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속의 동행

대강절 설교 (1)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102 views
Notes
Transcript
Sermon Tone Analysis
A
D
F
J
S
Emotion
A
C
T
Language
O
C
E
A
E
Social
View more →
오늘부터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대림절은 예수님의 성육신/강림하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4주간의 기간입니다. 하지만 성탄절만을 생각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날까지 기다리는 기간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기다리는지도 중요합니다. 이 기간이 성경의 인물들이 누리고 경험한 사건들이 우리에게도 현재/실제의 의미로 다가와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들이 누린 고통 중 누린 소망을 통해 우리도 고통 중에 소망을 누리며, 하나님의 기다림을 기다리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아브라함과 사라
1) 모든 일에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
대림절의 첫 번째 말씀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들로 기다리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눠보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고향/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네가 알고 있고, 사랑하는 모든 것을 놔두고 떠나 어딘가로 가라. 어디로 갈지는 말해주지 않겠지만, 네가 그 곳에 도착하면 알려주겠다”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끊고 떠나야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하나님은 ‘가라’하셨습니다. 이 단어는 동시에 오라는 말로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당사자가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서 뜻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오라는 명령에는 많은 것을 두고 떠난다는 의미가 있고, 가라는 명령에는 하나님께서 그 여정가운데 동행하신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가라고 아브람에게 주신 부르심은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삶으로의 부르심이었습니다.
1절에서는 하나님은 그에게 보여주실 땅으로 가라 하시고, 7절에 그 땅을 보여주십니다. 아브라함은 보여주신 땅으로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벧엘과 남방, 애굽으로 갔다가 하나님이 보여주신 땅으로 가게 됩니다. 돌고 돌아 다시 왔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자리로 돌아와서 다시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부르심에는 하나님과 동행할 준비가 된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뜻을 알기까지 그의 인생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향한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땅에 대해서, 자손에 대해서, 약속에 대해서 끊임없는 기다림과 실패의 반복이었습니다. 이삭이 생긴 후에도 그 약속은 미미해 보였습니다. 작은 씨앗처럼 보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에게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기다림은 100세까지 이어졌습니다.
2. 오래된 기다림의 이유
1) 약속에 대한 두려움
아브라함은 왜 이리 기나긴 세월을 기다려야 했을까요? 이는 그가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15:1절은 그가 두려워했다고 말씀합니다. 이 두려움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하실 지에 대한 불신의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자신을 알려주시기 위한 여정을 걸으셔야만 했습니다. 그의 삶에 끊임없이 따라오는 두려움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지연되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두려워할수록 약속의 때에 대해서는 지연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은 미미해 보이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하는 기다림의 길이었습니다. 이 길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로 두려워하지 않게 준비시키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방패와 상급이 되어주심)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라함의 불안과 걱정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뿐만 아니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근거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그의 방패가 되어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방패는 전쟁을 막지는 못하지만 그에게 날아오는 모든 화살과 해를 막아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지키시고, 두려움을 없애시고 자신을 알리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것을 갚아 주시는 상급이심을 알려주셨습니다. 모든 피해도, 보상도 하나님께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2) 하갈의 사건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불신과 두려움 때문에 한 번 더 긴 기다림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이 방패요 상급이 되어 주심을 알았음에도 불안감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커졌습니다. 15장의 언약/약속은 아이가 생기지 않은 현실에 더욱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다림의 시간을 더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림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과 동행함을 알게 해 주시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기다림의 중심에 계심을 알고 그와 동행해야만 했었습니다.
사라는 현실을 잘 알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나이가 많아 불임이었습니다. 임신하려 애써 보았지만 이제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성취되지 않자 사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돌아섰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아니더라도 아브라함의 아이를 갖게 하는 방법을 쓴 것입니다. 자신의 노예에게서 아이를 태어나게 하여 아브라함에게 아이를 주는 것입니다. 대리임신은 고대에서 아주 흔한 일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불신과 불안은 기다림을 길게 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선택은 기다림을 길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때가 아닌 자신의 방법으로 약속하신 일을 손쉽게 얻으려고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갈과의 동침과 이스마엘의 출생의 이야기는 기다리지 못하거나 기다리지 않으려고 할 때 일어나는 문제를 보게 됩니다. 사라의 해결책이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게 보였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기에는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이삭의 원수가 됨!!)
