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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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이끄시는 주
- 막 8:22~26
오늘 우리가 보는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벳새다 맹인을 고쳐주시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21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말씀하신 후에 나온 내용으로 제자들의 마음이 둔한 것과 관련이 되어 있음을 봅니다. 또한 이 사건은 27절 이하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과도 관련이 되어 있는데, 이는 차차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서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도착한 벳새다라는 도시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신 동네입니다. 또한 이 동네는 오병이어 외에도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베푸신 곳입니다. 그러나 정작 이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죠. 오히려 자신의 욕심을 챙기는 데 예수님을 이용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오병이어 사건 이후 예수님께서는 벳새다를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예수님께서 벳새다에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벳새다에 다시 오신 이유는 바리새인의 누룩으로 인하여 마음이 둔해진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제자들은 벳새다에 가면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기적을 다시 기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전 일들을 기억하는 것으로는 예전보다 더 나은 신앙을 회복하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타난 벳새다 맹인을 치유하는 사건은 치유 받은 맹인 뿐만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있어서도 신앙 회복에 있어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오늘 나오는 맹인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증거는 첫 번째, 그가 예수님께 간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소문은 갈릴리, 예루살렘, 이방지역까지 퍼졌습니다. 청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소문을 듣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예수님은 그 당시 핫이슈였습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곳마다 사람들이 따라다녔고, 오병이어 기적이 있을 때에는 남자 성인만 5천명일 정도로 그 수가 어마어마했습니다. 벳새다에서 오병이어 기적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는데, 이 맹인이 예수님을 모른다는 것을 말이 안 될 듯합니다.
즉, 이 맹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지만,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죠. 맹인이라도 예수님께 나아가는 마음이 있다면 사람들을 의지해서라도 예수님께 나아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맹인이 그런 마음이 없었기에 오늘 본문에서도 그가 예수님께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예수님께 간구하는 것임을 봅니다. 그만큼 맹인이 믿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죠.
두 번째, 오늘 나온 맹인이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근거는 예수님께서 그의 손을 잡으셨음에도 그의 병이 낫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22절에 나타난 사람들의 간구를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손 대시기를 구하는 것은 마가복음 6장 56절에 예수님께서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나았음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소문을 믿었기에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셔도 그의 병이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손을 대시면 낫겠다는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데리고 온 사람들이었지, 맹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 없는 맹인을 치유하시기 위해 마을 밖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시는 것은 그와 인격적인 교제를 하시기 위해서죠. 그리고 예수님은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그에게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십니다.
이 때 맹인이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그가 온전히 치유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안수를 하였는데, 그가 온전히 치유를 받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예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 치유를 못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보다 더 어려운 병들도 고치셨습니다. 손을 대지 않아도 말씀으로도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맹인이 치유를 받지 못함은 맹인에게 그만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믿든 믿지 않든 고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왜 한 번에 고치지 아니하셨을까요?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바리새인의 누룩으로 인하여 의심이 있는 상태입니다. 온전히 믿지 못하는 상태이죠. 이는 마치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맹인과 같습니다. 지금 제자들의 상태가 영적 소경인 상태인 것이죠.
예수님을 따라다닌들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한다면,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이 보이는 맹인의 눈과 같습니다. 무엇이 보인들 밝히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이 회복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맹인의 눈보다 그의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보이십니다. 믿음 없는 그를 바로 고치시는 것이 아니라, 그가 믿음으로 영육이 회복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첫 번째 안수 때와 두 번째 안수 때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맹인이 예수님께 첫 번째 안수를 받을 때에는 예수님의 손에 이끌려 나오고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하는 수동적인 자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맹인이 예수님께 다시 안수를 받을 때에는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를 통해 그가 적극적인 자세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동적인 자세에서 적극적인 자세가 된 이유는 그가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그는 자신의 눈을 아무도 고쳐줄 수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소문을 들어도 먼저 나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희망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렇기에 자기의 믿음으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나오는 내용 또한 그가 사람들에 이끌려서 나왔지, 그가 먼저 가자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 나아갈 때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이끈 사람들이 간구하였죠.
그랬던 그가 예수님의 손에 이끌려가고 예수님께 안수를 받고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눈을 뜨자, 무언가 보이기 시작하였고, 그의 자세가 변화되었음을 봅니다.
