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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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하지 못한 여인에게 아들 삼손을 주시고 날때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 삼으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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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패했지만 한국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데, 한국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한국민에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으며 찬영했지만, 현재 한국은 결국은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이 말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식민지(노예처럼 부리는 나라)로 괴롭힐때 일본에서 조선에 보낸 마지막 총독이 한국을 떠나며 한말이다.
실제로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일제 강점기 35년을 우리나라가 근대화 할 수 있었던 아주 소중한 시기 즉 일본의 도움을 통해 발전할 수 있었던 시기라고 생각하는 삶들이 꽤 많다. 35년의 식민지 교육이 우리 나라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 생활을 35년 하면서 수없이 많은 고통을 받았을뿐만아니라 문화적으로 정신적으로 길들여졌습니다. 창씨개명이라고 이름도 일본이름으로 바꾸고 학교에서는 한글을 사용할 수 없을정도 였습니다. 전도사님의 할머니께서는 한글을 읽지 못하시는데도 일본어를 기억하고 계실정도였답니다. 그 길고 잔인한 식민지 생활의 영향이 지금까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어서 아직도 친일파 후손들이 부자로 살고 있기도 하고 일본이 심어놓은 생각과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학자들도 의외로 많아요.
오늘 우리는 삼손이야기를 살펴볼거에요.
혹시 삼손에 대해 들어봤나요?
태어나면서부터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길었던 남자. 사자를 찍어 죽이고 나귀 턱뼈하나로 천명의 적을 죽이고 엄청난 건물의 기둥을 두손으로 밀어서 무너지게 했던 힘의 장사로 유명한 삼손 바로 그 사람 이야기 입니다.
삼손이 태어날때 상황이 일제 강점기보다 더 오랫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어요. 13장 1절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악을 행하여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었습니다. 기드온 때는 7년 동안 고생했는데 이제 5배가 넘는 긴 시간을 블레셋이라는 나라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우리의 일제강점기 35년보다 더 긴 세월입니다. 블레셋의 노예처럼 사는것에 길들여졌을 것입니다. 다시 나라를 되찾을 생각을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나라가 원래 있었는지도 잊혀져갈 시간이었습니다. 당연히 다곤신 -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물고기 - 을 섬기며 하나님을 잊어갔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이스라엘 민족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가정이 등장하는데 바로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의 가정이에요.
마노아는 자식이 없었어요. 긴 시간동안 자녀를 낳지 못하여 대가 끊어져서 소망이 없는 집안이었어요. 요즘 사람들은 자기 인생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며 자식을 안 낳는 사람도 있지만 그당시 자식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죠. 마노아의 아내가 아이를 낳을 수 없었기때문이에요. 고대 시대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신에게 버림받고 저주 받았음을 상징하던 시대였습니다.
여러분이 수학여행을 갔는데 저녁에 숙소에서 모두 핸드폰으로 페메보내고 유튜부 보고 인스타 하는데 나만 혼자 공신폰인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남들은 다 비싼 학원다니면서 공부하는데 나는 학습지도 해본적이 없을 수도 있죠.
전도사님이 고등학교를 졸업할때 즘 전자공학과에 들어가는 친구들은 개인 컴퓨터를 가지고 있거나 컴퓨터 학원에 다니는 것이 흔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전도사님의 부모님은 가난한 목사님이었기 때문에 학원도 못다녔고 개인 컴퓨터도 군대 다녀와서 대학 졸업할때즘에나 가질 수 있었어요.
전도사님 어머니는 고아원에서 자라셨는데 어렸을적 비오는날 우산을 들고 학교에 찾아온 엄마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친구가 너무너무 부러웠고 할머니가 되어서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래요.
우리 각자의 삶속에 그렇게 버려진것 같고 부끄럽고 희망이 없어보이는 순간들이 있어요.
3절에 “너는 지금까지 아이를 낳지 못했다" 고 여호와의 사자가 말을 하는데 이 말의 원어를 살펴보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기 때문에 낳지 못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런 마노아의 아내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삼손이란 인물이 태어날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태어날때부터 앞이 안 보이는 사람에게 가서 당신은 곧 보게 될것입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어요.
