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위하시면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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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본문 복습>
우리는 지난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뜻하는 일곱 금촛대 사이를 지나시며, 교회에 사자를 의미하는 일곱별을 오른 손에 가지시며 교회를 온전케 하시는 분임을 나누었습니다. 요한이 본 환상 가운데 주님의 입에서는 좌우의 날선 검이 나왔고,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그의 말씀으로 교회를 온전케 하셨습니다.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도 같아서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온 세상에 울리는 음성과도 같았습니다. 또한 주님의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과 같아서 우리가 어두움에 있지 않고, 빛 가운데 있게 하셨고, 승리자로서의 강함으로 교회를 지키시고 계심을 나누었습니다.
주님은 어두워져 가는 세상 속에 힘을 잃어가는 교회와 세상의 유혹에 타협하는 교회, 지속적으로 승리하는 교회 가운데 임하시어 온전케하시며, 능력을 주시며,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주님이 우리가 의지할 유일한 분이신 것은 그가 우리보다 먼저 고난을 당하셔서 승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위로와 권면은 우리에게 적실합니다. 고난을 이기어내신 주님을 통해 우리도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교회로 세워져야 할 것입니다.
1. 서론
교회는 승리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연약합니다. 고난과 박해는 예수 믿는 자들을 피해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어서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죄의 유혹은 성도들은 유혹하고 믿음에서 떨어지게 만듭니다. 고난이 두려워 배교하는 것보다 유혹의 욕심에 넘어져 배교하는 일들이 더 많아진 시대가 사도 요한이 살았던 시대의 모습입니다.
매일 고난과 유혹에 문제에 직면하는 신앙의 문제는 우리로 끝나지 않은 싸움으로 지쳐버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물음에 주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바라야 하는지 답을 주고 계십니다. 그 답은 무엇일까요? 주님께서는 자신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거니시며,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자신을 보여주심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믿는 것이 참된 해결책임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적용 : 삶의 비참한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닌 주님을 바라보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주님을 통해서 상황을 이해하세요. 우리의 눈은 세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시력이 없습니다. 믿음의 눈, 영적인 눈으로 나에게 닥친 비참하고 어려운 상황을 바라볼 때야 우리는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 본론1- 요한의 반응과 주님의 말씀
오늘 본문은 사도요한이 주님의 환상을 지켜본 사도요한의 반응에 대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주님의 위로와 격려에 대한 말씀을 나누어볼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만나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 것입니까? 주님을 한번이라도 보기만 한다면 그동안의 설움과 고난에 대한 피로가 사라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쁠 것입니다. 요한도 승천하셔서 보지 못한 예수님을 만남에 기뻤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반응은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요한이 환상가운데서 보았던 예수님은 지금까지 보았고, 함께한 모습과는 다르게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보좌에 계시며 능력과 권능의 모습으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1) 두려움과 경외감, 인간의 올바른 반응
본래 하나님을 만나면 죽는 것이 성경적인 이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의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죽음에 이르지 않게 하시고, 자비를 통해 비전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백성이 죄에 대해 타락하여 심판에 이르기 전에 선지자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선지자적 비전이 생길 때마다 보이는 일관적인 반응은 그들이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이사야, 에스겔, 다니엘) 그러나 이러한 반응은 단순히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는 것을 넘어서선 반응입니다. 이 반응에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경외감이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남을 생기는 경외감과 예배는 참된 비전과 소망으로 변했습니다. 오늘 요한이 직면한 경외와 예배가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영동제일교회의 성도들에게도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삶의 문제와 교회의 문제에 지쳐 있다면 주님 앞에 서심으로 참된 소망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비전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예화 :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젊은 나이인 29세로 인생을 마감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뜨거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였습니다. 그는 어느 날 인생의 허망함에 갇혀 힘을 잃고, 힘든 날을 보내었습니다. 무력한 우울감은 그를 잡아먹었고 벗어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의 사역은 자신을 소진하여 인디언을 위해 내어주는 사역을 해왔었습니다. 기도를 위한 밥먹듯이 하는 금식, 결핵과 곪아가는 심장의 통증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기를 쉬지 않던 그에게 우울감이 깊이 찾아온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인디언들, 성공적이지 못한 사역의 모습도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의 특징은 기도를 쉬지 않은 사람입니다. 지푸라기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모든 소망이 끊겨버린 그 순간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셔 그에게 자신을 알려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묵상은 1년이 넘게 지속됐습니다. 하나님을 확실히 알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그의 사역은 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역에 소망과 비전이 생기니 힘이 났습니다. 변화된 그의 마음은 사역에도 드러났습니다. 인디언들이 회심을 하며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고, 우리에게 찾아오실 때 우리에게는 참된 소망이 생깁니다.
적용 : 이런 은혜를 구하며 사십니까?
