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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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길로 이끄시는 주
막 5장 21~43절
1. 믿음의 시작
우리가 어떤 일을 계획하고 진행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작입니다. 시작을 하지 않으면 일이 진행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하기로 하고 식이요법과 운동을 계획해놓고 하지 않은 다면, 과연 다이어트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처럼 무언가 어떤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작이 필요합니다. 시작은 마치 자동차의 시동을 켜는 것과 같습니다. 시동을 켜지 않는 차는 출발하지 못하는 것처럼, 시작이 없는 어떤 일이나 계획은 진행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믿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믿음 역시 시작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시작은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다릅니다. 믿음의 시작은 우리가 계획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의 시작은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이유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그 누가 먼저 하나님을 알아보고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께서 그를 먼저 찾아오사 그에게 믿음을 주심으로 그가 하나님을 믿게된 것입니다.
1) 주님이 찾아오심
이처럼 믿음의 시작은 항상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찾아오심으로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2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 편으로 건너가십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맞은 편으로 건너가신 것은 자신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2) 주님께 나아감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니 큰 무리가 예수님께로 모입니다. 그 때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가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야이로가 회당장이라는 것으로 봐서 그가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는 자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야이로가 회당장이였다는 사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마가가 야이로의 신분을 밝힌 이유는 아무래도 야이로가 예수님을 적대시하는 바리새인임에도 불구하고도 주님께 나아갔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그의 마음이 절실했다는 것이죠. 이는 자신의 딸이 죽을 위기에 처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돈과 권력과 명예가 있었기에 많은 의사를 찾아갔으며, 제사장에도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의 딸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3) 주님의 긍휼
놀랍게도 예수님은 그의 간구를 들어주십니다. 이 사실이 놀라운 이유는 야이로가 바리새인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 당시 대부분의 회당장이 바리새인이란 점에서 알 수 있는 대목이죠. 바리새인은 우리가 계속해서 보았지만 예수님을 적대하는 세력입니다. 예수님을 모함하는 자들이고 예수님을 모독한 자들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어떤 위치에 있었든 상관하지 아니하시고 그를 불쌍히 여기사 그와 동행하여 주십니다.
이는 우리도 다 경험한 바가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죄악 가운데 헤매이는 우리를 건지시고 주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시지 않았습니까? 야이로를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을 보면서, 2천년이 지난 오늘날 나 같은 죄인도 변치 않고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시고, 그 주님께 반응하여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우리의 연약함을 붙드시고 믿음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2. 믿음의 성장
주님의 은혜 가운데 자그마한 믿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믿음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하죠. 자 그럼,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야이로의 믿음을 성장하게 하셨을까요?
1) 믿음의 성장 사건(혈루증 여인의 고백)
오늘 본문 25절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여인이었죠. 혈루증이란 몸에서 피가 유출되는 병을 말합니다. 레위기 15장에서 유출병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혈루증 여인은 부정한 여인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12년간 많은 의사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가진 것을 다 허비할 정도로 말이죠. 그러나 아무 효험이 없고 오히려 그 병이 악화가 되는 암울한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때 그녀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녀에게 예수님은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고 격리당하고 죄인 취급 받는 것은 죽음보다 더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사회적으로 격리를 당해야하는 입장에 있었기에 자신의 정체를 들켜서는 안 되었습니다. 마치 코로나19를 걸리면 어디 돌아다니지 못하지 않습니까? 혈루증도 그와 마찬가지였습니다. 혈루증에 걸린 사람이 앉은 자리, 누운 자리, 혈루증이 만지는 모든 것은 부정해지기 때문에, 돌아다니면 안 되는 것이었죠.
사실 얼마나 끔찍한 병입니까?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고 죄인 취급 받고 어디를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12년간 그런 생활을 했다면 얼마나 그동안 많은 스트레스와 고통을 당했겠습니까?
그런 그녀에게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은 메마른 땅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죠. 그러나 문제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예수님께 나아가야하냐는 것이죠.
야이로처럼 예수님 앞에 나아갔다간 사람들에게 걸려 돌을 맞고 죽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부르짖으면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저 부정한 여인이 어딜 나왔냐고 비난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면 어떤 방법으로 예수님께 나아가겠습니까?
