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 시리즈 4 복있는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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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개인과 가정, 나아가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의 미래는 다름 아닌 무엇에 굶주려 하고 무엇에 목말라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2002년 월드컵 축구에서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오르는데 결정적 주역인 ‘거스 히딩크’ 감독이 “나는 아직 배고프다 I’m still hungry!”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아직 더 승리에 대해 배고프고 목마름을 표현한 것이죠.
지난 세월 우리 나라의 역사를 움직여 온 것도, 바로 이 목마름때문이 아닙니까? 일제 36년의 통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자주 독립에 대한 강렬한 목마름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참혹했던 6.25 전쟁 이후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세계 역사에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도 나는 몰라도, 내 자식만은 보릿고개라는 굶주림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강렬한 목마름 때문입니다.
주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무엇에 대해 굶주려 하고 무엇에 목말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목말라 있는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복된 삶을 살고 있습니까? 그러면 우리 삶에서 구체적으로 의롭게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1.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은 삶의 “우선 순위의 문제”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마5:6)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필수적인 욕구는 먹고 마시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식욕은 사실 욕구라기 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도 엄마의 젖을 물리면 본능적으로 그 젖을 먹는 것처럼 이 식욕은 생존을 위한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욕은 크게 배고픔으로 인하여 생기는 먹고자 하는 욕구와 목마름으로 인하여 생기는 마시고자 하는 욕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주리고 목마른”것은, 어쩌면 오늘날 풍요 속에 사는 우리들보다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에게 더 강한 의미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광야에서 가난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기 직전이었고, 먼지가 많고 가뭄이 자주 있었기 때문에 너무 목이 말라 마시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 어떠한 뜻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옛 말에 ‘사흘 굶어 남의 집 담장 안 넘을 사람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인간은 배가 고프면 육신의 고통을 느낄 뿐 아니라 판단력은 물론 나아가 이성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에서가 야곱에게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린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배고픔’ 때문입니다.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창25:32-33)
에서는 잠시의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여 판단력을 상실함으로 평생을 후회하게 될 중대한 결정을 너무나 쉽게 내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이러한 배고픔과 목마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주리다’라는 헬라어는 ‘peinao’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궁핍하다’, ‘심한 굶주림으로 고통당하다’는 뜻입니다. ‘목마른’라는 헬라어는 ‘dipsao’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는 ‘진짜 목마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조금 배고픈 정도가 아니라, 조금 목마른 정도가 아니라 절대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치 굶주림에 지친 북한 주민들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탈북을 시도할 만큼의 배고픔, 목숨을 거는 사생결단의 행동을 할 만큼의 극심한 배고픔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단순히 목이 조금 마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숨이 턱턱 막히는 사막의 불볕 더위아래 온 몸에 흙먼지를 뒤접어 쓰면서도 몇 날 며칠 물을 마시지 못해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을 정도의 극심한 갈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시기를, 배고픈 것만 해도 얼마나 큰 고통스러운 일인데 거기에다가 목까지 마르다고 하니 그 고통은 얼마나 큰 것이겠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그야말로 죽기 일보 직전에 있는 사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계속적인 행동을 강조하기 위해서 현재 분사를 사용하시는데, 단 한 번 주리고 목말라 하는 행위가 아닌 이것은 지속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를 잃어버려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이를 찾을 때까지 물 한 모금 먹을 수 있습니까? 헐떡 거리며 아이를 찾을 때까지 혼비백산해서 아이를 찾는데 집중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한 사람의 사망 시점을 심장이 멈춘 것을 기준으로 하기도 하고, 뇌가 죽은 것을 기준으로 뇌사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은, 배고픔이나 목마름을 느끼느냐 느끼지 못하느냐로 구분됩니다. 즉, 배고픔과 목마름을 느끼는 것은 살아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특정한 것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배가 주리다는 것은 음식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목이 마르다는 것은 물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성공에 굶주려 있다, 사랑에 굶주려 있다, 행복에 목말라 있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무엇에 굶주리고 무엇에 목말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팔복의 네번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시면서 우리를 향해 의에 굶주리고 의에 목말라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의’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3:21-22)
여기서 말하는 의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곧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 구원의 상징, 사랑의 상징인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자체가 우리가 굶주려 하고 목말라 해야 하는 참 ‘의’라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범죄 한 아담과 하와 이후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원천적인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죄의 본능을 가지고 태어나고 날마다 죄 가운데 살아가는 죄인일 뿐 아니라 죽음 이후 심판을 통해 영원한 고통인 지옥 불에 떨어져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우리 인간을 사랑하심으로 죄인된 우리가 의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한 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게 하심으로 우리를 의롭다 칭하여 주시고 새로운 산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며 산다’는 것은, 다름 아닌 구원에 대한 열망, 하나님의 자녀됨의 열망, 의인이라 칭함 받음에 대한 열망, 곧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 ‘의’에 대한 굶주림과 목마름을 가졌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2:37)
바로 이들은 복음을 듣고 마음에 찔려 의에 대한 굶주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우리가 어찌할꼬’하며 탄식했습니다.
