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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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1.제자들도 도망 간 때에 예수님 근처에 있는 자, 그리고 따르는 자들
2.울어라
왜 자신을 위해 울지 말라고 하셨는가?
왜 울라고 하셔는가?
누구를 위해 울어야 하는가?
12:23ㅁ
1.제자들도 도망 간 때에 예수님 근처에 있는 자, 그리고 따르는 자들
-시몬 / 디아스포라 /
-백성들
-여인들
눅23:26-27 “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울어라
왜 자신을 위해 울지 말라고 하셨는가?
왜 울라고 하셔는가? / 우리의 죄 떄문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 울어야 하는가?
(눅19장
눅 19:41-44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눅19:45-48 “45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48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누구를 위해 울어야 하는가?
3. 우리는 요즘 무엇을 위해 울고있는가?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울고 계신가요?
우리와 우리 자녀를 위해 우리도 울 때가 많아요.
시험을 망쳐서 울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져서 울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상처를 주고 받으며 울기도 하죠
예수님은 십자가에 가시면서도 우리를 생각하시고
이렇게 말씀해주시는 거에요.
눅23:28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교회와 영혼들을 위해서
-내 영혼을 위해서
예수님 자신을 위해 울고 있는 여인들에게
어찌 저리 말씀하셨을까?
예수님을 위하는 마음은 어찌해야하는가?
요즘 마음.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며 기도를 해요.
-우리 아이들이 거듭나게 해달라고.
-우리 아이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특별히 자녀들, 손주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시면서 담당 부서의 교사들, 담당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개도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는다잖아요.^^
특히나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청소년기에 사춘기가 많잖아요.
그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도 오지게 안 듣고
속을 썩이고
내 말 들으면 너무 좋을 텐데!
엄마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데!
그쵸?
어머니의 기도가 왜 중요할까요?
아이들이 어머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은 하나님의 것.
특별히 더 기도가 중요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자녀를 다 책임질 수 없음.
돈도 영원하지 않고. 자녀가 더 잃을 수도 있음.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람.
삼상12:23 “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29 보라 날이 이르면. 예수께서 당신의 가르침을 강조할 때 흔히 사용하신 단어 ‘보라’(이두)로 시작되는 구절이다. ‘날이 이르면’이라는 표현은 종말에 관한 언급 때 사용되는 상투어 ‘때가 이르리니’(17:22), ‘그 날에’(17:31, 21:23) 등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날’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메라이’ 앞에 정관사를 사용하고 있지 않아 ‘날’이 언제인지 한정짓지 않는다. 따라서 이 ‘날’을 A.D.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함락을 예언한 것으로 국한시켜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를 종말적 관점에서 해석하며 그 종말은 현재적이면서 미래적인 것으로 이해할 때 역사 속에서 내리는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로도 이해할 수 있다. ‘날’이 복수로 언급된 사실은 한 시점의 심판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최종적 종말의 때까지 계속되는 현재적 심판의 날들이라는 의미를 뒷받침해 준다.
수태 못하는 이와 … 복이 있다 하리라. 21:23에서 예수께서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는 그 반대로 수태 못하고 해산하지 않고 젖 먹이지 못한 여인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축복 선언을 하신다. 결과적으로 21, 23에서 처럼 아이 밴 여인들과 젖먹이를 둔 여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는 저주이다. 이렇게 완곡어법을 쓴 것은 계속적으로 저주하는 문구를 사용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 같은 저주 선언은 다산(多産)과 많은 자녀가 축복이라고 믿었던 당시의 가치관으로 미루어 보건대 가히 충격적이라 할 만하며 현재의 사고방식으로부터 근본적으로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살아남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로 이해된다. 따라서 그 날에는 그리스도의 보혈(寶血)을 의지하여 전혀 새롭게 변혁된 사람만이 요구되고 살아 남게 되리라는 의미이다. 실제의 한 예로서 A.D.70년에 로마 장군 디도(Ditus)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을 때도 여자들과 아이들이 미처 도피하지못하여 많은 화를 입었다.
30 신들에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심판과 저주의 날에 저주를 받게 되는 자들이 그날의 고통이 너무 심하여 산이 무너져 자신들을 덮어 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이다. 이 같은 묘사의 강조점은 그날의 심판과 저주의 가공할 무서운 상황에 있는데 이 호소의 목적은 호 10:8에 근거하여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첫째는 자기들이 당하는 고통을 가려주고 막아 달라는 뜻이다. 반대로 둘째는 고통이 너무 심하여 차라리 산이 무너져 내려 자신을 덮어 죽임으로써 고통을 잊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계 6, 16). 아무튼 강조점은 심판과 저주의 무서운 고통에 있다.
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푸른 나무는 살아서 생명이 있는 나무이다. 그에 비하여 마른 나무는 죽어서 생몀이 없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땔감으로 쓸려고 할 때 푸른 나무는 건드리지 않고 마른 나무를 벤다. 그런데 푸른 나무까지 베어 버린다면 마른 나무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또한 푸른 나무는 싱싱하고 힘찬 것으로서(시 1:3 참조) 무죄한 이미지를 나타낸다. 그리고 마른 나무는 늙고 힘 없는 것으로서(렘 5:14, 유 12절 참조) 거짓되고 죄악스러운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푸른 나무를 예수로, 마른 나무를 불의한 유대인으로 대비시켰다고 보는 견해가 가장 일반적이다(Bengel, Meyer, Godet, Bruce). 혹자는 푸른 나무를 예루살렘의 융성 시기로 보고 마른 나무를 예루살렘의 쇠퇴기로 비유하여 그 멸망을 예고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Gilmour). 또한 쉥크(Schenk)의 경우는 일반적인 죄인들과 예수를 처형하고 선지자들을 처형했던 죄많은 유대인들을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로 비유했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본 절은 심판의 엄격성과 가공할 위력을 보여 주려는데 강조점을 둔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