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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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증거
- 막 6:1~14a
1. 고향 사람들
1) 고향에도 퍼진 예수님의 소문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고향으로 가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발걸음을 향하신 것은 고향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우리가 1장에서부터 보았지만, 예수님의 소문은 갈릴리 전역에 퍼졌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퍼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근거로는 2절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안식일에 회당에서 설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기에 회당장의 추천 또는 지원자를 받는 데, 설교하는 자의 자격조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원자는 최소 구약 성경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했습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모르면 가르칠 수 없는 것처럼, 지원자들은 성경에 대해 아는 자들이어야 했죠. 그래서 대부분의 설교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처럼 랍비교육을 받은 자들이 하였습니다. 그 당시 랍비가 되기 위해선 5살에 율법의 주요내용을 익히고 여섯 살에 회당에 딸린 유치원에 입학하여 열 살 때까지 성경과 구전 법전 등을 익힌 후, 15세가 되면 랍비학교에 입학하여 랍비가 되기 위한 수련과정을 밟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은 보통 이러한 과정들을 겪은 자들입니다. 먹고 살기 힘든 서민층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죠. 예수님이 고향이 아닌 곳에서는 예수님에 대해 잘 모르기에 예수님이 회당에서 가르치는 것에 대해 그렇게 불만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과 기적을 행하심에 놀라며 예수님을 많이 따랐죠. 예수님의 말씀이 소문이 날 정도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좋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에서 예수님이 회당에 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님의 출신과 배경에 대해서 알기 때문이죠. 그들은 예수님이 랍비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자기처럼 서민층으로 살아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회당에서 설교를 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소문이 고향 사람들에게도 퍼졌다는 뜻이죠. 그 당시에도 유명한 설교가나 위대한 랍비가 그 마을에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회당장이 그에게 가서 설교를 부탁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는 그런 케이스로 비쳐집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예수님의 소문이 자신의 고향인 나사렛에도 퍼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죠.
2) 고향사람들에게 배척당하시다
예수님의 소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이 회당에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소와 같이 회당에서 복음을 가르치시죠. 그러자 많은 사람이 듣고 놀랍니다. 2절에 그들의 반응을 보면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말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놀랐다는 말이 꼭 예수님을 받아드린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2절을 보더라도 그들의 말투가 좋게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무시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또는 “이 사람이 받은 지혜”라는 단어들을 보면 예수님께서 스스로 지혜를 가지신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하여 수여된 것이라고 생각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태도는 그들이 예수님의 지혜를 애써 부인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3절의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 “이 사람은 목수가 아니냐.” 말하며, 예수님의 출신을 밝혀 예수님의 가르침을 폄하하였고,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냐” 말하며 가족을 언급하였는데, 그 당시 유대인의 가정은 부친에 의하여 성경교육이 이루어졌기에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냐”라는 말은 ‘예수님이 성경을 어디서 배웠느냐?’ 예수님의 가르침에 회의를 가졌음을 보여줍니다. 그 다음에 열거한 예수님의 형제들과 누이들 역시 예수님을 깎아내리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죠.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도 없고, 목수이고, 그 형제들과 누이들 역시 뛰어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와 함께 나사렛 촌 동네에 같이 있지 아니하냐는 것이죠.
그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권능을 보고 놀랐지만, 예수의 출신과 배경에 대한 선입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배척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3) 예수님의 반응
예수님은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습니다. 다른 번역본에는 예수님께서 그들이 믿지 않음에 놀라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완악함에 놀라신 것이죠. 예수님의 소문이 사실임을 눈으로 보고 놀랐음에도 인정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배척하는 그들의 완악함에 놀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말씀하십니다. 참 씁쓸한 말씀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마땅히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야 할 분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알게 하심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고향을 떠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많은 곳을 돌아다니시며 많은 귀신을 쫓아내시며 많은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고향에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일부 소수의 병자들을 고치셨는데, 고향 사람들이 비록 예수님을 깎아내리고 예수님을 배척하였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옆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이 자기를 믿지 않음에 놀라셨지만, 그럼에도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심을 봅니다. 고향에서 거절당하신 것에 마음을 쏟지 않으심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많은 곳에 돌아다니시면서 가르치시는 이유는 복음을 전파함도 있지만 이후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앞으로 파송하실 것을 예비하시는 것이죠.
