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Anger
0UNLIKELY
Disgust
0UNLIKELY
Fear
0UNLIKELY
Joy
0UNLIKELY
Sadness
0UNLIKELY
Language Tone
Analytical
0UNLIKELY
Confident
0UNLIKELY
Tentative
0UNLIKELY
Social Tone
Openness
0.29UNLIKELY
Conscientiousness
0.27UNLIKELY
Extraversion
0.54LIKELY
Agreeableness
0.6LIKELY
Emotional Range
0.29UNLIKELY
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Language
Social Tendencies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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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3장 8절 - 14절 말씀입니다.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설교 제목 : 창조 타락 구속 시리즈 6 “죄의 파괴”
서론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은 우리 안에 흔적으로 남습니다.
어릴 때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사랑을 받은 티가 납니다.
건강하게 자란다고 표현하죠.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구걸하지 않아요.
실수를 했을 때 회피하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어릴 때 상처를 많이 받은 친구들은 흉터가 남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자 행동합니다.
때로는 더 이상 상처 받고 싶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도 하고, 자신을 숨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슬픈 것은 우리가 실수 했을 때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흠을 보이지 않고자 자신의 실수를 숨깁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핑계 되죠.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는 않을 거에요.
그냥 전도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전도사님의 속마음을 숨기는데 굉장히 능합니다.
그래서 진짜 가까운 사람들이 얘기하기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또 사랑은 받고 싶어서 나의 약점은 숨기고, 다른 사람을 핑계댑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 마음에 상처를 남깁니다.
그리고 관계에 치명적인 파괴가 일어납니다.
결국 파괴는 파괴를 낳습니다.
연결고리와 같이 파괴는 연달아 파괴를 만들어 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저번주에 살펴본 첫 범죄가 나옵니다.
어떤 범죄였죠.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뱀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됐죠? 수 많은 파괴들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죄가 만들어내는 파괴의 연결고리를 살펴볼 것입니다.
그 파괴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 8절에 아담과 하와가 숨습니다.
무엇을 듣고 숨습니까?
동산을 걸으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여기서 동산을 걸으시다는 표현은 실제로 걸었다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관계를 맺다.
우정을 맺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평소와 같이 동산을 걸으셨어요.
즉 하나님이 우정을 나누며, 깊은 관계를 맺고자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셨다는 뜻입니다.
평소에는 어떻게 반응했겠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좋은 시간을 보냈겠죠?
그런데 여기서 첫번째 파괴가 등장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됩니다.
아담과 하와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여호와의 낯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무슨 뜻이에요.
낯이라는 것은 얼굴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있지 않겠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숨었어요.
더이상 하나님과 함께 걷지 않겠다.
하나님과 관계 맺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 된 것이요.
끊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도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 안에 죄가 들어온 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어요.
우리는 우리와 함께 동행하고자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느끼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하나님 앞에서 숨습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여자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어디에 있느냐, 선악과를 먹었느냐.
여기서 두번째 파괴가 등장합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파괴됩니다.
아담과 여자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서로 남탓하고 있어요.
먼저 아담을 살펴보면 12절,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뭐 때문이다?
여자 때문이다라는 거에요.
지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탓하며 책임을 전가하죠.
지금 여자 탓하고 있어요.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여자만을 탓하고 있지 않아요.
여자를 수식하는 표현이 무엇이죠?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하나님이 주신 여자라는 거에요.
원래 아담이 2장에서는 뭐라 표현했죠?
내 뼈 중에 뼈, 살 중의 살.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자신의 것이라고 표현했었어요.
그런데 오늘은 표현이 이상합니다.
나는 원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주셨던 그 여자에요.
뭐라는거에요?
지금 사실 하나님 탓하고 있어요.
하나님 때문에 우리가 죄 지었습니다.
그랬더니 여자는 어떻게 답합니까?
하나님이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했느냐고 물어보자.
13절에 대답합니다.
뱀이 나를 속였습니다.
지금 뭐라고 얘기해요?
뱀 때문이에요.
간교한 그 뱀이 나를 속였습니다.
이렇게 뱀 탓을 하고 있어요.
