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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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3
- 막 10:32~45
1. 예수님이 가시는 길
주님을 따르는 길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저번 주에도 보았지만,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주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버려야하기 때문입니다. 주님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이 우리 안에 남아있다면 우리는 결코 온전히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부자청년에게 결국 그가 가진 많은 재물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는 걸림돌이 된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 안에 주님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있다면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막는 장애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로 다짐을 했다면, 내 안에 가장 우선이 되고 중요한 분은 오직 예수님이라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지 않으면 결코 주님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주님보다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버려야하는 것도 있지만, 그 길은 결코 편한 길이 아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죠. 그 길은 박해가 있고 많은 고난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 33~34절에 자신이 가야할 길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죠. 우리가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막 10: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은 우리가 방금 읽은 것과 같이 수치와 고난의 길입니다. 죽음의 길입니다. 고난의 길을 앞두고 있는 예수님의 발걸음은 비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당할 고난과 죽음의 길 앞에 결코 흔들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며 앞으로 그들의 길을 이끄실 것을 보여주십니다. 오직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길로 당당히 걸어 가십니다.
2. 제자들이 원하는 길
그러나 제자들이 원하는 길은 달랐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37절에 말한 것과 같이 주의 영광중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구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야고보와 요한이죠. 이 둘은 예수님을 가까이서 따라다니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어디든 함께 다니는 자들이었죠. 이들은 5장에서도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이며, 9장에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본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니 야고보와 요한이 영광의 날이 임박했던 것을 알고 예수님께 나아가 구한 것이죠. 아무래도 형제다 보니 베드로는 빼놓고 간 것 같습니다. 자기들이 우편과 좌편을 차지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런데, 이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고난의 길을 가야한다는 것을 말씀하셨는데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시고 세 번째 말씀하셨지만, 전혀 듣지를 않고 있다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그 때에는 두렵고 놀라는 반응을 하였지만, 어느새 예수님의 말씀은 까맣게 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귀 기울이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요? 제자들의 관심사가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심이 다른 곳에 있으니 자기가 듣고 싶지 않는 말은 들리지 않고 듣고 싶은 말만 들리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은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영광의 날이 임할 것이란 그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있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이 생각하는 영광의 날은 이스라엘이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고 다윗 때의 전성기 시절로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다윗 때의 전성기 시절로 회복될 때에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고 그 우편과 좌편에 자기들이 앉기를 원한다는 것이죠. 이에 예수님이 38절 말씀하시죠. 38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막 10: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잔과 세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근거는 ‘잔’과 ‘세례’가 구약에서 사용되는 예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에서 ‘잔’은 괴로움과 수난을 상징하는 말로 많이 사용되었고, 세례 역시 구약성경에서 넘치는 괴로움을 상징하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더불어 문맥상으로 보더라도 우리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가 영광의 길이 아닌 고난의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러나 제자들의 대답은 여전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대답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던 것은 2가지 이유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고난의 길이 어떤 길인지를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면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혁명을 일으킬 정치적인 왕의 등극을 기대하고 있었기에 그에 맞서기 위한 고난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고난은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과 고난을 말씀하시는 것이죠.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받고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는 부당한 고난이라 할지라도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고난은 야고보와 요한이 생각하는 고난과 많이 달랐죠.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잡히자 제자들 모두가 도망갔던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세차례나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알지 못하기에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두 번째,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할 수 있다고 대답한 이유는 그만큼 우편과 좌편에 앉으려는 욕심이 강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누가 고난을 원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오늘날로 생각해보면, 매일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일을 많이 하려고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보통 그렇게 일을 많이 하고 야근을 하는 사람은 출세를 위함이죠. 출세에 욕심이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출세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렇게 일 하지 않죠. 칼 퇴근 하려고 하고, 묻혀서 가려고 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아가서 우편과 좌편을 구하는 것도 그들이 그만큼 영광의 자리에 욕심을 냈기에 가능한 것이죠. 그런 욕심이 강한 자들인데,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런 열망이 있는 자들도 결국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이라는 특별한 자리를 요구했지만, 정작 왕의 대관식이라고도 볼 수 있는 그 십자가 사건의 양 옆에 그들이 아닌 두 강도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39절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시죠.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이 말은 받는 다는 말이죠.
