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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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목자이신 예수님
막 6: 30~44절
양들에게 있어 목자는 정말 중요한 존재입니다. 양들은 목자가 없으면 자기를 지켜줄 보호자가 없고, 자기를 먹여살려줄 공급자도 없으며 자기를 인도해줄 인도자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목자가 없는 양은 불쌍합니다. 우리가 그 사실은 길을 잃어버린 양을 보면, 알 수 있죠. 혼자 길을 잃어버린 양은 늑대나 사자 등 맹수의 목표대상입니다. 그만큼 손쉬운 먹이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자가 있어도 양이 길을 잃어버리면 맹수의 공격대상이 되는데, 목자가 없는 양들은 어떠할까요?
다윗은 시편 23편에 목자와 양들의 관계를 하나님과 자신으로 비유하며 주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가운데 나타난 목자의 역할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의 참된 목자이심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제자들, 돌아오다(30)
예수님의 사명을 받고 전도여행을 떠난 제자들이 돌아왔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제일 먼저 한 행동은 무엇일까요?
30절을 보면,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라고 써져있음을 봅니다. 예수님께 와서 보고를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내용을 보면서 ‘우리의 마지막 때가 이러하겠다’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사명을 다 마치는 날, 우리의 입술이 우리의 행동에 대해 예수님께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한다면, ‘주님, 제가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이만큼이나 남겼습니다.’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에 우리의 입이 간질간질 거릴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물리치고 병자들을 고치고 복음을 전파하였죠. 그들이 가는 곳곳마다 예수님의 이름이 퍼졌습니다. 이처럼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이 퍼지니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빨리 가서 이 기쁜 사실을 예수님께 알려야지’ 생각했지 않겠습니까?
기쁨으로 주님께 보고하는 제자들의 모습처럼 마지막 그 날에 주님께 기쁨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노라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2.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
1) 쉼을 주심
예수님은 수고하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31절 ‘쉬어라’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사명의 끝에는 안식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잠깐 쉬어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아직 그들의 사명이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말이죠. 쉼은 우리에게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쉬지 않고 일할 수 없죠. 쉬지 않으면 능률이 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쉴 때, 2가지 원칙을 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첫 번째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쉬어야 합니다.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쉰다는 것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쉰다는 것은 단순히 육체의 피로를 푸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의 피로를 푸는 동시에 자신의 신앙을 돌아볼 수 있는 훈련의 시간입니다.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기도하며 나의 믿음을 키우는 영적성장의 시간으로 만들 때, 우리는 더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잠깐 쉬어야 합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쉬면 쉴수록 계속 쉬고 싶어집니다. 우리가 연휴 다음날이 월요일보다 힘든 것은 평소보다 육체가 많이 쉼으로 인하여 생활패턴이 바뀌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은 쉴수록 게으른 마음이 생깁니다. 이러한 마음은 결코 신앙생활하는 데 있어서 방해가 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잠깐 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전도여행을 하고 온 제자들에게 쉼을 주시며, 그들의 목자가 되심을 봅니다. 시편 23편을 보면 목자에 대해 잘 아는 다윗이 목자와 양이라는 비유를 통해 하나님과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시편 23편 2절을 보면,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고백하며 목자의 역할 중 하나가 양들을 쉬게 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2) 양식을 주심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갑니다. 그런데 많은 무리가 예수님과 제자들을 보고 몰려오죠. 한적한 곳이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쉬려고 한적한 곳으로 향하였는데, 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불평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그들을 보시며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이유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 같았기 때문입니다. ‘목자 없는 양’이라는 표현은 구약에서도 나오는 표현인데, 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을 말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아니하고 사람의 계명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같이 떠돌아다니며 기댈 곳이 없어 자신에게 나아오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친히 그들의 목자가 되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시며, 그들에게 영적인 양식을 베푸셨습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35절을 보니 때가 저물어갔다고 합니다. 그만큼 많은 시간 동안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은 것이죠.
저녁 때가 다가오자 제자들이 걱정되어 예수님께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말합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말한 까닭은 지금 예수님과 큰 무리가 있는 곳이 빈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들판이기에 그들에게 음식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여러 가지의 의미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목자 없는 양들을 말씀으로 먹이시는 것처럼 제자들 또한 예수님의 제자로서 목자 없는 양들을 위해 살아야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제자의 삶이 목자 없는 양들을 참된 목자에게로 이끄는 일이라는 것이죠. 두 번째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4절에 큰 무리를 보시고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신 것이죠. 그러나 36절에 제자들의 말은 너무 차갑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품고 그들을 가르치신 반면, 제자들은 그들을 마을로 보내어 알아서 먹게끔 하자고 말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말씀하시며,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을 품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제자들의 순종을 보시기 위함입니다.
