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25

마가복음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42 views
Notes
Transcript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2
- 막 10:17~31
1. 부자청년의 율법주의
지난 주 우리는 바리새인과 어린아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가 어떤 자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바꾸고 이용하는 완악하고 교만한 자들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고 이행하는 자들을 원하십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우리나라의 법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기 위해선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는 순수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죠.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반응을 하는 지 보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노아처럼 믿음의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노아는 약 100년 동안 방주를 지었죠. 그러나 그에 대해서 불평불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홍수심판이 내려질 거라고 믿지 않았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오늘 날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만이 아시나,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기에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고 이 땅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들을 순종하며 주님 오실 그 날을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부자청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고, 재물도 많았기에 남 부러울 것이 없이 살았죠. 그러나 그에게도 한 가지 얻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생이죠.
그는 어려서부터 율법을 잘 지키며 본인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지만, 영생을 얻었다고 하기엔 뭔가 항상 부족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보고 달려 나와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질문한 것이죠.
우리는 17절에 나타난 그의 질문 속에 왜 그가 그토록 영생을 위해 달려갔으나 얻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17절만 보면, 부자청년의 질문은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18절에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에게 하신 대답을 보면 그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입니다. 18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막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왜 부자청년이 “선한 선생님”이라고 지칭하는 것에 대해서 책망하실까요? 예수님이 선하신 분이 아니라서 책망하신 것일까요? 아니죠. 우리는 예수님이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심은 자신이 영광을 받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낮은 몸으로 오시고 우리를 섬기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사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죠.
그렇기에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말씀하시고 그 뒤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철저하게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우리의 본이 되셨습니다.
두 번째, 예수님께서 그를 책망하신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율법주의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함이 구원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함은 율법에 계시 되어 있으며, 율법을 지키면, 사람도 선해진다고 생각하였죠. 그러나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에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죄인은 결코 율법으로 선해질 수 없는 것이죠. 그들은 나름대로 율법을 지키기 위해 613가지의 율법조문을 만들고 죄를 억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율법으로 선하게 된다, 율법을 지키면 구원받는다는 율법주의가 잘못된 것은 율법으로는 결코 사람이 절대적인 선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으로 그 자체는 선하나 율법은 우리를 선하게 만들어줄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율법을 온전하게 지켜 선하게 되고 구원을 이룰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을 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우리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들이 율법을 통해 죄가 무엇인지 인지하고,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라는 것이죠. 그렇게 그들이 죄를 깨닫고 죄인인 상태임을 보았다면,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죄인이고 죄로 인해 멸망 받을 운명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구원해달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율법은 내가 죄인이고 멸망 받을 운명에 처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그리스도의 복음을 필요로 하게하고 믿음을 갖도록 예비시켜주는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부자청년에게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 십계명 중 이웃에 관한 6계명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청녀에게 이웃에 관한 계명들을 말씀하신 이유는 부자청년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했기도 했지만,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는 이웃 사랑에 대해 최고의 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한다한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며, 우리는 이웃을 사랑할 때, 이웃만이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사랑하는 2가지의 율법을 동시에 지키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바울이 갈라디아서 5장 14절에 “온 율법이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이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죠. 오늘 본문에 나온 부자청년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들을 다 지켰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21절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근심하며 돌아갑니다.
예수님께서 21절 어떤 말씀을 하셨기에 부자 청년이 근심하며 돌아갔는 지, 우리가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막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은 이 청년을 보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이 청년이 따르기를 원하셨죠. 영생을 갈망하고 율법을 지키는 그 모습을 좋게 보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 나를 따르라는 그 말씀을 듣지 못하고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그 말씀만 듣고는 근심하여 주님을 떠납니다. 그 청년에게 왜 재물에 대한 것만 들렸을까요? 재물이 예수님보다 더 커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부자청년의 부족한 점이었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너무 큰 것이죠. 자신이 가진 재물이 예수님보다 더 중요하고 값지고 더 커보이기에 재물에 관련된 것만 들리는 것입니다. 그가 그토록 원하고 바라고 갈망했던 영생이 예수님께 있는데, 자신의 욕심으로 인하여 놓치게 된 것이죠.
2. 부자청년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
23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말씀하십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우리는 여호수아 7장의 아간 사건이나 사도행전 5장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재물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였죠.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하나님의 것까지 훔치게 만드는 것을 볼 때,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24절에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것이 새삼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24~25절 다시 말씀하시는 데, 23절에서는 재물 있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심히 어렵다고 말씀하셨지만, 24절에서는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재물이 있는 자에서 부자로 점차 확대되어져가는 것을 볼 수 있죠.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 하는 것은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23절에 예수님께서 재물 있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실 때에는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 정도에 그쳤다면, 24~25절에 예수님께서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매우 놀라워 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죠.
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행하면 복 받고 부자가 되는 것이 그들의 상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부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고 부유하게 된 자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행하는 자들로 인식되었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제자들은 부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자들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니, 놀란 것이죠.
보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삶 가운데서도 근면하고 성실하면 부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부자가 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형제 중에 궁핍하고 가난한 자가 있음에도 자신의 것이 아까워 그들을 돕지 않는 그 마음을 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명기 15장 11절에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돌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죠.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말한 것은 나를 도와라가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한 것이죠. 그러나 부자청년이 재물이 많음으로 근심하며 돌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더 컸기에 근심하며 돌아간 것이죠.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우리도 어렵지 않습니까? 우리 역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쉽게 내려놓지 못합니다. 욕심 때문이죠. 근데 참 아이러니한 것은 돈이 많으면 더 구제도 많이 하고 섬기는 것이 쉬울 거라 생각이 되지만, 돈을 가질수록 욕심 또한 늘어나기에 실제로는 가질수록 더 내려놓기가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웃을 나에게 대하듯 대하라는 것이죠. 만약 어떤 사람이 주변에 가난하고 궁핍한 형제가 있음에도 그들을 돕지 않고 자기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한다면, 그 사람 마음에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의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행동이며, 그러한 자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길 원하시죠.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을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올라오는 우리의 죄된 본성이 우리를 자극하기 때문이죠. 이것을 떨쳐내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하죠. 그렇기에 우리는 이 땅에 사는 그 날까지 온전하게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을 낸 들 결국 무너질 뿐이죠.
3.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
그런 암울한 소식 가운데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는 자들에게는 너무나도 기쁜 소식이죠. 그 기쁜 사실에 28절 베드로가 제자들의 대표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고백한 것 아니겠습니까?
비록 제자들이 부자청년에 비해서 부족한 면이 많을 지라도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29~30절에 나와 복음을 위하여 희생과 헌신한 자는 ‘내세에서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길이 쉽지 않고 박해도 있는 고난의 길일지라도 영생을 사모하며 주님을 꿋꿋이 따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부자 청년과 제자들을 비교하며 어떤 자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인지를 알려줍니다. 부자 청년처럼 부유한 집안에 어려서부터 계명을 잘 지켜온 엘리트 같은 사람이라도 결국 예수님을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못한 자이고, 반대로 제자들처럼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우리의 힘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갈 수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선 반드시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28절의 베드로의 고백처럼 우리의 욕심, 자존심 등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유혹하는 것들 곧 오늘 본문에 나타난 돈이라던지, 아니면 오락이라던지, 드라마라던지, 핸드폰이라던지 어떤 취미든 간에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막는 것들이 있다면 가감하게 버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는 제자들처럼 주님을 위해 희생과 헌신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