결국 둘 다 뭐하고 있어요? 남탓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탓하는 이유가 뭐에요.
사실 내 잘못 아니에요.
나보다 상대방이 더 잘못했다고 고자질하는거에요.
자신의 죄를 회피하고 책임지지 않는 것이죠.
결국 자신이 살고자 서로의 관계가 파괴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펴보면 좋을 점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질문인데요.
먼저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질문합니다.
아담이 여자 탓을 했죠.
그래서 여자에게 하나님이 질문합니다.
그러자 여자가 뱀 탓을 합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이 뱀에게 뭐라고 해야 하죠? 질문을 해야 할 거 같은데, 14절에 보면 무엇이라 하십니까?
그냥 바로 듣지도 않으시고 저주를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돌이켜 보아야 할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여자에게 지금 질문을 통해서 사실은 기회를 주고 있다는 뜻이에요.
만약에 기회를 주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셨겠어요?
바로 뱀에게 저주하셨던 것처럼 저주를 하면 되겠죠.
그런데 질문을 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회를 주고 계신 걸까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라.
하나님이 처음에 그들이 선악과를 따 먹을 것을 모르고 동산을 걸으셨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거에요.
그런데 일부러 하나님은 자신의 소리를 들려주시고, 질문까지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죄 지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먼저 회개하기를 원하셨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어떻게 했어요?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가리고자 하나님 앞에서 숨어버렸죠.
그리고 다른 이들의 잘못을 들췄습니다.
결국 파괴가 또 다른 파괴를 낳았습니다.
연결고리가 단단해진 것이죠.
왜 다른 이들의 잘못을 그토록 들출까요?
바로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서에요.
한 때 유튜브에서 유명했던 머니게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화제가 되었던 이유는 한 출연자의 폭로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은 무고한 사람이라며, 다른 사람들을 까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또 다른 죄를 폭로하였죠.
폭로를 통해서 그들은 무엇을 원했을까요?
대중들이 자신보다 더 많은 죄를 지은 상대방에게 집중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대중은 두 명 모두를 비난하였죠.
우리는 다른 이의 잘못을 들추며, 자신을 무죄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이가 낮아져야 자신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같이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사람들이 솔직하고 정직한 모습에 칭찬을 받는데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영원한 파괴의 고리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질문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죄를 책임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능적으로 죽기보다 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을 죽여서라도 자신이 살고자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책임지시고 값을 치르셨습니다.
책임지지 않는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대신 책임지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는 죄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에게는 더이상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죄를 인정해도 괜찮아요.
우리는 다른 이의 죄를 들춰내면서까지 나의 죄를 감출 이유가 없습니다.
정죄함이 없으니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죠.
이것이 복음이며, 영원한 파괴의 고리가 끊어지는 방법입니다.
더 이상 파괴가 파괴를 낳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더 이상 파괴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선한 행동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선한 척 행동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누군가보다 선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어차피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누군가가 나를 향해 핑계대며, 나 때문에 잘못 되었다 할 거에요.
이 세상은 그런 곳이에요.
자신은 무죄요.
다른 이가 죄인이라고 할 겁니다.
그 때에 우리는 천박하게 내가 죄 없고, 너가 죄인이 이렇게 복수하라는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원한 파괴의 고리를 끊어버린 것처럼,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죄를 꺼내지 맙시다.
그렇게 파괴가 파괴를 낳지 못하게 합시다.
본론
우리는 우리의 죄를 가리고자 하나님에게서 도망쳐 숨습니다.
그리고 나보다 더 죄 지은 다른 이의 죄를 들추죠.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에 파괴를 만듭니다.
더 심한 파괴를 만들어 놓습니다.
그 때 기억해야할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책임지신 것을 기억하자.
그러면 나의 잘못을 인정하게 된다.
그렇게 될 때, 다른 이를 공격하지 않고, 파괴의 고리가 끊어진다.
누군가 우리 친구들에게 공격하며 파괴하려고 할 겁니다.
그 파괴가 더 많은 파괴를 만들지 못하도록 우리 친구들에게서 m끊어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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