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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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ges 19:11–21 NKRV
11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이 갔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십시다 하니 12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이방 사람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 13 또 그 종에게 이르되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가서 거기서 유숙하자 하고 14 모두 앞으로 나아가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 해가 진지라 15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아 들어가서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 16 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 17 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넓은 거리에 나그네가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18 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 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19 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여물이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인 우리들과 함께 한 청년에게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하는지라 20 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21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동병상련

어느 날 갑자가 큰 시련을 당했을 때 사람들이 그에게 찾아와서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하지만 그들의 어떤 이야기도 위로 보다는 아픔을 증폭시켰죠. 욥의 이야기 입니다. 친구들이 건넨 말들은 욥이 당한 슬픔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로한다고 하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고 상처만 주는 경우가 생깁니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만 잡아 주는게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오히려 상처가 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적이 있거나, 같은 아픔을 경험해본 사람의 이야기는 큰 힘이 됩니다. 사람들은 동병상련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합니다. 그곳에서 발견된 경험담이 힘이 되고, 소망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아파봤기 때문에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동병상련의 신앙 : 나그네를 영접하기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는 삶의 원리도 같습니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함께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이 함께 나옵니다. 이것은 '누가 나의 이웃인지'와 동시에 '우리가 누구에게 이웃의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동시에 말하는 겁니다. 누구든지 나의 이웃이 될 수 있고, 누구라도 우리의 손님으로 맞이 해야 합니다. 신명기 10:19에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나그네로 살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나그네와 손님의 심정으로 그들을 대접해야 하는 것이죠.

신앙의 원리가 깨진 시대

하지만 오늘 본문에는 이와 같은 삶의 원리가 깨진 당시 사사시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앞서 나온 ‘제사장 미가와 단 지파의 모습’ 이 사사시대의 영적 타락상을 보여준다면, 19장에서 나오는 ‘어떤 레위 사람과 그의 첩’에 관한 이야기는 그 당시 도덕적 타락상과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공동체 의식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여자가 간음을 하면 돌로 쳐죽여야 하는 것임에도, 이 레위인은 베들레헴에 사는 장인에게로 가서 여자를 집으로 데려오고자 합니다. 이렇게 하니 그 장인이 크게 기뻐했고, 이 레위인은 극진한 대접을 받고 나서 첩을 데리고 길을 떠나게 됩니다.

나그네를 외면하는 사람들

이 레위인은 저녁이 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인 집을 나서서 길을 떠납니다. 사사 시대는 여행이 쉽지 않았고 야간 여행은 위험의 요소사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른 아침이 아닌 오후에 여행을 출발한다는 건 지혜로운 판단이 아닙니다. 그래도 이 레위인의 마음에는 목적인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 가는 중 베냐민 지파의 영역에 도착하면 자기들을 받아 줄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방인의 땅은 위험하고, 동족의 땅은 안전하다고 생각한거죠.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곧 해가 졌고, 이 레위인은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레위인 일행이 기브아에 이르렀을 때, 해가 져서 성읍 거리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나그네를 선대하는 민족이었고, 또 이스라엘은 한 형제라는 사실이 율법에 계속 강조되어 있지만 지금 베냐민 지파의 땅은 이방인들보다도 못한 비정한 사회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와해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나그네로 살면서 나그네를 영접하라

마침 그곳에 살고 있었던 에브라임 출신의 한 노인이 일을 마치고 늦게 귀가하던 중 그들을 발견하여 사정을 듣고서는 자기 집으로 영접하여 먹고 마시게 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 노인도 사실은 베냐민 성읍에 임시로 살고 있는 에브라임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거처를 가진 그 땅의 사람들도 나그네를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 오히려 나그네로 살고 있기에 또 다른 나그네를 영접하는 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원리가 됩니다. 삶의 원리가 깨진 당시 사사시대의 모습은 우리가 사는 시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인격적으로는 무정하고, 영적, 도덕적, 윤리적으로는 타락했으며, 공동체보다 개인이 우선시 되고 있잖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을 이끌어가는 삶의 원리는 우리가 은혜를 먼저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고, 동시에 나도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에게도 이 은혜가 꼭 필요하다는 걸 알고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무정한 시대를 이기는 힘 : 환대

오늘 본문은 우리 삶의 실상이 나그네라는 걸 기억하게 해 줍니다. 이 노인이 의미심장하게 했던 말을 보세요. 20절에 “그대들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내 삶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당시 그들이 함께 처해있던 잔인하고, 포악한 사사시대의 상황을 외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사는 우리가 다른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온기를 전하는 방법입니다. 코로나로 연말인데도 연말 분위기가 잘 안 나죠. 해가 지고 저녁이 되어서 각자의 처소로 문을 닫고 들어간 기브아 사람들처럼 무정하기 쉬운 시기입니다. 무분별함과 어리석음, 불신과 불순종으로 이 무정한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가 공급되는 유일한 길이 바로 환대입니다.

우리의 힘

자신의 집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했던 것도 다름 아닌 또 한 사람의 나그네였습니다. 이것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지금 손 내밀어야 하는 이유는 다른 것보다 ‘우리도 역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나그네가 나그네의 사정을 잘 알 듯이,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그 사람을 통해서 다시 은혜가 흘러갑니다. 연말 소외되고, 외면당하는 우리 이웃에게 먼저 은혜받은 사람으로서 그 은혜를 나누고, 영원한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나그네로서 다른 나그네에게 손을 내미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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