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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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세대
- 막 9:14~29
1. 변화산과 세상
저번에 보았던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사건임을 보았습니다. 3절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은 누구나 경외감이 들 정도의 영광스런 모습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5절에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막 9:5)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그 때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고 몹시 무서워하였지만, 그와 반대로 그의 고백은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하였죠. 저는 이 모습을 보며, 그의 육신은 예수님의 거룩함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의 영혼은 예수님의 영광에 매료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 다스릴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이 우리에게 벅찬 감동과 행복을 주는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스러움이 가득한 변화산과는 달리, 세상의 모습은 참담합니다. 변화산에서는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하신 예수님과 예수님과 대화하는 엘리야와 모세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통하여 그 곳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이 가득한 곳임을 보여주는 반면, 세상은 병들고, 귀신들린 사람들 그리고 헐뜯고 비난하는 사람들 등 사랑이 없고 죄악이 만연한, 악한 영이 지배하는 곳임을 보여줍니다.
2. 믿음 없는 세대
믿음 없고 다툼이 가득한 그들의 모습은 귀신에 지배당하는 세상의 모습이었습니다. 먼저 서기관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야비합니까? 자기들도 고치지 못한 귀신 들린 아이를 제자들이 고치지 못했다고 그들을 헐뜯고 비난합니다. 종교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비방하는 악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음을 봅니다.
귀신 들린 아이를 긍휼히 여기고 그에게 사랑과 관심을 쏟아야 하는데, 그들의 시선은 언제나 자신의 세력을 위협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향하고 있음을 봅니다. 귀신 들린 아이에는 관심이 없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잘못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먼저 나서서 귀신 들린 아이를 치유하기는커녕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그들의 모습은 결코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서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를 비난하고 그 마음에 사랑이 없는 서기관들의 모습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무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논쟁을 말리지 않고 오히려 둘러싸고 논쟁을 즐기는 그 모습 또한 서기관들과 다를 바가 없는 자들의 모습이죠.
제자들 역시 귀신을 내쫓지 못하는 무능력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받았음에도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옆에 계시지 아니하니 믿음이 연약해진 것이죠.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예수님을 믿는 자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믿음 없음이 예수님의 이름을 가려버렸고, 서기관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날 교회의 모습을 보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인터넷 기사에 좋지 않은 기사가 많이 나오고 종교 조사를 보면 교회 신뢰도가 많이 낮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참된 믿음의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평가합니다. 즉, 우리의 모습이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을 회복해나간다면, 우리를 보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믿음의 사람으로 회복되기 위해선, 우리의 본이 되시는 예수님을 닮아야죠.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다시 기억하며,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기를 소망합니다.
3. 예수님
1) 세상의 빛 되신 주님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은 첫 번째 세상의 빛이 되신 주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변론과 다툼 속에 예수님의 등장은 어둠 속의 빛이었습니다. 제자들과 서기관들의 심한 논쟁을 둘러싸고 있던 온 무리가 예수님의 등장에 모두 주목하였죠. 그리고 빛이 어둠을 밝히는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에 그들의 잘못이 드러났습니다.
