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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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오신 이유
마가복음 1장 21~45절
0. 들어가는 말
마가복음 1장 1절은 선포의 메시지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시다라는 확정적 메시지입니다. 그 증거로 우리가 15절까지 보았고, 16~20절에 나타난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갖추어야할 모습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복음이 무엇인지 압니다. 마가가 말한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이 복음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우리에게 단순한 지식적인 메시지로 끝나고 우리의 참 기쁨이 되지 않는 다면, 결코 이 진리는 우리에게 복음이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암울한 일제강점기 시대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광복의 소식은 엄청난 기쁨이며, 뜻 깊은 날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소식이 기쁘게 들리지 않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광복의 소식이 기쁘지 않는 사람은 광복을 원치 않았거나, 아니면 나라에 대해 아무관심이 없는 사람이겠죠. 이런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이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름 받은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복음은 광복의 기쁨보다 더 대단한 것입니다. 이 땅에 그리스도가 왔다는 기쁨의 소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작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이 기쁨이 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거북하고 듣기 싫고 아무 느낌이 들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말할 수가 없습니다.
바울사도는 고전 1:23~24절 말씀에,
(고전 1:23~24)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여러분은 복음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기쁨의 소식으로 들리십니까? 아니면 거리끼고 미련한 것으로 들리십니까?
그리스도인에게 찬양할 제목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사실에 기뻐해야 합니다. 다리를 다친 사람이 의사를 통해 완쾌가 되어 걸을 수 있게 되었고 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걸을 때마다, 뛸 때마다 그 의사가 생각날 것입니다. 자신의 은인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항상 자신의 다리를 고쳐준 의사에게 감사할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죽어가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인지한다면 매일매일 우리가 숨 쉬는 모든 상황 가운데 주님이 생각날 것입니다. 다리를 고친 받은 사람은 걸을 때, 뛸 때 의사가 생각나겠지만, 우리는 매 순간 주님이 생각날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주님의 은혜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루 종일 똑같은 공기를 수없이 마시고 살아가도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마시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복음이 우리에게 그렇게 들리기를 소망합니다. 항상 갈망하고 들을수록 기쁨이 넘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1)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
오늘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후, 제자들과 함께 사역을 하시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의 대부분의 내용은 가르치시고 고치시고 전도하는 장면들이지요. 마태복음은 4장 23절과 9장 35절에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본문에 나타난 사람들의 반응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과 치유 사역을 보며 사람들이 여러 가지 반응들을 보입니다. 놀라고, 수종들고, 예수께 데려오고, 전파하는 반응 등 여러 가지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22~28절의 내용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의 능력에 놀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들이 놀라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그들이 놀란 이유를 알기 위해선 ‘놀라다’란 말과 함께 나타난 단어들에 대해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놀라다는 말은 22, 27절에 나타나는데, 그와 함께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더 있죠? 무엇입니까? 네, 권위입니다.
그들이 놀란 이유는 예수님의 권위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실 때, 모두 예수님의 권위에 놀란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명령에 권위가 있었다는 것이죠.
예수님의 권위가 그들에게 반응을 일으킨 것은 22절에 권위가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더라라는 말씀을 통해서도 예수님과 그들의 가르침의 차이도 존재하였지만, 무엇보다 예수님의 존재가 컸습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을 영광 해내며,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 창조된 바, 하나님을 영광 돌리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기에 우리 안에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이 있으며, 이를 칼빈은 종교의 씨앗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며,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두려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모두를 말합니다.
비록 이 당시 모든 사람이 죄에 가려져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캄캄하고 어두울 지라도 빛이 가릴 수 없는 것처럼, 비록 죄 가운데 있더라도 예수님의 가르침과 치유 사역을 통하여 예수님의 권위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죠.
두 번째 사건에서 수종드는 행위 역시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인정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통하여 예수님의 권위를 느낀 것이지요.
