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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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진짜 감사
본문 : 욥기 2:1-10
[도입]
오늘은 우리가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여러분, 추수감사주일이 어떤 날이기에 우리가 지키는 것입니까? 이는 1년간 농사를 지내어 추수한 것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드리는 제사입니다. 오늘 이 예배를 나아옴에 있어 여러분들에게 있어 가장 큰 감사의 제목은 무엇입니까? 우리 잠시나마 한 해 가장 큰 감사는 무엇인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생각 중)
저는 올 한 해 가장 감사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여러 감사의 제목이 있지만, 아기가 생긴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흔히 어른들이 자식 키우는 것을 농사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래서 자식농사라 말하는데, 아직 저는 자식농사는 아니지만, 기대가 크고 동시에 두려움도 함께 다가옵니다. 하지만, 흔히 어른들이 아이를 바라보는 순간 행복해진다하니 올 해 가장 큰 감사는 행복한 순간을 줄 아이를 제게 주신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감사는 무엇입니까? 또 그것이 여러분들의 한 해 겪은 모든 것들을 잊게할 만큼 감사의 제목이 됩니까?
오늘 본문은 그 유명한 고난의 인물, 욥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부터 늘 ‘욥기’를 참 좋아합니다. 욥기의 삶을 볼 수록 인간적인 측면에서 짠함과 알게모를 동질감을 느끼기에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의 신앙의 중심을 볼 때 ‘누구나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에 많은 감사의 제목이 있으며, 또 각자의 감사할 제목이 있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평생 잊지 말아야 할 감사의 제목을 발견하여 고백하며 나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욥은]
오늘 읽은 본문은 사탄이 욥을 시험한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늘 경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곁에서 언제든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면 사탄의 행동반경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묻습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이에 사탄이 대답합니다. ‘땅을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녔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사탄의 행동반경이 매우 넓다는 것입니다. 한 곳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 저곳을 다니며 모든 사람들을 괴롭히고 넘어뜨리고자 시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곳 저곳 다니는 사탄의 모습에 여호와께서 질문을 하나 합니다. 어떤 질문입니까? 3절을 보니,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 ‘네가 이곳 저곳 다니다가 욥을 보았는가?’ 욥을 보았냐 한 사람을 지목하여 묻습니다. 이렇게 지목하여 묻는다면 사탄 입장에선 평소 관심없다가도 괜히 관심이 생길 것만 같습니다. 심지어 보았냐 묻고 끝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욥에 대해 평가합니다. ‘욥이 어떤 사람인지 아느냐?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란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니 사탄입장에서 어떻습니까? 더 군침도는 먹잇감 아니겠습니까?
[사탄의 시험]
이제 사탄이 움직입니다. 어떻게 움직임을 가져갑니까? 4절과 5절을 보면 사탄의 행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주님께서 직접 자신의 손으로 욥의 뼈와 살을 괴롭게 하십쇼. 그럼 아무리 온전하다 하여도, 정직하다 하여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하여도 하나님을 분명 욕하게 될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이라 하여도 지금처럼 부유하지 않고 고난이 온다면 분명 그의 태도는 달라질 것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사실 욥은 매우 부유한 사람입니다. 1장 3절을 보면 욥의 재산을 알 수 있는데,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그의 소유물이 얼마나 많습니까?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말하는 신앙적으로도 훌륭한 자인데, 양이 무려 칠천 마리가 있습니다. 낙타가 삼천 마리가 있습니다. 소가 오백 겨리, 겨리는 소 두 마리가 이끄는 쟁기인데, 즉 소가 천 마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암나귀도 오백 마리가 있습니다. 이를 관리할 종도 많다고 합니다. 단순히 소유물의 숫자만 언급되었지만 이를 관리할 토지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 토지는 또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이들을 먹힐 식사만 엄청 났을 것입니다. 한끼에만 동물 1만1천5백마리니, 하루에 3만4천5백인분의 동물 식사가 나와야 합니다. 이뿐입니까? 이들을 관리할 종들과 사람들의 식사도 필요합니다. 노동비도 있어야 하며 이들이 거주할 숙소도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욥의 재산이 얼마나 어마어마했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향해 말씀은 어떻게 말합니까?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라고 말합니다. 진짜 완벽 그 자체 아닙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엄친아가 바로 욥 아닙니까?