삼손의 출생은 이렇게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그럴듯한 환경과 조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희망을 찾아 볼 수 없는 곳에서도 시작됩니다.
성경에 이와 비슷한 일들이 몇개 있죠.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엄마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없었는데 태어났어요. 사무엘의 엄마 한나도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주셨죠.
그런데 그것과는 비교되 안될만큼 믿기어려운 출생 이야기가 또 하나 있어요. 이것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출발점이었죠.
바로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였지만 예수님이 태어났죠. 그 당시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혼전 임신으로 돌을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속에서 태어나신거죠. 심지어 예수님이 태어난다는 소식때문에 2살아래 어린 아기들를 모두 죽이는 잔혹한 학살이 자행되기도 했던 상황에서 예수님은 태어나셨어요.
이상하죠. 인류를 구원할 그리스도 메시야라고 하는데....참 여기서 잠깐...
여러분 혹시 예수님을 아직도 신화속의 지어낸 인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는 없죠?
이순신? 세종대왕? 광개토 대왕? 이집트 왕 파라오?
왕의 아들로 권력을 쥐고 태어나지 않았어요. 예수님이 이루실 일이 인류의 구원인데 처녀의 몸을 통해, 마굿간에서 그것도 아주 아주 시골에서 태어나셨죠.
왜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서 구원의 역사는 시작될까요? 우리의 상황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돕는것이 아니에요. 우리의 자격과 조건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더 쉽게 만드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지는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죠.
우리의 상황이나 감정과 상관없이 구원을 이루어 가신답니다.
40년을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고통 당하던 이스라엘민족처럼, 오랜시간 아이를 낳지 못했고 낳을수도 없던 몸을 가진 마노아아저씨 아주머니 부부처럼, 우리에게도 어렵고 힘든 희망이 없다고 느껴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죠 . 친구관계, 공부, 부모님과의 관계등등 남들이 알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소망이 있다는 거에요. 끝이 아니라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구원의 일을 시작하실거에요.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에요.
자기 죄도 모르고 비겁한 기드온을 찾아와주시는 하나님께서 가능성 없어보이는 마노아 아저씨 부부에게 이스라엘 민족에게 삼손을 주셔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 것 처럼 여러분의 어려운 삶속에도 구원의 역사를 시작해 주실거에요.
그러면 지금 전도사님이 하는 이야기의 핵심이
“불가능은 없다. 너의 성적이 오를것이다. 너에게 남친이 생길것이다. 어느 날 니가 바라던 그 한가지 그토록 바라던 그 한가지가 이루어 질 것이다. 또는 너를 괴롭히는 그것이 사라지고 해결될것이다.” 지금까지는 안됐지만 곧 다 잘될거야!
뭐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요?
물론 그럴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삼손의 출생 상황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그것보다 더 값진것이에요.
그게 뭘까요? 그걸 알려면 삼손이 왜 태어났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5절을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사사기 13:5 NKRV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 그는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시작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죠? 맞아요 이 모든 일의 목적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이에요.
구원이 무엇일까요?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나님 없이 그 물고기 신 다곤을 섬기며 자유로운 몸으로 이방 나라의 타락한 문화에 젖어사는 것이 구원일까요?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구원이 그런 구원은 아니겠죠?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는것도 맞지만 그를 통해 다시 하나님을 알고 기억하고 예배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으로 돌아오는것이 구원인것이죠.
우리가 겪어가는 삶의 어려운 문제들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구원이에요. 하나님 없이 문제에만 괴로워하며 인생을 보낼수도 있죠. 하지만 하나님을 싫어하거나, 무시하거나, 관심도 두지 않는 이 악한 세대에 살면서 악한지 조차 깨닫지 못하는 우리에게 자격없는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의 삶으로 돌이키시는 거에요.
