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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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복음
막 4장 21~34절
우리가 마가복음 1장부터 보면 알겠지만 예수님은 공생애 시작부터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시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또한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귀신들렸다 말하며 모욕할 때에도 그들에게 마가복음 12장 28절에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음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사와 이적을 통하여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함으로 하나님 나라에 그들을 초청하셨습니다.
지난 주 우리가 보았던 네 가지 밭에 대한 비유 역시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시기 위함이십니다.
시편 78편 2절을 보면 “(시 78:2)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
이 구절은 오늘 본문 21~22절과 같은 내용입니다. 우리가 등을 천장에다 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천장에 등을 달 때, 등이 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등의 역할은 어두운 곳을 밝히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역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낼 때, 그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입을 열어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는 창세로부터 감추어있던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22절을 보면 개역개정판으로는 말이 복잡한데요. 여러 번역본들의 내용을 보면 “숨겨 둔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 둔 것은 나타나기 마련이다.”라는 뜻입니다. 결국 이 말의 뜻은 예수님의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들어라(21~25)
그렇기에 예수님은 23절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이는 마가복음 4장에서 여러 번 나온 표현입니다. 반복은 어떤 강조할 말이 있을 때, 쓰는 어법이죠. 예수님께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자꾸 외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 나라로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려는 목적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표적을 보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이용할 수 있을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그들 또한 불쌍히 여기시며, 그들이 참된 복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로 나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려고 오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의 사역을 보고도 알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예수님의 마음이 타들어가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는데, 하나님 나라를 마주하고도 알지 못한 체 하나님 나라 밖에서 서성이는 이들을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겠습니까?
우리 마가복음 4장 24~25절 같이 읽겠습니다.
“(막 4:24~25)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25)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예수님의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말씀하시면서도 도무지 예수님의 복음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니, 말씀하신 것 아닙니까?
값진 복음을 가볍게 흘리는 그들에게 좀 새겨 들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생각해보라! 너희가 이 복음을 헤아릴수록 더 풍성히 누릴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그 분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가 누리기에 얼마나 과분한 것인지 아는 것처럼, 이 당시 복음을 들은 이들이 복음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얼마나 복음을 듣고 있는 자신이 축복 안에 있는 것인지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같은 사건인 마태복음 13장에서 16~17절 말씀하시는데, 제가 읽겠습니다.
“(마 13:16~17)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지금 예수님을 보고 듣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복된 자들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예수님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장 1~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볼 때에 부분적으로만 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예전에 애들과 “내가 누구게?”라는 게임을 한 적이 있는데요. 이 게임은 한 사진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하나하나씩 보여주면서 맞추는 게임입니다. 물론 한 번에 맞추는 경우도 더러는 있지만, 대부분이 쉽게 맞추지 못하죠. 그러나 하나하나씩 드러날수록, 전체가 보여질수록 아~ 이거였구나! 깨닫게 되는 거죠.
구약의 선지서들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드러났기에 우리의 이해로는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달달 외우고 연구하던 랍비들도 몰랐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히브리서 1장 2절처럼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아들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아시는 분이죠.
그렇기에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에 부분적으로 전해주는 선지자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정답을 보고 답을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부분적으로 보고 맞추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죠.
마태복음 13장 44절에 나온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를 보면, 사람이 보화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천국을 발견한 자의 모습이 이와 같다는 것이죠. 그 사람이 왜 자기의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겠습니까? 밭에 감추인 보화가 자기의 소유보다 훨씬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예전에 어떤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았는데, 마트에서 세일을 한다는 소리에 그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와 물건을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물건을 싸게 사기 위해서 전투적으로 임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이것이 침노하는 천국이구나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달은 자들의 모습이 마치 이런 모습이어야 된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있는 자들은 더 받을 것입니다. 5달란트 받은 자가 1달란트를 더 받은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향해 달려가는 자들은 더 풍성히 누릴 것입니다. 주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 자들은 주님을 알수록 더 깊은 친밀한 교제와 풍성한 은혜를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길 것입니다. 교만하고 완악하여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을 알기 싫어하는 자들은 그가 들은 복음마저도 사탄에게 빼앗길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명심해야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우리의 신앙이 제자리에 있다면, 퇴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주님을 향한 갈망이 계속 남아있는 지를 확인하십시오. 내 영혼이 주님을 향하여 가는 지를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주님을 어느 정도 알았다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더 알기에 힘써야합니다. 주님이 정말로 나의 왕이시며, 나의 주인이심이 삶에서 드러나도록 우리가 주님을 전인격적으로 알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우리 삶 가운데 주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2. 하나님 나라는 이런 곳이다(26~32)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 두 가지 비유는 맥락이 비슷합니다.
씨가 자라서 싹이 나고 이삭이 되고 곡식이 되는 것과 겨자씨가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고 큰 가지를 내고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된다는 것, 모두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있습니다.
1) 자라나는 씨 비유
먼저 자라나는 씨 비유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자라나는 씨 비유는 가끔 씨 뿌리는 비유와 많이 혼동합니다. 한 장에 있어서 그런지 씨가 말씀이고 밭이 사람의 마음이다 이렇게 생각하여 혼선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씨 뿌리는 비유와 자라나는 씨 비유는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자의 특징을 보여준 것이라면, 자라나는 씨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도다 말씀하시며 씨가 자라나는 과정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 중 27절은 독특한 표현인데요. 씨 뿌리는 자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뒷 절에는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고 말하죠.
