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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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의 논쟁
- 막 2:23~28
오늘 보는 본문은 안식일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의 안식일 논쟁이죠. 이 논쟁이 벌어지게 된 이유를 조금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안식일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먼저 안식일에 대한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고 그 다음 바리새인들이 왜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동을 보고 트집을 잡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지 하나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0. 안식일의 배경
1) 안식일의 의미
안식일은 히브리어로 ‘샤바트’(שַׁבָּת)인데, 기본 의미는 ‘중단하다’, ‘휴식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모든 노동(일)을 멈추고 하루를 휴식하는 날을 의미하지요.
안식일의 기원은 태초에 하나님이 6일간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7일에 사역을 멈추고 쉬심으로써 창조 사역을 완성하셨고, 또 그날을 거룩히 구별하고 복 주셨다는 창 2:1~3절에 기인합니다. 안식일은 이런 하나님의 뜻을 좇아 피조물인 인간도 모든 일을 멈추고 그날을 구별해 거룩히 지키며 안식하는 데에서 유래했습니다.
안식일은 창조 때부터 지시된 것으로 아담 때부터 안식에 대한 개념이 있었겠지만, 구체적으로 법을 통하여 명확하게 제시된 것은 율법이 주어진 이후부터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셨으므로 그들에게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 조항까지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1세대에게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하신 까닭은 그들이 애굽의 종살이 하면서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들이 안식일을 지킬 때마다 하나님을 기억하게끔 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안식일 준수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기념하는 행위이자, 피조물인 우리의 온 인격이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는 복된 일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에 순종하는 신앙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2)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일의 규례
모세오경에 나타난 안식일에 대한 규례는 “일곱째 날에는 누구든지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누구든지’는 종이나 객이나 가축까지 포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31장 15절을 통해서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 곧 거룩한 날이므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행위는 죽음에 이르는 죄악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오경을 통하여 안식일에 명령하신 규례는 딱 한 가지,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구체적인 법들은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출애굽기 35장 3절에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 말씀한 것이 있는 데, 이는 밥을 짓거나, 땔감을 구하기 등의 노역을 감당해야 하는 노예들에게도 안식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자한 하나님의 사랑이 내포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1. 바리새인의 트집
계속해서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모세오경을 통하여 제시한 안식일 규례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해석에 따라 다양한 관점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에 근본적인 내용은 6일 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일곱째 날 편히 쉬라는 것입니다. 그 날은 다른 일들을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하며, 그 분으로부터 나오는 참된 안식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괴롭게 하기 위하여 안식일을 주신 것이 아니라, 안식일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쉼을 얻고 한 주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힘을 재충전 하라는 것입니다.
1) 바리새인들의 안식일에 규례(미쉬나)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안식일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아니하였고, 그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안식일에 대한 법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신구약 중간기를 거쳐 신약 시대로 오면서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규정을 아주 엄격하게 해석하였습니다. 이는 구전 율법인 미쉬나(Mishnah)에 근거를 둔 것인데, 거기에는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39가지 조항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성경에 언급된 몇 가지를 살펴보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지 말 것, 밀 이삭을 따먹지 말 것, 안식일에 갈 만한 거리(대략 900m) 이상을 여행하지 말 것(행 1:12) 등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관련된 39가지의 조항 중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손으로 비벼 먹는 행위를 보고 트집을 잡았는데요. 그 이유는 밀 이삭을 손으로 비벼 먹는 행위가 추수 행위와 탈곡 행위로 간주되어 노동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입니다.
2)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트집 잡는 이유 = 자기들이 옳다
그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동에 트집을 잡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이 안식일의 규례를 잘 모르기에 그들에게 안식일의 규례를 가르쳐주려고 잡았을 까요? 그랬다면,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라다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가복음 2장부터 보면 바리새인들이 계속해서 예수님을 주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경계의 대상인 것이죠.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은 그들의 전통을 흔들어버릴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전통을 엎어버리는 예수님이 못마땅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깎아내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2장 16절에서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묻지 아니하고 그의 제자들에게 묻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신뢰를 깨뜨리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저런 분이다. 니들은 어떻게 생각하냐? 이런 질문이죠.
오늘 본문의 내용도 비슷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동을 보고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당신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예수님의 제자들의 잘못된 행동을 통해 예수님을 깎아내리는 것이죠.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 말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랍비들의 해석에 의한 그들의 전통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율법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깎아내렸던 것이죠. 그렇게라도 해야 자신들이 옳다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상대방을 무시하고 깎아내리는 행동은 결코 올바르다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행동은 자신이 없거나 자신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낼 뿐입니다.
2. 예수님의 답변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3가지로 답변하십니다.
1) 다윗의 율법을 어겼던 예
먼저 예수님은 25~26절에서 다윗을 예로 들어 반박하십니다. 이는 사무엘상 21:1~6에서 언급된 사건인데요.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는 중,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은 사건을 말합니다. 제사장 외에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은 다윗은 분명 율법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행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로 인해서 어떤 제재를 당하거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 당시 율법에 대해 잘 아는 제사장 역시 다윗에게 사무엘상 21장 4절에 말하기를 “(삼상 21:4)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
그 당시 아히멜렉 제사장도 배고픔에 지쳐있는 그들을 위해 진설병을 내어주었습니다. 이는 제사장의 생각에도 배고픈 이들에게 진설병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이 내용에서 보아야할 문제는 이 날이 안식일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상에서는 이 사건이 안식일에 일어난 것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진설병을 바꾸는 날이 안식일이기 때문에 안식일에 일어난 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죠.
