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 놈, 놈

사사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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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서론]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 내용이 추수감사절에 전하기에는 주제가 안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말씀을 준비할까 했는데 그냥 이 말씀을 그대로 전하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감사의 힘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감사일기를 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특히 기독교에서는 감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감사할 만한 게 있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렇지만 감사할 만한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감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감사는 특별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그 감사는 ‘찐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럼 나도 감사를 찾기 어려운 말씀인데 그래도 한번 감사를 찾아봐야 겠다는 그런 마음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 말씀을 그대로 이 말씀으로 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본론]
우리가 오늘 볼 말씀에는 3명의 놈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설교제목도 ‘놈, 놈, 놈’입니다.
먼저 우리가 볼 첫번째 놈이 바로 ‘미친 놈 아비멜렉’입니다.
그는 완전히 권력에 미친 놈입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이 세겜 여인인 첩에게서 낳은 자식입니다.
원래 기드온은 아내를 많이 둬서 70명의 아들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달리 첩의 아들로 태어난 자가 아비멜렉입니다.
아비멜렉은 첩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항상 권력에 대한 야심을 갖고 있던 인물입니다.
어쩌면 첩의 자식이었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 기드온이 죽자 자신의 어머니 고향이자 그 당시 종교적 중심지였던 세겜 사람들을 꼬득하고 구워삶아서 그들의 지지를 받게 됩니다.
이런 세겜 사람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후원금을 모아 그는 깡패들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 깡패들을 통해 자신의 배다른 형제들 70명을 한 장소로 불러내 모두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배다른 형제들을 다 죽일 때 가깟으로 살아남은 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요담입니다.
오늘 말씀 바로 앞 부분을 읽어보시면 요담은 세겜 사람에게 네가지 나무 우화를 들려주며 그들의 행했던 죄악을 지적했습니다.
악독한 아비멜렉이 왕이 되는데 세겜 사람들이 도왔기 때문에 그들도 죄악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요담은 하나님이 분명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의 죄악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요담의 예언이 어떻게 이뤄지는 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아비멜렉은 왕이 되어 3년간 세겜 지역을 다스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이런 모습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23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 곳에 악령을 보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만드십니다.
지금까지는 이스라엘이 죄를 지으면 주변 민족들을 통해 고통을 주셨는데 이번에는 다른 방법으로 이스라엘에 고통을 주십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안에서 서로 미워하게 만들어서 서로 죽고 죽이며 고통 당하게 하십니다.
남들한테 당하는 것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당하는 게 더 괴롭고 무서운 것이죠.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타락이 계속될 수록 하나님의 심판의 강도는 더 강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저지른 죄악을 심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24절입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이 여룹바알의 아들, 즉 기드온의 아들 일흔명에게 저지른 포악한 죄과를 이렇게 갚으셨는데, 자기의 형제들을 죽인 피값을, 아비멜렉에게, 그리고 형제들을 죽이도록 아비멜렉을 도운 세겜 성읍 사람들에게 갚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악행과 그의 악행에 후원하고 동조했던 세겜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그들이 서로 미워하게 만드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악에 대해서 개입하시고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악인들의 카르텔을 깨뜨리시고, 그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배다른 형제들을 죽인 기드온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일에 동조한 세겜 사람들에게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악한 자들이 악을 저지르면서도 자기들끼리 잘먹고 잘사는 것을 보면 도대체 하나님이 어디 계시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법에 안 걸리고 승승장구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불법은 아니더라도 탈법, 편법을 쓰면서 잘나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데도 오히려 더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최근에 성남시 대장동 비리 사건도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불법적으로 1000만원을 가지고 100억의 수익을 얻었습니다.
이런 소리 들으면 너무 허탈하고 억울합니다.
입에서 감사가 나올 수가 없죠.
그 일이 드러나서 다행이지, 만약에 안 드러났다면 어땠을까요?
