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5장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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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회는 사도적인 가르침 위에 세워졌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교회는 사도적인 가르침 위에 세워졌다고 하는 거예요. 오늘 말씀에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지방에서 제자들한테 “너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질문을 하셨어요. 가이사랴는 카이사르, 로마 황제를 말하는 거고 빌립보는 이스라엘의 분봉왕 헤롯 빌립을 말하는 거예요. 그니까 가이샤랴 빌립보는 로마 황제가 세운 총독이 다스리는 땅 세상 권력이 지배하는 땅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상징성이 있는 곳에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질문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베드로가 뭐라고 말합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세상의 권력의 상징과 중심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 메시아로 고백을 한 거예요. 굉장한 고백입니다. 나를 구원하는 게 세상 권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거예요.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베드로가 복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나서 베드로가 이런 고백을 알고 있는 것은 육신이 알려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세상의 방식으로 얻은 지식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신것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베드로한테 뭐라고 하시느냐면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는 베드로라고 하는 이름은 예수님께서 지금 이 본문의 상황에서 붙여주신 이름으로 원래 베드로의 본명은 시몬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베드로라고 하는 이름을 주시면서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헬라어 페트로스를 말합니다. 페트로스는 단단한 돌을 말합니다. 반석은 헬라어로 페트라입니다. 페트로스, 페트라 비슷하죠? 그래서 예수님은 사실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운다.’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베드로 위에 어떻게 교회를 세울까요? 당연히 베드로 위에 예배당을 건축한다는 말은 아니겠죠?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말은 사도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도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말은 사도적인 가르침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이야기에요. 사도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장 순수하게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운다.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운다.라는 말은 사도적인 가르침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순수하고 오류 없이 받은 사도들의 그 가르침 위에 교회가 세워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를 사도적인 교회라고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세워진 교회라는 뜻이에요. 예수님의 가르침은 구약 성경도 포함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 수훈에서 구약에 있는 율법을 풀어서 설명해주시고 또 시편과 선지자들의 글에 있는 내용들을 설명하시고 성취하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구약성경이 그 자체로 하나님 말씀이라 인정 받지만 그 권위를 최종적으로 인정해주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그 구약을 풀어서 가르치셨습니다. 사도들은 그 구약의 내용들을 반복하고 해석하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유대인이 해석하고 풀어놓은 내용으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가르치신 성경말씀,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교회가 세워집니다.
교회는 유대인들의 탈무드, 미드라쉬로 세워지는 것도 아니고 철학으로 세워지는 것도 아니고 경영원리나 심리학으로 세워지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교회가 세워지는 거예요. 우리 생각엔 교회가 세워지려면 돈도 있어야 하고 뭔가 경영을 잘해야 하고 행사도 다양하고 재밌게 잘해야 교회가 세워질 것 같은데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돈, 경영, 행사 이런 건 다 보조적인 수단입니다. 결국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다는 걸 속성으로 표현해서 사도성이 있다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사도적인 교회입니다. 사도성이 있는 교회, 사도적인 가르침이 있는 교회,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는 교회가 바로 건강한 교회입니다.
여러분 주일학교 시절부터 잘 아시는 내용이 있어요. 교회가 건물입니까? 아니면 사람입니까?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가 예배당을 건물로 쓰는 거죠. 교회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배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건물도 아니고 기도원 부지도 아니고 재정도 아니고 방송장비도 아닙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은 예배당을 짓는 게 아니에요. 교회를 세우다 보면 예배당을 지을 날도 있겠죠. 그런데 교회를 세우는거랑 예배당을 짓는 거랑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건 사람을 세우는 거예요. 어떻게 사람을 세우냐 하면 교회가 존재할 수 있는 근본적인 요소. 사도적인 가르침을 가지고 예수님 믿는 제자를 세워야 합니다. 그게 교회입니다. 사도적인 가르침이 결국 성경 말씀입니다. 말씀을 통해 믿지 않는 자들을 믿게 하고 세례를 베풀고 그들이 말씀으로 더욱 자라게 하는 것이 바로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일은 단순히 내가 똑똑해지는 게 아니예요.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내가 이해한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 굉장히 중요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은 세상 속에서 내가 교회가 되는 거예요. 많은 이들이 교회가 된 내 모습을 보고 회개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내가 말씀을 통해 교회로 세움 받고 말씀을 통해 교회로 모임고 말씀을 통해 교회로서 세상에 파송되는 것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교회되기에 애씁니까? 교회가 되기 위해 말씀에 열정을 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도적인 가르침, 말씀만이 교회를 세우는 근본이 되고 기초가 됩니다.
