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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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소망을 가지라
막 12:18~27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 삼 일 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은 극에 달았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본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그들의 민낯을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성전청결 사건과 포도원 농부 비유를 통해서 그들의 추악함을 드러내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그 이후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책잡을 수단을 만드는데, 첫 번째가 세금논쟁이었죠.
세금논쟁을 묻던 이들은 종교지도자들 중에 바리새파와 헤롯당 사람들이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에세네파, 헤롯당, 열심당, 서기관, 장로 등 여러 그룹이 있지만 보통 성경에 많이 나오는 그룹 중 뚜렷하게 구별되는 그룹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그리고 헤롯당입니다. 바리새파는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고 사두개파는 종교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색채가 있으며, 헤롯당은 정치적인 색채가 강한 집단입니다. 그렇기에 정치적으로 나누면 사두개파와 헤롯당으로 볼 수 있고, 종교적으로만 나누면,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그 중 세금논쟁은 민족주의자인 바리새파와 친로마파인 헤롯당이 예수님께 질문을 한 것입니다. 전혀 정치적 성향이 반대인 그들이 합쳐져 예수님께 정치적 의견을 물어보며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한 것이죠. 그들은 예수님을 무너뜨리려고 했지만 오히려 예수님의 지혜와 참된 가르침에 놀랍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 곧 복음에는 간악한 그들의 마음까지도 놀라게 하는 능력이 있음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롯당이 물러가자, 이번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사두개인이란 대제사장을 중심한 레위인들로 세습귀족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당시 유대 종교의 실권을 잡은 자들이며, 제사장 그룹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종교와 더불어 정치적으로도 힘이 있는 집단이죠.
사두개인들은 종교적으로는 매우 엄격한 율법주의자들이었으며 성경 본문에 대한 문자적인 해석을 고집하였고 모세오경만 정경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초자연적인 것은 부인하는 합리주의자들이기에 그들은 내세, 부활, 영적세계, 천사와 마귀 등의 존재 등을 믿지 않았죠. 내세관이 없었던 그들은 현실에서 만족하고 현실에서 누리고 현실에서 복 받는 것을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정치권력과 밀착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이처럼 사두개인은 종교적으로는 보수적이고 근엄한 척하지만, 그들의 삶은 세속적이기에 많은 백성의 지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더불어 그들의 내세관이 없는 현세주의는 이 땅에서 잘 살고 있는 자들만 누릴 수 있는 것이기에 서민이 대부분인 유대인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현실을 중요시하고 부활을 없다 하는 사두개인이 예수님께 부활에 대해 물어본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기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지금껏 랍비들이 풀지 못했던 부활논쟁을 들고 오는데, 예수님 역시 이 문제를 풀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미 14절에 칭찬을 함으로 대답을 회피하지 못하게 하는 포석은 깔아두었고 이제는 예수님께서 대답하지 못하게 하는 일만 남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전에 시간상으로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마가복음 12장 본문은 누가복음 20장에 해당하는 내용인데, 그보다 시간적으로 앞선 누가복음 14장에 예수님께서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 앞에서 부활에 대해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으시죠. 그 때 예수님은 14절에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말씀하시며, 부활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을 아는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도 풀지 못하는 질문으로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초강수를 둔 것이죠.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서 대답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예수님을 유대에서 매장시킬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들의 콧대도 낮출 수 있는 기회였죠.
이 질문이 어려운 이유는 첫 번째,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을 인정하는 자들이었기에 부활에 대해 써져 있는 다른 선지서들을 인용하지 못한다는 점이고, 두 번째, 그들의 질문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억지스러운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질문하기 앞서 19절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말하며, 모세오경 중 신명기 25장에 나타난 ‘수혼법’에 대해 말합니다. 이들이 ‘수혼법’을 먼저 말하는 이유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기 위함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모세오경에는 ‘부활’에 대한 내용이 없기 때문에 모세오경으로 부활에 대해 입증한다는 것은 그 당시 학자들도 풀기엔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였죠.
그들은 20~23절 ‘수혼법’을 이용해 ‘일곱 명의 형제가 한 과부와 모두 결혼을 했다면 부활 후에 그 여인은 과연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라는 억지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24절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함으로 오해함이 아니냐”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 정경으로 인정하고 다른 권위 있는 시가서나 선지서들의 성경을 부인하였습니다. 또한 더불어 그들은 그들이 정경으로 인정하는 모세오경 중 창세기의 롯과 두 천사에 대해서 기록이 되어있고, 하나님과 300년 동행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다는 내세에 대한 내용도 기록이 되어 있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만 믿고 다른 것은 믿지 않았습니다. 즉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은 것입니다.
