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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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억하라
- 막 12:1~12
1. 포도원 농부 비유
1) 배경
예수님께서 11장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성전을 장사터로 만든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시자,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꾀하죠. 그들은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기 위해 질문을 만들어놓고 예수님을 다시 만날 때,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그들의 질문은 ‘네 권위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라는 것이죠.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를 알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질문으로 답변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대답하기 싫어서 질문으로 답변하신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랍비들의 대화방식이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해보고 깨달을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이지요.
예수님의 질문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세례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고 있었는데, 그들의 대답은 ‘알지 못한다’고 시치미를 뗍니다. 그들의 완악함에 예수님 또한 직접적으로 대답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간악한 의도를 아시고 오늘 본문에 나온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하십니다.
2) 포도원 농부 비유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유대인들에게 알기 쉬운 비유였습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이해를 하지 못했던 유대인들과 제자들이 오늘 본문의 비유는 찰떡같이 알아먹기 때문이죠. 12절에 보면 종교지도자들 또한 자기를 가리켜 말씀한 지를 안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오늘 본문 비유는 유대인들에게 쉬운 비유인데요. 그 이유는 예수님의 포도원 농부 비유가 구약의 어느 본문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사야 5장의 본문인데요. 이사야 5장의 비유는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고, 망대를 세우고 술틀을 판 것을 말하며 포도원을 만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나 극상품 포도나무에서 쓰디쓴 들포도가 맺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은 유대 기득권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의와 공의를 베풀기를 원하셨지만, 오히려 그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백성을 압제하고 탈취하는 등 백성을 괴롭히며 울부짖게 만들었다는 것을 드러내며, 하나님께서 유대 지도층을 책망하시는 내용입니다.
이사야 본문을 알고 있는 백성이라면 예수님께서 포도원 비유를 말씀하실 때, 이사야 본문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지를 알았겠죠. 그렇다면 구약 성경을 잘 아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말할 것도 없겠죠.
하나님께서 유대 지도층을 책망하신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하셨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죠. 그 당시 누가 유대 지도자들을 책망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권위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포도원 농부의 과오
예수님께서 2천 년 전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하신 비유의 말씀을 우리가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는 인간의 본성은 거기서 거기라는 것입니다. 우리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는 것이죠. 두 번째는 오늘날 우리가 포도원의 농부라는 것입니다. 9절에 보면 비유의 끝이 ‘주인이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하고 끝납니다. 우리가 다음으로 포도원을 맡은 농부들이라는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그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먼저 포도원 농부들의 잘못 곧 그들이 진멸을 당한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주인을 대적함
포도원 농부들이 진멸을 당한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이 주인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농부들은 사실 주인에게서 엄청난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1절을 보면, 주인은 농부들을 고용하기 앞서 본인이 직접 포도원을 만듭니다. 땅을 파고 돌을 제거하고 포도나무를 심고, 또 산울타리를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습니다. 포도원 만드는 모든 일을 주인이 다 하였죠. 포도원을 만드는 일을 다 한 다음에 농부들을 고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포도원에 고용된 농부들은 오늘날로 말하면 엄청난 혜택과 편의 시설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회사에 입사한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좋은 혜택을 받던 농부들이 포도원을 자기 것처럼 쓰다보니 마음이 변합니다. 주인의 것을 탐한 것이죠. 자신이 포도원의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 2~3절을 보면 주인이 열매가 무르익을 때가 되자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냈는데, 농부들이 그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빈손으로 보내죠.
주인의 명령에 따르지 않은 것이죠. 우리가 왕정시대를 보면, 어명을 어기는 자들을 반역죄로 처형을 합니다. 임금의 명령의 불복종하는 것은 반역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농부들이 자신의 주인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주인에 대항 반항과 대적이라고 볼 수 있죠. 주인의 것을 탐내는 악한 마음이 결국 주인을 대적하게 하는 큰 죄를 낳게 만든 것입니다.
