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증명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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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장은 10장과 이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10장 36절에서 이야기 하는 고난과 환난 가운데 비방과 모욕 가운데서도 인내하여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받은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11장에서 믿음 장이라 말하면서 믿음 있는 자들이 받은 것들에 관심을 둡니다. 그러나 이 믿음 있는 자들이 받은 상급은 그들의 인내를 통해서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히브리서 설교자가 말씀을 전하는 시대의 성도들 처럼 모욕과 수치와 비방을 당하고 어려움과 고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그들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인내하고 믿었는데… 그렇다면 그 믿음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인내하게 했고, 버티게 했고 견뎌내게 했는가? 하는 이야기를 11장에서 하는 것입니다.
11장의 믿음의 사람들의 계보라고 할까요? 11장의 구조는 앞에 구절 “믿음으로”라는 그 말 뒤에 그렇게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이름들이 호명되고 그들의 삶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들이 나오는 것이 구조적 특징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이름 앞에는 “믿음으로 아벨은,…. 믿음으로 에녹은 … 믿음으로 노아는”이러한 구절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구조로 봤을 때 첫번째 믿음의 사람은 아벨이 아닙니다. 3절에서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믿음의 사람의 첫번째 등장으로 “믿음으로 우리가” 바로 우리들을 호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히브리서 설교자의 말씀을 듣고 있으며 그 시간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모인 그 사람들… 그리고 그 당시에 10장에서 이야기 하는 고난과 수치와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예배의 자리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그 성도들… 그들이 믿음의 사람이라고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 성도들이 어려움 중에도 예배가운데 나와있는 이유… 주위의 수많은 비웃음과 멸시와 수치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와 있는 이유가 뒤에 나오는 아벨, 에녹, 노아와 같은 믿음의 선조들과 같은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믿음을 지키게 하고, 인내하게 합니까? 성도들이 믿음 있는 행동을 하는 이유…그 원동력! 힘은 무엇입니까?
3절에서 성경이 말합니다.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안다…..
욥기 38장에서 하나님이 욥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하면 내가 땅의 기초를 놓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바다의 깊은 곳을 네가 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보지 못한 것을 믿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것이 그것이 모든 것이 아니다 하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하는 것을 본 자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어떤 물질로 창조를 하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말씀으로 지으셨다! 라고 기록하고 있기에 이 세상은 겉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으로부터 지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고, 그렇지만 실재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욥기서를 잠깐 배우기도 했지만…. 욥이.. 고난가운데 인내합니다… 왜 인내합니까? 내가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천상의 세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세계가 다가 아니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하나님의 계획, 목적, 뜻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욥은 고난을 인내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히브리서에서 이야기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인내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그의 창조… 통치…. 하나님의 나라와 같은 것들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만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음에도 실재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 그럼으로 인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발생하는 하나님의 뜻과 통치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 아는 것에서 믿음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3절의 말씀은 그것입니다.. 그 세계를 아는 것!!에서 바로 믿음의 행동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뒤에 믿음의 사람들로서 아벨이 나옵니다. 에녹과 노아, 아브라함이 나옵니다. 창세기에 나타나는 믿음의 선조들이 나옵니다.
여기서 아벨을 잠깐 볼까요?? 우리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왜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는가? 궁금해 합니다. 사실 성경은 그에 대해서 침묵합니다. 전혀 어떤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혜서 공부하면서 제가 처음에 했던 말은 그것입니다… 성경이 침묵하는 것은 성경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벨의 제사를 왜 받으셨을까? 온갖 추측을 합니다.
아벨은 피로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곡식으로 제사를 드려서 그렇다라든가…. 아벨은 마음으로 드렸고 가인은 형식적으로 드렸다든가.. 뭐 그런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것은 성경은 그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야기 하는 것 하나가 있는데… 아벨은 더 나은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께서 그의 제사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오늘 본문에서는 이 아벨이 드린 제사는 믿음으로 드렸기 때문에 더 나은 제사가 됬다는 것입니다.
제물이 무엇이기 때문이거나, 제사의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거나, 제사 드릴 때 입었던 옷차림때문이 아닙니다.
아벨 그 자체가 믿음직 스러웠고, 신실했으며, 하나님을 의식하고 두려워하며 경외했던 자라는 것입니다.
이 한번의 제사를 통해서 믿음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그의 전 생애를 통해서 그는 꾸준하게 믿음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4절에서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한다! 라고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생애를 통해서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한번의 예배, 한번의 제사가 아니라.. 생애 전체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증명된다 하는 것입니다.
에녹은 그의 전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것입니다…
아벨이나 에녹이나 무엇이 이들의 삶을 믿음을 증명하는 삶으로 살게 하였습니까?
그들의 공통점은 7절에서 노아를 통해서 설명됩니다… 아직 보이지 않는 일을 믿고 따라서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
노아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홍수 심판을 마치 실제적으로 본 것처럼 믿고 따를 수 있었던 것은 홍수 자체의 무시무시함…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노아는 홍수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 보이지 않는 초월 세계의 그 통치를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삶 전체를 통해서 그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내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만들던 날들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가 세상의 심판 가운데 인류의 구원이라는 어떤 시대적 사건을 이끈 주인공이지만 그의 하루하루는 어땠겠습니까? 전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지겹고 힘겨운 노동… 매일 똑 같은 노동을 하며 방주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의 믿음의 결과는 멋지고 놀라웠지만 그의 과정 마저도 멋진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성실하게 자신의 믿음의 행동을 하는 자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의 삶을 통해서 증명해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능력이 갑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어떤때는 고단하고, 어떤때는 노동과 같은 우리의 매일의 삶을 통해서 결국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번의 예배, 한번의 봉사, 한번의 헌금 그러한 걸로 나의 믿음을 증명하려 하면 안됩니다. 내가 뭘 크게 한번 해서 내 신앙과 믿음을 증명하려 하는 것은 오늘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믿음의 사람의 모습이 결코 아닙니다.
그의 전 생애를 통해서 믿음을 증명하는 사람들… 그의 전 생애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 그러한 사람들을 통해서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세계가 드러나고 믿음이 증명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 바라보고 믿고 따르는 자들… 그들을 통해서 그 보이지 아니했던 하나님의 나라… 그 초월적 나라가 결국 세상 가운데 드러나게 될 것을 성경은 말합니다… 그것이 초대 교회 성도들의 모습 아니었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가치를 따랐다면 결코 지킬 수 없었던 신앙의 자리를 초대 교회 교인들이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인 눈에 보이는 가치가 아니라 그것을 초월해 있는 하나님을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것을 믿고 따르십니까? 믿는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믿는다는 것입니까? 내가 보이는 가치를 지금 이 순간에도 믿고 있다면… 그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시각과 생각을 초월해 계시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 그리고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해서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증명해 내는 것 그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증명해 내고 나타 내실 수 있는 삶이 되기를 소망하며 찬양하시겠습니다.
n 믿음이 없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