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새벽] 가장 가치있는 천국을 사모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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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482 참 즐거운 노래를
본문 마 13:44-46 (신p.23)
사랑이 충만하신 아버지 하나님, 새 아침을 우리에게 허락하시어 이 시간 주 앞에 나아와 주님께 영광돌리며 찬송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주어진 환경과 시간 속에서 늘 하나님을 기뻐하며 영광 돌리는 삶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주일을 허락하셨사오니 오늘 하루를 통하여 천국잔치를 경험하는 주일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시고, 우리의 예배를 통하여 하늘의 풍성한 위로와 복을 경험하는 시간만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마13장에서 천국에 대한 말씀을 비유로 하신 이유는, 주님께서 하늘의 비밀을 그분의 백성들에게 이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거나, 혹은 어떠한 진리를 숨겨두시기 위함이 결코 아니다. 이를 두고 특정집단들은 성경에 구원에 이르는 진리가 암호처럼 숨겨져 있으며, 이를 해독해야 숨겨진 진리를 깨달아 구원에 이를 수 있는데, 오로지 자기네 집단에만 진리를 찾을 수 있는 해독의 열쇠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택하심을 입은 성도들이 진리를 명백히 알기를 원하시고, 쉽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가능한 한 쉽게 설명하시고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설명해 주셨다. 그러나 어리석은 우리는 하늘의 진리를 전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청중들의 현실을 고려하여 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때로 ‘비유’ 라는 기법을 사용하셔서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비유는 당시 이스라엘에게 이해하기에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44-50절에서 예수님은 천국의 측량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3가지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다. 특히 오늘 함께 봉독한 44-46절까지의 말씀인 보화의 비유와 진주의 비유는 천국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은 외세의 침략이 잦았고, 또한 당시에는 재산을 믿고 맡길만한 은행이 없었다. 전쟁이나 침략이 일어날 경우 보물을 땅에 묻는 일은 자기 재산을 지키는 편리한 방법이었다. 침략자들은 항상 지역주민들의 재산을 훔치고 약탈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따라서 전쟁이 시작될 징후가 보이면 그 지역 사람들은 위험한 시기가 지나고 난 후 다시 찾아가 파낼 수 있도록 집안에 있는 보화들을 토기에 담아 땅에 묻었고, 그 장소를 잘 기억해 두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보물을 땅에 묻은 자들이 전쟁이 끝나고 고향집으로 귀향하는 일들이 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로 도피한 땅이 마음에 들어 거기에 정착을 하거나, 아니면 오랜 시간이 지나 늙어 죽거나, 아니면 거의 대부분은 전쟁 중에 죽었다. 따라서 시간이 흐르고 그 땅의 주인은 바뀌었고, 새로운 집주인은 농부들을 고용해서 자신의 밭을 경작하게 하였다. 고용된 농부들은 주인의 밭을 갈면서 결실 중 일부분을 자신의 소득으로 받을 수 있었다.
본문의 비유에 등장하는 사람은 집주인에게 고용된 농부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밭에서 성실하게 농사를 지었다. 그러다가 그 주인의 소유된 밭에서 귀한 보화를 발견하게 된다. 밭의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 보물이 최초발견자의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밭의 현 소유자의 것이라는 사회적 규약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귀한 보물을 발견하자마자 그대로 다시 땅 속에 묻어둔다. 어쩌면 누구도 발견하지 못하도록 더욱 그 보물을 잘 숨겨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 그 보물이 묻혀 있던 밭을 사버린다. 왜냐하면 그 보화의 가치는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사들여도 아깝지 않을만큼 큰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해 되시는가?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보물이 숨겨져있던 밭을 통채로 산 것처럼, 천국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얻을만큼 대단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 비유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꾼'에 대한 것으로 앞에서의 '밭에 숨겨진 보화' 비유와 같이 천국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얻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본문에서 '장사꾼’는 '도매 상인'을 가리킨다. 이 사람은 가장 좋은 품질의 진주를 얻기 위해 전국팔도를 돌아다니고 있다. 예수님 당대에 진주의 가치는 오늘날 극상품 다이아몬드와 비슷한 가치가 있었다. 최상급 진주의 가치는 어떤 보석과도 견줄 수 없었다. 따라서 좋은 진주를 갖고 있다는 것은 큰 재산을 소유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당대의 잠수부들은 오늘날처럼 수경이라던지, 몸을 잘 보호해주는 잠수복이라던지, 산소 호흡장치라던지, 이러한 생명안전장치도 없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진주를 채집했다. 아름다움과 크기를 잘 갖춘 완전한 진주 하나는 엄청난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진주 도매업자가 좋은 진주를 찾기 위해 전국팔도 이곳 저곳 열심히 찾아다닌다. 그러다가 극상품의 진주를 발견한 후에는 자신이 가진 모든 소유를 팔아 그것을 사게 된다. 이는 그만큼 그 진주의 값어치가 지금 내가 가진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은 이 두 가지 비유를 통해서 천국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더라도,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니,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가치요, 가장 최고의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가? 천국이 얼마나 복되고 기쁜 곳인지, 그 능히 측량할 수 없는 큰 가치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과연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며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하였고, 시작되었으며, 다가오고 있으며, 장차 완전하게 임할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그렇게 고대하고 갈망하며 기뻐하고 소원하며 살아가고 있느냐 라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그 천국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여전히 세상의 것들을 탐하며, 그 나라가 주시는 무한한 기쁨보다는 이 세상의 잠시 잠깐의 쾌락을 더욱 즐기며, 그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신앙의 여정을 살아가기 보다 잠시 잠깐 이 땅의 현실적인 문제만에만 집중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가장 최고의 복 보다 단지 이 땅에서 소원이 이루어지는 현세의 복만을 더 고집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바로 우리의 기도제목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가 평소에 하고 있는 기도제목이 우리의 가치관을 반영해 주기 때문이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두고 기도하는가.