또한 바울과 실라를 통해 복음을 깨달은 빌립보 감옥의 간수 역시 이렇게 고백합니다.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행16:29-30)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며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복음의 갈망, 구원에 대한 목마름으로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가진 본질적인 굶주림, 근원적인 목마름을 꿰뚫어 보시며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날마다 우리 예수님께 굶주려 하고 우리 예수님을 목말라 하는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으로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수를 먹고 마시는 저오 여러분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말씀은 산상수훈의 결정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마태복음 6:33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여기서 “더하시라”의 ‘더하심’과 마태복음 5장6절의 ‘배부를 것임이요’라는 말과 의미가 상통하는 개념입니다. ‘더한다’는 것은 더해진다(add)는 것이 아니라, 만족하게 될 것이고 배부름을 얻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영혼의 허기와 육신의 허기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허기가 있는데 육신적인 배고픔을 채우려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은 삶의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율법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최고의 우선순위로 두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배부름’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마5:6)
의에 주리고 (hunger) 목마른(thirst)자, 그들이 배부를 것이라 말씀합니다. 유진피터슨 목사님의 메세지 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입맛이 당기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분은 너희 평생에 맛볼 최고의 음식이요 음료다” (메세지 성경, 마5:6)
하나님께 입맛이 당기는 자는 복이 있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맛보지 못한 음료와 음식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주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입맛이 당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살아 가는 사람은 이 땅에서 배부른 삶이 무엇인지 체험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주리고 목마른 ‘비움’이 있는 사람이 배부를 수 있을까요? 이것은 이미 시작한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감사와 만족의 삶, 하나님을 맛본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4:8)
이 땅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점점 더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맛보아 누리며 감사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시 107:8–9)
광야 같은 인생에서 방황할 때 주리고 목마른 인생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며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사모하는 영혼에게 주시는 축복은 ‘배부름’ 즉,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가득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땅히 주리고 목말라야 할 ‘하나님의 의’, 예수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삶을 가로막는 영적인 정체가 있든데 그것은 무엇일까요? 사도바울은 로마서 10:2-3에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롬10:2-3)
이 말씀은 무엇보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는 자’를 향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너의 정체가 무엇이냐?’ 묻습니다.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는 정체가 무엇이냐?는 것이죠. 그것은 바로 ‘자기 의’ 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참 ‘의’를 만나기 전, 바울 역시 ‘자기 의’에 사로 잡혀 살았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께 열심이었지만 어느날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성령의 빛에 거꾸러져 자기를 보니, 그 모든 것이 ‘자기의 의’였음을 보게 된 것입니다.
사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께서 이 아침에 질문하십니다. “너의 진심이 어디 있느냐? 너의 정체가 무엇이냐?”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사단이 사용하는 절묘한 속임수가 바로 ‘자기 의’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로’ 우리는 모두는 ‘예수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줄 알았는데, ‘자기 의’에 빠지게 하고, 서로 오해하고, 미워하게 하고, 용서하지 못하게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우리 안에 도사리고 숨어 있는 이 교묘하고 간사한 ‘자기 의’를 보면서 자신에게 절망하며 더욱 우리가 붙잡아야 할 분은 십자가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음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기 의에 동반되는 단짝이 바로 ‘정죄함’입니다. ‘자기 의’는 자기는 옳고 자기가 선하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꼭 희생제물로 끌고 들어와 동기부여를 하게 합니다. 도무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고 그 마음에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이 정죄는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마치시면서 산상수훈의 삶을 살 때 경계해야 할 것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7:2–3)
누군가를 정죄하는 순간, 우리 마음 가운데는 평안과 기쁨이 사라져 버립니다.
함께 따라 해보실까요?
“그럴 수 있겠구나”
“남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면 상대의 허물을 보아도 ‘그럴 수 있겠구나’하고 지나가는데, 그렇지 않으면 자꾸 그 사람의 속 마음이 보이고 판단하게 됩니다. 자꾸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자기 의’에 속아 넘어집니다. 십자가에 우리의 의를 못 박을 때 비로소, 상대의 허물이 아닌 내 들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사실 우리 모두는 다 세상에, 성공에, 내가 원하는 것에, 주리고 목마른 자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자기 의’를 가지고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몸무림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배고프고 늘 목마른 삶을 살아 온 것이죠. 그러다 보니 늘 비교하고 내 의에 맞지 않으면 누군가를 정죄하는 삶을 삽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이 오늘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는 복이 있다’ 우선순위의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그것이 얼마나 너의 삶을 복되게 하는지를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이요’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배부르다’는 헬라어는 ‘chortazo’인데 이것은 ‘넘치도록 부어주신다’, ‘부족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오병이어 사건입니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마14:20)
또 어떤 말씀이 떠오르십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23:1)
주 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에 배고프십니까? 무엇에 목마르십니까? 오늘 이 아침에 주님 앞에 이렇게 고백해 보시면 어떨까요? “주님! 저는 주님으로 인해 배고프고 주님으로 인해 목말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주님, 여전히 ‘나의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저의 본성을 아시지요? 그러니 주님! 제가 매순간 ‘주님의 의’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저를 붙잡아 주옵소서’
그래서 복음 전하는 자로 평생을 살았던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 복음의 비밀을 깨달은 자로, 영적 부요함, 배부름의 삶의 비밀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6:10)
우리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하나님나라 원칙을 깨닫고
영적인 배부름, 하나님 나라의 배부름으로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게 하는데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
1. 무엇에 배고프십니까? 무엇에 목마르십니까?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로, 우리의 참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우순순위의 문제가 해결되게 하옵소서.
2. 밤이나 낮이나 어제나 오늘도 영원히 주만 찬양합니다. 괴롭고 슬플 때 낙망하여 넘어져도 언제나 주님만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숨겨진 ‘자기 의’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주여! ‘나의 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이제는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하심과 성령 하나님의 감화 감동 내주 교통하시는 역사가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우순순위가 회복된 삶을 살아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영적 배부름의 축복된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주의 백성들 머리 머리 위에와 이들의 가정과 자녀, 일터 위에, 지금도 복음을 들고 하나님나라 회복을 위해 수고하시는 열방에 흩어진 선교사님과 그 가정과 선교지 위에와 한국교회와 디아스포라교회 위에, 다가오는 성탄절에 힘들고 소외된 우리들의 이웃들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옵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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