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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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운동을 하라
- 막 8:1~22
운동선수들은 시즌이 끝나면 잠깐의 휴식을 가지고 다음 시즌을 위해 몸을 만드는 운동들을 꾸준히 한다고 합니다. 부족한 부분들을 고치기도 하고, 부상의 재발을 막기 위해 재활운동도 하며 내년을 준비하는 것이죠. 만약 비시즌 기간 동안 달콤한 휴식에 취해 운동을 게을리 한다면, 몸이 굳어 예전보다 못하게 되고 다음 시즌 때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 영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점점 게을러지고 움직이기 싫은 것처럼 우리 영혼 또한 영적인 운동을 하지 않으면 게을러지고 마음이 둔해지는 것이죠.
1. 마음이 둔해진 제자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을 보면, 그들의 마음이 둔해졌음을 봅니다. 우리가 이를 알 수 있는 대목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칠병이어의 사건에서 알 수 있죠. 칠병이어의 사건을 보면 1절에 큰 무리가 등장합니다. 이는 마가복음 7장에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방인을 치유하시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전파함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입니다.
예수님은 그 때, 그들에게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경고하셨지만, 그들은 더욱 예수님을 널리 전파했습니다. 이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에는 금지할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많은 무리가 모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2~3절에 말씀하시죠. 2~3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막 8:2~3)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3) 만일 내가 저희를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도 있느니라”
예수님은 자신과 사흘 간 함께 있는 이방인들을 불쌍히 여기사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자들에게 그들을 먹일만한 풍부한 음식이 있거나 제자들에게 능력이 있어 그들을 먹일 수 있기에 말씀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한 의도는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대답은 어떻습니까? 우리 4절 같이 보겠습니다.
“(막 8: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제자들의 대답은 마치 오병이어 때를 생각나게 합니다. 오병이어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본문에 있는 제자들의 모습은 오병이어 때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임을 봅니다. 오병이어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그들의 아둔함을 봅니다.
두 번째, 제자들의 마음이 둔해진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은 17절입니다. 17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 마음이 둔하냐” 말씀하시죠.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말씀하실 때,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죠.
사실 칠병이어 사건 전에 오랫동안 예수님의 기적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병이어 사건이후 7장에 이방인들의 지역 내에서도 수로보니게 여인의 귀신들린 딸을 고치시고, 귀먹고 어눌한 자를 치유하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많은 이방인이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제자들의 마음이 둔해진 것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2. 마음이 둔해지는 이유
농구선수가 슛 연습을 하지 않으면 골을 넣는 감각을 잊어버리는 것처럼, 우리 마음 역시 영적으로 계속 깨어있지 않으면 둔하게 됩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둔하게 된 이유 역시 이와 같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둔하게 된 원인은 첫 번째, 제자들은 예수님의 행하신 일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 사건을 보았음에도, 그들은 칠병이어 사건 때,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오병이어 때에는 마을과 촌이 가까웠는 지, ‘무리를 보내어 마을과 촌에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말하였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마을과 촌이 먼 광야이기에 “광야에서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오히려 예수님께 퉁명스럽게 말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오병이어의 사건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죠. 그들이 오병이어의 사건을 기억했다면, 예수님의 기적을 소망하며, 예수님께 간구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둔하게 된 원인은 두 번째, 악한 생각이 틈탔기 때문입니다. 칠병이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지만, 17절을 보면 여전히 제자들의 마음이 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둔하게 된 이유는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악한 생각이 제자들의 마음에 틈탔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악한 생각을 알 수 있는 사건이 11~13절에 있습니다. 여기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죠. 예수님께서 수많은 기사와 이적을 베푸셨는데도, 그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우리는 바리새인들이 요구한 표적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요구한 ‘표적’이라는 단어는 ‘세메이온’으로 신적인 권위를 도저히 거부할 수 없도록 만드는 강력한 외적 증거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예수님의 신원을 보장해주는 표적을 구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이들이 어떤 의도로 예수님께 표적을 구했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11절에 나타나있죠. 11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막 8: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먼저, 힐난하다의 헬라어 단어는 ‘쉬제테오’로 논쟁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보고 나와 예수님께 시비를 거는 장면이죠. 그 논쟁의 내용은 뒤에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권능에 대한 논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능력이 하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그걸 증명할 수 있게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요구가 악한 것은 그들의 의도가 불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11절 ‘시험하다’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구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많은 곳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 보거나 들으면서도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의 능력을 부인하며, 그 힘이 바알세불에게서 왔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결국 그들의 목적은 예수님의 평판을 나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들의 요구는 주위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능력이 하늘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는 악한 생각을 심겨주었습니다. 예수님을 의심하게 만들고 믿지 못하게 만든 것이죠.
이는 마치 뱀이 하와에게 꾈 때 쓰는 방법과 비슷합니다. 뱀이 하와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만들고 ‘선악과’에 대한 악한 생각을 넣는 것과 같이, 11절에 나타난 바리새인들 또한 예수님의 능력을 부정하고 예수님이 메시야 되심을 의심하게 만들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악한 생각을 사람들에게 집어넣는 것이죠.