그녀는 28절에 어떤 방법으로 주님께 나아갔습니까?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참 이 말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라면, 정말 저런 마음을 가지면서 나아갈 수 있을까? 그녀의 말을 보십시오. 그녀는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하는 의심 있는 연약한 믿음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구원을 받으리라”는 확고한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놀라운 믿음입니다. 그녀는 그리고 그 믿음대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자, 병에서 나음을 받음을 느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녀를 찾으셨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예수님의 말씀은 여인의 생각을 꿰뚫는 질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합니까?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함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내게 손을 대었느냐가 아니라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질문하셨는데,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난 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왜 그런 질문을 하셨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 질문은 즉 예수님께서 여인을 향하여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던 길을 멈춰 자기를 향해 얼굴을 돌리시니 그제서야 여인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심을 깨닫고 두려워하여 떨며 모든 사실을 토로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혈루증 여인을 그냥 보내시지 아니하시고 잡으셨을까요? 첫 번째, 예수님께서 그녀를 잡으신 것은 그녀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음을 알게 하려 하심이십니다.” 만약 그녀가 이대로 돌아갔다면, 예수님의 옷에 능력이 있은 줄로 착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녀에게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알려주시는 것이죠. 두 번째는 사람들 앞에서 병이 나음을 선포함으로 그녀의 사회적 지위를 회복시켜주십니다. 이제 아무도 그녀를 죄인 취급할 수 없고 그녀를 사회적으로 무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2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고통 받은 그녀에게 예수님께서 참 자유를 주신 것이죠.
예수님은 그녀가 모든 사실을 토로하게 만들고 그녀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를 붙잡고 그녀에게 선포하는 이유는 혈루증에 걸린 여인을 위함도 있었지만, 야이로를 위함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그녀를 붙잡은 세 번째 이유입니다. 이 사건이 야이로와는 무슨 상관이냐?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혈루증 사건이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가는 중에 일어난 사건임을 알아야 합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많지 않았습니다. 소문에 의한 믿음이었죠. 그에 비해 혈루증 여인은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믿음으로 구원함을 얻었고, 그 사실을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였습니다. 이 자리에 당연히 야이로도 있었습니다.
야이로는 혈루증 여인을 통해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혈루증 여인의 고백을 통해 12년간 아무도 고치지 못한 병을 예수님께서 고치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야이로의 입장이라면 어떠하겠습니까? 소문으로 듣던 예수님의 능력이 사실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었어! 이제 드디어 내 딸을 살릴 수 있겠구나!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3. 믿음의 연단
야이로의 믿음은 혈루증 여인의 고백을 통하여 엄청나게 성장하였습니다. 그가 처음 예수님께 간절히 구할 때보다 더 큰 믿음이 되었던 것이죠. 그렇게 더 큰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고 있을 때, 뜻 밖에 소식이 들려옵니다.
1) 믿음의 시련
자신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죠. 예수님을 만나 드디어 딸 아이가 병에서 자유함을 얻겠구나 싶었는데,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그 당시 성경을 보아도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은 결코 흔치 않는 일이었습니다. 성경에 몇몇 선지자가 죽은 아이를 살리는 일이 있긴 하지만 그들이 아이를 살린 것이 아니라 결국 생명의 주관자되시는 하나님께서 살리신 것이기에,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자신의 딸 아이가 살아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선지자로 생각한 야이로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예수님이 많은 귀신을 쫓아내시고 많은 병자를 고치시더라도 죽은 자를 살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심지어 옆에서는 “예수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딸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 드려야하는데, 너무 두려운 것이죠. 모든 것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는 사랑스런 딸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어려운 것입니다.
2)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렇게 패닉 상태가 될 때,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세밀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야이로는 자신의 딸이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세 제자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에 많은 사람이 웅성거렸을 것입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는데 야이로의 집에 왜 가시지?’, ‘야이로를 위로해주려고 가시려나?’ 이런 저런 생각들을 했을 것입니다.