서기관들과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은 그들의 믿음 없음임이 드러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시는 이유는 그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이 믿는 자가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 속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한 복음의 통로가 되라는 것입니다. 노아가 사람들을 향해 홍수 심판을 예고하며 방주에 타라고 외침 같이 오늘 날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예고하며 복음을 선포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함이 부적절하다면 결코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등장에 온 무리의 시선이 예수님을 향한 것처럼, 우리가 세상의 빛의 역할을 할 때에 사람들은 우리를 주목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빛이 어둠을 밝히듯, 우리는 죄악된 세상을 고발하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 많은 사람을 주님께 돌아오게 만드는 믿음의 일꾼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2) 작고 연약한 자를 돌보시는 주님
두 번째, 우리는 예수님께서 작고 연약한 자를 돌보시는 주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큰 무리가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음을 봅니다. 온 무리의 시선이 논쟁과 다툼에 가득하였죠. 아무도 귀신에 들려 고통당하는 아이에게 시선이 가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님만은 19절 하반절에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말씀하시며, 고통 중에 있는 작고 연약한 아이에게 시선을 향하셨음을 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믿음의 자녀가 갖추어야 할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작고 연약한 자들을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만족이 충족되는 곳에 시선을 향합니다. 그 곳에 때론 자원봉사나 선행의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려하고 자극적인 곳에 시선이 갑니다. 마치 논쟁과 다툼에 시선이 가 있는 대부분의 무리들처럼 말이죠.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작고 연약한 아이에게 시선을 향해야합니다. 이는 가장 연약한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언제나 자기보다 연약한 자들을 위해 도울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품는 은혜가 있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그 자리에 있던 무리의 시선이 예수님과 그들에게 향한 것처럼,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품고 세상에 행할 때, 많은 사람이 우리의 행함을 보고 그들의 시선이 예수님을 향하게 되는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3) 능력의 주님
세 번째, 예수님은 능력의 주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내게 데려오라 말씀하신 것은 그를 고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절을 보면, 귀신이 예수님을 보고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킵니다. 귀신이 아이의 간질을 일으키면서까지 저항하는 것은 자신의 지배권이 마지막에 이를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미 예수님께서 귀신을 이기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리치신 귀신은 상당히 권세가 강한 귀신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은 첫 번째, 아이가 어릴 때부터 귀신의 지배를 당할 정도로 오랫동안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귀신에 들렸더라면 그의 아버지가 아이가 귀신들린 것을 고치기 위해 여러 마을들을 돌아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 실패하였기에 계속해서 귀신이 아이를 지배한 것이죠. 이를 통해서 귀신의 권세가 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그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그 귀신이 아이를 완전히 지배하고 조종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더욱이 그의 정신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그가 말하는 것과 듣는 것까지 통제한 것을 볼 때, 그만큼 귀신의 권세가 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렇게 강한 귀신도 예수님을 보고 두려워합니다. 이는 귀신이 예수님을 보고 간질을 일으켰다는 표현과 26절 귀신이 소리 질렀다는 표현을 통해 귀신이 예수님을 두려워하였음을 알 수 있죠.
예수님의 명령으로 귀신이 빠져나가자 아이의 죽은 것같이 축 쳐져있었습니다. 귀신의 오랫동안 지배를 받으면서 아이에게 가해진 충격이 심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도 죽은 것 같이 보일 정도로 그 아이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섰습니다.
몸을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아이가 바로 일어설 정도로 몸을 회복했다는 것은 현재 의술로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예수님께서 능력의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23절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죠.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를 믿지 않고, 자신의 잣대로 성령의 역사를 축소시킵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결코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었고 그로 인하여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시대 시대마다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시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내십니다. 우리 또한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믿는 자의 행함을 할 때에 우리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할 줄 믿습니다.
4) 믿음의 길로 이끄시는 주님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믿음의 길로 이끄시는 주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적인 단어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19절 그들을 책망하시는 내용도 믿음이고, 아이를 고치신 이유 중 하나도 그들의 믿음 때문입니다.
아이가 나음 받을 때 과정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아이의 아버지에게 책망하신 것을 보십시오. 모두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시며 그들의 믿음을 이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능력의 주이시기에 그 아이를 바로 고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아니하시고 아이의 아버지의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이 집에서 자신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실 때, 기도를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믿음을 강조하셨음을 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 중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 시간을 정해서 기도를 했고 다윗은 수많은 시편들을 통하여 그가 기도의 사람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 역시 하나님과 대화를 할 정도로 기도를 많이 하였고, 그 외에도 많은 성경의 인물들이 기도를 하였죠. 예수님 또한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죠.
우리가 기도를 해야하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기도는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대화를 하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합니다. 기도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임을 봅니다. 사도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말하며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임을 밝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아셨습니다. 언제까지 그들을 옆에서 보살필 수 없다는 것을 아셨죠. 그렇기에 제자들에게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실 때에, 제자들이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 기도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는 우리를 깨어 있게 만들며,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줍니다. 또한 믿음의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며, 항상 기도하는 일에 힘쓰시기를 소망합니다.
특히 오늘 날 우리는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하여 여섯 번을 기도하였죠. 멸망 가운데 있는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기도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였습니다. 오늘 날은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악한 시대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더 필요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서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믿음 없는 세대를 포기하지 아니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그들을 포기 하지 않길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이끄신 것처럼, 우리 또한 주님의 받은 은혜를 선포하며 그들을 주님께로 이끄는 축복의 통로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