악인들이 잘 먹고 잘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정직하게 사는 사람,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은 다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정의의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악에 대해서 심판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악을 심판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우리는 악인들의 성공에 그리 억울해하거나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만에 하나 그들이 어쩌면 이 땅에서는 심판을 피할 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절대로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악인은 반드시 심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서도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잘되는 거 같지? 절대 그렇지 않아. 하나님이 계셔'
그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떻게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과의 사이를 틀어놓으셨을까요?
먼저 등장하는 것은 세겜 사람들이 강도짓을 한 것입니다.
아비멜렉에게 돌아갈 통행세같은 것을 그들이 중간에 다 가로채 버렸습니다.
이렇게 아비멜렉이 통치하는 곳에 강도들이 출몰한다는 것은 왕에 대한 반역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홍길동전이나 로빈훗을 보면 그들은 물론 의인들이었지만 아무튼 반 정부인사들이었잖아요?
이렇듯 세겜 사람들이 강도짓을 하는 것은 아비멜렉을 인정하지 않고 그를 거역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결정적인 문제 한가지를 더 일어나게 하십니다.
에벳의 아들 가알이란 자가 세겜에 등장한 것입니다.
그가 오늘 등장하는 놈, 놈, 놈중 두번째 ‘사기친 놈’입니다.
그는 세겜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은 후에 사람들 사이에 아비멜렉에 대한 반감을 조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세겜 사람들이 추수를 마치고 그것을 기념하는 축제에서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그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28절입니다.
우리 세겜 성읍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왜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겨야 합니까? 도대체 아비멜렉이 누굽니까? 여룹바알의 아들입니다. 스불은 그가 임명한 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를 섬겨야 합니까? 여룹바알과 그의 심복 스불은 세겜의 아버지 하몰을 섬기던 사람들입니다. 왜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겨야 합니까?
‘여룹바알과 그의 심복 스불은 세겜의 아버지 하몰을 섬기던 사람들입니다라’고 한 부분은 새번역 성경 번역이 좀 잘못되었습니다.
그의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비멜렉을 왕으로 섬기지 말고 자신을 왕으로 삼아달라는 것입니다.
그렇치않아도 아비멜렉에게 불평, 불만이 많던 세겜 사람들 마음에 불을 지핀 것입니다.
그는 아비멜렉은 여룹바알, 즉 기드온의 아들이지만 자신은 온전한 세겜의 후손, 세겜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몰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반쪽 혈통 아비멜렉이 아니라 순수 세겜 혈통 자신을 왕으로 삼는게 더 낫지 않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가알의 주장은 전에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을 설득할 때 사용하던 방법과 똑같은 것입니다.
아비멜렉도 자기는 엄마쪽이 세겜 출신이지만 기드온의 아들들은 아니니 자신을 왕으로 추대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알도 똑같이 아비멜렉의 아버지쪽만 강조하면서 그를 비난하고, 자신은 아버지 어머니 모두 세겜출신이니 자신을 지지해 달라는 것입니다.
뭐 지금도 정치인들이 진짜 호남의 아들이 누구냐 충청의 아들이 누구냐 이런 거 주장하잖아요?
어떤 정치인은 아내가 호남 출신이라는 것을 내세워 호남의 표를 많이 얻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 가알이 그런 지역감정을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또한가지 감사에 대해 생각해볼 부분이 있습니다.
감사의 반대말이 무엇일까요?
불평, 불만입니다.
불평, 불만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공동체 내에도 불평,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면 연합이 깨어집니다.
그래서 사탄이 관계를 깨뜨리고, 공동체를 깨뜨릴 때 사용하는 무기가 불평, 불만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인인 인간에게 있어 자연스러운 것은 불평, 불만이지, 감사가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 동산의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단 한가지 선악과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뱀은 하와를 속일 때 하와 마음 속에 하나님에 대한 불평, 불만을 자극했습니다.
뱀이 묻죠.
