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26장 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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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늘은 신앙고백서 26장 교제에 대해 말씀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교제는 어울림이죠. 어울림의 목표는 결국 하나 됨 입니다. 하나됨의 주제가 가장 잘 나타난 성경이 에베소서입니다. 에배소서를 통해 하나됨에 대한 말씀을 듣기를 원하는데, 교회 안에서의 하나됨과 세상에서의 하나 됨이 같을까요. 다를까요? 당연히 다르겠죠? 세상에서는 자기가 어울리고 하나되고 싶은 사람들끼리 하나가 되고 필요 없으면 손절하고 다른 곳에 가서 하나가 됩니다. 혹은 뭔가 잘난 조건을 갖추지 못해서 세상에서 하나 됨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하나됨이 교회안에 들어오면 될까요? 그러니까 세상에서 통하는 하나됨의 방식이 교회 안에 이뤄지면 될까요? 안되겠죠?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면 안되는 거예요. 교회가 힘을 잃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의 하나됨과는 질적으로 다른 하나됨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된 교회의 하나됨이 어떤 건지 깨닫고 그것을 지켜서 우리 수영교회의 다음세대가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일꾼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1- 부르심을 받았으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부르심을 받았으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여태 신앙고백서를 배우면서 부르심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죠? 우리는 스스로 구원 받을 수 없고 하나님께서 부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불렀으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는 문제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4장 1절을 보면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한 다음에 2절과 3절에 그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우선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이 뭐예요? 겸손한거는 예의를 차리기 위해 스스로를 낮춘다는 뜻만 있는게 아니에요. 자신을 적절하게 평가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특히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 잘 깨닫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구원 받기로 한 사람은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주셔서 구원 받았잖아요? 내가 잘나서 구원 받은 게 아니고요. 겸손할 수밖에 없죠. 온유함은 부드럽고 온화하고 침착하게 행동하는 것을 온유라고 합니다.
겸손해야 온유할 수 있습니다. 내가 부족한 걸 알아야 다른 사람을 닦달하거나 거칠게 행동하거나 하는 것들을 자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래 참음이 있어야 하고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함이 있으라고 합니다. 오래 참으면 결국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할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보면 오래 참는 일이 굉장히 힘들어요.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거든요. 내 맘에 안드는 행동을 계속해서 하는데 그거 참는게 어렵습니다. 하지만 오래 참음을 이루면 결국 그 사람을 용납하게 됩니다.
이게 한국말이나 영어로 봐도 티가 안나고 헬라어로 봐야 티가 나는데 굉장히 규칙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를 가지고, 오래 참음과 사랑 안에서 용납함을 가지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겸손이랑 온유랑 묶여있고 오래 참음이랑 용납함이 묶여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 동기와 행동으로 나눠져 있어요. 겸손하면 온유하게 되어 있고 오래 참을 수 있으면 상대방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했을 때 3절에 나오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내가 겸손하면 온유함이 생성되고 오래 참다보면 결국 그 사람을 사랑 안에서 품게 되거든요? 이게 하나의 강력한 평안을 생성합니다. 자 평안을 생성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다시 부르심으로 돌아가봅시다.
하나님께서 구원 받을 사람을 부르셨잖아요? 우리가 신앙고백서 배울 때 효력 있는 부르심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말씀과 성령으로 부르시면 우리가 거기에 반응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구원을 받습니다. 이 때 성령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가 같은 성령의 공동체가 되는 거예요. 이 성령의 공동체가 하나 될 때 필요한 것이 바로 평안입니다.
아까 전에 온유와 용납함을 통해서 평안이 생성된다고 했습니다. 이 평안을 가지고 성령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이 다 하나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결론은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을 더욱 견고하게 하려면 겸손함을 가지고 서로 온유하게 대하고 정말 내가 사랑하기 힘든 사람인데 내가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래 참아야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이 하나가 됩니다. 이렇게 하나가 되는 게 바로 사도 바울을 통해 명령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왜 이런 당부가 있을까요? 겸손하라 온유하라 오래 참고 용납해라 이렇게 해서 하나가 되라 왜 이런 부탁을 할까요?
에베소서에서 이런 말이 나온 이유는 당시에 에베소 교회 사람들이 하나 됨을 이루기 힘들어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도 하나가 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하나가 되는 비법을 알려주는 겁니다. 겸손으로 온유해지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안에서 서로 용납하는 거예요.
어떤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는데 나보다 못한 사람이 있으면 겸손해지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나보다 지식이 없는 사람, 나보다 돈이 없는 사람, 나보다 나이가 어리고, 행동이 모자라고 신앙생활을 적게 한 사람 그런 사람을 보면 겸손해지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사람은요 티끌만큼이라도 남보다 더 나은 것이 있으면 교만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입니다.
제가 인생에서 제일 흑역사를 만든 시점이 바로 대학교 1학년 때입니다. 여러분 나이 때 신학을 하겠다는 꿈을 갖고 신학과에 입학했어요! 1학년 1학기 때 뭐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근데 일주일동안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하고 교회에서 얼마나 아는 척 하는지 몰라요. 지금 생각하면 굉장한 흑역사입니다. 한 학기 동안 신학 배웠던 시절하고 지금 비교해보면 지금 제가 7년 동안 신학을 배우고 그 이후로도 혼자 공부했잖아요? 근데 저는 너무 부족하거든요. 지금도 부족하다는 걸 느끼는데 지금 보다 훨씬 못했던 그 때 왜 그랬는지 몰라요.
