가운데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정하신 경계를 결코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할 길을 내시고, 감당할 시험만을 주시며 그 또한 힘과 능력과 지혜를 주셔서 능히 견디게 하신다는 것이다.
특별히, 여러 현실의 어려움을 만나고, 낙심할만하고, 고통 중에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불안할만한 이런 상황일지라도,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자들, 오직 하나님께만 답이 있음을 확신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들, 하나님께로 피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소망이 되어주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문제들에 대한 답이 되어 주신다. 하나님께 피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 이 믿음이 바로 여러분들의 믿음 되시길 축원한다.
우리의 인생 여정이, 우리의 믿음 생활이 푸르른 초장만 거닐게 된다면, 맑은 시내가 흐르는 평원만 거닐게 된다면 참 좋겠지만은 때로는 굽이진 길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만나기도 하며, 때로는 메마른 광야를 거닐기도 하고, 또한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닐게 될 때도 있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때로 의도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게 하신다. 환난을 지나가게 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우리는 다 알수 없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과도 같이 환난을 지나가는 주의 백성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인가? ‘하나님, 이러한 상황일지라도 내가 오직 주의 구원을 바라오니 이 환난 가운데 나를 건져 주십시요, 나는 주님의 백성이오니 나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요, 오직 주의 도우심을 갈망하며 주님께 피하고자 하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주의 날개 그늘아래 나를 품어주십시요, 주님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전혀 답이 보이질 않습니다. 주께서 내 인생에, 내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되어 주십시요’
이러한 믿음과 확신으로 주께 부르짖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모르는 척 하시겠는가? 외면하시겠는가? 인생의 문제들에 대하여 답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엎드리는 주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모르는 척 하시겠는가? 다른 무엇 아닌 하나님의 품에서 보호받고자 하는 주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외면하시겠는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들의 간구에 하나님 응답하시지 않겠는가?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 속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들이 있는 줄로 안다. 그 문제들, 그 어려움들, 그 곤고함들, 그 불안한 마음들 고스란히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니시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할렐루야! 모든 문제들을 주님께 믿음과 확신으로 올려드릴 때, 하늘에 계신 전능하신 왕께서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이다. 이러한 주의 구원을 날마다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란다.
특별히 이 자리 가운데 곤고한 때를 지나가는 분들, 험한 광야를 지나가는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다윗의 기도가 바로 여러분들의 기도가 되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경험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기도하자.
인생속에서 만나는 아주 다양한 문제들, 환난들, 어려움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모든 문제들보다 더 크신 분이시다. 우리의 믿음이 눈 앞의 풍랑에 흔들리지 않고 그 풍랑조차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만 향할 수 있길 기도하자. 문제들은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오직 하나님께 답이 있다. 그러므로 여기저기 마음을 빼앗기고 기웃거릴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모든 어려움들과 문제들을 하나님께 믿음으로 간구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그래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놀라우신 구원의 은혜들을 누리는 우리가 되게 해 달라고 함께 기도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