2) 회개를 하지 않음
포도원 농부들이 진멸 당한 두 번째 이유는 회개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농부들은 주인을 대적하는 죄를 짓고도 회개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더 큰 죄악들을 행하죠. 처음에는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빈손으로 보내고, 두 번째는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종들을 죽이죠. 그리고 마지막에는 주인이 사랑하는 아들마저 잡아 죽입니다. 점점 그들의 죄악의 크기가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회개를 하지 않는 것은 죄에 대해 무감각하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해 무감각해진다는 것은 죄를 지을수록 죄를 짓는 것에 대해 거릴 것이 없어지고, 죄에 대한 결과에 대해 무서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죄에 대한 감각이 무뎌질수록 우리는 더 큰 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죠.
점점 큰 죄를 저지르는 그들에게 죄책감이라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아들이 오자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죄도 저지를 만큼 마음이 완악해있음을 봅니다.
이것이 죄에 사로잡힌 자들의 모습입니다. 죄는 우리에게 욕심을 불어넣고 우리가 더 큰 죄악을 저지르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도록 영적인 감각을 무뎌지게 만듭니다. 그렇게 우리를 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죠.
우리가 죄를 경계해야하는 이유는 죄는 끊임없이 우리를 지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죄는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유혹하며, 넘어뜨리고, 죄를 짓게 하며, 우리를 죄 아래 두기 원합니다. 그러면서 죄에 대한 감각을 무뎌지게 만들고 우리가 회개하여 돌아가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마치 목마른 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거죠. 목마른 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해소가 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갈증이 일어나는 것처럼 죄의 지배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 깊은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죄에 대한 감각이 있을 때, 하루빨리 주님께 회개하고 돌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영적 감각이 무뎌지면 무뎌질수록 주님께 회개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의 최후의 멸망입니다. 그리고 기회는 끝없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오신 다음은 기회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오래 참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오래참으셨는데, 회개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다면, 그 사람의 벌을 얼마나 크겠습니까?
기회는 올 때, 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모든 시간이 하나님과 회복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 기회를 내일로 미루지 말고 그 날 그 날 하나님과 회복하는 영적 부지런함이 있길 소망합니다.
3. 우리의 자세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종교지도자들이 듣고 기분 나빠라고 말씀하신 걸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의 죄를 알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너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만한 악한 짓을 하고 있으니,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번에 종교지도자들이 얼마나 악한 짓을 하고 있는 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권세와 지위를 이용하여 백성들을 재물을 삼키고 자신의 배를 채웠습니다. 자신의 전용 제수매장을 만들어 그 매장에서 제물을 사지 않으면 제사를 할 수 없게 만들어 자신의 이윤을 남겼고, 성전세를 내려는 백성들에게 높은 수수료를 받아 폭리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거룩한 성전을 장사터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도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그 곳에 장사터를 만들어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오늘 비유에 나오는 농부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주인이 타국에 가자, 주인이 없는 틈을 타 포도원을 가지려는 농부들처럼 유대 종교 지도자들 또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백성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실 때는 아직 기회가 있다는 뜻이죠.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받을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자기를 향한 말씀인지를 알고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함으로 그들이 악한 농부임을 드러냈습니다.
이는 10~11절에서도 이어지죠. 예수님은 시편 110편 22~23절을 인용하며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언어유희를 즐겨 사용하는데, 돌과 아들의 발음이 유사합니다. 돌은 히브리어로 ‘에벤’이라고 하고, 아들은 히브리어로 ‘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포도원 농부 비유 다음에 시편의 내용을 이야기하면 건축자들이 버린 돌을 건축자들이 버린 아들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즉, 건축자들이 악한 농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죠.