제자들 역시 악한 생각이 틈타고 들어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아시고 15절에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말씀하십니다. 암세포가 전이가 빨리 되는 것처럼 악한 생각 역시 초반에 잡지 않으면 계속해서 커지고 커져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는 악영향을 끼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말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하지만 이미 들어온 악한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소리를 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죠.
예수님께서는 악한 생각으로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제자들을 17~18절 꾸짖으십니다. 이는 그들이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둔하였기 때문이죠. 이처럼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적인 악한 생각이 마음에 틈타면 예수님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게 되고, 마음이 둔해집니다.
3. 영적 운동
우리가 마음이 둔하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영혼의 상태가 병에 걸렸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병에 걸리면 몸이 힘들고 둔해지듯이, 우리 영혼 또한 죄악이라는 병에 걸리면, 우리의 마음이 둔해지게 됩니다. 내 마음의 상태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즐겁지 않고 만족하지 않다면, 우리의 영혼은 죄라는 병에 걸렸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병에 걸렸을 때, 가만히 있지 않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병원에 가든지 약을 먹는 것처럼, 우리 마음 또한 둔해져 있을 때, 조치를 취해야합니다. 영혼의 병을 낫기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죠. 영적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이 둔해졌을 때, 우리가 취해야 할 조치들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9~2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음이 둔한 제자들에게 다시 일깨워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셨냐는 것이죠.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제자들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또한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이 어떤 분이지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께서 모든 이의 주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나타난 칠병이어의 사건은 이방인들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사건을 통해서 유대인들의 목자가 되심 같이, 칠병이어의 사건을 통해 이방인의 목자가 되어주심을 봅니다. 칠병이어 사건은 예수님께서 모든 이의 주이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이 유대인들만이 아닌 온 인류를 위해 오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사역이 온 인류를 위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죠. 엄청난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왔던 이방인들에게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동일한 은혜를 부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값진 것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믿음의 주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악한 생각으로 제자들의 마음이 좋지가 않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예수님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는 것이죠.
예수님은 마음이 둔해진 제자들에게 19~20절을 통해 그들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참여한 오병이어의 사건과 칠병이어의 사건을 말씀하시며, 그들의 연약한 믿음을 도와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이 체험한 기적들을 돌아보며, 예수님께 다시 나아가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의 목자로써 우리가 주님을 잘 따를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십니다. 저번에 우리가 야이로의 사건과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으신 사건을 보지 않았습니까? 두려워하는 야이로와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시며 그들의 믿음을 붙드시는 주님의 은혜를 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보았습니다. 자연 만물을 다스리시며, 악한 영과 사망까지도 다스리시는 주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 가운데 오셨고, 연약한 우리의 믿음을 도우시는 분이라는 그 사실을 기억하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의 마음이 둔해지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의 마음이 둔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악한 생각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깨어 근신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많은 구절이 깨어 있으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흔들렸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의 행하심을 목격한 그들도 흔들렸습니다. 우리라고 흔들리지 않으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불신앙 곧 악한 생각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날은 그 때보다 더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그 당시보다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은 예전처럼 정직하지 아니하고 숨기고, 사실과 거짓을 혼합하여 우리에게 악한 생각을 집어넣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올바른 복음 안에 있지 아니하면, 유혹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시대 시대마다 미혹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보면 다른 복음 곧 믿음 뿐이 아니라 모세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행하여야 구원이 있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요한이서를 보면 그 당시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영지주의자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사를 보면 시대 시대마다 복음을 변질시키는 자들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서 우리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무장해야 합니다. 올바른 복음 아래 서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에 집중해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영혼의 민감함이 있어야 합니다.
19~2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사건으로 제자들을 깨우쳐주시는 데, 이는 누룩 이야기가 나왔기에 예수님께서 떡에 관련된 사건인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사건을 말씀해주시는 것도 있겠지만,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기적은 제자들이 참여한 사건이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제자들 입장에 있어서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사건은 다른 사건들보다 더 생생하고 기억이 오래 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들이 참여했던 사건들을 기억하여, 둔해진 마음들을 회복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혼의 민감함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선 우리가 경험해야 합니다. 삶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느껴야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도 예수님을 드러낼 수 있지만, 우리가 함께 하는 사역들이 있지 않습니까?
전도하고 구제하고 이웃을 돌아보고 섬기는 사역들을 함께 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교회의 하는 선한 일들을 참여함을 통해 영혼의 민감함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간이 안 되면 기도로 동참하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선한 사역들에 함께 한다면, 그만큼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며, 우리의 영혼이 민감하다는 뜻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 오실 그 날까지 주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며, 교회의 선한 사역을 하여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어릴 때에는 뭔가를 받아야 사랑을 받는 것인줄 알고 주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느꼈는데, 선한 사역들을 하다보니 우리가 누군가를 섬기고 베풀 때, 오히려 주님의 사랑을 더 많이 느끼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교회의 선한 일에 참여하면, 정말 큰 은혜를 받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전해보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나를 그것보다 더 많이 더 크게 사랑하셨다는 그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삶 가운데 주님의 사랑을 전하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둔해지지 않기 위해선 우리 안에 영적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귀로만 듣고 끝나거나 머리만 알고 있는 데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삶 가운데 말씀을 실천하여 주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