자, 이 말은 농부가 씨를 뿌렸지만, 씨가 자라는 것은 농부의 몫이라는 건가요? 아니면 농부의 몫이 아니라는 건가요?
씨가 자라는 것은 농부의 몫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즉, 농부는 씨가 자라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입니다. 그는 심지어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도 모르는 무능력함을 보여주죠.
그러나 씨는 계속 자라납니다. 싹에서 이삭으로 이삭에서 곡식으로 자라납니다. 누가 씨를 자라게 하는 걸까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성장하게 만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죠. 우리는 우리가 열심히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간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때에 따라 성령의 역사하심이 일어남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한동안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스데반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동역자가 순교했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죠. 그러나 하나님 나라 확장에 있어서는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를 시작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너무 암울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 때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유대와 사마리아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9장에 사울이 회심하고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역사의 주관자는 누구이십니까?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셨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씨를 자라게 하사 싹이 나고 이삭이 되고 곡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성장시키려고 한다고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성장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시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하실 그 당시에는 씨가 땅에서 태동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에는 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지에 대해 모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지 모르는 그러한 상황이었지만, 씨가 자라 땅 위를 뚫고 싹을 내며 곡식으로 자라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지금은 많은 나라에 하나님 나라 복음이 전달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많은 곳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멈추지 않습니다. 계속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성장이 끝날 때에는 곡식이 무르익어 추수할 마지막 때입니다.
2) 겨자씨 비유
겨자씨 비유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자라나는 씨 비유가 씨앗이 자라 싹이 되고 곡식이 되는 것처럼, 겨자씨 역시 결국 모든 풀보다 크고 큰 가지를 내어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는 하나님의 나라의 성장에 대해 말합니다.
예전에 겨자씨를 본 적이 있는데 오래되어서 가물가물합니다만, 매우 작은 씨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작은 씨는 아니지만,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고 있는 씨 중에서는 제일 작은 씨였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말씀에 아무도 트집을 잡는 이는 없었습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겨자씨가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다 말할 때, 우리의 관점으로 보면 안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높이를 맞추신 것이죠.
아무튼 겨자씨가 매우 작다는 것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볼품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기대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는 다시 말해 세상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매력적인 나라로 자리를 잡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주님을 믿는 다는 것은 핍박을 받고 고난을 당하고 매를 맞고 감옥에 가고 순교까지 당하는 총체적 난국입니다. 사실 누가 이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결코 갈 수 없는 곳이죠.
그러나 이 작은 겨자씨가 땅에 심긴 후에는 모든 풀보다 큽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어떤 것보다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어떤 나라와는 달리 계속 성장해나간다는 뜻입니다. 모든 나라들은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그 곳은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데까지 계속해서 확장되어져 나갈 것입니다. 겨자씨 나무에서 난 큰 가지를 보고 공중의 새들이 날아오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아는 자들은 주님께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 곳에 참된 안식이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사리분별을 하지 않습니까? 어떤 일이 중요하고 어떤 일이 더 가치 있는 지 아는 것처럼, 믿음의 사람인 우리는 어떤 것보다 하나님 나라에 가장 중요한 가치를 둘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사역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모두 하나님 나라와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초청하기 위하여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파하셨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감히 감당할 수 없는 그런 값진 은혜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 은혜를 우리가 알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혜의 가치를 아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가 그 가치를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 은혜를 더 풍성히 누리게 될 것이고, 우리가 그 가치를 가벼이 여기면 여길수록 복음에서 멀어져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교회가 주춤한 것처럼 보이고, 교회가 많이 위태로운 것처럼 보이겠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이끌고 가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 안 미치는 곳이 있겠습니까?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드러날수록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아는 자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풀 위에 않은 새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새들은 견고한 나무 가지에 앉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독보적입니다. 그리고 견고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나라는 건재하고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는 성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몰려오기 위해선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듯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달하는 사명을 잘 완수해야 합니다. 씨가 자라고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십니다.
3.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심(33~34)
예수님께서도 오늘 본문 33절에 보면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알아 들을 수 있도록 많은 비유를 사용하시며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뿐입니까? 34절에 보니 주님께 나아오는 자들에게는 해석도 해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에 관심을 가지는 자들은 주님께 나아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해주십니다.
제자들이 특별해서 예수님께 따로 해석을 받은 것입니까? 그들이 주님께 나아왔기에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팔을 내밀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더 주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었다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안다고, 주님을 알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주님을 더 알아서 더 풍성히 누리십시오. 주님과 더 깊은 교제를 하십시오. 주님께 나아가시길 소망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 전부인냥 돈을 보고 따라가지 않습니까? 돈을 많이 받으면 자신의 이름값이 높아지고 자신의 퀄리티가 높아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보고 나아가야합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많이 알수록 복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서 일평생 살면서 하나님을 더 많이 아는 축복이 임하길 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평생이 즐겁고 행복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이 시간 기도하며 주님께 나아가길 원합니다. 오늘 말씀에 많은 비유가 나옴을 봅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 많은 비유로 우리를 가르쳐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알기 원하셨기 때문이죠. 오늘날 우리는 정말 복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자들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멈춘다는 것은 퇴보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병아리가 자라 닭이 되고, 아기가 자라 어른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우리 믿음도 계속해서 자라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가 더 주님을 알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도 제목과 각자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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