이어서 다시 건축자들이 버린 돌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건축자들은 돌의 전문가이죠. 건축자들은 자신이 만들 건축물에 필요한 돌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런 건축자들이 돌을 버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돌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 또는 우리에게 맞지 않다’라는 것을 의미하죠.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예수님의 노선이 달랐음을 의미하죠. 그도 그럴 것이 유대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은 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성전에서 장사를 함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는데, 장사를 방해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고 자신들이 만든 율법의 조항을 깨뜨리는 등 그들의 왕국을 허무는데, 어찌 예수님이 그들의 눈에 달가워보일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죽인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에게 외면을 받던 예수님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라는 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이라는 말은 두 개의 벽을 연결하며 건물을 지탱해주는 큰 주춧돌을 말합니다.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석 역할을 하는 것이죠. 즉, 예수님께서 새로운 시대 곧 교회 시대의 머리가 되심을 나타내는 말씀이죠.
유대성전시대가 끝이 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가 옴을 나타내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농부들인 것이죠. 그렇다면 새롭게 포도원을 맡은 우리가 갖춰야 할 자세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을 기억하라
바로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가난한 자들의 가산을 삼키고 성전을 더럽히며 자신의 욕심을 위해 행하였던 것은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보고 외우는 성경은 토라로 곧 모세오경인데, 이 모세오경 중 마지막으로 기록된 신명기는 모세가 죽기 전 출애굽 2세대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고별 설교입니다. 그렇기에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현실적인 권면이 들어있는 말씀이라고 볼 수 있죠.
그 신명기에서 그들에게 많이 권면하는 내용은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 분께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기억하는 것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포도원 농부 비유에서 우리는 주인의 성품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주인의 은혜와 자비죠. 포도원 주인은 자신이 정성스럽게 만든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맡깁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신 모든 것을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것처럼 말이죠.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은혜를 모르는 악한 농부들이 자신을 대적할 때에도, 바로 그들을 진멸시키지 아니하고 기회를 주죠.
하나님은 이처럼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없어서 죄인들을 내버려두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하여 오래 참고 기다리심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소망은 우리가 연약하여 죄를 지었을지라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하는 무섭고 인색한 분으로 안다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을까요?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되 사람을 미워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수많은 기회를 주는 것처럼 하나님은 구약 역사 속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배도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회를 주셨음을 봅니다. 그만큼 오래참고 기다리시며 그들이 죄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죠.
이처럼 하나님은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지만, 공의로우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회개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음에도 회개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벌하십니다. 농부들에게 회개란 무엇일까요? 주인을 대적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소출의 얼마를 주인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군대를 동원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있는 주인이 농부들에게 포도원의 소출 얼마를 주라고 하는 이유는 내가 포도원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지으실 때도 그들에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먹지말라는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역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하기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는 자들의 말로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잊고 살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의 결과는 멸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멸망 받지 말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함으로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개념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삶에 어떤 분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갈이 자기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기억할 때, 하나님을 더 잘 기억할 수 있고 그 기억은 오래갑니다.
모세 역시 출애굽 2세대들에게 하나님을 전할 때,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전했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씀과 삶을 통하여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인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
두 번째,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죠. 우리는 그 은혜로 인하여 죄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영벌에서 영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가 지금까지 받았던 그 어떤 것보다 충격적이고, 놀람의 연속이고, 기쁨의 극치이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은혜이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의 왕으로서가 아닌 화목제물로 보내주심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보여주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선진들은 이 소식을 ‘유앙겔리온’ 곧 ‘천사가 가져다준 소식’이다, ‘우리 인생에 가장 기쁘고 복된 소식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표현했는데, 정작 오늘날 믿음의 세대들은 복음에 대해 너무 무미건조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해 무지한 것이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의 크기를 안다면, 우리 안에 날마다 감사와 기쁨이 넘쳐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찬을 통해 ‘나를 기념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 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잊어버린 이스라엘의 말로를 알고 있고, 오늘 본문에 나타난 비유를 통해 포도원 농부가 진멸을 당한 이유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그들과 똑같은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특별은혜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구원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그 어떤 은혜보다 더 큰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앞으로도 이 보다 더 큰 사건이 없고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없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님의 그 은혜를 기억하길 소망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장 예수 그리스도까지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 분을 따르는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