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길을 예비하라

대림절 설교(4)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342 views
Notes
Transcript
Sermon Tone Analysis
A
D
F
J
S
Emotion
A
C
T
Language
O
C
E
A
E
Social
View more →
코로나 19의 상황 가운데 두 번째 대림절을 맞게 되었습니다. 대림절을 맞이하며 우리의 마음가운데, 오랜 기간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평안을 누렸던 하나님의 백성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대림절은 기다릴 대에 임하다의 임자를 써서 메시아의 강림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에 우리는 두 가지를 기다립니다. 이 땅에 오신 주님과 그 기다림을 기념합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이 기다림은 약속을 이루신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서 소망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다림과 소망이 하나님의 뜻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의 감정에 흔들리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는 대림절 네 번째 주를 맞았습니다. 대림절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가를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며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요?
서론(세례요한)
세례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요한에게 임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대제사장과 권위 있는 자들에게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궁정에 거하여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편한 곳에 거하지 않고, 광야 밖으로 나가 메시아를 기다리는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요한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광야는 선지자들에게 희망이 주어지는 장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것처럼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가 광야였습니다. 또한 광야는 이스라엘의 죄악이 드러난 곳이었습니다. 그들의 탐욕과 불신앙이 공개가 되었던 곳입니다. 하나님은 그 곳에서 그들을 심판하셨고, 징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국가에게 광야는 시험과 심판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광야는 혐오스러운 관습과 파괴의 상징이며, 하나님을 믿지 않아 잃어버린 자들을 향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외침의 장소가 광야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미 광야에 나갔고, 세례요한도 광야에 나가 하나님을 바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요한은 요한 각 부근 근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의 외침은 성경에서 예언되었던 말씀이었습니다. 이사야 40:3에서 예언되었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그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길을 잃고 헤메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알리는 일을 하였습니다. 말라기 4:6의 말씀은 그의 사역을 잘 드러내 줍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그래서 메시아가 오실 때,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아버지께로 돌이키게 하여 그의 오심을, 그리고 그의 통치하심을 받을 준비를 하게 하는 사람이 세례요한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은 어떠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케 하였을까요? 그것은 세례를 통한 방법이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입니다. 당시에도 세례의 예식은 자신의 공동체에 속하게 하는 입단 의이었기는 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는 사람들의 도덕적이며, 영적인 갱신을 요구하는 세례였습니다. 백성들에게 영적인 갱신을 요구하는 세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열어놓으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에 준비가 되도록 갱신을 요구하는 세례였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통해 자신의 더러움을 씻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주님의 오실 길을 쉽게 만드는 인물이었습니다. 새로운 메시아, 왕적 인물,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오는 인물의 통치가 쉽도록 그의 길을 예비하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자신을 한 없이 낮추며, 메시아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그런 그가 오늘 백성들에게 세례를 주며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은 세례요한이 메시아를 기다리며, 어떻게 기다릴지를 선포하는데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준비함에서 시작된다고 말씀합니다. 세례요한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준비하라고 했을까요?
1) 골짜기를 메우라 2)큰 산과 작은 산을 메우라 3)굽을 길을 곧게 4) 험한 길을 평탄케 하라
예화 : 길을 준비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마음의 길을 준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이 오시니 그를 맞을 마음의 길을 열고, 그 길을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오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길과 마음자세를 세우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미얀마에서 선교사역을 하시는 어머니와 형이 잠시 한국에 방문할 때면, 저는 매우 바빠집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청소를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신다고 하면 한달 전에 말씀을 주시기에 지금까지 밀려왔던 집안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집에 오실 때 짜증을 내기보다 웃음이 보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마루와 방바닥을 쓸고 닦고, 쓰레기를 치우고, 냉장고를 비우고, 청소합니다. 그런데도 막상 어머니가 오시면 맘에 들어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래도 오셨을 때, 기뻐하시는 모습을 위해 저는 어머니가 오실 날을 준비하는 날을 가졌습니다.
