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영광으로 오시는 예수님

성탄절 2021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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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과 인사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주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 예배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Merry Christmas!!!’라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오늘은 주님의 오심을 기념하여 예배드리는 성탄절입니다. 영어로 크리스마스는 크라스트 마스라고 해서 그리스도 미사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심을 기념하여 드리는 예배라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 인생에 하나님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가 오셨음을 기뻐하고 환영하며, 감사의 예배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성탄절 예배를 통해 우리 모두가 우리 안에 오신 예수님을 환영하고 기뻐하며 하늘의 영광을 풍성히 누리며 경배하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S2. 주제 제시

오늘 이 시간에는 유대 광야의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영광과 기쁨의 구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함께 묵상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탄생하게 되신 배경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당시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제국 내의 호적을 명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 2절입니다.
누가복음 2장 1, 2절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가이사 아구스도는 시저 아우구스투스라고 불리는 제정 로마의 첫 황제로서 그의 이름은 옥타비아누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호적을 명령한 것은 자신의 영토 내의 백성들에게 거두어들일 세금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로마 황제의 이 명령으로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고향으로 돌아갈 때 요셉도 자신의 고향 유대 베들레헴에 가서 약혼녀 마리아와 함께 호적을 하게 됩니다. 당시 마리아는 잉태를 하고 있었는데, 고향 베들레헴에는 이들이 머물 여관이 없어 그 아이를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구유에 누이신 가난하고 힘없는 인간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소식은 당시 그 지역에 있던 목자들에게 알려집니다. 이들은 밤에 들에서 위탁받은 양 떼를 지키는 사회적으로는 아주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의 천사들이 주의 영광을 비추며 나타나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알려 준 것입니다. 11, 12절입니다.
누가복음 2장 11, 12절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그런데 일이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닙니다. 탄생 예언이 주어지고 이어 목자들은 수많은 천군이 천사들과 하나님을 찬송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14절입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천사는 예수님께서 하늘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시고, 땅 위의 사람에게는 평화를 주시는 놀라운 분으로 세상에 오셨다며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입니다.

S3. 문제 제기

그런데 오늘 본문의 놀라운 이야기에는 우리가 받아들이기에는 낯선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동네에 오신 구주께서 강보에 싸여 말구유에 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말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는 아무리 보아도 천군과 천사들이 환영하고 하늘 하나님께는 영광, 땅의 택한 백성들에게는 평화라 기에는 너무 초라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구주가 오셔서 하늘과 땅을 놀랍게 할 것이라면 오신 구주는 권세나 위엄이 있어야 하고 그를 환영하는 사람들도 세상에서는 고귀한 자들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놀라운 천사의 환영과 찬양 소식을 듣고 있는 이들은 동네에 보잘 것 없는 목자들이었습니다. 나신 구주도 강보, 즉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이고, 이 소식을 듣고 환영하는 이들도 동네의 목동들이라면 이는 한 국가 이스라엘이 기다린 위대한 메시야의 오심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입니다.