“누나 그 본문은 그렇게 해석하는 게 아니야”, “간사님 그거 그런 뜻 아닌데요?” 너무 재수 없어요. 진짜 흑역사에요! 그 마블에 나오는 아가모토의 눈 있으면 그걸로 돌려놓고 싶어요. 일부러 막 신학 하는 거 티내고 싶어서 신학책 챙겨가지고 교회가고 진짜 너무 부끄러워요.
그리고 제가 기독교 학교를 다니다보면 어쩔 수 없이 성경도 제일 많이 읽고 기도도 제일 많이 할 거 아녜요?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이 성경 열심히 안 읽고 기도 열심히 안하는게 용납이 안 되는 거예요. 동료들이 신앙생활 열심히 안하면 참을 수가 없는 거예요. 뭔가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미운 거예요. 그 친구들은 나름대로 세상 속에서 믿음 지켜가며 열심히 하는데 내 성에 안차니까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사람이 이런 존재입니다. 끊임없이 교만해지려고 하고 끊임없이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이해하지 않으려고 들어요. 인간의 특성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자기 수준에 맞는 사람끼리 어울리려고 하고 자기 신경을 안 거스르고 될 수 있으면 자기 한테 이익이 되는 사람들만 모아서 어울리려고 합니다. 자기네들끼리 그룹을 만들어서 자기보다 못한 그룹을 깔보고 자기 보다 수준 높은 그룹을 동경하며 그렇게 사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다르죠. 교회에서 보면 공부 잘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잘생긴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어요. 돈 많은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어요.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가 됩니까? 겸손으로 온유를 만들고 오래참음으로 용납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 평안의 메는 줄로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서 구원 받은 사람들은 이런 공동체를 이뤄야 합니다.
그리고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이 있는데 3절 마지막 부분에 힘써 지키라고 되어 있습니다. 헬라어를 보면 또 어떤 영어성경을 보면 힘쓰라는 말이 맨 먼저 나옵니다. 원래 “힘써 지키라!” 하고 나서 “그 성령의 그 하나 되게 하신 것을”이라고 나옵니다. 왜 힘쓰라는 말을 맨 먼저 하면서 강조했을까요? 힘을 써야 할 정도로, 노력을 기울여야 할 정도로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만 있으면 교만한 마음이 쓱 올라오고, 가만 있으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기 싫고 그렇게 하다가 평안의 매는 줄이 느슨해지고 믿음의 공동체가 흔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걸 힘써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신경 써서 온유해야 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단순한 습관과 본능을 넘어서는 열정이 있어야 하나 됨을 유지합니다. 성령이 부르신 사람은 이렇게 하나 됨을 위해 노력하고 애쓰고 힘써야 합니다.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해요?”라고 질문한다면 “구원 받기 위해 부름 받았으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2- 우리는 한 교회로 부르심을 받았다.
(전환문장) 자 제가 구원 받은 우리들이 하나 됨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는데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무엇으로 부르심을 받았는지 이야기를 한 번 해보려고 합니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우리는 한 교 회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거예요. 4절을 보시면 몸이 하나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 몸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성령도 한 분입니다.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 우리를 부르신 분이죠? 우리는 같은 한 성령님이 부르셔서 같은 한 교회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5절에 설명합니다. 주도 한 분이고 믿음도 하나고 세례도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한 분이고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도 다 같은 한가지입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다는 표시인 세례도 같은 한가지입니다. 믿는 분, 믿음, 세례 이게 다 하나고 같아요. 우리는 이런 같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다르지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교회라는 울타리가 있고나서 우리가 평안의 메는 줄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있기에 우리는 반드시 하나 될 수 없습니다.
6절을 보면 이렇게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교회의 모습의 절정을 묘사합니다. 6절에 보면 하나님이 한 분이신데, 이 한 분 하나님이 만유의 하나님이시고 만유를 초월해서 계시고 만유를 연결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1장 22절에 보면 이 하나님께서 만유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장소 교회 이 교회를 세우신 분이 만유를 초월하고 연결하시는 분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이 세우신 교회도 만유를 초월합니다. 에배소서 1장 22절 말씀처럼 만유 위에 교회가 있습니다. 세상 위에 교회가 있어요. 세상의 원리는 끼리끼리 하나 되고 싶은 사람끼리 무리를 이룹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함께 그걸 초월했어요. 어울릴 수 없는 사람끼리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유를 연결하신 것처럼 교회로 부르신 우리를 치밀하게 연결하십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연결될 수 없었던 우리를 하나님이 연결해주십니다. 모든 만물을 연결하신 분이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안에 모든 사람을 서로 연결하십니다. 이 6절이 교회의 하나 됨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론
설교를 마칩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우리는 구원 받기 위해 성령님을 통해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부름 받은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 됨 입니다. 겸손을 통한 온유함, 오래 참음을 통한 사랑 안에서의 용납, 이게 우리에게 있어야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가 달라도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한 교회에 있고 같은 주님을 믿고 같은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같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교회라는 울타리에서 우리는 같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됨을 공유합니다.
이 예수님의 몸인 교회는 하나님이 지으셨는데 만유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이 교회 또한 끼리끼리 모이는 세상의 원리를 초월하게 하십니다. 만유를 연결하시는 하나님이 교회 안에 있는 우리들을 연결하십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오늘 들은 말씀을 통해서 부디 우리가 서로 다르지만 하나 됨을 경험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더욱 튼튼하게 잘 세워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