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이요 빛이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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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과 인사

오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너무 사랑해요’하고 인사 한번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결코 헤어질 수 없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신 줄 믿습니다. 성도는 기쁨과 고난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기에 언제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직은 코로나 당국의 정책상 교회당 내에서 식사를 준비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같이 있고자 하는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이제 다음 주일부터는 이 시간에 미어즈 성경 핸드북의 내용을 가지고 내년 한 해 성경 일독을 목표로 성경 개론을 공부하려고 합니다. 책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오후 예배 시간에 함께 책을 가지고 오셔서 보면서 같이 공부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책이 없으신 분들을 위해 다음 주일 오후에는 책을 가져다 두고 구입을 하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책이 두껍고 양장본으로 나와 책값이 조금 비싼 게 흠이긴 합니다만 이런 책은 한 권 정도 집에 간직하고 지속적으로 참고하시면서 성경을 읽으시면 더 큰 유익이 있으리라 여깁니다. 내가 읽으려고 하는 성경을 읽기 시작하기 전에 미리 이 책의 해당 부분을 읽고 성경을 읽으시면 성경 읽는 것에 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참고 하시고 신구약 1독도 겸해서 하려고 합니다. 한 해를 정리하시면서 같이 책도 보고, 성경도 읽어가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S2. 주제 제시

시편 119편은 이합체 시로서 히브리어의 알파벳을 두음으로 해서 8절씩 문단이 나우어 졌는데 본 시는 ‘눈’ 즉 영으로는 N으로 시작하는 시입니다. 오늘은 이중에서 시편 119편 105절로 112절의 말씀을 통해서 고난과 어려움 중에서도 우리 삶의 빛이 되시는 예수님에 대해 함께 묵상하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우리 성도의 삶에도 고난이 있고 아픔이 있습니다. 코로나라고 하는 큰 질병의 재난으로 인한 고통도 있고, 가족을 잃거나 혹은 경쟁에 실패하여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있습니다. 크고 작은 질병으로 고난을 겪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도 이제 50대 중반으로 들어가느라고 어깨에 50견이라는 통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너무 아파서 뒹굴 정도이기도 합니다. 안되겠다 싶어 침이라도 좀 맞으려고 병원 예약을 해 두었습니다. 한방 치료는 한 5,000원이면 되더라구요. 그래서 내일을 아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죄인으로 태어난 인생이 한평생을 산다는 것은 이런저런 아픔과 어려움의 연속입니다. 가벼운 것은 가벼운 대로, 무거운 것은 무거운 대로 하나님은 이런 고난과 아픔을 허락하십니다. 오늘 시인도 자신의 삶을 고통과 아픔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107절에서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시편 119편 107절
107.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가 어떤 고난을 겪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지금 겪는 고난으로 인해 죽게 될 정도로 힘이 든 상황에 처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해 주소서 하고 간구합니다. 109절에 보면 시인은 그의 영혼이 항상 자신의 손에 있다고 말합니다. 109절을 봅시다.
시편 119편 109절
109.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히브리어로 내가 큰 괴로움 중에 있다는 표현은 ‘내 영혼이 나의 손에 있습니다’라는 관용어로 나타납니다. 이는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그의 삶이 힘든 상황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의 이런 위태로울 정도의 어려움은 악인들의 모략에 근거한 것으로 보입니다. 110절입니다.
시편 119편 110절
110.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시인은 지금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찾아오는 모략과 올무에 걸려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고통들은 시인의 마음을 한없이 낙심하게 하고 무거움으로 가라앉게 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S3. 문제 제기

종종 번영과 성공주의에 깊이 편향된 분들은 이러한 성경의 표현들을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이해합니다. 구원을 받고 새로운 삶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에게는 오직 성공이 있고 잘되는 삶만이 있지 왜 그리스도인들이 패배자처럼 고난을 말하고 실패를 논하는가? 하고 묻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기쁨만 넘치고 즐거움만 있는 삶이 있어야지 괴로움을 말하고 절망을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성령님이 강림하신 이후 우리의 삶은 더욱더 잘되고 복된 삶만 있지 결코 실패나 좌절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이러한 실패와 낙심의 삶은 성도의 삶이 아니라 아직 구원받기 이전에 있는 사람들의 삶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J1. 하나님의 마음, 속성, 그리고 방법