비록 그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는 사건이 있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 성령을 받은 이후 그들의 삶은 정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고난의 길을 감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최초의 순교를 하였고, 요한은 사는 그날까지 복음을 위해 살다 죽는 영광스런 길을 갔습니다. 물론 야고보와 요한만의 이야기는 아니죠. 열 제자도 똑같이 세속적인 욕심을 향하여 가는 자들이었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이 땅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보기에 우리의 모습이 부족해보일지라도 우리가 인내하고 주님을 따라야 할 이유가 여기 있음을 봅니다. 제자들의 삶이 변하였던 원인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사 끝까지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삶은 우리에게 나도 저렇게 부족한 자이지만, 계속 믿음의 연단 받으면 제자들처럼 주를 위해 살다 죽는 영광의 길을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은 우리가 이 땅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의 영광은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달콤한 자극적인 욕망 덩어리이지만, 결국 썩어져가고 사라지는 일장춘몽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세속적인 영광을 42절 이방인들의 정치체계를 빗대어 말씀하시는데, 이는 땅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들은 이방인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죠. 이 땅의 영광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곳이냐? 43~44절과 같이 섬기는 자가 큰 자이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된 자가 으뜸이 되는 곳입니다. 이 땅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원리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43~44절에 말씀이 여러분에게 와 닿습니까? 감사하게도 우리가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 말의 증거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45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온 세계의 주관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들이 무엇인가요? 보통 이 땅의 논리라면 그만한 권세와 영광과 능력을 가진 왕이 오시면 모든 만물의 영광을 받고, 존귀를 받고 찬양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천하만국의 영광을 받으셨습니까? 태어날 때에도 구유에서 태어나시고 태어나자마자 헤롯왕으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작은 마을에서 목수의 아들로 자라시는 서민층의 삶을 살면서 어떤 영광도 받지 아니하셨죠. 또 공생애 기간에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든 자와 약한 자를 고치시는 섬김의 사역을 하셨고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 결과에 대해 빌립보서 2장 9~11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빌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에 내려와 우리를 섬기시고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은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긴 하지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섬김의 자세와 섬김의 결과에 대해서는 오늘 본문 43~44절 말씀과 일치함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섬기는 자가 큰 자임을 말씀하시며 삶 가운데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땅의 나라와 다른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를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것은 이 길이 우리가 가야할 길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돌보시고 그들을 섬기신 것처럼, 우리 또한 주님을 따르는 자로써 우리 주변에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자들이 있으면 그들을 돌보고 섬겨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우리보다 더 연약하고 낮은 자를 섬기기 위해선 우리의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합니다. 내가 잘났다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서는 결코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처럼, 우리 또한 서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그들을 진정으로 돕게 되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이끌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서로를 섬기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4. 결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임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는 길은 고난의 길이나 그 끝은 영광의 길임을 보여줍니다.
고난은 누구나 싫어합니다. 우리 역시 제자들처럼 영광의 길만 좋아하죠. 그러나 고난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싫어하여 그 길을 걷지 않으면 영광 또한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데 오는 고난이 있음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앞에 서서 가시기 때문이죠.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면 됩니다. 비록 우리에게 닥친 고난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앞에 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나아가면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는 주님의 말씀에 잘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해선 주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을 보십시오. 그들은 세 번이나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실 것을 말씀하셨는데도 여전히 세속적인 영광을 구합니다. 그들의 관심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주님의 길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죄된 본성으로 인하여 항상 말씀을 올바르게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말씀이라도 자신들의 욕망과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다르게 해석하는 바리새인들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할 이유는 오직 주님의 말씀만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만 올바르게 알고 있어도 다른 것들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의 나라와 가치관이 다릅니다. 이 땅의 나라는 섬김을 받는 자가 큰 자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 그렇기에 교만한 자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교만한 자의 행동은 위선이고 외식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우리가 정말로 겸손한 마음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보다 연약하고 낮은 자들을 돌보시는 지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 또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 또한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 죄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 땅의 사역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아가야 할 바를 알려주셨습니다. 그 당시 제자들이 이어 받았고, 오늘날은 우리가 이어받았습니다. 제자들이 주님 안에서 사명을 잘 마친 것처럼 우리 또한 주님 안에 있으면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들을 잘 마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잘 기억하고 주님 따라가는 그 길을 기쁨으로 따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