‘하나님이 에덴 동산의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너희가 그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까봐 못 먹게 하신거야,’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탄은 하와에게 하나님이 주신 많은 것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한 가지에 집중하게 해서 그들의 불평, 불만을 자극한 것입니다.
그렇게 사탄이 아담과 하와의 감사를 빼앗아 가버리자 불평, 불만이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감사를 빼앗기면 우리 안에 숨겨졌던 불평, 불만이 다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내 안의 잠재된 불평, 불만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면 계속해서 삶에서 의식적으로 감사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불렀던 찬송가 429장을 보면 ‘네가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는 가사가 있었습니다.
날마다 받은 복을 세워보는 것이 바로 우리의 감사생활입니다.
자, 이제 가알은 세겜 사람들의 후원을 얻어내 아비멜렉과 전쟁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전해듣고 아비멜렉에게 고자질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스불입니다.
그가 오늘 소개할 세번째 놈, ‘입이 싼 놈’ 입니다.
그는 아비멜렉이 세겜성읍의 장관으로 심어 놓은 자입니다.
그런데 가알이 전쟁을 일으키려 하자 그 계획을 미리 아비멜렉에게 일러바쳐 아비멜렉이 먼저 기습작전을 펼치게 도와줍니다.
스불은 자신이 고자질 해놓구선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합니다.
심지어 가알의 허영심을 충동질해서 그를 아비멜렉과 정면으로 싸우게 만듭니다.
결국 가알은 아비멜렉에게 대패를 하였고, 성 안에 있던 스불은 가알과 그의 친족들을 모두 세겜성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런데 세겜 사람들에 대한 아비멜렉의 보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비멜렉을 권력에 미친 놈이라고 했잖아요.
그는 세겜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돌아섰다는 것을 알고는 철저히 보복을 단행합니다.
언제 또다시 자신을 배신할 지 모르니 철저히 밟아주겠다는 심보였던 것입니다.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과 가알의 전쟁이 끝나자 자신들의 일을 하기 위해 성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때 아비멜렉은 또다시 기습적으로 세겜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그는 가알에게 동조했던 세겜 사람들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세겜성까지 공격해 그 곳을 완전히 점령하고 그 안에 백성들을 모두 죽여 버립니다.
심지어 그 곳을 저주하려고 아에 거기 성읍을 다 허물고 소금을 뿌려버렸습니다.
이 말은 이 곳은 저주받은 곳이니 아무 것도 여기에 세우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내일 본문에 보면 그는 산으로 도망친 세겜 사람들을 끝까지 뒤쫓아가 모두 불태워 죽여버리는 잔인함을 보입니다.
그래도 한 때 자신이 왕이 되는데 결정적으로 도움을 줬던 세겜 사람들이었는데 이렇게 철저히 보복을 해 버립니다.
이를 보면 아비멜렉은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 감사하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 말씀은 마치 조폭 영화 한편을 보는 듯 합니다.
선한 사람은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고, 모두 놈, 놈, 놈 뿐입니다.
진실과 정의, 감사는 찾아볼 수 없고, 거짓과 보복, 불만만 가득합니다.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망가졌을까요?
그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 한 후 하나님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셔야 하는 땅이 우상숭배로 완전히 더럽혀져 하나님의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모습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백성들이 어떤 비참한 일을 겪게 하시는 지 보여주십니다.
누군가 쳐들어와서 망하는 게 아니라 안에서 서로 반목하다가 망하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아비멜렉이 아직 자신이 행한 악한 행위에 대해 심판받는 모습이 없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하나님이 어디 계시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장만 넘기면 아비멜렉은 자신의 악행으로 인해 비참한 죽음을 당합니다.
그것도 무명의 한 여인이 던진 돌에 머리가 박살나 버립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민족도 망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개인도 망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하나님이 한 해 동안 우리에게 하신 일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올 한 해동안 하나님은 우리에게 수많은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감사는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 복을 세어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돌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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