적용 : 여러분은 기다리지 못해서 일을 망치게 한 적이 있나요? 기다림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다림도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기다림은 하나님을 알 때 쉽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할 때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모를 때는 기나긴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습니다. 어려운 순간 하나님을 온전히 찾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할 때 기다림은 짧아 질 것이고, 올바른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3. 찾아오시는 하나님/ 이름을 고쳐주심
이름은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성경의 인물들도 이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사람의 정체와 됨됨이, 앞으로 일어날 일들까지 알려줍니다. 하갈 사건으로 인해 그들은 영적 어두움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13년의 기간동안 성경은 그들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나긴 기다림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아브람과 사래에게 다시 찾아오셔서 새로운 이름을 주십니다. 그 이름은 아브라함이었고 사래였습니다.
아브람은 ‘아브-아버지’이고 ‘람-찬양’으로 찬양의 아버지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바꾸신 아브라함에는 ‘라함-다수’의 의미가 붙어 많은 자들의 아버지로 바꾸신 것입니다. 사래의 이름도 사라로 바꾸셨습니다. 사래는 ‘차래-나의 고통’의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아브람으로 인한 고통의 삶을 하나님이 ‘사라-공주’라는 이름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다림의 기간에서 그들의 어떠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다시금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약속은 풍성하고 자비로웠습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사람들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었고, 사라는 고통이 사라진 공주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름 사건으로 인해 그들은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다시금 기다림의 길을 걸어갈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기다림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적용 : 여러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지만 우리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서주셔야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기다림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세요. 우리가 선택하며, 하는 일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개입을 구하는 중고등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기다림의 지연 때문에 영적-암흑으로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하나님은 개입하셔서 그들을 일으키시고 자신의 약속을 진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어떠함 속에서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합시다.
4. 사라의 비웃음 ‘비웃음에서 진짜 웃음으로’
얼마 후 천사가 아브라함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이 곧 성취 될 것이라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사라는 천사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비웃었습니다. 이 웃음은 비웃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왜 비웃었냐고 하시자, 사라는 태도를 바꾸고 무서워했습니다. 그녀는 왜 무서워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성취가 가까워지자 두려움이 엄습했던 것입니다.
간절히 원했던 일이 이루어지기 시작할 때 정작 그것을 감당하기 쉽지 않은 것이 우리의 본성일 것입니다. 준비가 덜 되었을 때 우리가 그러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라에게 그녀의 문제점을 되짚어 주셨습니다. 그녀를 책망하지 않으셨지만 그녀가 두려움에 떨어지지 않게, 숨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녀가 이제 되돌아가지 않도록 도우셨습니다. 멈춰있지 않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하나님이 그녀와 동행하고 계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때가 다가왔을 때, 준비가 덜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약속에 대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 반응은 비웃음이거나 두려움으로 찾아올 수 있습니다. 약속이 찾아오고, 좋은 것이 우리에게 왔는데, 우리의 연약함과 준비되지 않음이 안타까운 상황을 맞이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어떠함에 얽매이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시고, 자신을 따라 오도록 하셨습니다.
적용 : 그러므로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는 무슨 일이든 하나님과 동행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많은 기다림 속에 우리는 실패하고, 좋은 이해를 가지지 못하겠지만 하나님을 신뢰함이 중요합니다. 사라에게 있어서 마지막 시험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결론: 아브라함과 사라의 여정을 볼 때, 우리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느낍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보여주신 길을 따라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와 동행하는 분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함을 느낍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는 기다림에 관한 탁월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씨와 땅과 자손이었는데, 이삭이 태어나서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직 다수가 아닙니다. 애굽에서 자손이 아주 많아졌음에도 땅에 대한 성취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여호수아에 의해 성취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온전히 성취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에 의해 성취가 완성될 때까지 많은 위태로움을 겪었습니다. 이런 위태로움을 겪을 때 우리는 아브라함의 여정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 여정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와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적용 및 코칭 :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어떻게 기다리고 계신가요?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의 삶에 온전히 기다리는 삶에 지치지 않으셨나요? 이 기다림에는 많은 실패와 위로가 반복됩니다. 좋은 모습의 사람, 좋은 결과를 기다리지만, 이 결과는 우리의 때에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아브라함과 사라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이러한 목표가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한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시려 하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림의 길을 걷는 동안, 우리와 함께 길을 걸으시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대림절 맞이하는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탄생과 기다림에 대해 말씀을 나눌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기다리는 기다림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과 성취를 기다렸다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시는 구속과 재림으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기다림 속에 우리는 넘어지고, 실패하고, 실수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신실하게 구원을 이루심과 같이 우리에게도 신실하게 약속을 이루시고 계십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