무언가 보이니 희망이 생긴 것입니다. 비록 온전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이라면 자신을 고쳐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저는 그 사실을 오늘 25절에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라는 단어에서 찾았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예수님의 물음에 겨우 눈을 뜨고 보았던 그가 이제는 예수님이 묻기도 전에 주목하여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에 반응하는 그의 자세야말로 그가 믿음이 생겼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또 한 기지 사실은 맹인이 고침을 받았는데, 제자들 또한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의심 덩어리들이 사라졌습니다. 2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말씀하실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대답함을 우리가 볼 수 있죠.
영적으로 소경이었던 제자들의 눈이 한 꺼풀 벗겨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의심으로 가득찬 그들의 눈이 벳새다 소경 치유 사건을 통하여 점차적으로 주님을 보게된 것이죠. 이처럼 제자들의 의심이 회복된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 다시 확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으로 인해,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행하신 일들이 바알세불을 힘입어 한 것인지,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고 행한 것인지 의문으로 인해 마음이 둔해졌지만, 맹인을 치유하는 사건을 통해 그들이 확신을 얻었음을 봅니다.
그 이유는 메시야의 사역 중 하나가 맹인을 치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4장 18~1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사야의 글을 읽으시는데, 그 내용이 무엇이냐?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또한 마태복음 11장에 세례요한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물을 때 예수님께서 5절에 대답하시는데, 그 내용이 무엇이냐?
“(마 11: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맹인을 치유하심을 통해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심을 보았고, 확신하게 된 것이죠. 그러나 그렇다고 지금 제자들의 믿음이 온전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첫 번째 안수를 통해 나무 같은 것들이 보이는 맹인처럼 제자들 역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지만 예수님께서 왜 오셨는지? 왜 십자가 고난을 당하셔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밝히 보이지 않은 상태인 것이죠.
그러나 그들이 이후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목격하고 성령을 받을 때, 완전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감을 봅니다.
오늘 저는 벳새다 소경 치유 사건을 통해 나누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죠.
예수님은 맹인이 믿음 없는 자임을 아셨음에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첫 번째 안수를 통해서 낫지 않은 그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보다 그의 상태를 잘 아셨기에 그가 믿을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치료 과정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그와 인격적인 교제를 갖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는 그를 위해 눈에 침을 뱉는 행동을 하셨습니다. 고대 시대에서는 침에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침을 이용한 치료하는 일들이 있었죠. 예수님께서 눈에 침을 뱉으시는 이유는 그 믿음 없는 맹인에게 ‘내가 너의 눈을 고쳐주겠다’라는 마음을 전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먼저 맹인의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그에게 안수를 하시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가 예수님의 말씀에 반응하여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무언가 보이기 시작하여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긴 그는 예수님의 두 번째 안수를 받고 눈을 뜨게 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죠.
오늘 본문에 내용에서 맹인이 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예수님께 간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긍휼하심으로 믿음과 두 눈이 뜨게 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제자들 역시 의심으로 인해 마음이 둔한 상태였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입장으로보면 맹인보다 제자들의 상태가 더 심각한 상태인 거죠. 많은 시간 동안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았던 제자들이 여전히 믿지 못하고 의심하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포기하지 아니하셨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포기하지 아니하신 것은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혼내는 모습을 보며, 예수님께서 그만큼 제자들을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들에게 쓴소리까지 해가면서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벳새다 소경 치유 사건 역시 맹인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보이신 기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하나 예수님께 소중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나온 맹인도, 제자들도 그리고 우리도 모두 예수님께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소중한 존재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는 마가복음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계속해서 보고 있습니다. 그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믿음이 없는 맹인도, 의심하는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믿음의 길로 이끄셨습니다. 오늘 내 모습이 예전보다 못하고 부족하다 할지라도 희망을 잃지 않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회복시킬, 아니 더 굳건한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믿음의 주이십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맹인이 예수님의 은혜를 통하여 예수님을 믿고 그의 보이지 않는 눈까지 치료받은 것처럼, 또 오늘 제자들의 마음을 둔하게 만드는 의심의 돌덩어리가 예수님의 행하신 일을 통하여 눈 녹듯이 사라진 것처럼, 우리 또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더 굳건히 믿는 은혜가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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