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건지 안 믿는건지

사사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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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서문]
최근에 제가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어디를 가든지 유튜브를 틀어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샤워할 때에도 유튜브를 틀어놓고 샤워를 합니다.
아 이거 뭔가 잘못됐구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주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저는 매번 제 귀에 뭔가를 주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핸드폰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그것이 하루 종일 제 머리에 뭔가를 채운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이런 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과 생각을 차지하는 우상이 되어가고 있던 것입니다.
현대의 우상 숭배자들은 자신이 우상을 숭배하는 지 잘 모릅니다.
서초동 대법원 앞에 가보시면 화환, 플랭카드, 확성기 장난아닙니다.
법원 앞에서 자기 돈, 자기 시간, 자기 열정을 다 들여서 좌파, 우파들이 자신들의 우상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대단한 열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어떻습니까?
BTS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 사람과 똑같이 되려고 성형수술을 수없이 한다는 사람도 봤습니다.
사생팬들은 어디를 가든지 목숨걸고 자신들의 우상을 따라 다닙니다.
유럽에 가면 가장 사람들이 열광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축구장입니다.
주일날 교회는 텅텅 비어있지만 축구장에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축구는 유럽에서 가장 유행하는 우상이 되었습니다.
SNS는 어떻습니까?
어떤 분은 말하길, 우리가 충분히 기도하지 못한 것이 시간 부족때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마지막 심판의 날이 되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가 입증해 줄거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벌써 수많은 우상들이 우리 삶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물이 배에 스믈스물 들어오듯 우상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기 시작합니다.
[본문]
오늘 우리가 만나는 이스라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반드시 그 민족들을 쫓아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들이 믿는 신들이 얼마나 매력적인 지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가나안 족속들을 그 땅에서 제대로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하나님이 걱정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신들에게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던 신앙과 가나안의 우상숭배가 뒤섞여 버렸습니다.
당시 가나안 땅에서 가장 유행하던 신이 바로 바알과 아세라 신이었습니다.
그 신들은 다산과 풍요를 담당하던 신으로서 그 당시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를 잘 보여주는 신들입니다.
당시에 애 많이 낳고 잘 먹고 잘사는 것 이게 바로 사람들이 원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 가나안 사람들이 애 많이 낳고, 땅이 풍요로운 것을 보면서 유혹을 느낀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사람들이 하나님 없이도 잘 사는 것 보거나 성공하는 것보면 유혹을 느끼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하나님도 섬기고 가나안 신들도 섬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의 모습을 간음하는 것으로 간주하십니다.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데 다른 우상들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셨습니다.
그 징계수단으로 사용한 민족이 바로 미디안 족속입니다.
미디안 족속들은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하나님이 부르신 구원자가 바로 기드온입니다.
기드온은 옷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에 이은 다섯번째 사사입니다.
기드온은 처음에 자신이 자격없는 사람이라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거부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기적을 베푸시며 소명에 대한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확신을 주셨지만 이제 기드온도 하나님께 자신의 믿음을 보여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자신의 집에 있는 바알과 아세라 제단을 허물고 찍어버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번제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드온 입장에서 이 일은 큰 댓가를 치뤄야 하는 일입니다.
기드온 집안과 그 동네 사람들은 원래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열심히 섬기고 있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우상을 없애버리면 가족들이나 동네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야 하고, 잘못하면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기드온의 경우처럼 댓가를 치루지 않는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저도 예수님 만나고 술과 담배를 끊었는데 이 때문에 친구들에게 얼마나 구박을 당했는 지 모릅니다.
제가 술도 안 마시니까 친구들이 저를 부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직장에서도 어려움은 계속되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신앙을 선택했기 때문에 치뤄야 하는 댓가였습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은 반드시 크고 작은 댓가를 치루게 되어 있습니다.
기드온은 댓가를 치루기로 결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는 10명의 종들과 함께 아버지의 소를 끌고가서 우상들을 무너뜨립니다.
