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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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화목하라
- 막 9장 30~50절
1. 화목케 하러 오신 예수님
여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이야기죠.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사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오신 것이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과 우리의 화목을 위해서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멀어진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죠.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눈 뜨고 볼 수 없는 것이죠.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중재자가 되사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죄를 싫어하시는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의 관계를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사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가 들었던 어떤 이야기보다 아름다운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이 비밀을 알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자신의 제자들에게만 알리셨죠. 이는 십자가 대속 사역을 완수하시는 일에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함도 있지만, 제자들의 교육을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할 날이 멀지 않았기에 그들에게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가르치기 위함인 것이죠.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명을 깨달을 수 있도록 계속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모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메시야의 사상이 강했기 때문이죠. 우리가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33~37절에 나타난 사건이죠. 제자들은 계속해서 서로 누가 크냐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모습과 정반대되는 모습이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이 땅의 왕으로써 자신의 위엄을 떨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섬기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구유에서 태어나시고 목수로 자라시고 죽기까지 우리를 위해 헌신하시고 희생하셨습니다.
3. 그리스도인의 삶(화목 하라)
예수님은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알려주십니다. 그 중 오늘 우리가 본문을 통해 살펴보아야 할 단어는 화목입니다.
화목은 그리스도인으로써 우리가 갖추어야 할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화목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아 화목케 하는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화목을 위해 힘써야할 대상에 대해 3가지로 알려줍니다.
1) 성도와의 화목
첫 번째는, 성도와의 화목입니다.
성도는 예수 안에서 형제, 자매이죠. 우리가 가정에서부터 화목하지 않으면, 밖에서도 화목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가장 먼저 화목해야 할 대상은 성도입니다.
오늘 본문에 제자들이 싸우는 것을 보십시오. 그들이 ‘서로 누가 크냐’ 이렇게 싸우는 것이 보기가 좋습니까?
사마천이 저술한 역사서 ‘사기’에 보면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고구려의 멸망이나 백제의 멸망, 통일 신라의 멸망, 고려의 멸망이 내부 싸움으로 인하여 되었음을 봅니다. 그만큼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는 것이죠. 교회가 튼튼히 세워지기 위해선 서로 싸워서는 안됩니다. 화목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가 크냐’ 서로 싸우고 있는 제자들에게 35절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겸손한 자는 주변을 화평케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서로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긴다면, 섬김의 자세가 나오고, 우리가 누군가를 섬길 때 우리 주변은 우리로 말미암아 화평케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화평케하는 자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와 화목하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이 땅을 화목케 하시길 원하십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우리 성도들 간의 화목입니다.
우리교회가 화목한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 몸의 지체가 아프면 다른 지체가 힘을 더 써주는 것처럼, 서로 아끼고 섬김을 통하여 하나 되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2) 세상과의 화목
두 번째, 우리가 화목을 위해 힘써야할 대상은 세상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말하죠.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과 화목케 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과 화목케 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먼저 그들과 화목해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군가에게 가장 효율적으로 설득하기 위하여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에토스는 간단하게 말하면 화자의 이미지를 말하고 파토스는 청중의 심리상태나 감정(공감), 로고스는 논리와 이성적인 근거를 말합니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토스를 중요시 여겼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아무리 진실을 말할지라도 그가 나에 대한 신뢰도나 이미지가 좋지 않으면 설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선 우리가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38절에 요한이 예수님께 여쭙습니다. 38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막 9: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요한의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지 않는 자가 주님의 이름을 외치고 다니는 것은 누가 봐도 잘못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39절 금하지 말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온유의 마음으로 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그들도 구원 받을 대상자들로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마음에도 세상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온유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화목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에 이르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동일한 마음 곧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기를 소망하고 세상과 하나님과 화목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이었던 우리를 긍휼히 여기심같이 우리 또한 긍휼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시길 소망합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우리를 통해 예수님께로 나아가려는 자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41절 말씀처럼 그리스도에 속한 우리에게 물 한 그릇을 떠다줄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그 마음까지 막아버리는 일이 없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전달자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예수 밖에 모르는 배타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임을 말하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기독교에 대한 배타성이 기독교를 욕먹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욕을 먹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자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함으로 인하여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세상의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오직 예수라는 복음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기독교의 배타성을 핑계되지 말고 세상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먼저 우리가 그들과의 좋은 관계를 맺고 더 나아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과 세상 사람들을 화목케 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3) 하나님과의 화목
마지막으로, 우리가 화목을 위해 힘써야할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9장 43절 이하의 말씀을 하시며, 우리가 거룩하게 살기를 권고하십니다. 죄와 구별된 삶 곧 거룩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죄 때문이죠.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인하여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죄의 종의 신분으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싫어하시기 때문이죠. 죄의 결과는 오늘 본문에 본 것처럼 지옥입니다. 지옥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자들이 거하는 영벌의 장소입니다.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불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는 곳이죠.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시지 않기 때문에 죄인인 우리의 형벌은 지옥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기다려야했고, 하나님과 결코 화목해질 수 없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이제는 우리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의 죄가 깨끗이 씻음을 받게 되고 구원을 받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 큰 사랑을 받았는데, 여전히 내가 죄 가운데 머무르기를 좋아한다거나 나의 죄악된 모습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정말 내가 하나님을 믿는 자이고 하나님과 화목을 원하는 자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기에 오늘 본문을 통하여 죄의 결과가 얼마나 끔직한 것인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즘 지옥 애기를 하면 가볍게 듣고 흘리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만큼 영적 감각이 무뎌졌다는 것이죠.
우리가 실생활에서 내가 물 먹던 컵에 누군가 더러운 물을 튕겼다고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은 그 물은 먹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작은 물방울 하나 튄 것으로 인하여 그 안에 있는 깨끗한 물을 버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강하게 말씀하신 것도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죠.
가족 내에 화목이 없고 맨 다툼이 빈번하면, 가정이 어떻게 유지 될 수 있겠습니까?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녀가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자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과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선 우리가 무엇보다 50절의 말씀처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소금처럼
소금은 모든 사람이 사용하는 물질입니다. 모든 사람이 쓰기에 유익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지요. 사람들이 소금을 쓰는 이유는 소금의 짠 맛 때문인데, 소금의 짠 맛이 하는 역할은 부패를 막아주고 맛을 내는 것이죠.
소금이 부패를 억제하기 위해서 그리고 짠 맛을 내기 위해선 소금이 녹아야 합니다. 소금이 녹지 않는 입자 상태에서는 소금이 다른 양념과 조화로운 맛을 내거나 부패를 억제하는 효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이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의 상태 곧 거룩한 사회로 만들어나가기 위해선 우리의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희생하지 않고는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먼저 변해야 내 주변도 변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죄된 본성상 희생과 헌신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시는 것처럼 우리 또한 내 형제들을, 내 이웃을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볼 때, 우리의 몸이 움직이는 것이죠. 단순히 우리의 얄팍한 자존심이나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으로는 결코 우리는 먼저 다가설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사람들에게 섬기기 위해선 우리의 교만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회사에서 회장의 귀한 손님이 왔다면, 회사 직원들이 그 손님에게 최고의 대접을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귀한 손님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섬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 역시 귀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았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의 홍보대사라는 것이죠. 우리가 TV 광고를 보면 그 제품을 잘 팔기 위하여 제품의 장점을 뚜렷이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 또한 삼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의 성품과 그들의 행함은 어떤 지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전달자가 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믿음의 일꾼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소금이 어떤 음식에도 들어가 맛을 좋게 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어디에서나 화목케 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