여러분의 삶에서 주체하기 힘든 어려움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하십니까? 피하기만 하지 않으신가요?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찾아오시고, 개입함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손과 발을 내려놓고, 주님을 맞이하십시오. 주님께서 삶에 개입해 주심을 구하십시오. 오늘 요한이 무릎을 땅에 대고 주님을 만나 뵌 것처럼 주님께 나아갑시다.
(2) 요한을 향한 주님의 반응 “오른 손을 대시며 두려워 말라 하심”
환상가운데 나타나신 주님을 만났을 때, 요한은 죽은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를 위로하시며 사랑스럽고, 자비롭게 다가가십니다. 주님의 가장 강력한 능력이 위로인 것 아시나요? 주님은 능력의 오른팔로 요한에게 손을 대시며 두려워 말라 하십니다.
주님은 성육신하셔서 연약함과 고난, 죽음을 모두 경험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질고를 아시는 분이셔서 우리의 모든 슬픔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슬픔과 고통을 전혀 알지못하는 사람이 하는 위로와는 전혀 다릅니다. 주님은 모든 고난과 질고를 아시는 분으로 요한을 위로하시며 능력의 오른손을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마, 내가 너를 도와줄께”
예화 및 적용 :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참 어려운 일을 많이 겪습니다. 그런데 참 위로가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교회의 어른이 위로해줄 때입니다. 그리고 나와 동일한 경험을 한 사람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전해줄 때입니다. 그에게 주신 위로와 사랑이 나에게 동일한 은혜가 되는 것을 우리가 경험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질고를 경험하신 분으로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위로하실 때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요? 이처럼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는 한 교회의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본론2-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
1) 처음과 나중이신 그 분은 하나님이시다.
주님께서 요한에게 첫번 재로 하신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주님께 있습니다. 모든 전쟁과 삶의 안녕이 주님을 떠나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고 밝히십니다. 이 사실에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알파와 오메가라는 단어의 사용은 요한계시록 내에서 하나님께 2번 예수님에 대해 1번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화 및 적용 : 미국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하나님을 인정하라
로마의 황제가 세상을 다스리고 있지만, 모든 세상의 권세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정세가 미국에 달려있다고 미국에 살기를 소망합니다. 아메리카드림을 꿈꾸며 많은 사람이 이민을 갔습니다. 또한 전쟁을 피해서 미국으로 도망갑니다. 핵전쟁에서도 미국은 안전하다며 피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그 어디에 있어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아모스는 너희가 도망가더라도 끝까지 너희를 쫓을 것이며, 벽에서 뱀이 튀어나와 너희를 물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눈을 떠나, 하나님의 손을 떠나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모든 삶에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처음과 나중인 되신 주님의 능력은 영원함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원함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셨습니다. 18절에서는 “살아 있는 자, 죽었었노라, 살아 있어”으로 자신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모두 살아있는 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원함 속에 갇힌 세상은 영원을 가진 자에게 불가능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모든 권세 위에 있으셔서 세우기도 하시며 허물기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신 분이 처음과 마지막이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2) 사망을 이기신 분이기 때문이다.(18절) -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에 대한 어구를 원어로 조사해보면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소유격은 다양한 격에 연결이 가능한데, 목적격에 연결을 시켜보면 사망과 음부에 이르게 하는 열쇠, 죽이기도 하시며, 살리기도 하시는 능력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소유격이 소유격에 연결이 되면 사망과 음부가 가진 열쇠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 해석은 죽은 후의 세상 또한 주님이 다스리시는 분임을 의미합니다. 이 열쇠를 가지신 분은 죽음조차도, 죽은 후의 모든 세상도 다스리시는 통치자를 뜻합니다.