특히 나무로 만들어진 아세라 상은 그것을 무너뜨리고 난 후 하나님께 번제를 드릴 때 뗄감으로 써 버렸습니다.
이러한 기드온의 순종은 이제 더이상 우상숭배를 그치고 하나님만 예배하겠다는 그의 결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 이 말씀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이러한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그냥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나님의 백성이 자동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안에 우상들을 그대로 두고 하나님을 진정한 하나님으로 모실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어쩌면 성경에 나온 우상들은 눈에 보이니까 허물고 찍어내는 게 더 쉬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우상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우상을 무너뜨리는 게 더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것들은 기생충처럼 우리 마음 속에 기생하며 우리의 신앙을 갉아먹습니다.
우상을 영어로 아이돌이라고 부릅니다.
마치 TV에 나오는 아이돌을 환영하는 것처럼 내가 미치도록 좋아하는 게 우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가 시간과 열정을 쏟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이 내 우상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내 마음을 빼앗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삶의 도구일 뿐인데 어느 순간 삶의 목적으로 자리바꿈을 해버리면 그것이 우상이 되어 버립니다.
돈, 직장, 사랑, 스포츠, 게임 모두 삶의 도구일 뿐 삶의 진정한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 속 깊이 숨어든 우상의 자리를 허물고 하나님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수많은 우상들은 우리에게 거짓 행복을 준다며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들은 내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빼앗아가며 우리를 그것의 노예로 삼으려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지만 우상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려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상숭배의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의 우상을 무너뜨리는 게 쉬운 일일까요?
우리가 만약 기드온이라면 이렇게 용기내서 우상들을 무너뜨릴 수 있었을까요?
기드온의 모습을 잘 보면 뭔가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드온도 하나님 말씀에 담대하게 순종한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기드온은 겁이 많고 소심한 사람입니다.
굳이 MBTI로 따지자면 ISFJ 정도 되는 사람 같습니다.
순종을 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낮에 안하고 밤에 합니다.
27절입니다.
‘그의 아버지 집안 사람들과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 일을 낮에 하지 못하고 밤에야 하였다’
하나님께 순종하기는 하지만 아직 두려움이 마음 속 깊이 있는 게 바로 기드온입니다.
기드온의 순종도 믿음도 아직 완성형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기드온의 모습을 보면 마치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믿음이 있다면서도 두려워하는 모습이 우리의 진짜 모습입니다.
이제 기드온이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알게 되자 난리가 났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아침에 일찍 바알, 아세라 신에게 기도하러 갔는데 그곳이 완전 쑥대밭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들이 아침에 일찍 우상을 찾아간 것을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우상들에게 열심을 내고 있었는 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상이 완전히 파괴된 모습을 보고 누가 이런 짓을 했는 지 찾아내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우상들이 자신들에게 해꼬지 할까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이런 일을 한 자가 기드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기드온의 아버지를 찾아가 이런 짓을 한 기드온을 죽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드온의 아버지가 아들을 보호합니다.
31절입니다.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이 바알의 편을 들어 싸우겠다는 것이오? 당신들이 바알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이오? 누구든지 그의 편을 들어 싸우는 사람은 내일 아침에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오. 만일 바알이 신이라면, 자기의 제단을 헌 사람과 직접 싸우도록 놓아 두시오.”
기드온의 아버지는 아들을 살려내기 위해 사람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합니다.
만약 바알이 진짜 신이라면 우리가 기드온을 죽이지 않더라도 바알 자신이 기드온을 응징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바알을 대신해 자신의 아들 기드온을 죽이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말은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진짜 바알이 살아있는 신이라면 자신을 무너뜨린 자를 찾아서 벌을 주는 게 당연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이스라엘이 얼마나 타락했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죽여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상의 자리에 하나님의 번제가 드려졌는데도 오히려 하나님의 번제를 드린 자를 찾아서 죽이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가나안화 되었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완전히 신앙이 거꾸로 되어 버린 것입니다.
