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Anger
0UNLIKELY
Disgust
0UNLIKELY
Fear
0UNLIKELY
Joy
0UNLIKELY
Sadness
0UNLIKELY
Language Tone
Analytical
0UNLIKELY
Confident
0UNLIKELY
Tentative
0UNLIKELY
Social Tone
Openness
0.16UNLIKELY
Conscientiousness
0.13UNLIKELY
Extraversion
0.42UNLIKELY
Agreeableness
0.6LIKELY
Emotional Range
0.17UNLIKELY

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 .5
.5 - .6
.6 - .7
.7 - .8
.8 - .9
> .9
사도신경
찬송
80장 /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기도
성경봉독
서론
에스겔 7장은 앞의 6장에 이어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심판에 관한 말씀을 에스겔에게 주신다.
6장에서는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판을 말씀하셨고,
이제 7장에서는 그 심판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본론
1-4절
하나님은 ‘끝'이라는 말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무슨 ‘끝'을 말씀하시는가?
‘이스라엘 땅’의 끝이다.
이스라엘 땅 동서남북 사방의 일의 ‘끝’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끝’은 바로 ‘심판’과 ‘보응’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행위를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가증한 일을 ‘보응'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가증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혐오스럽고 역겹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떤 일이 ‘가증한 일'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떤 행위가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혐오스럽고 역겹다는 말인가?
바로 우상숭배가 그러했다.
참되시고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거짓되고 헛된 우상을 붙잡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가증스러웠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혐오스럽고 역겨운 것은
겉으로는, 앞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뒤로는 다른 이방 우상들도 함께 섬기는 그들의 이중적인 태도였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숨겨진 가증한 일들을
그들 가운데 나타나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의 행위를 따라 그들에게 벌을 내림으로,
심판과 보응의 재앙을 그 땅에 보냄으로 그 일을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 일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하시며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계속해서 5-9절의 말씀을 읽어보자.
5-9절
여호와 하나님은 ‘끝'을 맞이한 이스라엘 땅에
‘재앙'이 임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7절에서 하나님은 이 재앙이 ‘정한 재앙'이라고 말씀하신다.
무슨 말인가?
이 재앙은 우연히 생긴 재앙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그 재앙의 때를 기다리셨다는 말씀이다.
이 세상에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
이 세상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마 10:29, cf.
눅 12:6)
이스라엘 땅에 임한 재앙은 하나님이 정하신 재앙이다.
하나님은 오래참으시고 기다리시는 분이기는 하지만,
그 참으심과 기다리심이 무한정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7절에서 말씀하신다.
그 때와 그 날은 거역하고 반역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분과 하나님의 진노를 쏟아붓는 날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고
그들이 행한 모든 가증한 일들에 대해 보응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9절에서 앞의 4절에 하신 말씀을 한번 더 반복하시면 강조하신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겠다.
내가 너를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겠다.
내가 내 행위대로 너를 벌하겠다.
내가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겠다.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말씀에 4절에는 없는 한 가지를 덧붙이신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가리켜 ‘때리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때린다'는 말은 다시 말해, 공격하다, 파괴하다, 죽이다 라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 하면
사랑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긍훌의 하나님만을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의 하나님은 그러하신 하나님이 맞으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오래 참으시며 회개하며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만
그 은혜를 저버리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된다.
‘때리는 하나님’은 바로 공의와 심판의 하나님을 보여주는 말이다.
계속해서 10-13절 말씀이다.
10-13절
에스겔 7:10–13 (NKRV)
10 볼지어다 그 날이로다 볼지어다 임박하도다 정한 재앙이 이르렀으니 몽둥이가 꽃이 피며 교만이 싹이 났도다
11 포학이 일어나서 죄악의 몽둥이가 되었은즉 그들도, 그 무리도, 그 재물도 하나도 남지 아니하며 그 중의 아름다운 것도 없어지리로다
12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웠으니 사는 자도 기뻐하지 말고 파는 자도 근심하지 말 것은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임함이로다
13 파는 자가 살아 있다 할지라도 다시 돌아가서 그 판 것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묵시가 그 모든 무리에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사람이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목숨을 유지할 수 없으리라 하였음이로다
하나님은 다시 한번 ‘정한 재앙'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신다.
‘그 날'이 임박했다고 이야기하신다.
가지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이제 곧 그 열매를 추수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안다.
이것이 만물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이 정하신 이 세상의 이치이다.
하나님은 몽둥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었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쓰인 ‘몽둥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마테'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지팡이, 가지라는 뜻도 가지고 있을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각 지파를 가리킬 때도 쓰이는 말이다.
하나님은 여기서 의도적으로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 이 단어를 사용하신다.
몽둥이에, 가지에 싹이 나고 꽃이 피었다.
그 싹은 ‘교만'이라는 이름의 싹이고,
그 꽃은 ‘포학'이라는 이름의 꽃이다.
그리고 가지에 ‘죄악'이라는 이름의 열매가 맺히게 되었다.
무슨 말인가?
이스라엘 지파들이 하나님 앞에 교만히 행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신들의 정욕을 따라 행하였다.
그로 인해 그 땅에 포학과 강포가 넘쳐나게 되었고
죄악의 땅이 되고 말았다.
열매가 맺혔으니 이제 남은 건 추수하는 것이다.