결국 예수님의 말씀은 배고픔에 밀 이삭을 손으로 비벼서 먹는 제자들의 행동을 정죄하려고 하지 말고 다윗의 사건을 보며, 왜 제사장은 다윗을 비난하지 아니하고, 또 왜 랍비들은 다윗의 범법행위에 대해서 말하지 아니하는가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기름 부음 받은 왕이기 때문에 다윗을 정죄하지 않는 것이라면, 예수님 역시 메시야로서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동이 정죄받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에 바리새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단지 예수님을 비난하고자 질문하였기 때문입니다.
2)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
이어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의 목적은 쉼에 있습니다. 사람이 6일간 일을 하고 7일째 쉬라고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쉼을 주기 위하여 만든 안식일에 규율을 더 만들어서 더 무거운 짐을 지어주게 된다면, 과연 안식일에 참된 쉼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오히려 안식일을 버거워하고 힘들어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안식일이 싫어지게 되고 안식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안식일이 짜증이 나고 안식일만 되면 한 숨만 계속 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바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바램은 안식일을 가장 소망하고 바라는 날로 만드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통해 우리가 참된 안식을 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이 안식에 있구나. 세상 어떤 곳보다 하나님의 품이 가장 안식하는 곳이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탕자가 모든 돈을 탕진하고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은 안식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가 이 세상에 어떤 곳보다 하나님의 품이 가장 포근하고 안락하고 행복한 곳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유대사회는 사람보다는 안식일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한다고 말하며 많은 규율들을 만들고 이를 지키지 아니하면 정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동을 문제삼아 예수님을 정죄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3)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자신에 대해 드러내십니다.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이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시라는 말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 안식일은 누가 만드셨나요?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그럼 안식일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말씀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은 바리새인들 입장에서 상당히 충격적인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메시야를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메시야를 다윗과 같은 왕 곧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인도하여 로마의 압제에서 건져줄 그런 존재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에 대해서 12세기의 유대교 철학자 마이모니데스에 따르면 메시아는 첫째, 다윗의 후손이며, 둘째, 다윗처럼 율법을 잘 알고 그 계명을 잘 준수하고, 셋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잘 따르고 지키게 하며, 넷째,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에서 나아가 싸우는 사람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즉,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는 하나님이 아닌 초월적인 능력을 소유한 사람 정도로 생각했다는 것이죠. 이 말은 다시 말해, 메시야란 자신들보다는 뛰어난 존재이지만 결국 안식일을 준수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본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의 전통과 생각을 뒤엎는 말씀인 것이죠.
또한 예수님께서 “내가 안식일에도 주인”이라고 선포하신 것은 안식일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자신만이 할 수 있음을 알리신 것입니다. 안식일 뿐 아니라 모든 율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그것을 제정하신 예수님 안에서만 비로소 가능하게 됩니다.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성경을 많이 연구하고 외우고 또 부단히 경건을 추구했음에도 진정한 자유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경의 중심이 되시고,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예수님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3. 결론
오늘 본문을 통해 보는 안식일의 논쟁은 참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1) 짐을 주는 바리새인의 율법
유대교를 이끌어왔던 랍비들의 전통에서 말하는 안식일은 사람이 어떻게 하면 안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사람이 어떻게 하면 안식일을 더 잘 지킬 수 있는 지를 말합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안식일에 아무것도 하지마라는 그 말을 가지고 39가지의 조항을 만들어서 이것도 하지 말고 저것도 하지 말라고 말하며, 오히려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에게 더 짐을 지어줍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정죄를 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도 지키는 것이 어려운데, 지키지 못한다고 정죄를 하면 사람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이처럼 바리새인의 율법은 사람에게 참된 안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짐을 주고 사람을 압박하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2) 안식을 주는 예수님의 복음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은 어떠합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음을 밝힙니다. 그러면서 많은 병자를 안식일에 고치셨는데요. 예수님이 그들의 전통을 몰라서 안식일에 고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유대에서 태어나고 자라셨기에 그들의 전통, 그들의 문화에 대해 다 알고 계셨습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도 그들의 전통에 어긋난다는 사실 또한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아랑곳하지 아니하시고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들의 전통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시며, 질병의 고통과 아픔에서 해방시켜 안식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안식일의 의미에 대해서, 안식일을 왜 만들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고통 속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병자들을 고치시고, 그들에게 안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안식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안식을 주심으로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죄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해 안식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임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같은 성경을 보아도 같은 안식일을 지켜도 유대교와 예수님의 뜻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초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에도 많은 율법들이 존재합니다. 우리를 옭아매고, 우리를 정죄하는 그런 시선들이 많이 있습니다. 행함을 강조하는 그런 움직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압박하고 정죄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1세기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자신의 뜻을 내세우며 백성들에게 규율들을 주며 이를 지키게 하였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없는 율법들을 주며 말이죠.
예수님께서는 이를 보며 마태복음 23장 2절에 “(마 23: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 말씀하십니다. 또 그들에게 “(막 7: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말씀하셨으며,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 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자기 욕심대로 행하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예수님은 요한복음 7장 16절에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말씀하시며, 잡히시는 그 날에도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말씀하심을 통해 자신의 욕심을 내세우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며,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이들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지지하며 예수님을 죽이는 데 동조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날에 우리를 미혹하고 우리를 넘어뜨리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주님을 올바르게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럴수록 더욱 성경을 상고하고,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여 악한 세력들에 휘둘리지 않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믿음 잘 지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참된 안식을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