2- 교회는 예배를 통해 은혜를 공급받는 공동체다.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교회는 예배를 통해 은혜를 공급받는 공동체라는 거예요. 은혜를 받는 건 결국 구원이랑 연결되기 때문에 은혜 받는 건 중요한 거예요. 은혜라는 단어만큼 다양하게 쓰는 단어가 없어서 정리가 좀 필요합니다. 은혜는 말 그대로는 선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선물이라는 설명으로는 좀 부족합니다. 은혜가 선물인데 그 선물 안에 뭐가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흔히 설교를 들으면 은혜 받았습니다. 합니다. 또는 우리교회 전도사님처럼 찬양을 잘하는 분이 찬양인도를 하면 은혜 받았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감동이라는 글자랑 바꿔서 말하면 뭔가 말이 되는 것 같아요. 설교를 듣고 감동 받다. 찬양을 듣고 감동받다. 그런데 설교가 단순히 감동을 받고 안 받고의 문제일까요? 설교 말고도 감동적인 이야기는 많습니다.
은혜는 단순한 감동 그 이상입니다. 은혜는 바로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은혜를 통해 우리는 구원 받고 은혜를 통해 우리는 세상에서 죄와 싸워 이길 힘을 받고 은혜를 통해 우리는 성화됩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우리에게는 변화가 생깁니다. 은혜를 통해 믿음이 강해지고 은혜를 통해 거룩해집니다. 이게 바로 은혜입니다. 단순한 감동이 아니예요.
오늘 말씀을 보면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하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왜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는지 그 뒤에 설명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천국의 열쇠를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립니다.
음부의 권세는 성경 원어에서 보면 죽음의 문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성경에서도 죽음의 문이라고 되어 있는데 한글 성경에 왜 이걸 권세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게이츠 오브 헬, 게이츠 오브 하데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죽음의 문들은 뭘까요? 이 세상에 있는 죄인들을 사망으로 이끄는 문이겠죠? 지옥으로 이끄는 문입니다. 그런데 이 죽음의 문들이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반석 위에 세우신 교회에 천국의 열쇠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문들이 여럿 있고 교회는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어 상에서는 천국의 열쇠들이라고 복수형태로 나와 있습니다. 지옥의 문이 우리를 지옥으로 안내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도에게 천국 열쇠를 주셨습니다. 이 천국의 열쇠를 통해 하늘 문이 열려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합니다.
지금 시점에서 천국의 열쇠를 통해 천국 문이 열리면 천국 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냐면 그곳에서 은혜가 부어집니다.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내용을 잘 요약한 신앙고백서중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있습니다. 우리한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1순위인데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도 교회전통에서 굉장히 유익하고 중요합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서 천국의 열쇠를 뭐라고 하냐면 복음의 강설과 성례라고 합니다. 천국의 열쇠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 그리고 세례와 성찬 이게 천국의 열쇠입니다. 우리는 말씀과 성례를 통해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자라고 거룩해집니다. 그렇게 은혜 받으며 사는 사람이 결국 천국에 들어가는 거죠. 그래서 말씀 선포, 성례 베푸는 것이 천국의 열쇠입니다.
천국의 열쇠가 천국 문을 연다는 건 거기에서 은혜가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천국문을 향해 있는 사람은 은혜 받고 하나님 나라에 점점 가까워집니다. 반면에 18절에 나온 음부의 권세 지옥의 문들로부터는 점점 멀어집니다. 천국 열쇠는 구원이 걸려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열쇠를 사도에게 주셨는데 이 천국 열쇠는 지금 누가 가지고 있을까요? 처음엔 사도들에게 주셨지만 이제 사도적인 가르침으로 세워진 교회가 천국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의하면 천국 열쇠는 설교와 권징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거고 권징은 말씀에 따라 살도록 지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 열쇠를 가진 사람은 구체적으로 누굴까요? 바로 목사와 장로입니다. 우리는 모든 성도에게 천국 열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설교를 할 수 있는 사람 목사님, 그리고 권징을 하는 사람들 장로님이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와 장로가 교회의 권위 안에서 천국의 열쇠를 갖고 있습니다. 목사라고, 장로라고 마음대로 천국의 열쇠를 휘두르는 게 아닙니다. 천국의 열쇠는 개인적인 게 아니죠. 교회에서 정한 질서에 따라 설교를 하고 권징을 하기 때문에 천국의 열쇠는 교회에 있다고 말해도 틀린 것이 아닙니다.
제가 설교를 하지만 제 맘대로 하고 싶은 말을 설교할까요? 막 맘에 안 드는 사람 있으면 지적하고 그렇게 할까요? 아닙니다. 설교는 공적인 거예요. 그래서 저는 우리 교단 신학교에서 훈련받은 방법대로 설교합니다. 저만의 독자적인 걸 하지 않아요. 모든 설교자가 그렇게 합니다.
장로님이라고 마음대로 성도를 치리할까요? 성도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당회에서 징계를 할 수 있는데 그걸 치리라고 합니다. 말씀에 따라 살지 않으면 심하게는 성찬을 받지 못하도록 할 수도 있고 출교 조치를 내릴 수도 있어요. 이걸 장로님 마음대로 할까요? 말씀과 절차에 따라 합니다.