J1. 하나님의 속성, 마음, 그리고 방법

사실 우리 하나님은 아담의 타락 이후 사탄을 심판하실 때 이미 이 땅에 구원자를 보내실 것에 대해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실 구원자는 여자의 후손으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죄인을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로 회복하게 될 하나님의 메시야가 될 분이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을 봅시다.
창세기 3장 15절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범죄로 인한 세상의 타락을 안타까워하시며 이를 회복하시기 위해 이처럼 여자의 후손을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셨고, 누가복음에 탄생하신 예수님은 바로 이 여자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이들이 그 지역의 목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에는 하늘 천사들이 그 지역의 목자들에게 찾아와 예수님의 오심을 전했다고 증언합니다. 우리 8, 9절 말씀을 봅시다.
누가복음 2장 8, 9절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는 목자들에게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가 그리스도임을 알려주는 표적이라고 말해 이들이 쉽게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11, 12절을 봅시다.
누가복음 2장 11, 12절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이처럼 목자들은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이 강보에 싸여 뉘어 있는 표적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막 태어난 아기가 구유에 뉘어 있다는 것만큼 분명한 표징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점이 우리를 의아하게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 곧 하늘의 메시야를 맞이하러 온 이가 지역의 목자들이라는 점입니다. 목자는 당시 유대 사회에는 사회 경제적으로 매우 낮은 자들입니다. 낮은 마굿간 구유에 누운 아기를 만나러 온 낮은 자들인 목자의 모습은 서로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말씀의 예언을 성취한 것으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위대한 메시야를 맞이하는 자로서 목자는 너무 낮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목자에 대한 이러한 신약 시대의 이해를 넘어구약 성경의 기록을 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구약 성경의 목자는 예수님 당시의 가난한 목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편 23편 1절에는 목자가 누구인지를 잘 드러내 줍니다.
시편 23편 1절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본문에서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목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더하여 포로기 시대 에스겔은 여호와께서 직접 목자가 되시는 미래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34장 5, 6절 말씀을 봅시다.
에스겔 34장 15, 16절
15.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6.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실제로 우리 예수님은 자신이 선한 목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이처럼 목자는 탄생 당시의 가난한 신분의 사람이 아니라 넓게는 여호와 하나님을, 신약 성경에서는 선한 목자로 오신 예수님 자신을 증거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 곧 우리의 구속주로 이 땅에 오신 선한 목자십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바로 이 예수님께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낮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이사 아우구스투스라는 세상의 황제보다 못하신 분이라서 그가 내린 호적령으로 인해 나사렛이 아닌 다윗의 동네에서 지극히 낮고 낮은 자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명예와는 아무런 관계없는 지극히 낮은 구유에 자신을 드러내시며 머리 둘 곳 조차 없으신 세상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신 이유는 오직 우리의 죄를 대신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낮아지고 깨어진 우리의 신분을 회복하시기 위해 우리를 대신하여 낮아지셨고, 고난의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W1.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참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여호와로서 하늘의 영광을 가져오신 죄인들의 참 목자가 되십니다. 그의 오심을 본 하늘의 천사들은 그 분의 놀라운 헌신과 섬김을 두고 결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하늘 높은 곳에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본문 2장 13, 14절을 봅시다.
누가복음 2장 13, 14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예수님은 낮은 자의 자리에 이르시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심으로 구원하실 모든 죄인의 참 목자가 되어 주신 분이시기에 하늘에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셨고, 땅에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택하신 백성들 중에서 평강을 전하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W2. 참 목자이신 예수님은 성도의 진정한 보호자가 되십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으로 세상을 살면서 죄성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이 아닌 세상과 사탄을, 그리고 자신 안에 있는 죄를 따라 살아갑니다. 이런 인생의 미래는 오직 하나님의 심판과 사망 외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아버지께 순종하시고, 우리의 참 목자가 되어 주셨을 때 성도는 참 목자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제 목자이신 주님의 권세와 능력 안에서 성도인 우리는 죄가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새 백성이 된 것입니다.

W3. 하나님은 참 목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성령님을 우리에게 부어 주십니다.

다윗 왕은 세상을 살면서 목자이신 예수님을 만나 그의 생애가 새로운 삶으로 변화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생애는 푸른 풀 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목자이신 여호와로 인해 부족함이 없는 생이었습니다. 그은 영혼의 낙심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자신의 이름을 위해 의의 길로 새롭게 이끄시는 목자로 인해 회복이 되었으며, 사망의 골짜기도 그에게는 두려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더하여 여호와이신 참 목자는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부어 다윗을 높여 주셨습니다. 다윗의 생애 전체는 목자가 따라오셔서 새롭게 해 주시는 인생이었습니다. 시편 23편 6절을 봅시다.
시편 23편 6절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이처럼 여호와는 우리의 참 목자가 되셔서 삶의 모든 길에서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참 창조주요 구세주가 되신 분이십니다.

T1. 교회는 참 목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평화를 누립니다.

