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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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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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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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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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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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Tone
Analy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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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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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t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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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Tone
Ope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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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cient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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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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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reeabl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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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al 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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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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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2장 18절 - 25절 말씀입니다.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설교 제목 : 창조 타락 구속 시리즈 4 “외로움의 진정한 해결책”
서론
사람을 보고 흔히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죠.
전도사님이 중3 때, 하루종일 투명인간하고 말 안하기 내기를 진행했어요.
엄청 멍청했던거지, 말 안하고 살 수가 있나.
말 하고 싶어서 엄청 근질근질거렸어요.
평소에 워낙 오지라퍼여서 온갖 곳에는 다 끼어들며 살았어요.
그러니까 평소에 하던 것을 안하려니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그 뿐 아니다.
코로나 의심자랑 밀접 접촉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격리 되었어요.
근데 그 때 진짜 외로웠습니다.
얼마나 외로웠냐면 밥을 가져다 주는 사람을 만나는 그 시간이 그리워졌어요.
밥을 가져다 줘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만나는게 좋았던 거죠.
여러분은 외로운가요?
코로나로 인해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도 못하였죠.
그 지난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외로웠던 시기였습니다.
맨날 집에 누워서 핸드폰 하고 밥 먹고, 공부한다고 앉았다가 딴 짓했죠.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는게 편안했어요.
그런데 자연스럽게 이제는 외로움을 느낀다.
심지어 외로움이 심각해지면서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증도 유행했어요.
정호승의 시 ‘수선화에게’는 이렇게 얘기해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이 이야기가 얘기하듯 우리는 모두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외로움을 이겨내고자, 친구와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술에 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친구는 집에 가고, 술 기운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더 극심한 외로움이 찾아오게 되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외로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오늘 본문에도 외로움을 경험하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오늘 이 사람을 통해 우리의 외로움을 해결하길 소망한다.
본론
우리 저번주 말씀이 기억나나요?
아담은 하나님께 일을 부여 받았어요.
에덴동산에서 경작하고 가꾸는 일이었죠.
그것은 혼돈과 흑암에서 질서와 빛으로 만드는 일이었죠.
그런데 그렇게 일을 하고 있는 중에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오늘 본문 2장 18절,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아담이 혼자 있는 게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좋지 않을까?
사람은 하나님의 무엇대로 지음 받았다고 했죠? 하나님의 형상이에요.
하나님의 형상에 담긴 가장 큰 특징이 있어요.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서로 교제하는 거에요.
그런데 아담은 혼자 있어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는데, 교제하지 못하고 있어요.
혼자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은 좋지 않다고 하셔요.
특히 아담은 외로워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낙원에서 유일하게 아담 홀로 외로움을 겪고 있어요.
과연 그는 어떻게 해결하나요?
1. 외로움을 자각해야 합니다.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를 보세요.
어떤 단어가 제일 많이 나와요?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문장만 7번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처음으로 좋지 않다라고 하신거에요.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세계 속에서 오직 아담만 좋지 않았습니다.
아담이 외로워하고 있었다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위해 돕는 배필을 지으시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배필이 누구였느냐?
19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각종 들짐승과 새를 지으셨어요.
그리고 그를 아담에게 보여주셨죠.
아담은 하나님이 데려온 그 동물들을 보며, 이름을 지었어요.
20절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지금 본인이 모든 짐승들에게 이름을 주었어요.
그렇다면 모든 짐승을 만난거에요.
그러면서 발견한 여러가지 사실이 있어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동물들에게는 암수, 즉 배필이 있다는 거에요.
그리고 오직 나에게만 배필이 없다는 사실이죠.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동물들을 다 살펴보았는데, 저 안에는 내 배필이 없다.
하나님께서 지금 아담 앞으로 동물들을 지나게 하신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아담의 외로움을 보여주고 계셔요.
그것으로 인해 아담은 지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어요.
모든 동물들이 다 짝이 있는데, 나만 짝이 없구나.
다들 빼빼로 받았는데, 나만 못 받았어.
이렇게 외로워하고 있어요.
즉 지금 자신이 외롭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하게 되었어요.
2. 외로움은 하나님이 주신 자와 연합을 통해 해결된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아담을 재우셨어요.
아담은 지금 마취가 제대로 걸려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되었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빼 여자를 만드셨어요.
그리고 그 여자를 아담에게 이끌고 오셨죠.
아담이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 이렇게 얘기했어요.
23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여기에 표현 중 “이는” 마침내를 뜻하고 있어요.
“내가 지금껏 당신을 얼마나 찾아 다녔습니까?”
저 문장을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나는 당신에게서 나의 모습을 본다는 뜻이에요.
아담은 지금껏 모든 동물을 보았어요.
하지만 처음으로 다른 피조물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자와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에 다가간다는 거에요.
지금까지는 외로워하며, 보기에 좋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공동체로 살아가게 된 거에요.
보기에 심히 좋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족과 친구를 통해 외로움이 사라진 것이죠.
3. 하지만 연합 속에도 연약함이 있다.
그런데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도 때로는 외로움을 느껴요.
교회 안에서 결혼한 사람도 외로움을 느껴요.
이게 왜 그런가요?
가까운 사람일수록 친구나 가족에게 기대하는 점이 높아지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완벽함을 가까운 친구들에게 요구하죠.
결국 그러한 관계는 깨지죠.
상대에게 가까이 갈수록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되죠.
그러고 우리는 상대에 대해서 실망하죠.
결국 부부 사이의 이혼, 친구 사이의 손절과 같이 연합의 깨짐을 보게 되죠.
공동체와 연합에게서 하나님의 것을 기대했던 욕심이 잘못 된 것이지.
존 뉴턴이라고 어메이징 그레이스 라는 위대한 찬송가를 작곡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자신의 가장 큰 문제를 고백했어요.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아내와의 결혼에 대한 우상숭배였어요.
상대에게서 완벽함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 불쌍한 일이에요.
하지만 우리 삶 주변에 너무나도 자주 보게 되죠.
그러나 공동체와 연합, 결혼이 우리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하나님을 대신 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하냐.
4. 외로움을 해결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사야, 예레미야, 호세아서에서 반복적으로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백성이 신부라”고 말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우리의 외로움을 보시고 영원한 만족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를 보내시나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요.
그분이 우리의 참 신랑이에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로움을 달래줄 누군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완벽함을 요구하지만, 하나님은 그러지 않으셔요.
상대는 완벽함이 없으면, 관계를 깨트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함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우리는 하나님이 맺게하신 공동체를 사랑하기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해요.
이것은 공동체를 덜 사랑하라는 뜻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뜻이에요.
공동체가 하나님을 대신 할 수 없기에,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하나님이 주신 공동체를 통해 외로움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결론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연합에서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외로움을 느끼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먼저는 내가 외로운지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면,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어제보다 오늘 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오늘 함께 하나님을 찾으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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