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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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중요성
마가복음 1장 1~20절
0. 들어가는 말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많은 소리들을 듣습니다. 때론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 소리도 듣고요. 마음이 먹먹한 소리도 듣습니다. 그와 반대로 재밌는 소리도 듣고요. 행복한 소리도 듣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소리를 듣기 원하시나요?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기쁘고 좋은 소리들을 듣길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기쁜 소리에도 여러 가지 종류들이 있죠. 우리 기분을 좋게 하는 소리가 있겠구요. 또 우리 영혼을 즐겁게 하는 소리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정도 되면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아시겠지만, 여러 기쁨의 소식 중에서 가장 기쁜 소식은 바로 복음입니다.
세상의 많은 좋은 소리들이 있지만, 그 소리들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유명한 오케스트라나 콘서트 등 우리의 귀를 만족시켜주는 소리는 여운이 남아 가끔 추억 속에서 되뇌이는 경우도 있겠지만, 일시적이며, 한정적입니다.
예전에 미국의 한 공원에서는 노숙자를 쫓아내기 위해서 한 방안을 떠올렸는데,
바로 중독성이 강한 노래를 계속해서 튼 것입니다. 처음에는 노숙자들이 중독성이 강한 노래를 듣고 좋아했지만, 계속해서 나오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공원에서 떠나갔습니다.
이렇게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계속해서 들으면, 싫증이 나고 짜증이 납니다. 그러나 복음은 다릅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복음은 들으면 들을수록 더 깊어지고, 감사가 나오고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1. 복음(1)
기쁜 소식이라는 복음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입니다. 유앙겔리온의 유래는 그리스가 강대국인 페르시아와의 전쟁 끝에 그리스가 이기게 되고, 그리스의 한 병사가 42.195km라는 먼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와 ‘우리가 이겼다’라는 승전보를 알렸고 이 기쁜 소식을 그리스 사람들은 ‘유앙겔리온’이라고 외쳤습니다.
“유 앙겔리온”은 그리스어로“ευαγγελιον”으로 표기하는데 ευ는 기쁨이란 뜻이고 αγγελιον 은 천사란 뜻으로 이 두 단어를 합하니 “기쁜 소식을 전하는 천사”란 뜻이 됩니다. 이 단어는 그들이 그 때의 그 기쁜 소식을 전해준 그 병사를 생각하며 즐겨 사용했던 새로 만들어진 단어였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기쁨이 너무나 크고 위대하고 신비하기 때문에 세상의 일반적인 기쁨과는 구별하기 위하여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를 도입하여 사용하였습니다.
1) 복음의 정의
이렇게 세상의 기쁨과 구별하기 위해서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를 도입한 교회에서 말하는 복음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복음이란 마가복음 1장 1절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이시다는 사실이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왜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될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그리스도가 무엇을 뜻하는 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란 히브리어로 메시야를 말하며,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시대 때,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제사장, 선지자, 왕직에 있는 사람들이 기름 부음을 받기에 메시야라고 하면, 보통 제사장, 선지자, 왕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 언약이후 메시야는 이상적인 왕이자 인류가 대망하는 유일한 구주의 개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의 포로기와 압제 속에서 살아가면서 메시야 대망 사상이 발전하게 되어, 여러 메시야관이 생겼습니다. 여러 메시야관 중에서, 다윗 때의 영화와 번영을 회복할 초월자요 해방자로서의 메시야를 고대하는 이들에 관한 기록이 성경에 여럿 소개됨을 통해 당시 유대인들이 대망했던 메시야가 분명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메시야였음을 보여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란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자신을 비어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 대속제물로 자신을 내어주고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자를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는 메시야관과 성경에서 말하는 메시야관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 속에서 구원해 줄 메시야를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고통받은 우리를 건지시기 위하여 메시야를 보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이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짊어지사,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화목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자가 그 기쁨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는 자들은 그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는 뜻인데,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하기 위해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알지 못하면 믿을 수 없죠. 그렇기에 그리스도가 누군지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마가는 복음을 말할 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입니다.
2) 예수님 = 메시야
마가는 1절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면서, 예수님이 왜 그리스도이신지에 대해 하나하나 그 이유를 밝힙니다.
(1) 성경 예언대로 오심(2~9)
그 첫 번째가 예수님께서 성경의 예언대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마가는 2~3절에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보라 말하면서 그리스도가 오시는 징조에 대해서 밝힙니다. 주가 오시기 전, 주의 길을 준비하는 사자가 있다는 것이죠.
그 당시 로마의 압제 속에 메시야관이 발전함에 따라,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하는 선지서들을 많이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 이사야 선지서의 글은 다른 선지서들보다 많이 읽었고, 그렇기에 마가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며, 그들에게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려 하는 것입니다.
