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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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자세
막 6:14~29
오늘 본문을 통해 저는 2가지 내용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진정한 왕은 누구인가?’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진정한 왕에 대하는 자세는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으로 여러분과 은혜 나누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1. 진정한 왕은 누구인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왕은 2명입니다. 헤롯과 예수님이죠. 먼저 헤롯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헤롯
오늘 본문에 나온 헤롯은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의 왕입니다. 갈릴리와 베레아를 다스리는 최고의 권력자라는 것이죠. 그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었죠. 그 사실은 17절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헤롯이 자기의 동생 빌립의 아내에게 장가를 갔다는 것입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죠.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보통적인 상황입니까? 그러나 헤롯은 그 일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권력이 그만큼 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막강한 권력을 지녔지만, 그가 두려워한 사람이 있었죠.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그가 세례요한을 두려워한 이유는 세례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헤롯은 헤로디아가 요한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틀어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헤롯이 헤로디아의 딸의 춤을 본 후, 섣부른 맹세를 한 것인데요. 헤롯은 세례요한을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였으나 자기가 한 맹세와 사람들의 시선에 결국 세례요한을 죽이게 됩니다.
그 이후 그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예수님의 소식을 들음에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을 보고 세례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며 두려워하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막강한 권력은 지녔을지라도, 사람들을 의식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두려워하는 모습은 결코 진정한 왕의 모습은 아닙니다.
2) 예수님
그에 반면, 예수님은 서민층으로 나셨습니다. 그 분은 구유에서 태어나셨죠. 서민층도 아기를 구유에 눕히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낮은 몸으로 오셨죠.
그리고 예수님은 목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그 당시 사회상 낮은 계급이었음을 증명합니다. 육적인 아버지인 요셉은 일찍 세상을 떠났죠. 고향에서는 마리아의 아들이라며 무시를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바람과 바다를 잠잠하게 하신 분이십니다. 아무도 이기지 못한 귀신을 쫓아내신 분입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분이십니다. 그 누구도 이런 일을 한 사람이 없습니다. 만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귀신도 주님을 보고 달려와 절을 합니다. 죽음마저도 주님의 권세 앞에 떠나갑니다.
3) 진정한 왕은 누구인가?
우리가 진정한 왕은 누구인가? 살펴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가 가진 권력이 상대적이냐? 절대적이냐는 것입니다.
1) 상대적인 권력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강했던 왕들의 시기를 말한다면, 절대왕정의 시기인 서유럽 16~17세기를 뽑습니다. 그 때 왕은 나라의 모든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죠.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항상 사람들을 의식하였고, 경계하였고, 자기 나름대로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였습니다.
왕권을 지키기 위해 상비군을 두기도 하였고, 왕권신수설을 내세워 왕권은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왕에게 절대 복종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왕권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안에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권력이 언젠가 무너질 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왕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이러한 권력을 상대적인 권력으로 봅니다. 아무리 절대왕정이라고 해도 상대적인 권력일 뿐입니다.
2) 절대적인 권력
그러나 절대적인 권력은 상대적인 권력과 다릅니다. ‘상대적이다’는 말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을 내비치는 반면, ‘절대적이다’는 것은 비교할 대상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강한 왕권을 가진 자라도 상대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권력은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에 의해서 권력의 세기가 달라집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권력은 자기에게서 나옵니다. 그렇기에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자들은 남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권력의 주체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사람들을 의식하였고, 그는 세례요한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세례요한이 살아났다며 두려워하였습니다. 진정한 왕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워하실 이유가 없으시죠. 왜냐하면 그 분은 만물을 주관하시며,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귀신을 제어하시고, 12년간 고치지 못한 불치병을 고치시고, 죄를 사하시며 사망 권세도 이기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권능이 어디서부터 왔느냐 말하며 지혜와 권능이 예수님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만, 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사 그들에게 권능을 주심을 볼 수 있습니다.
권능을 주셨다는 것은 권능이 누구부터 나왔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바로 예수님이 진정한 왕이심을 드러내는 것이죠.
마가복음은 계속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 분이 진정한 왕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에 의해서 권력이 강해지고 약해지는 상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계시는 진정한 왕이십니다. 그 분의 권세에 귀신이 두려워하고 그 분의 말씀에 만물이 순종하고 죄와 사망의 권세마저도 굴복합니다.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며 주관하시는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을 마주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2. 진정한 왕을 대하는 자세
오늘 본문은 진정한 왕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2가지 부류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헤롯과 세례요한이죠. 헤롯과 세례요한은 모두 하나님을 아는 자들입니다. 헤롯은 정통적인 유대인은 아니지만 선조가 유대교로 개종하여 유대인이 되었기에 헤롯 역시 유대인이라 말할 수 있죠. 유대인이 되었다고 하나님을 다 믿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헤롯이 20절에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했다는 말을 통해서 헤롯이 하나님에 대한 존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정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죠.
1) 헤롯
헤롯은 하나님을 알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죄를 짓는 것에 있어 어떤 죄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드는 죄를 지었지요. 이는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에게는 엄청난 죄악입니다. 그러나 그는 서슴없이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막강한 권력으로 죄를 정당화시킨 것이죠.
