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기준, 하나님의 기준

세우시며, 허무시는 하나님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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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우리는 기준을 세워서 사람을 나눕니다. 성별로 남자와 여자를 나누고, 인종을 통해 한국인과 외국인으로 나눕니다. 이것을 우리는 양분화라고 부르는데, 양분은 기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이 기준이 무엇인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너무나도 복잡한 시대에 살고 있어서 절대적 기준이 너무나 모호하고, 없어진 상태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준이 없는 시대는 모호합니다. 질서가 없고, 복잡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절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의 기준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기준이 있다면 세상이 아무리 복잡해져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까지 다른 것에 요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기준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1) 첫 번째 해석 :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에워 쌓다.
오늘 본문은 하나의 사건을 두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먼저 다니엘서 1:1절입니다. 이 본문은 오늘 남유다가 망하기 시작하는 말씀입니다. 여호야김왕 3년, 바벨론 왕이 남유다를 침공해 1차 포로를 끌고 가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유다는 2차포로 이후 시드기야 왕 때 멸망합니다.
(1) 역사적 선지식, 배경설명
오늘 본문을 다루기에 앞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짤막하게 다룸이 좋을 듯 싶습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한 나라였지만, 솔로몬의 죄와 아들 르호보암의 폭정으로 인해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양분됩니다. 두 나라는 모두 하나님을 믿는 나라였지만 회개와 회복을 반복했습니다. 누가 더 나쁘냐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께 돌아왔냐 돌아오지 않았느냐의 문제만 남았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회개고 돌아오라고 외치셨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멸망하였고, 남유다는 586년에 멸망했습니다. 언제라도 멸망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이들의 삶에 사라졌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라지니 삶의 기준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희미해졌습니다.
레 26:41-44 레위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였을 때 나라에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보내어 고통을 당하게 하시며, 그때에도 돌아오지 않을 때 다른 나라의 포로로 끌려가 그들로 회개하게 하겠다고 약속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라지니, 말씀이 사라지고, 삶의 기준이 사라지니 죄가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적용 : 여러분 죄는 우리의 삶을 망가트리고 사망으로 이끕니다. 생명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지게하여 사망으로 이끌지만, 죄 자체가 우리의 인생을 망가트립니다. 술과 담배를 하게 되면 잠깐은 기분이 좋고, 근심을 잃게 만들지만 섭취가 지속적으로 되다보면 우리의 폐와 간을 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죄는 하나님을 떠난 죄도 있었지만 그들의 삶에 거룩이 사라지고, 사랑이 사라져 나라는 힘을 잃고, 건강한 정신을 잃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떠하신가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삶을 거룩하게 세우고 있나요?
(2) 지리적 선지식, 열방의 강대함
그들의 주변에는 너무나도 강한 강대국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주변 나라로 지나가려면 이스라엘을 통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정복하면 정말로 좋은 도로를 얻게 되기에 모두가 탐내는 지리적 이점이 있었습니다. 아래는 애굽과 블레셋, 요단강을 지나서 오른편에는 모압과 암몬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강대국들이 이스라엘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한 시도 긴장을 놓쳐서는 안되는 위험에 갇혀사는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멀리서는 앗수르와 바벨론이 신흥강자로 나라가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스라엘은 이런 강대국들에 대해 패배하지 않고, 나라를 지켜왔습니다. 그들의 승리는 기적과도 같았습니다. 잠을 자다 일어나보니 서로가 싸워 도망을 가 있었고, 횃불과 항아리로 싸워도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이는 전쟁의 승리는 그들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지켜주시고 승리를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였고, 그들이 앞으로 자신을 의지하게 하려는 교육적인 하나님의 방편이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남유다의 왕 요시야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종교적 개혁을 일으킨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여호와의 율법을 발견하여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킨 왕이었습니다. 주변 강대국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모든 주변국들의 우상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그가 전쟁에 나가 전투를 하던 중 전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의 소망이 끊겼다고 슬퍼했습니다.
요시야의 죽음 후, 남유다의 마지막 왕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열국의 정세에 가장 강한 나라를 의지했습니다. 그는 애굽을 선택하고 의지했습니다. 강대국에 발을 잘 붙여야지 유다가 잘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승리를 주시며, 이스라엘의 참된 권세이신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승리는 국력에 있지 않고, 강대국의 보호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애굽을 의지한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애굽이 바벨론에 의해 나라의 국력이 약화되기 때문입니다. 바벨론과의 전투에서 애굽이 진 것입니다. 그 후 애굽을 의지하는 여호야김에 대한 괴씸죄로 바벨론왕은 남유다로 쳐들어옵니다.
적용 : 여러분 그 어떠한 것도 여러분을 지켜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잠깐은 우리에게 보호를 줄 수 있지만 언제든 무너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의지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세우기도 하시며, 허물기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삶에 하나님을 인정하길 소망해요. 그리고 두려워하지 않기를 소망해요.
(3) 우리의 시각, 망했다. 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전체적인 상황을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망했다’입니다. 그리고 ‘이제 곧 우리 나라는 망할 것이다.’ 일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상황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봤을 때도 그러합니다. 유다의 국력으로 더 이상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제 바벨론이 아니어도 주변의 강대국들은 더 많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보다 강하기 때문에 남유다는 풍전등화의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실 건가요?
2) 하나님의 기준과 해석 : 하나님이 넘겨주셨다.
2절을 보면 우리의 기준과는 다른 해석을 주십니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고, 거룩한 성전의 기물이 모두 패배한 국가의 우상의 창고에 들어가는 이 모든 상황이 하나님이 바벨론에게 자신의 것을 넘겨주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약하셔서 패배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셔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가지시고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역사의 주인이 강대한 국가의 왕이나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참된 권세이심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고단한 포로의 삶을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고 생각하는 백성들에게 참된 소망과 위로를 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여전히 그들의 주인이 되셔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왕으로 다스리고 계시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1) 여전히 역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바벨론에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자신이 참된 권세이심을 바벨론의 왕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바벨론의 술사들도 그 어떠한 사람도 하지 못하는 환상을 풀어보이시며, 그 환상을 통해 바벨론과 그 이후의 왕도 자신이 세우며, 허무는 분임을 보여주십니다. 또한 하나님보다 높아져 오만이 가득한 왕을 낮추심으로 세상의 권세를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또한 사자굴에서도 그를 겸손히 섬기며, 믿고 의지하는 백성을 보호하시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고, 약하지도 않으셨습니다.
(2) 왜 그렇게 하셨나?
왜 하나님은 자신을 패배한 하나님으로 낮추시면서까지 자신의 백성을 바벨론에게 내주셨을까요?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려고 자신을 낮추시고, 백성을 내주신 것입니다. 그들의 멸망은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고 탐욕을 쫓는 그들의 삶에 얼마간의 고난을 주셔서 돌아오게 하고 백성에게 자신을 알게 하시려고 내어주신 것입니다.
적용 및 결론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는 것에 원망보다는 위로가 됩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여전히 보호하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는 눈은 ‘망했다’일 것이지만,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얼마를 넘겨주셨고,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왕이시지만, 오히려 세상의 왕으로서 끝나지 않으셨음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삶에서도 ‘망했다’, 이젠 안된다는 말보다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를 기준으로 삼아 살아가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으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이 세상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실패한 죽음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신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만드셨습니다. 승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끝나지 않았습니다. 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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