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유 안에 누이신 그리스도

대림절 설교(3)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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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중의 왕, 메시아이신 주님이 말구유에 뉘였습니다. 사람들은 말구유에 누이신 예수님에 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백성들도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태어난 것을 알지 못하고,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왜 왕 중의 왕인 메시아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했습니까? 오늘의 성경본문은 자기 땅에 왔지만, 자기 백성이 그를 영접하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여관에 아기 예수님을 낳을 만한 방 한 칸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가난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가난한 사람이 머무를 방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현대의 우리도 우리의 집 한 채, 방 한 칸이 없어 유리방황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마리아와 요셉도 이러했습니다. 그리고 호적조사를 하러 가기에는 너무나도 바빴습니다. 그리고 좋은 집을 구하기에는 돈도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왜 그들은 메시아를 위해 특별한 장소를 준비해 두지 않았을까요? 베들레헴에 태어날 아기를 위해 언제라도 전통을 만들어서 장소를 마련해 두었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성경의 진리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적인 진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저인 축복을 받기 위해서 성경 말씀을 의지 했던 것입니다. 사실 금은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보물은 세상의 왕궁이나 은행 금고에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가장 보배로운 보물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궁정과 높은 곳에서만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비천한 장소에 누워 계셨습니다. 그들의 관심이 다른 곳에 있었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낮은 곳이 아닌 높은 곳만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야 1:3은 말씀합니다. “소는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셨도다” 메시아의 예언은 정확하게 들어맞았습니다. 자기의 백성이 주인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의 탄생을 모를 수가 있었을까요? 만약 이웃 사람이 대통령이나 유명 인사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면 모두가 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들이 찾아온다면 마을은 그들을 맞을 준비를 하였을 걱입니다. 제가 충현교회에 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이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왔을 때, 교회가 난리가 났었습니다. 관악단이 교회의 앞마당에 대비가 되어 있어서 온 교회 마당이 울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존귀하신 분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예수님의 오심과 탄생을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에게 오셨나요? 여러분은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있으신가요?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으신가요? 오늘 강보에 싸인 아기 예수를 보며 우리의 영혼이 잠에 들지 않고, 주님을 맞이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1)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모든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예수님은 가장 비천하고 더러운 곳, 쓰레기통보다 못한 곳에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원래 우리가 태어나고 당해야 하는 곳에 태어나셨습니다. 가장 존귀하신 예수님이 비천한 곳에 오셔서 비천한 자들과 함께하시고, 돌보시는 분으로 이 땅에서 사셨습니다.
시편 113:5-7 은 말씀합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높은 위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무더기에서 드셔서” 우리 주님은 가장 높은 곳에 계셔서 우리와 상관없는 분으로 계시는 것이 아닌 스스로를 낮추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주님이 강보로 싸여 아기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그 분이 머물 자리가 없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가난한 자들이 머무를 방조차 없었기 때문에 마구간에 쉴 곳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먼 길을 왔습니다. “눅 2: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나사렛과 유대까지의 거리는 150킬로미터나 되는 먼 거리였습니다. 이 특별한 밤에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가 태어나는 밤,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2) 사관에 있을 곳이 없더라
왜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에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요? 왜 그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던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늘의 소망이 아닌 땅에 소망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친구가 아니라 이 세상의 친구들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0-11 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이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남 유다가 최고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구원의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사 7:13-14 13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아하스는 하나님이 구하라고 하신 징조를 구하지 않았고, 믿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백성들도 메시아의 징조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믿지 않는 자들처럼 은이나 금에 눈이 멀어서 예수님이 실제로 오셨을 때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구유 안에 누인 귀한 모퉁이 돌이신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참 메시아는 마구간의 진흙 투성이 속에서, 투박한 나무 십자가에서 태어나셨고, 가장 비천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동일합니다. 신자들의 눈은 낮고 천하고, 하나님의 뜻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눈이 높은데 거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들은 진흙탕이나 나무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찾기 위해 자기를 낮추는 자세를 취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천한 자리에 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한 곳에 거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삶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3) 경배하던 목자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천한 목자들이었습니다. 천한 신분으로 밤에 일을 했던 목자들은 예수님의 말구유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 경배하였지만, 예수님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 분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여서,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이 진정 여러분의 목자가 되지 않으신다면 예수님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가 5:2 은 말씀합니다. “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이것이 사랑하는 자의 자세입니다. 그들은 잘지라도 사랑하는 자의 소리를 듣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에 반응을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열어드립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계신가요?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여 예수님을 맞이하기를 소망합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찾는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목자들이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님을 맞이하고, 경배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왕궁에 거했던 헤롯과 대제사장들과는 다르게 오직 목자들만이 천사들과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장 귀한 기쁨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눅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들은 무서워했지만, 그들이 들었던 소식은 세상에서 가장 복된 소식이었습니다. 바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했다는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은 세상의 첫 번째 복음 전파자가 됩니다. 온 세상이 알아야 할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일까요? 우리도 예수님을 영접하여 이런 귀한 일에 쓰임을 받기를 소망합니다.
4) 우리에게 주신 표적
천사는 가서 예수님을 찾으라고 목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눅 1: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한 표적을 보여주셨는데, 그것은 강보에 싸인 아기였습니다. 이 아기는 우리를 구원할 약속된 아기였습니다. 천사들은 목자들이 이 소식의 증인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소식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들어야할 참된 구원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는 전쟁과 전염병만 있을 뿐 참 형화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백신도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평화 협정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강보에 싸인 아기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우리들은 참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평화는 하나님이 주셨고,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아들을 통하여 은혜와 진리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참된 평화를 주셨습니다. 이러한 아기 예수님을 참되게 발견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저는 믿음으로 구유 안에 누인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궁에서 예수님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가장 낮은 말구유에 보내셔서 낮고 비천한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으신가요?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디에서 찾고 계신가요? 하나님은 예수님을 왕궁이 아닌, 가장 낮고 천한 말구유에 보내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높아진다면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낮췄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만나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강보에 싸인 아기 예수를 보며 우리의 영혼이 잠에 들지 않고, 주님을 맞이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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