지도자의 추악한 죄를 본 세례요한이 헤롯에게 가서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세례요한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처럼 죄를 짓고도 아무런 죄의식이 없는 헤롯의 모습은 결코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다시 말해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죠.
또한 그는 세례요한을 죽이기를 두려워하면서도 26절에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세례요한을 죽이는 것에 동참했다는 것을 보면 그가 누구를 더 두려워하였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헤롯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였더라면 세례요한을 죽이는 것을 허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자신의 체면을 중시하였습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였고, 앉은 자들의 평판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나중에 헤롯이 세례요한을 죽인 것에 대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 우리는 헤롯 자신도 세례요한을 죽이는 것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죄 없는 사람을 섣부른 맹세와 자신의 체면을 위하여 죽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우리는 헤롯이 죄를 범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결국 그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세례요한
그에 비해 세례요한은 어떠한가요? 그는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헤롯에게 가서 잘못한 사실을 고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다윗이 밧새바를 취하는 죄를 범할 때,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잘못을 고한 것과 같은 모습이죠.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누구보다 잘 지키고 따라야할 지도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범한 것에 대해 아무도 그의 잘못을 말하지 않자 직접 나서 그를 책망하였습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왕에게 잘못을 고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세례요한이 헤롯에게 나아가서 잘못을 고한 것은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요한이 헤롯을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였더라면 결코 나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죠. 자신의 목숨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중요하였습니다. 지도자의 범죄는 곧 이스라엘의 범죄이며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시키는 나라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써 그는 주께서 오실 길을 곧게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죠. 그는 자신의 사명대로 높은 자든 낮은 자든 위치를 막론하고 회개를 전파했습니다. 비록 세례요한은 헤롯에게 잡혀 옥에 가두어졌지만,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자로써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사명을 행하였음을 봅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이죠. 헤롯과 세례요한의 차이는 하나님을 경외함의 차이입니다. 헤롯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에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죄를 서슴없이 범하고 세례요한의 책망보다는 헤로디아의 말을 들음으로 세례요한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헤롯은 헤로디아의 딸에게 섣부른 맹세를 하고, 자신의 체면을 중요시하는 바람에 잘못이 없는 세례요한을 죽이는 일에 승낙하는 죄를 범하게 되죠.
그러나 그에 비해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끝까지 이행하며 삶을 마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 곧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사명을 잘 감당했음을 봅니다.
3. 적용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경외하지 않는 자의 결과가 얼마나 다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많은 구절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중 전도서 12장 13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전 12:13)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본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라는 것이죠.
예레미야 2장 19절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이 악이라고 하였고, 신명기 28장 58~59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네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복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아브라함이 있죠. 아브라함이 창세기 22장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바치려하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말씀하시며, 그에게 큰 복을 주시며 그와 언약하셨음을 봅니다.
출애굽기에서도 산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시고, 시편 128편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받을 축복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 외에도 잠언, 이사야, 사도행전, 계시록 등 많은 성경 구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받을 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떤 자가 되길 원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인하여 성경의 모든 축복이 우리 삶에 이루어지는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인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갈릴리 주민들뿐만이 아니라 성에 있는 헤롯왕에게도 들렸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헤롯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 결코 사람의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들이 사실임을 증명해줍니다. 그러나 헤롯은 예수님이 진정한 왕 되심을 믿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봐도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행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압니다. 그 분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 분은 성자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이십니다. 우리의 진정한 구주이시며, 진정한 왕이십니다.
그 분께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나아가야 하겠습니까? 학생이 선생님을 존경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 분을 믿는 자는 예수님을 경외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경외의 마음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을 경외하겠다 다짐을 한들 예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경외하기 위해선 먼저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주셔야 하고, 우리 역시 노력해야할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을 경외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은 첫 번째,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면 우리는 예수님을 경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자가 어찌 예수님을 두려워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알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방법은 말씀을 많이 읽는 것 밖에 없습니다. 말씀에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말씀을 사모하길 원합니다.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올바르게 알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알고 그 분을 경외하는 은혜가 있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경외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은 두 번째, 기도입니다. 기도는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말씀을 많이 읽어서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많이 안다고 한들 예수님과의 관계가 가까워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친밀해지기 위해선 말씀뿐만이 아니라 기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내 자신의 죄악됨을 토로하며 회개할 수 있고,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고백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믿음에는 의지하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를 떠올려보십시오. 우리는 언제 기도를 절실하게 합니까?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 기도하지 않습니까? 우리 삶에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때가 있습니까?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우리는 죄에 무너지고, 세상에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결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강함을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 중 한 가지 축복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기도를 하지 않는 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날마다 기도와 말씀을 보기 원합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기 원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기 원하고,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살기 위하여 물과 양식을 섭취하듯, 우리의 영혼의 강건을 위해 말씀과 기도의 생활을 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말씀과 기도의 생활을 하며 예수님과의 관계를 쌓아가는 시간을 갖는다면 예수님을 더 알게 되고, 그 분을 경외하게 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독자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주신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늘의 모든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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