사탄은 그런 욥을 알고 어떻게 시험할 것을 제안합니까? 그의 뼈와 살을 깎아 육체적 고통을 주라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생명을 제외하곤 무엇이든 다 해도 된다 말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 두 가지 생각을 매번 하게 됩니다. 정말 잔인하시다. 굳이 하나님, 자신의 자녀에게 고통을 허락하는 모습이 참 잔인하다. 동시에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믿음이 확고하다. 욥은 하나님의 확고한 믿음을 가졌던 자다. 부럽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장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미 욥은 자신의 소유물 모두를 잃었습니다. 재산이 한 순간, 한 날에 사라졌습니다. 그 많던 재산이, 또 재물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이 모두 사망하였습니다. 그의 아들 일곱과 딸 셋이 모두 집이 무너지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좌절 속에서 그는 신앙을 잃지 않았고, 이제는 고통이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7절을 보니 사탄의 시험은 무엇입니까?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즉 온 몸에 무엇이 난 것입니까? 종기가 난 것입니다. 이는 두드러기같이 올라오는 고름이 차는 피부병입니다. 얼마나 간지럽겠습니까? 모기만 물려도 어떻습니까? 충분히 간지럽습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손톱으로 십자가를 찍어보기도 하고, 긁어 간지럼을 해소해보고자 시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름입니다. 욥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8절을 보니,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질그릇이 얼마나 까칠까칠합니까?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그릇과 다릅니다. 거친 면을 가진 그릇입니다. 그런데 그 그릇을 가지고 몸을 긁습니다. 얼마나 괴로우면 거친 질그릇을 가지고 몸을 긁습니까?
[아내의 반응과 욥의 대답]
아내도 이 모습을 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재산을 잃었고 자녀를 잃었습니다. 남편의 몸은 고름으로 가득차 질그릇으로 긁습니다. 고름이 터지니 진물이 온 몸을 덮습니다. 또 피가 납니다. 아내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차라리 하나님을 욕해라. 온전함을 지키겠다 버티지 말고 그냥 하나님을 욕하고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라.
그러나 욥은 달랐습니다. 그는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던 자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확고한 믿음과 신뢰를 받던 자였습니다. 그의 대답은 10절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우리 함께 읽고자 합니다.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아내를 향해 어리석다 말하며,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화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겠냐? 감히 내 입술로 하나님을 욕할 수 없다. 고 대답합니다. 욥의 대답이 얼마나 멋집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귀한 대답입니까? 1장 21절과 22절을 보면 욥은 처음받은 고난 속에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알몸으로 나온 자니 알몸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거두시는 이도 하나님 아니시겠냐,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겠다.
[적용]
우리의 삶을 보십쇼. 욥처럼 재산을 다 잃지는 않았지만, 모든 생명을 빼앗기진 않았지만, 나의 육체적 건강을 잃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나름대로의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해 괴로워 합니다. 실제로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목숨을 끊습니다. 그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먼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변에서 실제로 자주 일어나는 일이고 또 내게 언제든 주어질 수 있는 마음입니다. 시련입니다.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설교에 앞서 우리는 감사의 제목을 생각해보자 했습니다. 그 감사의 제목이 떠오르기까지 얼마나 빨리 떠올랐습니까? 바로 떠올랐습니까? 누군가는 바로 떠올랐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조금 생각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감사하는 삶을 살아내고 있지 못합니다. 감사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욥을 보십쇼. 욥은 어떻습니까? 재산도 가족도 건강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고백은 변치 않았습니다. 아니 그의 중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중심은 여전히 하나님을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삶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큰 감사라 고백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청소년부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욥의 감사가 날마다 주어지길 소망합니다. 단언컨대 여러분들의 삶에 고난이 없을 수 없습니다. 고난, 고통, 괴로움 반드시 주어질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저주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사탄이 우리를 향해 시험하고자 시시콜콜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감사해야 합니다. 무엇을 감사합니까? 먼저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내가 다른 우상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 무엇을 감사합니까? ‘하나님이 나를 신뢰하여 고난을 허락하셨다’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내게 고난이, 고통이 온다는 것. 하나님이 나를 그만큼 신뢰하고 믿는다는 것. 또 한단계 성장시키고자 훈련시키는 하나님의 허락된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날마다 감사하는 귀한 청소년부 친구들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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