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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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메시지
막 9:2~13
1. 소망의 중요성
이 세상에 소망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살아있는 자라면 누구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죠. 만약 우리 인생에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삶을 비관하며 흙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만큼 소망은 우리의 인생에 참 중요합니다. 소망은 우리에게 호흡과 같습니다. 우리가 호흡을 하지 않으면 힘들고 죽어가듯이, 우리는 소망이 없으면 정신이 피폐해지고 죽어갑니다.
소망이 없는 자는 기쁨이 없습니다. 우울증을 걸린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에게는 기쁨이 없습니다. 공허하고 삶의 낙이 없습니다. 슬프고 절망감이 가득합니다. 이들은 스스로 이겨낼 힘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옆에서 돌보아주지 않으면,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죠. 많은 사람이 우울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들이 세상을 떠난 이유는 삶의 소망이 없기 때문이었죠. 그들에게 자그마한 소망이라도 있었더라면 그 끈을 붙잡고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망마저 없기에 좋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이 땅에서의 육신의 소망이라도 이 땅의 생명을 유지하게 해주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참된 소망은 이 땅의 생명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의 소망은 우리가 죽을 때에 끊어집니다. 죽은 자에게 무슨 이 땅의 것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참된 소망은 우리가 죽을 때에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잠언서 14장 32절 말씀을 보면,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말씀합니다.
의인이 죽음에도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은 영원한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서도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은 우리가 죽으면 없어지는 일시적 소망이 아니라 우리가 죽은 이후에도 항상 있는 영원한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지난 주, 우리가 십자가의 길에 대해서 살펴보면서도 보았는데요. 마가복음 8장 35절입니다.
“(막 8: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이 땅을 기준으로 볼 때, 자기 목숨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최고의 명예를 준다고 해도, 천문학적인 돈을 준다고 해도 자기 목숨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죽으면 명예가 무엇이고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만큼 목숨이 가장 중요한 데, 이를 누구보다 더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이 땅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구원입니다. 다른 말로는 영생이라고 합니다.
이 영생이 얼마나 값진 지 아는 바울은 디도서 1장 1~2절에 내가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고 고백합니다. 그 당시 바울 뿐만 아니라 많은 유대인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성경을 외우고 율법을 지키며 그들 나름대로 노력하였죠.
그러나 요한복음 5장 3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죠.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은 영생을 얻기 위해선 오직 예수님을 따르는 길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영생이 예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알고 그 분을 믿는 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요한복음 17장 3절은 영생에 대해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글로 공부하는 지식적 앎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고 경험하고 믿는 전인격적 앎을 말하는 데, 결국 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로 믿지 않고서는 영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는 영생의 삶이란 무엇이냐?
2.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오늘 본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변화산 사건인데요.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변화산 사건이 보여주는 의미와 소망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사건이죠.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3가지 증거를 통해 확인해보겠습니다.
1) 예수님의 자기 증거
첫 번째는 예수님의 자기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세 명의 제자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보이십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이죠.
그런데 예수님의 모습만이 아닌 모세와 엘리야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세 명의 제자에게 모세와 엘리야를 보이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모세는 율법을,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즉 율법과 선지자 곧 성경이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세 제자에게 자신에 대해 증거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영광스런 모습을 보이셨고, 모세와 엘리야를 통해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가 바로 ‘나’다라는 것을 보여주셨죠. 그러나 이로써는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에서는 두 사람의 증언이 참 되다 기록되었기 때문이죠. 요한복음 8장 17~18절을 보면,
“(요 8: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요 8: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예수님 혼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는 증언의 효력이 없기에 하나님께서 7절에 예수님의 증언을 참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증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명하는 2번째 증거이죠.
2) 하나님의 증언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구름이 가득하다, 또는 구름이 덮었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줄 때 나타내는 하나님의 외적 증거입니다. 출애굽기 40장이나 민수기 16장 그리고 열왕기상 8장 등에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표현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먼저 드러내시고 구름 속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구름 속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이유는 죄인인 우리는 그 누구도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말씀하시며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십니다. 이로써 율법으로도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이 증명된 것이죠.
3) 성경의 증언
세 번째 증거는 성경입니다. 성경이 예수님을 증언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그 사실을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했고 또 변화산 사건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았기에 지금 그들은 예수님을 의심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점이 있었죠.
그것은 성경의 예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서기관인 율법학자들에게서 성경을 들었습니다. 로마의 속국으로 있던 시절이기에 그 당시 종말론에 대해서 종교 지도자들이 말씀을 많이 전했는데, 그 중 그들이 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메시야가 오시기 전, 엘리야가 먼저 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엘리야에 대한 종말론적인 예언은 말라기 3장 1절과 말라기 4장 5~6절을 겸해서 봐야 하는데요. 제가 2구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말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말 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서기관들은 말라기 4장 5절을 통해 메시야가 오시기 전, 먼저 엘리야가 온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죠. 그들의 말에 의하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는데, 엘리야는 보이지 않고 메시야가 왔으니 제자들은 이해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묻죠. 그러자 예수님께서 12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죠.
“(막 9:12)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예수님은 엘리야에 초점을 두고 있는 제자들에게 인자에 초점을 두도록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말씀하신 까닭은 그들이 여전히 인자 곧 메시야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엿새 전에도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오늘 본문에서도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다는 사실을 말씀하시지만,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죠. 이는 제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메시야상에 대해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할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로마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영토를 회복할 영광의 왕의 모습으로 올 메시야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예수님의 영광의 모습을 보니 더 그런 기대가 커지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성경에 인자가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 지를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 인자의 고난 받을 것에 대해 다시 언급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 엘리야에 대한 답변을 제자들에게 해주십니다. 성경대로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죠. 그리고 그 엘리야가 왔다는 사실도 제자들에게 알려주십니다.
마태복음 17장 13절에서는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오심이 증명이 된 것이죠.
결국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그리스도이심을 예수님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증언하시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증언하시고, 성경이 증언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소망의 메시지
그렇다면 변화산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소망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먼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의 개념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을 나타내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죠. 이 사실이 왜 우리에게 소망이 되고 중요할까요? 만약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그분의 죽음이 온 세상의 죄 값을 치르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죄가 없으시고 무한하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죄 값을 치르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소망이 됩니다.
두 번째, 변화산 사건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영광의 모습으로 나타나심 같이 예수님을 믿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는 자들도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그 날에 영광의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십자가의 길을 가는 우리에게 2가지 소망을 보여줍니다. 비록 우리가 현재 당하는 고난이 힘들지라도, 우리가 끝까지 주님을 따라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에게 참 소망이 있는 한, 견딜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 소망을 잊고 살지 말라고 오늘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을 기억하며, 우리가 주님 다시 오실 그 날을 소망하며 믿음의 길에서 떠나지 않길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곧 오십니다. 그 날에는 우리도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홀연히 변화될 것입니다. 그 영광의 순간을 고대하며, 우리가 주님을 따라갑시다. 저와 여러분이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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