제자들의 상황은 날은 저물고 빈들입니다. 또한 수중에는 그 많은 수를 먹일만한 음식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불가능한 상황 가운데서도 순종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순종은 중요한 요소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동안 예수님과 다니며,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전도여행을 통해 예수님께서 주신 권능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에는 불가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자들이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 제자들의 대답은 어떠합니까?
31절에 보니,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고도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분명 이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겪는 일상 중에 한 모습이고, 우리 또한 이러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가 흔하게 볼 수 있는 예는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죠. 그들은 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도 물이 없다고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고도 잊어버린 것입니다. 우리 또한 이러한 일들이 수차례 일어나고 있죠.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요나 보십시오. 요나는 이방선원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할 때,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이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아는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도망가죠. 우리 역시 하나님을 잘 압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삶 가운데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잊고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마치 오늘 나오는 제자들처럼 말이죠. 예수님께서는 연약한 제자들을 혼내지 아니하시고 그들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떡이 몇 개 있는 지 확인시키시는 이유는 앞으로 예수님께서 보이실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심을 통해 앞으로 예수님께서 큰 무리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실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양의 목자로써 그들을 영육 간에 먹이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죠.
제자들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소리를 듣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그들에게 나타내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면 먼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큰 무리를 질서정연하게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심을 봅니다.
질서 있고, 쉼이 있고, 풍족한 이 순간은 마치 천국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혼돈한 땅에 질서를 바로 잡으시고 공허한 땅을 충만히 채우시는 것처럼 오병이어의 기적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인지를 나타내 보입니다.
3) 인도하심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에 제자들을 동참하게 하셨습니다. 37절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말씀하신 것부터 39절 ‘제자들에게 명하시고’ 41절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 그로 인해 예수님을 다시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기억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시며, 그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시고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인도하심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심을 보여줍니다.
목자가 자신의 양들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듯이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자신의 사역 가운데 동참하게 하심으로 앞으로의 그들이 해야할 일들을 미리 경험하게 하신 것이죠.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함으로써 앞으로 그들이 나아가야 할 힘을 얻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참된 목자 되심을 보여주십니다. 목자는 양들에게 쉼을 주고 양식을 주고 양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큰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고, 그들의 목자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들을 먹이시고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11절에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는 말씀을 하시며, 자신의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 혜택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우리도 한 때는 예수님을 모르는 자였고, 죄의 욕구에 따라 살아가는 자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고, 우리의 목자가 되어주셨습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나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인을 따른다는 것이죠. 우리가 정말 예수님의 양이라면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3. 성도의 삶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본문 말씀 37절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말씀하심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날이 저물고 빈들인 상황 가운데,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라는 제자들의 질문처럼 우리의 생각으로는 세속적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니죠. 그들을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목자 없는 양처럼 지내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라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떡을 떼어 주시면 그 떡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직접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통해 나누어주시죠. 제자들에게 할 일을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에 동참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명을 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들에게 사명감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목자 없는 양들을 불쌍히 여기심같이 제자들 또한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예수님께로 이끄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 불쌍히 여기는 그 마음은 탕자의 아버지가 탕자가 돌아올 때, 그를 측은히 여기는 마음, 또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마음을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우리 곁에 소외되고 가난하고 헐벗고 힘든 이웃들에게 자비의 마음을 품기를 원합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탕자를 보고 그를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는 것처럼 우리가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마음을 품기를 사모합니다.
우리가 우리 주변에 사람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품고 그들에게 사랑을 행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 헌신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전도여행에서 돌아온 제자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그들의 행동을 보십시오. 우리가 마지막 그 날에 그들처럼 우리도 자랑스럽게 하나님께 보고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들을 보면서 5달란트 받은 자와 2달란트 받은 자가 계속 생각났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결산할 때, 그들의 말을 보십시오.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말하지 않습니까?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그들이 기다렸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재림의 그 날이 기다려지길 소망합니다. 그날에 “주님 제가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어요.” 이 말을 전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길 소망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마지막 그 날에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찬란한 인생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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