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 대림절 (요6: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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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6:32-42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오천명을 먹을시고 난 뒤의 사건입니다. 예수의 표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을 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통해서 오천명쯤 되는 무리를 먹이신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보고 이 무리들의 반응은 14절의 말씀처럼 예수를 보면서 “이 사람이 정말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다”라는 반응을 하게 되고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 선지자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무리들의 반응을 보시고는 그들을 피해서 도망하셔서 산으로 떠나십니다.. 무리의 반응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을 통해서 예수님이 원하셨던 무리들의 반응은 이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께서 오천명을 먹이신 표적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게 되었고, 잘못된 이해는 이들을 잘못된 반응과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이 오천명을 먹이신 표적의 진정한 의미를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시는 본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는 무리들을 보시면서 26절에서 너희들이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무리들의 목적은 결국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함입니다..
예수가 누구인가? 예수는 진정 어떠한 분인가? 하는 것 보다… 예수가 주실 것… 먹을 것… 채워줄것을 기대하며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서 마치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켰듯이 자신들을 로마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시켜 줄 자유를 가져다 주고, 만나와 물과 같은 경제적 풍요를 주고, 모세가 율법을 준 것 같이 율법에 의한 사회 정의를 실현 시켜줄 메시아로 잘못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자유요 경제적인 풍요요 사회적 자유를 얻기 위해서 예수께 몰려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이 진정한 의미의 표젹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떡을 먹게 할 정도로… 이들의 배를 불리기 위할 정도로 오신 메시아가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주시고자 하는 것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리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것을 주시고자 오신 것을 말씀하십니다. 다시 목마르고 다시 배고플 것이 아니라…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고 다시 배고프지 아니할 것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떡이 바로 “자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3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1]
[1]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요 6:35.
49절의 말씀처럼 만나를 먹은 출애굽 세대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잠시동안의 안식과 생명을 주었지만 그 만나가 영원한 영혼의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오천명에게 떡을 먹이신 이유는 그들에게 예수께서 어떤 분인가? 예수께서 진정으로 주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떡과 빵은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육신이 배부르는 것일 지라도 그것을 통해서 어느정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광야에서 굶주린 오천 명을 먹인 것은 자신이 인간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분이다! 하는 것을 표적한 것입니다… 다시 배고픈 생명이 아니라 신적인 생명… 영생을 줄 수 있는 분임을 표적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계속 말하지만 예수님은 위로부터 온 말씀이기 때문에.. 위의 것을 가져다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적인 생명이요…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러한 생명을 가져다 주는 자라는 의미에서 자신을 “하늘에서 온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구체적인 내용이 53-55절에서 자신의 살과 피가 영생을 주는 양식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예수께서 오천명을 먹이신 표적을 통해서 보여주시고자 한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께서 위로부터 나는 생명을 주실 수 있는분이다… 진정한 만나가 되신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배고픔만을 위해 따르는 자들은 이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42절에서 어찌하여 저가 하늘에서 내려 왔다 하느냐….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하늘의 것에 관심 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현재의 것,… 지금의 나의 배고픔과 나의 잘됨과 나만의 만족을 채워줄 메시아가 필요했기에… 예수를 따랐을 뿐이지.. 예수께서 영생에 대해서. 말씀하셨을 때는 그리고 그 영생을 주시고자 십자가 위에서 영생이 되는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셨을 때는.. 아무도 예수를 찾지도 않고 그 곁에 모여 들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 어떤 것을 기대하며 따르고 있는가?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를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는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무리들과 같을 것입니다… 자신의 무언가의 필요를 위해서 예수를 찾는 자가 너무나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성경은 그리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은 더 높고 깊은 차원의 채워주심 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예수께서 주시는 영생..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하늘의 것을 경험하시고 체험하시고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주시는 것에 우리의 소망과 믿음을 두고 살아가시는 하루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