예수님 당시에 들에 있던 목자들은 인생의 참 목자이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하늘의 기쁨과 평강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찾아오신 이 놀라운 하늘 천군과 천사의 노래와 찬양을 들으며 세상이 알지 못하고 듣지 못하던 하늘의 음성들을 들을 수 있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당시 고요하고 적막하던 하늘은 천군과 천사로 가득했고, 하늘의 놀라운 음성은 세상에서 버림받고 낮은 자로 멸시 당하던 이들 목자들의 영을 새롭게 하는 놀라운 은혜의 노래가 되었던 것입니다. 찬송가 120장 1절에는 이런 가사가 있는데 우리 같이 한 번 120장 1절을 불러 봅시다.
이 가사의 세 번째와 네 번째 소절을 보면 ‘저 놀라운 빛 지금 캄캄한 이 밤에 온 하늘 두루 비춘 줄 너 어찌 모르냐’하며 하늘의 음성을 듣고 하늘의 놀라운 빛을 본 사람들의 환희에 찬 외침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참 목자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는 이 놀라운 은혜의 빛이, 이 놀라운 하늘의 찬송이 보이고 들리는 큰 영광과 평화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T2. 오늘날 세상은 스스로의 빛에 현혹되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합니다.

세상은 자신이 만든 빛에 빠져 그리스도의 참 빛을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무수한 말들과 생각들은 우리의 시선을 빼앗고 우리의 귀를 막아 버려 영의 참 빛과 음성을 보고 들을 수 없습니다. 제가 동물의 세계를 보면서 한 가지 크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바다 거북이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바다 거북은 산란기가 되면 수백 마리가 자신이 태어난 바닷가 해변에 와서 모래 사장에 알을 낳고는 다시 바다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알들이 때가 되어 부화를 하는데 주로 부화시기가 보름 달이 뜨는 시기가 됩니다. 부화한 새끼 거북이들은 이 보름달 빛을 따라 바다를 향해 가면 바다 거북의 일생을 살 수 있습니다. 달빛은 그들을 바다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 새끼 거북이들이 바다로 가지 않고 도시로 가는 일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해변가를 주변으로 해서 도시가 건설이 되다보니 보름이 되어 부화한 새끼 거북이들이 달빛보다 더 밝은 도시의 빛에 끌려 도시로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새끼 거북이들은 차에 깔려 죽거나 사람들에게 밟혀 죽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하수구에 빠져 죽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달빛이 아닌 인공의 빛에 끌려 간 바다 거북은 도심에서 다 죽고 마는 것입니다. 자신이 따라야 할 참 빛을 알지 못하고 인공의 빛을 따라 살아가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자신의 빛과 소리에 빠져 살다가 그리스도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T3. 그러나 성도는 참 목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포대기 하나 거치고 구유에 뉘어 오셨지만, 그 예수님은 결코 시이저나 세상의 어떤 왕들보다 못하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은 성도의 영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변화하고 회복시키고자 이 땅에 오신 참 목자시오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전능하셔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내셨고, 죽음에서 부활의 생명을 얻으시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놀라운 참 목자이십니다. 성도인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우리의 삶은 보호받고 안전하며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L5.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는 성탄의 주인으로 오신 예수님을 환영하고 기뻐하며 경배하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황제는 호적령으로 예수님의 아버지를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가게 함으로 자신이 주인처럼 보였지만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베들레헴 다윗의 동네에서 메시야를 태어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따른 순종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군왕은 창조주요 섭리의 주이신 하나님께 순종하며 오실 메시야의 길을 준비하는 종들일뿐입니다. 우리가 영의 눈을 온전히 밝히 뜨고 주님의 오심을 환영하고 영접할 때 구유에 뉘어 계신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목자시오 여호와시며 구주이심을 믿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L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탄의 날에 우리 모두는 오신 예수님을 참 구주로 알고 내 생애의 진정한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깊이 만나고 누리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진정한 만남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우리는 대강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 만남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참된 만남은 내가 죄인임을 알게 합니다. 참된 만남은 위로와 평안을 줍니다. 참된 만남은 영의 눈을 밝혀주고, 참된 만남은 긍휼을 베풀어 줍니다. 그리고 참된 만남은 우리의 참 목자를 알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과의 진정한 만남을 통해 영원을 누리고 영생을 사는, 참으로 복된 기쁨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115장
기쁘다 구주 오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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