어쨌든 목사와 장로는 교회의 질서를 따라 교회에 있는 천국의 열쇠를 사용하는 일꾼입니다. 첫 번째 열쇠는 여는 열쇠입니다. 말씀과 성례를 통해서 천국 문에서 은혜가 나오도록 하고 성도들이 이 땅에서 은혜 받으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합니다. 두 번째 열쇠는 잠그는 열쇠입니다. 말씀에 따라 살지 않는 성도가 말씀에 따라 살도록 경고합니다. 그래도 말 안들으면 성찬을 못 받게 합니다. 그래도 말 안들으면 출교를 시킵니다. 출교는 그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천국문이 닫히는 거예요. 출교를 해도 말 안 들으면 그 사람에게 천국 문을 영영 닫으십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에게, 직분자에게 열쇠를 주셔서 이런 일을 하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교회가 세운 직분자들에게 순종하며 말씀을 받고 성찬에 참여하며 직분자들이 권면하면 그걸 들어야 합니다. 물론 직분자들이 제대로 하고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교회는 천국 문의 열쇠를 가진 곳이고 열린 천국 문을 통해 은혜를 공급하는 공동체입니다. 말씀과 성례를 통해 은혜가 공급된다고 했는데 말씀과 성례는 언제 선포되고 시행되는 거예요? 예배입니다. 교회는 예배를 통해 천국 문을 열어서 은혜를 공급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천국 문이 열려서 은혜가 공급되는 시간이고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지옥문에서 멀어지고 천국 문에 가까워집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예배를 만만하게 생각할 수 없죠? 내가 가만있으면 지옥문에 들어가게 생겼는데 다행히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교회에 소속 되서 천국 문을 통해 은혜를 공급받게 되었잖아요? 이걸 제대로 이해하고 믿으면 예배 시간에 핸드폰 보고 딴 짓하고 함부로 예배 빠지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 시대에 안타까운 것 한 가지가 있는데, 좋은 설교는 되게 많아요. 신학이 과거에 비해 굉장히 발달했어요. 자료가 너무 많아요. 뛰어난 설교자들도 많고 유튜브에도 좋은 설교가 엄청 많습니다.
그런데 이 설교를 하나님 말씀으로 여기고 순종해서 살아야 합니다. 좋은 설교가 나오는 만큼 더 순종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교회가 말씀 따라 살아라고 권면을 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치리를 합니다. 신학은 발전하고 설교 테크닉은 점점 발전하는데 이 설교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줄어드는 것 같아요.
2주 전에 성찬식 있었을 때 제가 성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세례 받은 친구들 다 성찬식에 참여하라고 했는데 우리 중고등부에서 몇 명이 성찬식에 참여했을까요?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내가 강단에서 이야기를 했는데 성찬식에 참여를 안 해? 내가 만만한가?” 이게 아니에요. 맹세컨대 제 개인적인 감정은 하나도 없습니다. 걱정은 됐어요.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강단에서 성찬식을 하라고 설교할 때 그건 제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거예요. 주님의 피와 살을 믿음으로 받으라고 강단에서 말했는데 거기에 순종하는 친구가 적어서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강단에서 제가 이야기할 땐 김광준이라는 사람이 말하는 게 아니에요. 부족하지만 김광준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명령이 전달되는 거예요.
제가 가급적이면 여러분들한테 잔소리 안하고 뭐라 안하려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굉장히 인격적으로 대하는 사역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 전하는 사람으로서 할 말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듣기 좋은 소리만 하면 저는 거짓 선지자인 거예요. 구약성경에 나오는 거짓선지자들은 사람한테 듣기 좋은 말만하다가 멸망으로 이끄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렇게 되기 싫어요. 신실한 말씀의 사역자가 되길 원해서 좀 불편하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제발 강단에서 말씀이 선포될 때 그건 천국 문에서 은혜가 내려오는 거니까 은혜로 받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성찬식 가라고 하면 좀 가고! 성경 읽으라면 좀 읽고! 간곡하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들은 만큼, 아는 만큼 순종합시다. 천국 문에서 내려오는 말씀의 은혜를 받읍시다. 그게 교회에요. 말씀을 거절 하고 은혜를 거절하지 마세요. 천국 문에서 멀어지고 음부의 권세로 가까이 가는 길입니다. 굉장히 위험한 거예요.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교회는 사도적인 가르침으로 세워지는 공동체입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가 교회로 모이고 교회로 세워집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세상 가운데 파송 받은 교회가 되어서 사람들을 교회로 모으는 역할을 합니다. 교회는 돈이나 철학이나 경영술이나 이벤트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도적인 가르침,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그리고 교회는 예배를 통해 은혜를 공급받는 공동체입니다. 말씀을 통해 성례를 통해 은혜를 받아 지옥문에서 점점 멀어지고 천국문에 점점 가까워집니다. 지옥의 문들을 이기는 권세가 교회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교회에 순종해서 은혜 받아서 늘 천국문에 가까워지고 지옥문에서 멀어져야 합니다.
이번 한주도 교회의 의미를 생각하며 우리가 교회가 되고 늘 은혜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