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보다 행동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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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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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E
Social
도입
도입
한 동안 욕쟁이 할머니 집이라는 식당이 유명했습니다. 식사를 하러 가면, 욕을 맛깔나게 하는 욕쟁이 할머니가 갖은 욕을 손님들에게 해 댑니다. 그러면, 손님들은 그 욕을 듣고 즐거워하지요.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내 돈을 내고 욕을 먹어가면서 밥을 먹는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집을 찾아서 밥을 먹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그 할머니는 말은 험학하지만, 그 분의 음식을 대접하는 인심은 후해서 사람들에게 유명했던 것 같습니다.
말과 행동 이 둘 중에 무엇이 중요할까요 ?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 두 가지 말과 행동에 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전환문> “말로 천냥 빛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 만큼 말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 만큼 우리는 말을 주의 깊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말을 듣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사람의 말을 분별해서 들어야 합니다.
1. 사람의 말을 분별해서 들어야 합니다.
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혀는 곧 사람의 말입니다. 야고보서에서는 혀는 곧 “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불은 무엇입니까? 무엇인가를 태우는 것이지요. 그런데, 불은 음식을 할 때에는 좋은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큰 산불을 일으키면, 그것은 나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혀는 곧 불"이다라는 말은 혀는 곧 사람의 말은 매우 나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6절을 다시 보십시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그렇습니다. 사람의 말은 불의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아니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왜 사람의 말은 불의하다고 하나요? 네 그렇습니다. 우리도 좋은 말 축복의 말, 칭찬의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왜 야고보 사도는 사람의 말이 불의 하다고 할까요?
첫째로 혀는 길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8절 말씀을 보십시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기억을 더듬어 보십시오. 우리는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입에서 말이 튀어 나오고, 행동과 다르게 말을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왜 그런 말을 했지 하며 후회한 적이 늘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자신의 말을 절제하고 통제할 수 없습니다. 생각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말은 이미 상대방을 비난하고 상처주기 일상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사람의 혀는 불의한 것입니다.
또 우리는 동일한 입으로 축복과 저주를 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오늘도 우리는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후에 우리는 빵을 먹으면서, 또 집에 가서, 내일 사람들과 이야기 하면서, 분명 사람을 대상으로 뒷담화를 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심지어는 드라마를 보면서, 송혜교는 어떠어떠하다 이야기 합니다. 뉴스를 보면서, 이재명이 어떻고 윤석열이 어떤지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고, 또 하나의 입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을 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혀는 불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의한 혀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을 좌지우지 하고 있습니다. 마치 작은 노로 우리가 타고 있는 큰 배를 움직이듯이 말입니다.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또한 말 등에 올라타서 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이리 저리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작은 재갈로 저 큰 말의 몸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지요.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혀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혀가 불의합니다. 이 불의한 혀가 결국 어떤 일을 할까요?
5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작은 불이 큰 산 불을 냅니다. 빽빽하게 수십년, 수백년, 수천년을 이루어 온 숲이 단 하나의 작은 불씨로 흔적도 없이 잿더미가 됩니다.
본문에서 많은 나무 즉, 숲은 공동체, 즉 교회를 말합니다. 역사상 많은 교회들이 쪼개지고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도 한 교회였는데, 둘로 갈라졌습니다. 가톨릭에서 개신교가 또 갈라졌습니다. 개신교에 속한 교단들은 자기들끼리의 이해관계에 따라 쪼개지고 쪼개져서 지금과 같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교회들은 쪼개지고, 개인들은 교회 공동체에서 상처를 입고 나갑니다. 이 모든 일들이 무엇 때문에 일어납니까? 바로 사람의 말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불의한 사람의 말이 교회를 활활 불태워 잿더미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 지도자들, 선생들의 불의한 말때문에 교회는 분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3장 1절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선생된 우리란 저 같이 예배시간에 성경을 가지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목사들이 말을 많이 하지요. 사실, 목사들은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그 말 한마디에 의해서 교회의 방향이 바뀌고 성도 개인의 인생의 수레바퀴가 불살라져 재가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많은 사람들을 지옥에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 목사들입니다. 그래서 더 큰 심판을 받는다고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말을 없애야 할까요? 성경을 무엇으로 가르쳐야 하고, 예배는 말을 하지 말고 무엇으로 해야 할까요? 그럴수 없습니다. 말을 하지 않고, 성경을 논하고 성경의 교훈을 나누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우리의 죄를 어떻게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말은 사람이 타고 다니는 말의 재갈처럼, 배의 노처럼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사람의 입이란,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나오는 그러한 불의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말을 듣되 행동은 분별해서 행동해야 합니다.
<전환문> 다시 말해서,
말보다 행동으로 공동체에 유익을 끼쳐야 합니다.
말보다 행동으로 공동체에 유익을 끼쳐야 합니다.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우리의 지혜와 총명을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말로는 서로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곧 돌아서면, 사람들의 험담을 늘어놓는 내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험담이 상대방에게 들리면, 곧 돌아서서 후회를 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말로 공동체를 파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만으로 공동체가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하지 못합니다. 말만 가지고 공동체가 하나 되게 하지 못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하나되고 서로 사랑하게 하는 것은 오직 행위 밖에 없습니다. 백마디 말보다 꾸준하고 지속적인 행위가 공동체를 지탱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을 하십시오. 말로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려 하지 말고, 행동으로 교회 공동체를 향한, 또 가족 공동체를 향한 사랑을 보이십시오. 그것이 바로 위로 부터 난 지혜, 즉 하나님으로 부터 온 지혜입니다.
17-18절 말씀을 읽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말이 아닌 행동으로 화평케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8절에서 30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두 아들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 중 맏 아들에게 말합니다. “ 애야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해라" 그랫더니 맏아들은 “알겠습니다. 아버지 가서 일하겠습니다.” 하며 순종의 말을 합니다. 그런데,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일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둘째 아들에게 아버지가 말합니다. “얘야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해라" 그랫더니 둘째 아들이 “싫어요, 일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곧 후회를 하고 포도원으로 일하러 갔습니다.
첫째는 말은 긍정을 하고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둘째는 말은 부정을 하고 행동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둘 중에 누가 아버지에게 순종한 것이 될까요?
분명, 행동으로 실천한 둘째가 아버지의 말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동이 없는 좋은 말, 화평의 말, 긍정의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말이란 근본 속성이 불의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욕쟁이 할머니처럼, 말은 불편하고, 거슬리고, 부정적이지만, 행위가 성결하고 화평케 하고, 사람들을 관용하고, 양순 즉, 순종하고, 긍휼을 보이며,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속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그러한 거짓이 없다면, 그가 무슨 말을 하던, 그 행위로 그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판단 받게 될 것입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보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