특히 마가는 2절에서는 말라기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며, 3절에 나타난 이사야 선지자의 글과 매치를 시키며, 주의 길을 준비하는 사자가 누구인지를 4절에 나타냅니다. 침례요한이죠. 3절에서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와 4절에 ‘침례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전파했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주의 길을 준비하는 사자가 침례요한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침례요한은 5절에 나타난 것과 같이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그에게 침례를 받을 정도로 누군가에겐 선지자로써, 누군가에겐 메시야로써 각광받는 자였는데, 그는 6절에 보면 그의 행색은 검소하고 7~8절에 나타난 그의 말은 자기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나타내는 겸손한 사람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침례요한이 주의 길을 준비하는 가운데, 9절에 예수께서 등장하십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 출신으로 마태복음 2장 23절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나사렛 사람이라 칭함을 이루시기 위하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나사렛이라는 단어는 ‘가지’를 뜻하는 히브리어 ‘네체르’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는 이사야 11장 1절의 그리스도의 예언을 상기시킴으로 예수님께서 나사렛 출신임을 강조하며,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또한 침례요한이 내 뒤에 오시는 이 곧 그리스도를 증거한 다음에 9절에 예수님을 등장시키고 그가 요한에게 침례를 받았단 사실을 통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각시킴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마가는 성경의 예언들을 토대로 침례 요한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였다는 것을 증명하고, 그 뒤에 오시는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인정(아들)(10~11)
두 번째로 마가는 10~11절에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의 사건들을 통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10절에 나타난 마가의 표현들 곧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온다는 표현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보냄 받은 또는 인정받은 존재이심을 드러내는 장면임을 보여주는 데, 마가는 여기서 끝내지 아니하고 11절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며, 끝을 맺습니다.
11절에 나타난 하늘의 음성은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임을 보여주며, 그 내용은 시편 2:7과 이사야 42장 1절의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보낸 메시아이자,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히 말하고 있음을 봅니다.
(3) 사탄에게 시험을 받음(12~13)
세 번째로 마가는 예수께서 사탄의 유혹을 이기시는 장면을 말하며, 예수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자이심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마가의 기록은 예수께서 사탄에게 시험받는 장면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13절 하반 절에 천사들이 수종 들더라는 말을 통하여 예수께서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음을 내포하고 있음을 봅니다.
(4) 하나님의 복음 전파(14~15)
네 번째로 마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메시지는 15절의 내용인데요. 15절에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을 통하여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시며, 메시아 시대의 도래에 대하여 하나님의 백성의 합당한 반응으로 그들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선포하심을 봅니다.
이렇게 마가는 1절에 복음을 선포하며 2~15절까지 예수님께서 왜 그리스도이신지를 분명이 드러냅니다. 그 다음 16~20절을 통하여 예수님의 복음 선포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3) 복음에 대한 반응(16~20)
요한이 잡히고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심으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죠.
그러나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함 받지 않았거나 또한 들었어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결코 복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16~20절에 나타난 시몬,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그들을 부르시니 그들이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세상의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어부로 먹고 사는 그들이 그물을 버려두고,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자기의 생활을 포기하겠다는 것이죠. 게다가 그들은 주님을 따르기 위해 가족까지도 버렸습니다.
본문에는 야고보와 요한만 아버지와 동료들을 버리고 나갔다고 기록되어있지만, 마가복음 10장 28절을 보면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말씀하고 있음을 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가 가족을 비롯하여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이토록 모든 것을 버리며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시작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라는 복음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때, 우리 안에 복음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가는 고난 가운데 교회를 떠나려는 자들에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며, 그 분을 따를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시몬,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과 같이 교회 공동체에게 우리의 전부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날에도 교회를 떠나가려는 움직임들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실망하여, 교회에게 실망하여,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다는 이유 등 수많은 이유들로 교회를 떠나갑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나를 괴롭히는 수많은 이유들이 있을지라도,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는 안 되는 딱 한 가지 이유, 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시다는 사실입니다.
이 복음이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었고, 이 복음이 주님을 따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복음으로 인하여 계속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을 따를 것입니다.
마가는 복음만이 교회를 떠나려는 자들을 막을 수 있고, 복음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을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고난에 처해있는 로마 교회 공동체에게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능력이 됩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복음이 굳건히 서 있으면,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와가 무너진 이유는 뱀의 말에 하나님을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역시 우리를 무너뜨리려하는 세력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 베드로를 틈탔던 마귀의 간계를 생각하십시오.
오직 우리는 변하지 않는 복음의 진리 가운데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리 가운데 우리가 서 있을 때, 우리는 어떠한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항상 복음의 진리 가운데 서길 바라며, 마가가 로마 교회 공동체에 복음을 전파하며, 그들을 위로하고 주께 돌아오게끔 한 것처럼, 우리 또한 복음의 전달자로써, 다른 이웃과 성도들을 굳건히 세우는 은혜가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