더불어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 곧 회당에서 예수님의 권위를 본 자들이 해가 질 때에, 온 동네의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을 예수께로 데려옵니다. 그들이 해가 질 때에 사람들을 데려온 이유는 안식일에는 자유롭지 못하기에 안식일이 끝난 다음 날 사람들을 데려온 것이죠. 유대인의 하루는 오후 6시부터 시작하기에, 해가 저무는 그 때가 다음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온 동네 사람들이 자유롭게 시몬 집 앞으로 올 수가 있었던 것이죠.
나병환자 사건은 다른 사건들과 다르게 그가 먼저 예수님을 찾아오는 사건이지만, 예수님께 병 고침을 받은 후 그가 하는 행동을 보면, 그 역시 예수님의 권위에 자신도 모르게 반응함을 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엄히 경고 하시지만, 그는 되려 사람들에게 이 일을 많이 전파함을 봅니다.
그가 예수님의 말씀에 듣지 않음으로 예수님의 사역에 방해되었다는 점에서는 인정하지만, 그가 이 일을 많이 전파하였음을 볼 때, 의도적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했다기 보다는 그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함으로써 순수한 의도로 예수님을 증거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3) 예수님이 오신 이유
예수님께서 많은 곳을 다니며, 말씀을 가르치시고 치유 사역을 하시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무지와 고통에 처함을 불쌍히 여기신 마음도 있을 것이고, 예언의 말씀을 이루려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면, 복음 전파를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이 잡힌 후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시는 데, 마가복음 1장 14~1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오늘 본문 38절에서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38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막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 지시는 대속사역도 있지만, 전도 곧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가르침 사역과 치유 사역을 하셨습니다.
4) 복음 전파 사역이 중요한 이유
예수님의 복음 전파가 중요했던 이유는 복음만이 그들을 하나님 나라로 초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이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 지신 사건 역시 중요하지만, 복음 전파하는 사역 역시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효력이 없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복음전파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 반이라는 공생애기간 동안 쉬지 아니하시고 모든 도시를 돌아다니시면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성경에,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기적들을 베푸시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2. 오늘 날
1) 예수님의 복음에 대한 우리의 반응
그리고 그 복음은 전 세계로 퍼지고, 2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선포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복음은 계속해서 세계 곳곳에 퍼지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복음을 들었습니다. 또한 듣지 못한 자들도 언제든지 들을 수 있도록 교회는 열려있으며, 교회가 아니더라도 책을 통해서 미디어를 통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그 누구도 못 들었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음은 계속해서 퍼져갑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고 그 권위에 순종하고 그 능력에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을 수 없는 본문에 나타난 자들처럼 우리 역시 복음을 처음 접했거나, 예수님을 만났을 때, 벅찬 기쁨과 감동과 놀람과 행복 등 여러 감정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아직도 복음을 들을 때, 기쁨과 소망이 넘치고 들을 때마다 새롭게 들려지는 은혜가 있으십니까? 만약 복음을 들을 때, 우리 마음에 아무런 감정이 없거나 복음을 지루해한다거나 복음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주님을 처음 만난 그 때의 감정을 회복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버렸습니다. 특히 사도바울은 전도 여행을 다니며 수백, 수천 번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하여 결코 갈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열렸습니다. 누구든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그 분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영벌을 기다리며, 모든 악과 고난 속에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영생으로 가는 길이 나타난 것입니다.