또한 동네 사람들의 거친 항의는 바알의 무능력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신을 대변하고 신 대신 심판을 하려는 모습은 그 신이 무능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2절에 보면 이 일 후 기드온의 별명이 하나 생기는데 그게 ‘여룹바알’입니다.
바알이 직접 그와 싸우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 말은 바알이 신이라면 기드온과 싸울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기드온이 저주받지 않고 죽지도 않고 계속 살아있다면 그것 자체가 바알이 무능력하고 거짓 신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꼴이 된다는 말입니다.
기드온의 존재 자체가 바알의 거짓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우상들이 거짓임을 드러내는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이것없이는 못살아 할 때 우리는 그것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 우상이 없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돈 그렇게 많이 있지 않아도 우린 행복할 수 있어.
축구 좀 안 봐도 삶이 재미나.
이런 모습을 보여줘야 우상들이 이 땅에서 힘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바알신이 거짓이라는 증거는 그 다음 구절에서도 드러납니다.
기드온은 바알에게 죽지 않고 오히려 바알신을 섬기던 미디안 족속들과 전쟁을 벌입니다.
이 때 전쟁을 같이 치룰 형제 지파들을 부릅니다.
그러자 많은 지파들이 그의 요청에 따라 전쟁에 동참합니다.
한낯 겁쟁이에 불과한 기드온의 요청에 어떻게 많은 지파들이 갑자기 용기를 내서 동참하게 된 것일까요?
이 소문을 들은 것일까요?
답은 34절에 있습니다.
주님의 영이 기드온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이 전쟁이 기드온이 하는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전쟁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전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른 지파들이 참여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세상에서 치루는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우상들은 우리를 유혹하며 우리가 죄에 넘어지게 만듭니다.
그 영적 전쟁을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게 바로 주님의 영, 성령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이러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치루는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이 치루시는 전쟁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기드온은 형제 지파들도 모였으니 전쟁만 치루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드온은 망설입니다.
아직도 두려운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진짜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인지 확인하기 위해 또다시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먼저 양털뭉치를 바깥에 놔두고 다음 날 아침 양털 뭉치에만 이슬이 가득 차고, 다른 땅은 건조하면 하나님의 뜻으로 알겠다고 고백합니다.
진짜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여기서 말을 바꿔 또 한번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이번에는 양털뭉치만 건조하고 다른 땅은 이슬로 뒤덮이면 그 때는 정말로 하나님의 뜻으로 알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말입니다.
이게 진짜 믿음일까요?
기드온의 모습을 보면 진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데도 믿지 못하고 몇번이고 확인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서도 사람들을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제가 만약 하나님이라면 ‘너 장난하냐? 내가 한두번 말하냐? 말 귀를 못 알아듣냐? 너 아니면 쓸 사람없냐?’ 이렇게 했을 거 같습니다.
그러데 하나님은 이런 기드온에게 화를 내셨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왜 일까요?
하나님은 왜 이렇게 부족한 사람을 쓰시려는 것일까요?
이게 바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자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이런 모습에도 인내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든 구원하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결문]
여러분,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 역시 기드온처럼 믿음이 있는 것 같다가도 없고, 용기가 있는 것 같다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또 우리 마음에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우상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렇게 연약한 우리들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시고 우리를 만들어가십니다.
겁쟁이 기드온을 ‘힘쎈 용사’라고 처음부터 부르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역시 힘쎈 용사로 만들어가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의지입니다.
지금 우리의 순종과 믿음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들을 보며 나도 이들처럼 영웅이 되어야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만 주어진다면 왼손잡이 에훗도 사용하시고, 소몰이꾼 삼갈의 막대기도 사용하시고, 여성 드보라도 사용하시고, 겁쟁이 기드온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느냐입니다.
이스라엘 시대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예배하는 백성을 원하십니다.
우리 안에 우상들을 무너뜨리고 하나님만 예배하는 백성들이 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만 예배하는 백성이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일을 위해 우리는 우상들과 날마다 영적 전쟁을 치루는 것입니다.
이번 한주간도 우상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우리 다카포 식구들이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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