그러나 우리는 성도의 삶에도 많은 어려움과 아픔이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믿음이 오면 성도는 좌절하거나 무너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많은 고난이 있습니다. 이것은 죄된 세상을 사는 성도가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과정입니다. 아담 안에서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은 그가 천국에 부름을 받기 전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여전히 고뇌와 아픔을 경험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를 가장 슬퍼하시고 안타까워하시며 이런 죄의 고리를 단절하시고자 복음이신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보내신 것입니다. 바로 이 예수님 안에서 임한 천국이 죄많은 이 땅에 침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 완전한 형태로 우리에게 오신 것은 아닙니다. 이런 까닭에 고난은 여전히 성도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실 때 천국의 왕이셨고, 죄인의 구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지만 죄 아래에 오셔서 죄인인 인간의 대표가 되셨습니다. 성탄은 분명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구주께서 사람으로 오신 위대한 은혜의 날입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날, 사람의 몸으로 입고 오신 생일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놀라운 소망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 은혜의 날을 매년 기념하면서 이 고난의 땅 가운데 주신 소망을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그러나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은 세상의 시간 안에서 분명히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믿고 기다리는 성탄절은 아기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에게는 하나님이 아기가 되는 고난의 과정입니다. 영광의 하나님께서 사람 중에서 다른 사람의 보살핌이 없으면 안되는 가장 약한 인간, 아기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입장에서는 고난이고 고통입니다. 최고의 위대한 구원주가 되신 예수님은 이 땅에서 크게 고난을 받고 고난 이후에 영광을 얻으셨던 것입니다. 물론 주님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로 인한 고통이 다 거두어지지만, 마지막 날 그 날이 오기까지 이 땅은 의와 선이 함께 공존하기에 우리 성도들도 이런 세상에서 아픔과 수고를 경험하고 사는 것입니다.

W1.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예수님은 세상을 이긴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자신이 아기로 오시며 고난을 당하신 이유가 힘이 없고 무력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주님은 약속의 말씀을 이루고자 고난을 당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마태복음 1장 22, 23절을 봅시다.
마태복음 1장 22, 23절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님은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고난의 길을 걸으신 것입니다. 아기가 되셨고, 사람이 되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약하시고 무력해서가 아니라 약속의 말씀의 등을 따라 사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의 걸음의 등불이셨고, 주님의 삶에 비추인 빛이셨던 것입니다.

W2. 그래서 주의 말씀은 고난 길의 성도의 발에 등이요, 길에 빛이 되십니다.

시인은 말씀이 그의 생애를 비추는 등이요 빛임을 선언합니다. 그래서 그는 말씀을 붙들고 살기를 결심합니다. 본문 105, 106절을 봅시다.
시편 119편 105, 106절
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06.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맹세합니다. 그는 고난 중에서도 주의 의로운 말씀대로 살기를 맹세합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사람의 의지를 신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하늘을 두고, 땅을 두고 아무리 맹세해도 죄인된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시인은 맹세합니다. 그것은 내 힘을 의지한 맹세가 아니라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은혜를 의지하여 하는 맹세입니다. 성도는 자기 힘을 믿고 맹세하지 않아야 합니다. 말씀을 의지하여, 은혜를 신뢰하기 때문에 그 은혜가 해 주실 일을 믿고 맹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맹세가 되는 것입니다.

W3. 우리 하나님은 은혜로 성도들이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게 하십니다.

성도는 자신이 죄인인줄 알기에 내 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111절을 봅시다.
시편 119편 111절
111.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시인의 마음에 드는 확신은 오직 주님의 주신 증거들밖에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 삶에 주신 놀라운 기적들과 구원의 은혜만이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결정하고 작정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많은 은혜의 증거들을 주심으로 우리가 고뇌의 시간에도 변질되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사를 공부하다 보면 86세의 고령자였던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갑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화형으로 자신을 협박하는 총독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은 잠시 타오르다가 곧 꺼져버리는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소. 왜냐하면 당신은 장차 임할 심판과 악인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형벌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요” 그는 죽음의 두려움이 그를 위협할 때조차도 말씀의 빛을 소유한 자로서 그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사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폴리갑의 마음 속에 영원한 생명을 향한 확신을 주셨고, 그는 힘으로 순교까지도 감당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T1. 시인은 고난 중에도 말씀을 붙드는 은혜를 누립니다.