가끔 유초등부 예배 때, 아이들에게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오른손에 만 원짜리와 왼손에 천 원짜리 중 하나를 가져간다면 무엇을 가져가겠느냐고 물어보면, 둘 다 가져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둘 중 하나만 가져갈 수 있다고 하면, 다들 만 원짜리를 선택합니다. 만 원짜리가 천 원짜리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만 원과 천 원의 문제, 정말 지극히 아주 작은 차이도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는 데, 영생과 영벌의 차이는 얼마나 크지 않습니까? 그 차이를 모르고 영생으로 인도하는 복음을 가벼이 여긴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일까요?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고, 예수님의 치유사역에 놀라고 예수님을 찾아다니며, 예수님을 부르짖고, 많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께 남은 자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예수님을 붙잡은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다닌 다고 모두가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 아닌 표적을 원하는 자들은 표적이 끝나는 순간 예수님을 떠날 것입니다. 어떤 자들이 천국에 갑니까? 예수님을 끝까지 붙잡은 자들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타나지만 예수님께서도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능력이 없으신 것도 아니고, 맡은 사명을 못 이루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 분을 의지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더 친밀해져서 날마다 복음이 새롭고 복음을 들을 때마다 기쁨과 평안이 넘쳐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을 들을수록 더 놀라고 더 기쁨이 넘친다면 그만한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반대로 복음이라는 이름 자체가 기쁜 소식인데, 기쁜 소식을 들었는데, 기쁘지 않는 다면 그것만큼 이상한 것도 없습니다.
요한 계시록 14장 6절 말씀에서는 우리가 듣는 복음이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영원토록 온 세상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이 울려 퍼지는 곳마다 기쁨과 감격의 도가니가 될 것입니다.
천국에서 많은 사람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 돌릴 때에, 지옥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자가 우리가 되어선 안되지 않습니까? 우리 역시 천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며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감기가 왔다고 싶을 때, 우리 몸에 반응들이 있습니다. 으슬으슬 춥던지, 목이 간지럽던지, 콧물이 나던지 등 여러 가지 반응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반응이 일어날 때, 빨리 약을 먹던지 치료를 받지 않으면 감기가 심하게 걸리는 것처럼, 우리가 복음을 들을 때 기쁨이나 놀람 등의 좋은 시너지의 반응이 나오지 않는 다면 그 때가 회개할 때이며, 그 때가 돌아올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병자들이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들이 왜 주님께 나아왔습니까? 자신들이 병에 걸린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영혼에 병이 들었다고 생각한다면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병든 영혼이 주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게 되는 순간 베드로 장모가 예수님께 수종들 듯이 우리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은혜가 넘쳐날 줄 믿습니다.
2) 예수님의 복음을 전달해야하는 우리의 사명
복음에 사로잡힌 자는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기쁜 일이 있을 때, 우리의 표정을 감출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기에 우리가 복음을 들었고, 복음을 기쁜 소식으로 받았다면, 우리 역시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시기 위하여 가르침 사역과 치유 사역을 하셨습니다. 말씀으로 그들을 하나님께로 이끄시고, 치유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음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치유와 가르침 사역을 통해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날에도 많은 곳에서 치유의 역사들이 일어나고 성경을 더 알고자 하는 열망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복음이 퍼져나가는 곳마다 성령의 역사들이 함께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가르침과 치유 사역이 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생각해보십시오. 오늘 본문 38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전도를 위해서 왔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복음 전파를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가르침 사역과 치유 사역은 복음이신 예수님을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엄청난 지식과 수준 높은 가르침의 내용이 있다하더라도 예수님을 감춘다면 저주의 내용입니다. 아무리 치유의 은사가 뛰어난다 하더라도 예수님이 아닌 본인을 드러내는 곳은 마귀의 터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전해야할 것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해야합니다. 가르침과 치유의 사역은 복음을 효과적으로 보조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입각한 올바른 말씀이 주님께로 인도하고 복음의 입각한 올바른 치유만이 주님을 드러냅니다.
복음은 선포함에 있어 그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우리가 복음을 선포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보다 복음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 복음에 입각한 올바른 말씀을 배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며,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런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께 전도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해야 하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잘 감당하여 마지막 날에 주님께 칭찬 받는 기쁨의 순간들이 오길 원합니다.
그것만큼 성공한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달란트는 다 다를지라도 2달란트와 5달란트 받은 자처럼 주님 오실 때까지 다 남겨서 주님 앞에 선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어떤 마음이 들까요?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고 설렐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날에 나는 어떤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 있을 것인가?’ 항상 생각하면서 주님께서 주신 사명 곧 복음 전파에 앞장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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