장래가 총망되던 어떤 젊은이가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며 장차 나라에 큰 일을 해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사람의 뜻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그리고 남미를 향한 하나님의 강력한 부르심을 느낀다. 그는 약혼자와 함께 에콰도르 선교사로 파송된다. 그들은 결혼하고 퀴추아 인디언 사역을 계속하다가 당대 복음의 불모지이자 가장 잔인한 부족으로 알려져있던 아우카 족에게로 들어가서 선교할 계획을 세운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아우카 족과 친밀도를 높이고자 경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니며 필요한 생필품들을 그 부족에게 떨어뜨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들은 결국 경비행기를 타고 아우카족의 해변가에 착륙을 하게 된다.
시간이 얼마 흐르고 선교본부에서 이 선교사 일행들이 연락이 닿지 않자 그들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이들을 보내게 되는데, 얼마 후 그곳 해변에서 다섯 명의 선교사 청년들이 도끼로 무참히 살해된 것을 보게 된다. 물론 그들의 호주머니에는 각기 권총이 있었지만, 자신들이 신변을 보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위해 순교를 선택했던 것이다. 당시 미국 언론은 이 사건을 다루며 얼마나 분노했는지 모른다. 언론은 장래가 총망받던 이 청년들의 죽음에 대해 불필요한 낭비라고 하였다.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는 미처 복음을 전하지도 못하고 죽은 남편이 적어왔던 일기와 글들을 모아 출간하였고,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전능자의 그늘’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이 글을 적을 때 남편은 고작 19살이었다. 그 일기에서 매순간 그가 기도했던 한 대목을 말씀드린다. ‘하나님, 이 부족한 나무토막 같은 인생에 주의 불을 붙여주소서 내가 주를 위해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나의 삶을 주께서 소멸시켜 주십시요. 이 몸은 오직 주님의 것입니다. 나는 장수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바로 주님과 같이 완전하고도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제 삶이 하나님을 아는 가치를 드러내는 전시품이 되게 하소서’ 이러한 기도제목으로 늘 기도해왔던 19세 청년, 짐 엘리엇은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서 그분의 뜻대로, 그분과 함께 풍성한 삶을 살기를 구하였던 것이다.
많은 이들은 말한다. 짐 엘리엇과 같은 부류들은 어리석은 광신도라고. 뭐든 적당히 믿어야 한다고. 그러나 짐 엘리엇은 고작 19세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의 영원한 삶을 향한 갈망,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충만한 기쁨의 삶을 향한 갈망이 결코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영원한 기쁨, 충만한 영광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의 잠시 잠깐 지나갈 것들을 기꺼이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일이다. 곧 사그라들 것들을 희생하여 영원한 것들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더 가치있는 일이지 않겠는가.
말씀을 정리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신자는 이 땅을 살아가며 여러 어려움을 겪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과 만족 속에서 살아간다. 또한 장차 임할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그 나라로 인하여 누리게 될 충만한 기쁨과 만족을 사모하며, 지금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아가지만 영원한 우리의 본향만을 갈망하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이 땅의 것들로 나를 채우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이 땅의 허망한 것들로 내 속을 꽉 꽉 채우기 보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그 나라로 누릴 참된 만족과 기쁨을 위하여 오늘을 살아내는 자들이다. 왜그러한가.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큰 복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천국보다 더 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다’ 라고 선언하셨다.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더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고, 마침내 우리의 신랑되시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에 완전하게 임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며 부분적으로, 특별히 우리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맛보고 경험한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나라를 조금씩 맛보고 경험하면서 더욱 우리에게 완전하게 임할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붙잡기 위해 영원한 것을 뒷전으로 미루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말자. 곧 사라져버릴 것들을 소유하기 위해 지나치게 시간낭비도 하지 말자. 오히려 모든 것들을 희생하고 버리더라도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영원한 만족을 가져다 줄 천국을 사모하고 갈망하며 바라보자. 주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이 영원한 천국보다 더 가치있고, 더 값지며, 더 고귀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날마다 이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한다.
기도하자.
우리의 삶은 최고로 가치있는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며 살고 있는가? 어쩌면 곧 사라질 것들에 지나친 미련을 가진 채로 시간을 낭비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값진 천국을 늘 사모하며 살아가는 우리 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자. 오늘 거룩한 주일로서, 예배 중에 그 영원한 나라를 맛보게 하여 주시고, 이를 통해 우리의 본향을 더욱 더 사모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