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9 더리버처치 주일예배 (요5:1-8) '대강절4: 자유안의 자유로 나아갑니다'
본문
서론
ㅇ 본문과 관련있는 예화 혹은 성경이야기
본론
ㅇ 주제와 관련 있는 문제제기 (원인과 결과)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을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38년 동안 장애를 가지고 살아온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그가 무슨 병을 앓았는지는 모르지만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게 많이 불편할 만큼 중증 장애인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낫고 싶습니까?” 이것은 물으나마나 한 당연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그의 마음속에 있는 간절한 소망을 다시 확인하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지난 38년 동안의 설움과 아픔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질문입니다. 아니,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물어봐 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생명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아 고마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대답했습니다.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5:7).
여러분은 이 상황이 이해되십니까? 이 병자의 절망적이고 안타까운 현실이 느껴지십니까? 많은 병자가 그 연못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제대로 운신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도와줄 가족이나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연못에는 왜 나가 있는 겁니까? 연못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다른 희망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여도, 그 이야기가 현실이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더라도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빚더미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밥 먹을 돈은 없으면서도 복권을 사는 심정이 이런 심정일까요?
그가 한 대답을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낫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그가 낫지 못하는 이유가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병이 낫고 싶어서 거기에 있었지만 언제부터인지 낫고 싶은 열망은 남들보다 먼저 내려가야 한다는 열망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물에 먼저 내려가는 것을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먼저 내려가는 것과 나를 데려다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인생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생명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열망입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한 솔로몬은 왕이 되자마자 주변 국가들을 평정, 막대한 부를 얻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부귀영화의 극치를 누렸습니다. 연인원 15만 명을 동원하여 13년 동안이나 지었던 솔로몬 왕궁은 그 자체가 거대한 보물창고였습니다. 왕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집기 비품과 보좌는 물론이요, 친위대들의 손에 들린 방패마저도 온통 황금 일색이었습니다. 그 화려한 왕궁 속에서 하루에 소비되는 양식은 고운 가루가 30석, 굵은 가루가 30석, 살진 소가 10마리, 들소가 20마리, 양이 100마리, 그리고 사슴과 노루와 새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그와 같은 부귀영화 속에서 정작 솔로몬의 삶은 어떠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부귀영화에 탐닉하느라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한동안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가 부귀영화 속에서 심혈을 기울여 한 일이란, 고작 처첩 1,000명을 거느리며 이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신의 생명을 고갈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절대로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소리쳐도, 땅을 치며 통곡해도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방탕의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던 솔로몬이 어느 날 불현듯 눈을 떴을 때, 그의 육체는 여전히 부귀영화 가운데 있었지만 그러나 심령 속에 남은 것이라곤 허망함과 공허함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인생은 곧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가치는 그 인생 속에 담긴 시간의 가치에 따라 결정됩니다. 시간의 가치는 어떤 경우에도 소유를 잣대로 삼지 않습니다. 시간의 가치는 오직 한 가지, 그 시간이 품고 있는 것이 생명인가 아니면 죽음인가에 의해서만 판가름 납니다. 생명으로 채워진 시간은 아름답습니다. 그렇기에 생명의 시간이 담긴 인생 역시 찬란합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생명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채워진 시간은 어둠입니다. 따라서 죽음의 시간으로 가득 찬 인생은 아무리 치장한들 역겨운 흑암이요 추함일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 자체가 악취 진동하는 썩어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직 죽음의 시간만이 축적되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자기 인생의 실상을 목격한 솔로몬은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께로 되돌아가 자신의 시간을 다시 생명으로 채워 가기 시작했습니다. 솔로몬은 인생의 참 가치와 의미를 비로소 깨달으며 인생에 대한 바른 통찰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깨달음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습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전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