2. 제자들 파송
예수님의 고향 배척 사건 이후 제자들을 파송하는 사건이 연이어 등장합니다. 마치 극과 극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잘 알았던 고향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의 선입견으로 예수님을 배척하였던 반면 예수님을 잘 몰랐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 역시 극과 극으로 나뉘어집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불신앙적인 태도로 인하여 그들에게 권능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반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권능을 주심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권능을 주셨다는 말은 먼저 예수님께서 권능의 주인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시는 것이죠. 두 번째 예수님께서 권능을 주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신 이유는 그들이 복음을 잘 전파할 수 있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그 권능이 어떤 권능인지를 보면 알 수 있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권능은 더러운 영을 제어하는 권능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강한 권세를 가진 사단이 악랄한 방해 공작을 펴리라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특별히 귀신을 제어할 수 있는 권능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실 때, 그들에게 명령하신 바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8~9절에 지팡이와 신발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가지고 가지 말라는 것들을 살펴보면 여행에 반드시 필요한 물품들이죠. 양식 그리고 배낭, 옷, 돈은 여행을 가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물건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물품들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실까요?
여행의 목적이 전도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힐링하기 위해서, 놀러 가기 위해서 여행을 가는 것이면 풍족할수록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여행을 할 때에는 풍족한 것이 되려 짐이 될 수 있습니다.
풍족함에 빠져 전도의 목적을 잃어버릴 수 있고요. 안일함에 빠져 전도를 등한시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물질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그들에게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두 번째 예수님은 10절에 제자들에게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자기를 영접하는 더 좋은 집이 있더라도 옮겨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더 풍족한 대접을 한다고 해서 처음에 유숙한 집을 옮겨버리면 처음의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실족하게 될 것이고, 전도의 의도가 마치 돈이나 대접을 바라는 행위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 예수님은 11절에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고 합니다.
발에서 먼지를 떠는 행위는 유대인들의 생활 습관 중의 하나입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방 땅을 밟거나 여행하고 돌아올 때는 발과 옷에 묻은 이방 당의 먼지를 모두 떨어내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을 부정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단호한 행동을 요구하신 것은 복음을 배척하는 지역은 마치 이방인 지역과 같이 멸망의 자리에 놓이게 됨을 알리고 또 복음을 거절한 자들이 그들 스스로에 대하여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파합니다. 주님께서 보내신 그 곳에서 예수님을 전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병자들을 고칩니다.
그러자 14절에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남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배척한 자들과 예수님을 따른 자들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지 않는 고향 사람들에게는 아무 권능을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랐고 특별한 추억이 있는 그 곳에 왜 아무 권능도 행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자신을 배척하는 사람들에게 권능을 행한들 그들의 믿지 않는 완악함만이 드러나기에 예수님께서 권능을 행하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믿는 제자들에게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받은 권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며 예수님을 전파했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한 고향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행보죠.
그러나 권능을 받았다는 것이 꼭 그리스도인의 조건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주의 이름으로 많은 일들을 하였다고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 말씀하십니다.
권능을 받았다고 모두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 권능을 받은들 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데 있지 아니하고, 자기의 이익과 목적을 추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면 권능을 받은 것이 오히려 해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에 권능의 유무는 믿음의 증거가 될 순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 권능을 받은 것보다 확실한 믿음의 증거가 있음을 봅니다. 바로 14절에 그들의 전도를 통해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난 것이지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삶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욕심대로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이 땅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들도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기 위하여 남들보다 배나 더 율법을 지키고 남들보다 더 큰 소리로 기도하고 금식했다는 것을 볼 수 있죠. 자기를 드러내는 자, 자기 영광을 위해서 사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들 곧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 분의 가르침대로 살기 원하는 자들은 삶 가운데 내가 드러나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이 드러납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이 전도 여행을 할 때, 누구의 이름이 드러났습니까? 그들이 자기의 이름으로 고쳤다면 그들의 이름이 드러났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전도여행에서 그들의 유익을 위해 일했다면 그들의 이름이 드러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14절에 보면 그들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났습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죠.
우리나라 이단들을 보면 하나같이 비슷합니다. 성경을 말하고 예수님을 말하나 결국 누구를 드러내느냐? 자기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자기를 드러내기 위하여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예수님의 뜻을 구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 자신에게 맺혀진 열매들을 보면 내가 누구의 소속인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연약하고 부족한 것들이 많더라도 내 안에 성령께서 나를 이끄시고 인도하시고 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신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죠.
반면 내 삶이 여전히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이 내 욕심과 내 뜻을 구하고,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내가 드러나야 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면, 그 삶이 어찌 그리스도인의 삶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말들을 되뇌어보십시오. 내 입술이 누구를 드러내는 지 돌이켜보십시오. 내 마음에 누가 주인이신지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삶에 예수님이 드러나길 소망합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선한 일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고 예수님께로 오는 은혜가 있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듣는 가장 큰 칭찬은 무엇이겠습니까? 저 사람은 누구누구였더라가 아니라 저 사람은 ‘참으로 예수님의 사람이었더라’, ‘예수님의 제자였더라’이지 않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드러나는 삶이 아닌 예수님이 드러나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기억 남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