아직 여러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것이 뭐 그렇게 대단한거냐며 차라리 내 폰이나 바꿔 주든지, 우리집이나 잘 살게 해주든지, 좋은 친구 좋은 가족을 주든지 하는게 더 좋은 구원 아니냐고 말할 수 있어요.
전도사님도 공부만 편하게 하고 싶고 돈을 벌기위해 학원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는게 힘들어서 누가 돈을 대신 벌고 나는 공부만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하지만 힘든것도 사실이지만 힘든 상황에서 더 예수님을 의지하게 되고 예수님의 도움을 바라게 되는 제 자신을 보면서 감사하기도 해요.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게 된것이 더 감사해요.
오르지 않던 성적이 오르는 것도 구원일 수 있어요. 가난하던 집안 형편이 좋아지는 것도, 사이가 좋지 않은 가족들의 관계가 따듯하게 변하는 것도, 오랫동안 말도 섞지 않고 지내는 친구와의 화해도 우리에겐 구원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맞아요. 하나님께서는 그런 문제에서도 구원해 주실 수 있어요. 하지만 가장 큰 구원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고 믿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실제로 진실로 믿게 되는 일이에요. 진짜 구원은 바로 이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에요.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이야기 하고 마칠게요. 조금 전에 읽었던 5절에 보면 “ 그는 태어나면서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될것이다" 라고 했어요. 구약시대에 나실인이 된다는 것은 일정기간동안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약속을 하고 여러가지 금지된 것들을 지키며 사는거에요.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러가지 행동의 제약들을 스스로 다짐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특별한 시간을 갖는 것이에요.
나실인이란 말은 히브리어 나자르에서 온말인데 분리됨을 의미하는데 세상고 분리되어 하나님께 더 헌신하며 사는 시간을 갖는 것이죠. 나실인은 그래서 세상에서 분리된 그리스도인 을 상징하기도 해요.
그런데 삼손은 구약시대 사람들 처럼 자기 스스로 나실인으로 자기를 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처음부터 나실인으로 정해버리셨어요. 엄마 배속에서 삼손이 어떤 자격을 갖추고 있었을까요? 그저 하나의 세포일 뿐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나실인으로 정하고 그렇게 불러주신것이죠.
그런데 성인이 된 후 삼손의 삶을 보면 나실인으로 지켜야할 금기사항들을 지키지 않고 살았어요. 하나님으로 부터 복도 받고 마블시리즈의 히어로같은 엄청난 힘도 받았지만 민족구원의 사명을 위해 일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힘을 맘껏 쓰며 하고 싶은대로 하며 살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나실인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는 나실인이었죠. 왜냐면 하나님이 나실인으로 부르셨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삼손의 망나니같은 삶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통해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놀라운 모습이 이후 성경에 기록되어있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 나실인이죠. 비록 지켜야 할것을 다 지키지 못하고 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구원을 이루어 가시며 결코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의 신분을 다시 박탈하거나 당신의 자녀 삼으신 것을 취소하지 않으시는 분이세요. 날때 부터 삼손이 나실인 이었던것 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이 있기전부터 자녀로 삼으시기로 작정하기고 자녀로 부르셨어요. 그리고 그 자녀의 신분은 우리의 조건과 자격과 상관없이 주신것이기 때문에 은혜이고 변함이 없어요. 하나님의 은혜는 끝이 없어요. 언제나 변함이 없어요. 그래서 감사할 수 있는 거에요.
말씀을 맺을게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에서 삼손이 태어난것 처럼 우리의 어려운 상황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시작 될 수 있어요.
하나님의 구원은 잘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는 삶을 사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가정의 나실인 우리반의 나실인 우리 교회의 나실인으로 불러주셨어요. 그리고 부족한 모습이 있을지라도 그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분이세요.
이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우리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감사할 수 있는 이유에요.
이런 구원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을 믿는 아둘람교회 청소년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할게요.
이 하나님을 실제로 믿어서 어려운 일이 닥쳐와도 소망을 가지고 잘 이겨내길 기도할게요.
같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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