죄악의 열매가 맺혔으니 이제 심판과 재앙의 추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 무리들 가운데 그 어떤 무리도 남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그들이 갖고 있는 재물 중에 그 어떤 재물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아름답게 여기고 귀하게 여기던 것들도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물건을 사는 자도 기뻐하지 말고,
물건을 파는 자도 근심하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무엇을 산다는 것은 그만큼 재산이 늘었다는 말이다.
부요로워졌다는 말이다.
반대로 무엇을 판다는 것은 그만큼 재산이 줄었다는 말이다.
가난해졌다는 말이다.
재산이 늘면 기뻐하고 재산이 줄면 슬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일로 기뻐하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 때가 이르렀고, 그 날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무슨 때가 이르렀고, 무슨 날이 가까웠다는 말인가?
진노의 날이 이르렀고 진노의 때가 가까웠다는 말이다.
물건을 사거나 팔 수 있는 평화의 날은 이제 끝이 났다.
칼과 전염병과 기근의 진노가 이스라엘 땅에 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묵시와 예언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계속해서 14-22절 말씀이다.
14-22절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스라엘 땅에 임하게 될 일들을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이스라엘 땅에 이방인들이 쳐들어올 것이다.
그들을 막기 위해 나름대로 이렇게 저렇게 필요한 것을 준비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되는가?
정작 전쟁에 나갈 사람들이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그 땅 모든 무리에게 이르렀기 때문이다.
칼과 전염병과 기근으로 인해 성읍 안팎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살아남은 자는 얼마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적들을 피해
자신이 살던 터전과 재산을 다 버리고 산 위로 도망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바로 그들 자신의 죄악 때문이다.
그들의 몸은 지칠대로 지쳐 피곤하여 약해지고
그들의 마음도 두려움과 수치로 인해 괴로워할 것이다.
19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참 인상적인 말씀이다.
진노의 날, 심판의 날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은을 거리에 던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자신들이 갖고 있던 금을 오물 같이 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오늘날 물질만능주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세상은 ‘돈’이 최고라고 말한다.
돈을 신으로, 우상으로 섬기는 시대를 살고 있다.
물신주의의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오늘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방금 읽은 이 에스겔의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에스겔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도
금과 은을 하나님 자리에 놓고 그것에 매여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무엇인가?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의 날, 심판의 날에
그들이 섬기던 금과 은을 그들을 결코 구원해 주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몸과 마음도 채워주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숭배하던 금과 은은
그들을 죄악에 넘어뜨리게 하는 걸림돌이 되고 만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날, 심판의 날에
그 금과 은은 아무 소용없고 그저 더럽고 냄새나는 오물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는 분이다.
물질의 복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우리 성도님들의 삶의 물질의 필요를 하나님이 풍성히 채워주시기를 축복한다.
그러나 그 물질과 재물 그 자체가 하나님은 결코 아니다.
돈과 재물을 하나님 삼아서는 결코 안된다.
돈은 사용하라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돈을 사랑하고 그 돈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물질의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세상은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유혹하지만
그 돈이 결코 나를 구원해줄 수 없다.
또한 나의 심령에 참된 평안을 가져다 줄 수도 없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다.
우리의 영혼의 참된 평안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 하나님 안에서 참된 구원과 평안을 누리는 자들 되길 축복한다.
마지막으로 23-27절 말씀이다.
23-27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에 피 흘리는 죄가 가득하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성읍에는, 다시 말해 예루살렘 도시에는 포악이 가득찼다고 말씀하신다.
그 죄악에 대한 심판이 그 땅에 임한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데려오겠다고 말씀하신다.
그 이방인들이 집들을 점령할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소까지도 더럽힐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데려오시는 이방인들은 어떤 자들인가?
24절에 ‘극히 악한 이방인들’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극히 악한 이방인들을 사용하셔서
범죄한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바로 바벨론을 통해 이 일을 이루신다.
잠언 16장 4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만물의 주권자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이 땅의 악인들의 주권자도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 그 악인들도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신다.
하지만 그들 또한 자신들의 행위를 따라 하나님께 심판받게 된다.
하나님은 극히 악한 이방인들인 ‘바벨론 제국'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지만
이 바벨론은 그들의 교만함으로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됨을 우리는 보게 된다.
26절에는
선지자에게서 묵시를 구하나 헛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제사장에게는 율법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장로에게는 책략이 없어질 것이라 말씀하신다.
어째서인가?
묵시와 율법과 책략은 누구로부터 오는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묵시와 율법과 책략의 주인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그들에게서 돌이키시고 말았다.
그러하기에 더 이상
선지자에게 묵시가 없게 되고
제사장에게 율법이 없어지게 되고
장로에게 책략이 없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행한 그 행위대로 그들에게 갚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대로 그들을 심판하겠다.
이것이 바로 공의의 하나님의 보응이며 심판이다.
결론
오늘날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와 관련해
베드로후서 3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부인하며 자기의 정욕을 따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그런 삶이 영원히 계속 될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은 없다고, 심판도 없다고 말한다.
끝날, 마지막 날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분명히 고백해야 한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셨다.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주님은
끝날, 마지막 날에 반드시 이 땅에 다시 오신다.
그리고 그 날은 이 땅의 죄인들에게는 ‘심판의 날'이며 ‘멸망의 날'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날'이 될 것이다.
이 소망과 믿음을 갖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 되길 원한다.
< .5
.5 - .6
.6 - .7
.7 - .8
.8 - .9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