야이로 역시 어안이 벙벙하였겠지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의 딸이 살아남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한 마디에 죽었던 딸이 살아났습니다. 이런 일은 어디서도 듣도 보도 못한 일입니다. 성경에서도 이런 일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엘리야도 사르밧 과부의 아이를 살릴 때,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소녀야 일어나라!” 이 말씀에 자신의 사랑하는 딸이 살아났습니다. 이는 엘리야가 다시 온다고 한들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야이로는 우리가 보았지만 회당장입니다. 그리고 그는 바리새인으로 성경을 잘 아는 자였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보이신 기적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이 기적은 오직 하나님 밖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의 능력을 통해 예수님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사람들이 말하는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이 세상 속담에도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믿음 역시 어떤 연단이 있어야 더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4. 믿음의 길로 이끄시는 주님
우리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야이로를 믿음의 길로 이끄시는 것을 봅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절박한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가던 길에 혈루증이 낫는 사건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없었던 그가 이 혈루증 여인을 만나고 그녀의 고백을 듣게 된 것은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야이로는 그녀의 고백을 통하여 예수님의 능력을 보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 역시 온전한 믿음이 아니었죠. 왜냐하면 그는 여전히 예수님이 선지자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딸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 앞에 믿음이 무너지려고 했습니다. 12년간 아무도 고치지 못한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았는데, 믿음보다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야이로에게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죽음이 두려워 아내를 누이라 속였고 출애굽 1세대들은 거인들이 두려워 가나안 정복을 포기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외세의 공격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나라의 도움을 의지했습니다.
모두 두려움이 믿음보다 앞선 케이스입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바로에게 아내를 빼앗기게 되었고, 출애굽 1세대들은 광야를 40녀간 떠돌다 죽게 되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음으로 결국 나라를 빼앗기는 슬픔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딸이 죽었다는 사실로 인하여 두려움이 엄습해오는 야이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믿음이 두려움보다 앞서면 어떻게 될까요? 기적이 일어납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그는 애굽의 왕이 자기에게 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그 결과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구원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는 하나님의 사명자로 끝까지 쓰임을 받았습니다.
또한 다니엘은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들이 만든 조항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사자 굴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무사히 나오며, 그 이후에도 큰 쓰임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야이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끝까지 믿으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녀의 딸이 살아나는 기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끝까지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이끄셨기에 그가 끝까지 예수님을 믿고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한 믿음의 길로 이끌어가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지지 않게 우리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십니다. 풍랑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이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이심을 보았습니다. 거라사 광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심판주이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모든 병의 원인인 죄와 사망 권세도 이기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보았습니다.
그 능력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그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있는 우리는 어떤 세력도 주님의 사랑 안에서 끊을 수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를 두렵게 하고 우리를 괴롭게 하는 어떤 일들이 있을지라도 우리가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길 원합니다.
주님은 오늘 날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믿고 나아갈 때, 반드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한 가지만 더 보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소녀가 살아날 때, 함께 있는 자들이 놀랍니다. 42절에 보면 그냥 놀라는 정도가 아니라 “크게 놀라고 놀랐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구절을 본 순간 나의 부족함에 회개하였습니다. 어느 순간 그리스도의 행하심을 보아도 놀라지 않는 나의 교만함과 완악함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니 소녀가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메마른 감정으로 성경을 보고 있는 내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무뎌진 영적 상태에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피부가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듯, 영혼 역시 어떠한 말씀에도 반응하는 깨어있음이 필요한데, 어느 순간 무뎌진 감각을 경험하면서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깨어있다면 우리가 말씀을 볼 때마다 놀라고 감격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는 그러한 현상들이 일어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혹시 여러분 중에도 영혼의 감각이 무뎌진 분들이 있습니까?
놀라야 할 일을 마주하고도 놀라지 않는 영혼의 질병이 있으십니까? 우리를 온전한 믿음으로 이끄시는 주님께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이 시간 우리 두 가지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의 강퍅한 마음들을 제거하여 주시고, 영혼의 감각을 회복시켜주시옵소서.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과 두려움이 몰려와도 온전히 주님을 믿는 은혜를 주옵소서. 이 두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주님께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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