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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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1.하나님의 선하심

성경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을 믿지 못한다면 성경을 결코 읽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사건들과 기적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을 믿지 못할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믿을 때, 세상은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성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편 136편 1절에서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좋은 일보다 때론 좋지 못한 일들이 더 많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온 맘을 다해 하나님을 의지했어도 열심히 준비한 시험이나 면접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내가 하나님께 열렬히 기도했어도 좋지 못한 결과들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청년들과 성도님들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까?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는 믿음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어떠한 결과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애굽의 노예로 팔려 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가게 됩니다. 이처럼 요셉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분명 요셉은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원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하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형들이 자신에게 악을 행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고 요셉은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시지 않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선하시지 않다면 우리에게 나쁜 것도 주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악한 사람이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어떨까요? 가장 좋은 것, 가장 선한 것으로 우리에게 갚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선하다고 믿고 고백할 때,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어려움 속에 있을지라도 나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이번 한 해가 매우 힘드셨습니까?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셨습니다. 비록 올 한 해가 나에게 고통스러운 한 해였을지라도 선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인자하심

오늘 말씀을 보면 구약의 모든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천지창조(4-9)와 출애굽(10-15), 가나안 정복(16-22), 사사시대 및 바벨론 포로기(23-24)가 나타납니다. 사실 구약의 모든 이야기들은 모두 즐겁고 유쾌한 사건들만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반역과 불순종, 징계와 심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화자는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은혜와 사랑을 강조합니다. 바로 선을 행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선한 것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각종 범죄들이 연일 발생하고 있습니다. 요즘 일어나는 범죄들을 보면 예전과는 다르게 계획적이고 치밀하며 악질적인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죄질이 나쁜 범죄에 대해 합당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오늘날 일어나는 범죄들보다 더욱 죄질이 나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것은 창조주께 대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죄에 대한 합당한 처벌은 무엇입니까? 오직 죽음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대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선을 행하셨습니다. 분명 죄에 대해서 합당판 심판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선으로 행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후렴구처럼 나타나는 문장에 있습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한글 번역에는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만 번역되었는데, 히브리 성경 원문의 ‘키’라는 단어를 생략한 번역입니다. ‘키’는 접속사인데, ‘왜냐하면’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셨다. 왜냐하면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선한 일들을 행하셨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인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자’는 ‘헤세드’라는 단어인데, ‘은혜’, ‘신실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헤세드는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에게 친절이나 사랑을 베푸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은혜’라는 단어를 종종 잘못 이해하곤 하는데요, 내가 한 작은 일에 대한 큰 보상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기도하니깐 하나님께서 대학을 합격하게 하셨어!”, “내가 바쁜 와중에도 매 주일을 지키니깐 취업을 하도록 하셨어!”, “내가 이렇게 하니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어!”라고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한 일에 대한 대가이지 결코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은혜는 이와 다릅니다. 아무런 자격 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주목하시고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은혜’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믿음을 통해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구원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죄인인 우리에게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은혜라고 말합니다.

3. 감사하라: 하나님을 인정하라

그렇다면 거저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감사는 단순히 인사치레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은혜받은 성도의 마땅한 반응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먼저 내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최근 많은 교회들이 부르는 찬양이 있습니다. 바로 ‘은혜’라는 찬양인데요, 저희 교회도 몇 주 전에 함께 불렀습니다. 이 찬양의 가사가 참 은혜되는데요, 제가 한번 읽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봄의 꽃 향기와 가을의 열매/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내가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어린 아이 시절과 지금까지/숨을 쉬며 살며 꿈을 꾸는 삶/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오늘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복음을 전할 수 있는 축복이/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한 없는 은혜/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우리 삶의 스쳐 지나가는 작은 것 하나라도 우연히 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4-9절은 하나님의 창조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그냥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하심을 따라 창조원리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원리를 따라 우리는 은혜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을 정하셔서 곡식들이 결실을 맺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 우리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현재 자신이 누리는 것은 자신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합격하고,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취업에 성공했다고 믿습니다. 물론 우리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이 헛수고입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기 위해 밤새도록 수고했습니다. 그물을 던지면 뭐라도 걸려야 하는데,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날 인생의 가장 쓴맛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렸는데, 매우 많은 물고기가 잡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리 수고해도 단 한 마리의 물고기조차 잡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에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4. 너희도 거룩하라: 인자하심을 닮아가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고백함으로 이 추수감사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멈추어선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 은혜와 감사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11:45)”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닮아갈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룩’ 대신 ‘인자’를 넣어보겠습니다. “내가 인자하니 너희도 인자할지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룻기를 보면 흉년이었던 베들레헴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다시 양식이 풍족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남편과 자식을 잃은 과부 나오미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가까운 친척조차 외면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지만 그 은혜를 나누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러한 공동체가 되어선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격 없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처럼 우리 또한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제가 빛샘교회에 처음 부임할 때, 강단 앞에 쌀 포대가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나중에 보니깐 추수감사주일에 들어온 성도님들의 헌금을 가지고 쌀을 구입하여 주변 가난한 이웃들과 교회들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인자하신 하나님처럼 인자함으로 주변 이웃과 지역 사회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신명기 16장 1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하나님은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며 축제에 참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우리만의 축제가 되어선 안 됩니다.
그리고 12절에는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자격 없는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것을 기억하고 그 은혜를 나누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추수감사주일은 우리만 누리는 감사 축제가 아니라 우리가 속한 지역 모두가 감사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잘 활용합니다. ‘블랙 프라이 데이’라 해서 많은 물품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할인하여 판매합니다. 또한 광고에 보면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 선물을 나누어 보라고 선물 박스까지 만들어 포장해줍니다. 이런 모습들을 볼 때 이 세대의 아들들이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워 보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좋은 문화들을 세상에 빼앗겨선 안 됩니다. 오히려 교회가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주도해야 합니다.
이번 주 가정으로, 직장으로, 사회로 돌아가시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나누시길 바랍니다. 작은 선물도 좋고, 차 한잔이라도 좋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반응으로 이웃을 섬기는 주님의 성도님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럴 때에 세상은 우리를 통해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고단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자하시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우리에게 이전보다 더 큰 은혜와 위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마땅한 반응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나누는 감사가 필요합니다. 나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 누릴 수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인자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 인자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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