세상의 권세들이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고, 죽음으로 위협하지만 사망에 빠지는 것도 하나님이 다스리기에 우리는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지키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죽은 후의 세상도 주님의 것이기에 우리는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적용 : 살아계시고, 살아나셨고, 앞으로도 살아계실 주님께서 죽음을 직면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고 계십니다. 주님이 열어주시지 않으면 열리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닫지 않으시면 닫히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생사화복과 죽은 후의 모든 삶을 주님은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안녕은 로마의 황제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과 우리의 부요함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어 두려워하지 않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러한 능력을 통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히 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도 죽음은 무서운 것입니다. 임종의 순간 모두가 두려울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죽음을 종식 시키셨습니다. (존 오웬을 책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죽음의 종식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죽음을 죽이셨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들에게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우리에게 부활의 참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은 더 이상 우리를 얽멜 수 없습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담대하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예화 : 성도의 죽음은 영원한 길로 가는 시작점이 됩니다. 주님께로 가는 발걸음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남겨진 성도들과 가족들은 슬프겠지만, 주님께로 발걸음을 시작한 성도는 영광스러운 곳에 임하기에 성도는 슬프지 않습니다. 죽음을 영광스럽게 맞이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저희 아버지께서 선교사역중 순직하셨을 때, 모든 가족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아직까지도 슬픔은 우리의 마음 가운데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슬픔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성도이신 아버지가 죽음을 이기셨고, 주님의 영원한 품, 주님의 영원한 통치가운데 들어가셨다는 것을 믿을 때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성도인 저도 주님 안에서 죽는 죽음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생명과 사망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은 참된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4. 본론3- 기록하라(19절)
1) 해석법(세대주의의 오류)
요한은 다시 그가 본 것을 ‘기록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를 기록하라 하시는데,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말씀하십니다. 몇몇 사람들은 이 표현을 요한계시록의 전체 개요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현재 요한이 본 것, 지금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그리고 장차 앞으로 교회인 우리에게 일어날 일이 요한계시록에 담겨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본 것’이 이제까지 요한이 보았던 것 1-2장의 내용을 언급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제 있는 일’을 이제 2-3장에서 다뤄지는 일곱 교회들의 상황으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일어날 일들’은 미래의 일로 4-22장의 내용으로 해석합니다.
이러한 해석을 동일하게 하는 신학자들이 있는데 세대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시대별로 나누어 성경을 해석합니다. 그래서 2-3장의 메시지가 교회의 현 세대에 관한 것이며,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인 4-22장은 교회가 들려 올려 진 후에 일어나게 될 미래의 사건들을 예견합니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일로 세 가지로 엄격하게 구분지어서 성경을 해석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해석은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합니다. 시대/세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해석은 옳지 못합니다. ‘본다’라는 단어는 요한계시록 전체를 염두해 두고 읽었을 때 계시록 내의 모든 환상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에 주는 메시지와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도 현재와 미래의 요소들이 모두 사용되었으므로 엄격한 시간을 구분하여 요한계시록을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2) 기록하게 하신 이유(경고하시며, 온전케 하심)
그래서 주님께서 자신의 계시를 기록하라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께 속한 교회의 비밀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20절) 하나님께서는 신비스러운 것을 환상을 통해 드러냄으로 교회의 속성과 교회의 비밀을 알려주십니다. 위기를 겪고 있는 교회, 배교를 겪고 있는 교회에 경고하시며, 교회와 세상을 새롭게 하실 것을 환상을 통해 알려주려 하심이었습니다. 심판과 환란이 시작되는 때에도 주님은 여전히 능력의 오른팔로 교회를 지키시며, 위로하셨습니다. 결국 교회는 완성되며, 새 예루살렘성으로 온전히 세워집니다. 이 비밀을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알게하도록 기록하라 하신 것입니다.
적용 : 우리가 알아야 할 비밀은 핵폭탄이 터지고, 언제 전쟁이 일어나는 상징적인 사실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교회 가운데를 거니시며, 그의 능력의 팔로 성도들을 붙들고 계시고, 손에 일곱별을 지니셔서 자신의 사자를 교회에 보내셔 말씀하시는 주님, 해가 힘있게 빛남같이 어두워져가는 세상 속에서 교회를 여전히 빛 가운데로 거하게 하시는 주님의 손길이 지금도 여전히 주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모두가 알도록 기록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기를 원합니다. 교회를 지키시며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래서 상황에 매여 무서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위하시고 계십니다.
3) 기록할 내용(20절, 교회와 교회의 사자, 일곱 금 촛대와 일곱 별)
요한이 보고 기록할 내용은 비밀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 비밀은 일곱 금촛대인 일곱교회와 교회에 일곱별, 일곱 교회에 보낼 주님의 사자를 의미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사자들을 통해 자신의 말씀을 전하시며, 온전케 하시며, 세워나가실 것입니다. 이제 다음 장인 2-3장부터는 일곱교회에 대해 다뤄집니다. 교회는 각기 책망할 점과 칭찬할 점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주님의 능력으로 승리하고 이기라고 권면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시대 속 교회의 모습은 승리하기도 하지만 연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있는 참된 교회만이 온전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를 온전케 하실 그 날을 사모하며 기다리고, 연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교회를 온전케하시는 주님의 손길이 전체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요한은 이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5. 결론 “그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우리는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비밀과 환상을 볼 때, 안심하게 됩니다. 교회는 여전히 연약하고, 허물이 많으나 주님께서는 교회에 말씀하시고, 붙드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으로 인해 능력과 힘이 생깁니다. 문제는 우리의 어떠함, 환란의 극심함과 우리의 연약함도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무지함과 믿지 못하는 불신앙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존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롬 8:38-39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러므로 오늘 요한에게 영광스러운 자신을 보이시며, 두려워하짐 말라고 하신 음성을 믿어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을 믿는 영동제일교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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