코칭 및 적용 : 여러분은 주님이 오신다면 어떻게 준비하고 싶으신가요? 여러분의 마음은 주님이 오셨을 때 맞을 준비가 되어 계신가요? 주님이 오셨을 때, 주님 마음이 어떠하실 까요? 여러분 주님이 오셨을 때 기뻐하시고, 온전한 소통이 생기도록 주님의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메시아가 오셨을 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가 오셨을 때 아무런 준비되고 예비된 것이 없다면 그 일은 지체가 될 것입니다. 그의 길이 온전해 지도록 우리들은 이 일을 대비하고, 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1) 골짜기를 메워라
골짜기란 무엇일까요? 오늘 날의 골짜기란 메워지기 어려운 간극 갖습니다. 우리는 대개 골짜기를 아주 얕은 개울같이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동사람들에게 골짜기는 엄청나게 큰 산 사이를 골짜기, 계곡이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엄청나게 큰 산들이 만나 이룬 것이 골짜기입니다.
각자가 큰 산을 이루어 메꾸어지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저는 이 메꾸어지지 못하는 골짜기를 현 세대에 적용해 본다면 세대 간의 간극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100년전, 조선시대의 발음대로 한글을 읽어보면 알아듣기 힘듭니다. 부모세대와 학생들 세대의 대화가 어려운 것을 많이 느낍니다. 이는 서로를 이해하는 틀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소통의 문제도 있습니다.
각자가 거대한 산을 이루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함은 산과 산을 단절, 세대와 세대의 단절을 가져옵니다. 통과를 하지 못하니 지나지를 못합니다. 이러한 단절은 왕의 통과를 막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는 말씀이 복음서 전반에 사용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낮추어 교만하고 오만한 마음을 낮추는 것이 주님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높은 산을 낮추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오만함을 회개하며 자신을 부인하는 성도가 됩시다.
적용 : 이를 위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는 자신의 굳은 산을 허물고 품어주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새 것을 맞이하는 자세로, 자신의 옛 것을 허물어야 골짜기는 메꿔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품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름을 인정해주고 품어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코칭 및 적용 : 여러분에게서 품지 못하는 사람이 있지 않으신가요? 이러한 품지 못함은 여러분의 삶에 어떠한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나요? 여러분의 높은 골짜기가 낮아지고, 메꿔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에 주님이 오셔서 온전히 통치하시도록 우리의 골짜기와 굳은 산을 허물기를 소망합니다.
2)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현대 시대로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짐을 적용해보자면, 편견으로 가득한 기득권의 모든 산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산이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모두 낮아지게 될 것이니 이 때를 준비하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대개 성읍은 높은 산위에 세워져, 전쟁에 대비하기 용이했습니다. 산과 산이 모이면 이 곳에 세워진 성읍은 철옹성과 같았습니다. 언덕을 차지하는 것에 전쟁의 승패가 달려 있었습니다. 승리와 안전을 보장하는 산을 낮추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과도 같습니다. 모든 산, 연합된 산이 낮은 산과 같이 낮아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길을 준비함에 있어서 우리의 오만함과 교만한 마음/ 우리의 낮아지려 하지 않은 마음이 무너져야 메시아의 나라가 온전히 설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참 편견과 차별이 많은 시대 같습니다. 남자와 여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많은 시대이고, 지역과 지역 간의 갈등이 고조가 되는 시대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했고, 제자들은 갈릴리 사람이라고 차별을 당했습니다. 서로의 산은 너무나도 높고, 서로 간의 산은 너무나도 밀집되어 있어 하나가 되기 힘든 세상입니다. 편견은 자신이 많은 산/ 모든 산에 속해 있다는 기득권에서 비롯된 나쁜 습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으로 높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차별과 편견을 깨셨습니다. 언제나 낮은 곳에 들어가셔서 그들을 위로하시고, 사람들을 회복하셨습니다. 자신의 높음을 자랑하지 않으시고 낮아지셨습니다. 그리고 더욱 낮은 자리에 임하셔서 작든 산들을 품어 주셨습니다. 자신의 산을 높이지 않고 낮아지셨을 때, 언제나 찾아 온 것은 하나 됨이었습니다.