그의 삶에는 항상 고난이 함께 하고 있지만, 그는 말씀을 붙들고 그 모든 고난을 이겨 나갑니다. 109절 말씀을 다시 봅시다.
시편 119편 109절
109.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다는 표현은 ‘내 생명이 내 손에 있다’는 관영구로 되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내 생명이 혹은 내 영혼이 내 손에 있으면 고난이요 고통입니다. 그러나 내 생명이 주님 손에 있으면 회복이고 기쁨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주의 법을 기억하고 붙들 때 이루어집니다. 믿음으로 주시는 성령님의 은혜 안에서 성도가 주의 법, 곧 주의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 때 우리에게는 회복과 기쁨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T2. 세상은 주의 말씀에 무지함으로 구원의 길을 얻지 못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그저 한 인간으로만 대합니다. 그 결과 세상은 구주로 오셔서 우리에게 새힘과 새생명의 은혜를 주시는 진정한 복음이신 예수님을 붙들지 못합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 능력으로 구원의 길에 이르고 자신을 의지하며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오히려 죄를 들추어내고, 죄를 고발하십니다. 세상은 이런 에수님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예수님을 한 인간, 한 사람으로 폄하하고 그 가르침을 거절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T3. 그러나 성도는 예수님의 말씀의 빛 아래에서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내 힘이 아니라 주의 말씀이 비추는 빛이 내 생애를 새롭게 합니다.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신 예수님의 빛을 받아 살아갈 때 성도는 마음의 기울기를 바꿀 수 있습니다. 본문 112절을 봅시다.
시편 119편 112절
112.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이제 시인은 말씀의 빛의 인도함을 따라 내 마음을 말씀에게로 기울이는 은혜를 누립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가까이 있고, 말씀이 내 삶에 침투해 들어올 때 내 인생은 말씀 안으로 달려 들어가게 하십니다. 내 영혼을 내 손에 담아 두지 않고, 내 영혼을 주께 옮겨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복이고 나의 힘이고 내게 주신 은혜의 열매를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L5.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의 모든 자리에 예수님을 가까이 두시는 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걷는 하루하루의 발걸음에는 항상 말씀의 등이신 주님의 빛이 환히 비춰져야 합니다. 내가 가는 삶의 인생길에는 주의 말씀이 빛으로 환하게 조명을 비추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성도는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움직이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래 신앙생활을 해도 바르고 온전하게 하지 못하면 오히려 마음이 더 완고해지고, 악해질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마음이 기울어 내가 죄인임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살게 되면 항상 남을 정죄하며 사는 완고한 삶으로 굳어 버릴 수 있습니다. 50견이 어떻게 오느냐고 물었더니 어깨 근육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는데 그걸 즉시로 고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다 보면 그게 굳어져서 팔을 움직일 때 통증이 심하게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문제가 생겼을 때 빨리 그것을 치료하고 지속적으로 적절한 운동을 해줘서 굳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굳어지는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말씀의 등으로, 말씀이신 그리스도로 내 삶이 계속적으로 변화를 경험하고 새로움을 누릴 때 영적인 질병도 떠나는 것입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항상 말씀을 가까이 하시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고난의 시간에, 아프고 어려울 때, 혹은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하고 공격할 때 우리는 말씀의 등을 비추고 말씀의 빛을 내 삶에 비추어야 합니다. 완고함과 교만함이 내 삶을 붙들지 못하도록, 말씀으로 내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마음이 굳은 자리에 있으면 영적인 질병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큰 힘이 됩니다. 그러나 말씀의 비추임 안에서 내 영의 마음을 항상 유연하게 하고, 부드럽게 해 나갈 때 우리에게는 놀라운 변화와 새로움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한 주간도 은혜와 능력 가운데 말씀을 향해 온전히 마음을 기울이시고 굳은 마음, 딱딱한 모든 것들을 풀고 은혜의 삶 가운데 거하시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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