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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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
- 막 11:15~18, 27~33
우리는 마가복음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계속해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왕이심을 보았고, 무화과나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전능하신 분임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입성하시고 제일 먼저 하신 일은 성전을 둘러보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왕이 입성 할 때 자신의 왕궁을 들어가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예수님께서 성전의 주인이심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다시 15절 예루살렘 성전을 들어가시는 데, 이 때는 11절과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하신 일은 성전을 심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육적인 성전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음을 선언하신 것이죠. 이는 우리가 14절에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것을 통해 예수님의 성전 방문이 심판을 위한 방문임을 눈여겨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심판하신 이유는 성전이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만드는 것은 성전을 이끌어가는 기득권의 부패로 인함이죠.
기득권의 부패는 먼저 대제사장이 종신직에서 임명직으로 바뀌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원래 대제사장은 아론의 자손들에게로 계승되는 종신직이었지만 솔로몬 성전이 무너지고 스룹바벨 성전이 무너지면서, 대제사장직은 이방 왕들에 의한 임명직으로 바뀝니다. 예수님 당시의 로마 지배 하에서는 대제사장의 직분이 일반 관직처럼 정치적인 배려에 의해 임명도 되고 해임도 되며, 심지어는 매관매직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은밀한 뒷거래가 이루어졌고, 돈과 권력이 있는 가문이 대제사장직을 꿰차게 되었는데, 그 가문이 안나스의 가문입니다. 안나스는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요한복음 18장에 보면 대제사장인 가야바보다 그의 장인인 안나스에게 먼저 끌고 간 것을 보면 안나스가 얼마나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종교지도자들과 협력하여 많은 부를 축적하였는데요. 그 중 하나가 성전 장사입니다. 그 당시 성전 말고도 희생제물을 판매하는 곳은 많이 있었습니다. 희생제물을 판매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부분이죠.
신명기 14장 24~2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각 지파별로 흩어져 정착하였을 때, 만일 자신의 거처가 중앙 성소로부터 너무 멀면 십일조와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직접 가지고 가는 대신, 그것을 일단 현금으로 바꾸어 가지고 가다가 성소 근처에서 필요한 예물들을 구입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주셨습니다. 희생제물을 가지고 멀리서 오다보면, 강도를 만날 수도 있고 또 어느 새 소나 양에 상처 곧 흠이 생길 수도 있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사 그들에게 편의를 제공해주신 것이죠.
하나님의 은혜로 순례객들은 희생제물을 끌고 오는 일 없이 돈으로 희생제물을 사고, 성전세겔로 환전하여 성전세를 내는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오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올 때, 많은 돈을 들고 왔는데, 이를 안 안나스가 종교 지도자들과 협력하여 성전에서 판매하는 제물만 받음으로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사고 성전 세겔을 바꾸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처음 있었던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예수님은 앞서 성전 안에 있는 장사꾼들을 보시고 그들을 내쫓으신 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의 사건인데요. 그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말씀하셨음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서 쫓아내시며, 그들을 책망하셨는데, 여전히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행위들이 계속 이루어졌다는 것이죠. 예수님은 이에 다시 한 번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그들의 상을 엎으시는데, 그 때와 다르게 16절 추가된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했다는 것이죠.” 16절 말씀은 마가복음에만 나오는 데, 여기서 ‘물건’은 제의에 필요한 그릇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성전의 물건을 나르는 것을 금했다는 것은 성전 체제 자체를 중단시킨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성전에서의 매매 행위만 금한 것이 아니라 성전의 제사 기능까지도 정지시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관리하는 성전의 장사와 성전의 제사를 막는 예수님의 행동은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자신의 행동을 통해 내가 메시야이심을 보여주고 계신 것이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17절에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시는데, 우리 17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막 11: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실 때, 이사야 56장 7절을 인용하시는데, 이사야 본문은 미래에 이방인과 소외된 자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한 장소가 있을 것을 약속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에게 이사야 56장 7절을 인용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장사하는 곳이 이방인의 뜰이라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의 뜰에 대해서 잠깐 설명하기 위해선 성전의 구조를 알아야 하는데, 성전에는 총 4개의 뜰이 있습니다. 제사장의 뜰, 이스라엘의 뜰, 여인의 뜰, 이방인의 뜰 이렇게 4개가 있는데, 그 중 이방인의 뜰은 성전 밖에 있어서 바깥뜰이라고도 부릅니다.