적용 및 코칭 : 우리가 속해 있는 산은 무엇인가요? 모든 산에 속해 있어 작은 산을 포용하지 못하지 않나요? 내가 멀리하고 있는 산은 무엇인가요? 내가 멀리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 인가요? 여러분 우리는 큰 산에 속해 있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 된 산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산을 가르지 않고, 낮아지셔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3) 굽은 길이 곧게 된다.
굽은 것은 무엇인가요? 물길에서 길이 굽어지는 이유는 어느 한 부분이 막혀서입니다. 길의 한 부분을 가로 막을 때 점점 막혀 길이 휘어지게 되고 곧게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삶에서 우리를 굽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거짓과 부정입니다. 거짓과 부정은 우리의 욕심에서 나옵니다. 우리를 위한 삶, 더욱 윤택한 삶을 위해 사람들은 거짓과 부정을 일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굽게 만드는 것을 깨닫고 버려야 할 것입니다.
왜 우리는 거짓과 부정을 일삼으면서까지 윤택한 삶을 추구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의미있는 삶을 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이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한다고 생각할까요?
설문조사에 따르면 1위가 가족, 2위가 직업, 3위가 물질, 4위가 지위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물질이 1위였고, 가족이 3위였습니다.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것이 보편적으로 물질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는 크리스천이 천주교를 포함하여 30프로나 되는 국가인데, 이들이 들어가 있는데도 삶의 의미의 지표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는 신앙과 믿음이 삶에 의미를 주는데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뉴스를 보면 예수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모두 물질을 위해서라면 거짓과 부정, 살인을 저질러도 용납이 되는 시대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인 것 같습니다.
적용 : 그러므로 거짓과 부정부패로 굽게 된 길을 곧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희생이 따르더라도 거짓에 눈을 감지 않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겠다. 부정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굽은 길을 평탄케 곧게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길이 주님을 맞이할 때까지 굽은 길을 곧게 해 나가는 작은 결단과 행동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코칭 : 여러분의 굽은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여러분을 통치하고, 임하시는 것을 막고, 굽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회개가 복음의 핵심이며, 메시아를 맞는 길의 핵심임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여전히 굽은 길로 우리의 마음과 삶을 방치한다면 우리들은 메시아를 만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 악한 세대에 빠져 있지 마십시오. 거짓과 탐욕에서 은혜로 구원을 받으십시오.
4) 험한 길이 평탄하여 질 것이다
현대는 험한 세상입니다. 험한 곳은 폭력이 넘치는 곳과 같습니다. 층간 소음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세상,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법과 질서가 없어지고, 거짓과 부정이 가득하여 모두가 험한 삶을 사는 사회입니다. 이런 험한 길을 걸어가는 길 위에 주님은 평탄한 길을 준비하라 하시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온유하심으로 험한 사람들을 상대하셨습니다. 똑같이 험한 말과 폭력으로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온유하심으로 사랑하심으로 품어 주심으로 폭력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도 똑같이 폭력으로 상대하셨다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님을 본 받아 험한 길/ 험한 세상에 대해 온유함과 사랑으로 대함이 필요합니다.
질문 및 적용 : 우리는 질문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노력은 너무나도 작은데, 어떠한 영향이 있겠는가? 너무 하찭은 일이 아닌가?” 우리가 삽 한자루로 산을 메우고, 길을 메꾼다한들 매일 바뀌는 험한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산을 메꾸고 길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선조들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 주님의 오실 길을 만드는 일을 믿음으로 해왔습니다. 그들은 매일 묵묵히 순종하며 해왔습니다. 그리고 주님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시며 이루셨습니다.
그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6절의 말씀입니다.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삽 한자루의 순종은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게 되는 역사를 낳게 된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길은 하나님이 이루실 구원을 미리 준비하는 예행 연습과도 같습니다. 준비하지 않는 사람이 실제 경기나 행사에서 잘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이 일이 하찮지 않은 것입니다.
코칭 및 결론 : 여러분은 주님을 맞이할 길을 걸어가고 계신가요?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신가요? 그 일이 너무나 작아 하찮게 여기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여러분 주님을 맞이하는 일은 아주 작은 일이지만, 하찮은 일이 아닙니다. 주님을 맞을 때 우리는 이 일이 옳았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이 일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순종하도록 합시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