사사기 21장 25절을 보면, “(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하나님이신데, 그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삶을 사니까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것입니다. 이 구절은 사사기 전체에 걸쳐 네 번씩이나 반복되는 말씀인데, 그만큼 사사기 시대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자기 뜻대로 사는 삶을 살았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자기 뜻대로 사는 삶은 하나님을 믿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삶이란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 유대의 기득권이었던 제사장 그룹인 사두개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자들이었다는 것이죠.
그런 그들이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내세에 관심이 없었기에 자기 나름대로 부활 또한 땅에 속한 것으로 풀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부활을 이 땅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생각했고, 이 땅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수혼법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었죠.
다시 말해 이들은 부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부활에 대해 “천사”들을 이야기하며, 쉽게 설명해주시죠.
25절 함께 읽겠습니다. “(막12:25)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그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과 헤롯 또는 유대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먼저 세례요한을 죽인 헤롯을 보면 마가복음 6장 14절에 예수님의 이름을 듣고 세례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고, 마가복음 9장 1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실 때, “(막 9: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 죽은 자의 부활로 알고 있던 그들에게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세에 대한 영의 세계는 오직 위로부터 오시는 이 곧 그리스도만이 할 수 있는 답변이기 때문입니다. 이윽고 예수님은 26절 계속해서 말씀하시는데, 내세에 대한 내용을 사두개인이 보는 모세오경을 통하여 설명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은 출애굽기 3장 6절을 말합니다. 그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책이 발전하지 않아서 두루마리에 다 담을 수 없는 긴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 두루마리로 만들어놓았죠.
출애굽기 3장에 내용을 잠깐 이야기 하면, 모세가 그의 장인의 양 떼를 치던 중 양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는데, 거기서 떨기나무에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건조한 기후인 광야에서는 간혹 떨기나무가 불에 타는 일들이 있다고 합니다. 보통은 불에 의해 떨기나무가 타고 멈춰지지만, 모세가 보게 된 광경은 떨기 나무에 불꽃은 있지만, 떨기나무가 타지 않는 기이한 광경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모세가 불에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러 가는데, 그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볼 내용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개하실 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왜 중요한 말이냐? 모세 당시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미 이 땅에서 죽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지요? 왜냐하면 모세는 아브라함이 언약을 받은 후 약 400년이 지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었다. 라고 소개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소개하십니다. 이미 죽은 자들인데, 하나님께서 과거형도 아니고 현재형으로 자신을 소개하신 이유는 그들이 죽은 자가 아니요,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말은 다시 말해 내세가 있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비록 이 땅에서는 죽었지만, 그들은 살아서 영광스런 부활을 기다리고 있음을 암시하시는 말이죠. 그렇기에 하나님의 언약은 계속되고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실 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사두개인과의 논쟁 속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사두개인처럼 부활이 없다는 삶은 소망이 없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사두개인은 이 땅에서 죽으면 영혼도 소멸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내세가 없다고 믿었죠. 그 결과 그들의 삶은 세속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세력들과 손을 잡고 돈을 벌고 부유하게 살았습니다. 내세관이 없는 그들에게는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자’가 그들의 모토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삶은 우리에게 이 땅의 것이 최고라는 인식을 주며, 땅의 일에만 관심을 갖게 만들어줍니다. 하늘의 것에 대한 소망을 사라지게 만들고 우리를 더욱 피폐하게 만들어줍니다. 또한 이 땅의 삶이 마지막이니 자기 멋대로 살게 되죠.
더불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잘 먹고 잘 산들 앞으로의 다가오는 것이 죽음과 소멸뿐이라면 그 삶은 얼마나 허무한 삶일까요?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6~19절에 부활 없는 삶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고전 15: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고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 15: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감사할 것은 부활이 있다는 것이죠. 그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먼저는 예수님께서 부활이 있음을 말씀하셨고, 두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의미는 부활은 우리에게 소망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주는 소망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증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초자연적인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옳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선포하신 사건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야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두 번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는 자들의 구원의 보증이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값을 다 치루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기심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를 모든 죄 가운데 구원하심을 믿게 하는 보증이 된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영광의 모습으로 나타나심 같이 예수님을 믿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는 자들도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그 날에 영광의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날의 우리의 모습은 썩어질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한 영원한 몸이며, 영광스러운 몸이며,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가장 큰 소망은 “부활”입니다. 이 소망은 이 땅에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기쁨도 부활보다 더 기쁠 수 없고 어떤 슬픔도 부활의 기쁨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가장 큰 문제를 주님의 은혜로 해결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기뻐하는 복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날마다 부활 소망을 가지며 기쁨의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그 은혜를 기억하길 소망합니다. 이 세상에서 부활 소망이 없이 살아가는 자들에게 참된 기쁨과 소망을 보여주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