이방인의 뜰은 그 이름답게 이방인들이 거할 수 있는 성전의 공간을 말합니다. 이방인들은 성전의 일부인 '이방인의 뜰'에서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여기서 이방인이 하나님을 믿어 유대인으로 개종하는 사례도 간혹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그곳을 장삿꾼들과 환전상들에게 내어주어 '강도의 소굴'이 되게 한 것이지요. 이방인들 입장에서는 장사꾼과 환전상들 때문에 예배에 참여하기도 힘든 곳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의 뜰을 장사의 터로 만든 종교 지도자들의 횡포를 보시고 그들에게 이사야 본문을 인용하여 성전의 참된 의미를 말하며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면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장소라는 것이죠. 장사하는 곳이 아니라 예배의 장소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곳을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이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
강도의 소굴이란 표현은 예레미야 7장 11절에 나오는데, 예레미야가 그의 시대의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표현한 것은 성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 예배자들의 일상이 위선적이라고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즉 예수님은 예레미야 본문을 인용하며 종교지도자들의 민낯을 드러내시고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성전에서 막강한 권세를 누리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책망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권위에 눌린 것이죠.
예수님께서 그들의 민낯을 드러내시자, 18절에 그들이 어떻게 반응을 합니까?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의논합니다.
자신의 잘못은 돌아보지 않고 자기의 잘못을 드러낸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악한 자의 모습이죠. 마치 가인이 아벨을 죽일 때를 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아주시지 않자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죠. 자신의 민낯이 드러나니 안색이 변한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말씀하시며 가인이 죄에서 돌아서기를 원하셨지만, 가인은 끝내 아벨을 죽이죠. 그래서 성경에 기록되기를 가인은 악한 자에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사람을 해하려는 것은 악한 자의 모습이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역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들이 악한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구절이죠.
이 일이 있고난 후 예수님께서 성전에 거니시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묻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정말 예수님의 권위가 어디서 왔는 지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를 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죽일 명분을 찾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신성모독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권위를 받았다고 하면,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죽일 것이고, 예수님이 사람으로부터 권위를 받았다고 하면, 자기들보다 높은 사람이 없을 테니, 예수님의 행동이 용납이 될 수 없는 것이죠.
그 때, 예수님께서 그들과 대화를 이끌어 가시는데, 29절의 예수님의 질문은 그들의 입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의 질문을 통해 스스로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한 목적이죠. 이러한 대화는 그 당시 랍비의 논쟁 대화 양식이라고 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려 죽이려는 의도와 다르게 예수님은 질문을 통해 그들이 깨닫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너무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는 것이죠. 그 당시 세례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참 선지자로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고백했으니, 종교 지도자들 입장에서 세례요한을 인정하면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반대로 세례요한을 인정하지 않으면 백성들에게 질타가 쏟아지기에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에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시죠.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성전의 주인이시고 예수님의 권위가 하늘로부터 왔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변질된 성전을 심판하시고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이는 성전의 주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하늘의 권세를 지닌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요한복음 2장에 성전을 청결케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말합니다. 이 말은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행하는 지를 보이라는 뜻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죠.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수님의 말씀은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죠. 그리고 오늘 본문 예수님은 성전을 심판하시며, 육적인 성전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 예수님을 통하여 새로운 성전이 세워질 것을 예고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이제 육적인 성전의 기능은 끝이 났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이죠. 바울은 우리가 성전이라는 것을 여러 군데에서 말하는 데 그 중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고전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성전이라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몸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성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주로 고백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닌 주님의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종교지도자들처럼 자신이 성전의 주인인냥 권세를 부리고 성전을 더럽히면 예수님의 책망을 받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 자신이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드리는 거룩한 곳이며,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통해 자신의 백성들에게 복을 내리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디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통해 복을 흘려보내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의 축복이 우리에게 임한 것이죠.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거룩해야 할 하나님의 성전이 더럽혀지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망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께서 성전 청결하신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전이 더럽혀져있는 것을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거룩한 분노를 통하여 성전을 청결케 하시고 성전을 관리하는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거룩한 자로 살아가기 위해선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그 분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사실을 인정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더러운 처소가 성전이 된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그 분의 말씀을 따를 때, 우리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날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느끼고 우리를 통해 복이 흘러나가는 은혜가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