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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빌레몬 바울과 오네시모 빌레몬과 오네시모 예수님과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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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미국에서 총기 살인 사건이 있었어요. 그리고 범인의 재판이 열렸어요.2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지방법원. 증인석에 앉아있던 피해자의 동생 브랜트 진(18)이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한 여성을 꼭 껴안았다. 여성은 계속해서 크게 소리를 내며 흐느꼈다. 법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가 안고 있던 여성은 자신의 형 보텀 진(26)을 총으로 쏴 죽인 범인이기 때문이다. 보텀은 지난해 9월 당시 여성 경찰관 앰버 가이거(31)가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사건 당시 가이거는 보텀이 사는 아파트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의 집은 3층이었는데 남자친구와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느라 4층 보텀의 집에 잘못 들어간 뒤 보텀을 총으로 쏴 죽였다. 가이거는 어두운 거실에서 TV를 보며 아이스크림을 먹던 보텀을 자신의 집에 들어온 침입자로 착각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검찰은 거실로 들어가며 자신의 집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는데도 가이거가 이를 무시했으며 총기 발사 수칙도 어겼다며 살인죄로 기소했다.
보텀은 카리브해 섬 세인트루시아 출신의 유능한 회계사였다. 이런 보텀을 여자 백인 경관이 총으로 살해함에 따라 댈러스 지역을 넘어 미 전역에서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키며 커다란 사회문제가 됐다.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2일 법정에서도 시민들의 큰 반발이 일었다. 재판부가 가이거에게 징역 10년이라는 예상보다 낮은 형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전날 배심원단의 유죄 평결로 가이거에겐 사실상 종신형인 99년형 선고도 가능했다. 검찰도 28년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5년 뒤 가석방 자격이 주어지는 10년 형을 선고했다. 법정 안팎의 많은 시민들이 야유를 보내며 분노했다.
하지만 이 재판은 인종차별에 의한 살인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더 유명해졌습니다.
그 이유 때문에 사실 예상과 달리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고 볼 수 있죠.
오늘 본문에는 3명이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빌레몬서라는 편지를 쓴 바울과 이 편지를 받는 빌레몬이라는 사람과 이 편지를 빌레몬에 전해주게되는 오네시모 세사람입니다. 이 세 사람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오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아주 엄청난 은인이었는데요 그 이유는 바울이 빌레몬을 전도해서 예수님을 믿게 해주었기 때문이에요.
전도해서 예수님을 믿게 해주었다고 엄청난 은인?
여러분에게는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이후 1세기 시대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것 같아요.
빌레몬이라는 사림이 유대인이었는지 이방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구약성경에 대한 이해가 있던 유대인이라고 가정해 보고 한번 생각해볼게요.
원래 유대인들은 혈족 공동체를 엄청나게 중요시 해요. 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죠. 그리고 자기 혈족이 아닌 이방인은 엄청나게 무시하거나 천하게 보는 성향이 있었어요. 유대사회를 연구하는 어떤 학자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인간은 9단계로 구분하면서 등급을 나눠 인식했데요.
제사장 부터 레위인 그리고 사생아등등 그리고 제일 마직막으로 가정 천하게 여겨지는 사람이 이방인이었어요. 그만큼 가족 혈족 종족 이라는 개념이 엄청나게 중요했던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갑자기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가족이라고 말하시면서 가족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셨어요.
이것은 유대 공동체의 가치관을 파괴하고 흔드는 민족의 반역자이자 이방인도 한 식구로 받아들이라는 도전과도 같았어요. 그런 예수님을 믿으면서 교회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성장배경과 생존의 근간을 버리고 돌아서는 일이었죠.
모든 것이 가족 관계로부터 시작되는 그 사회에서는 삶의 터전을 버리고 고아가 되는 것과 같은 일 그것이 예수님을 믿기로 선택하는 일이었어요.
이방인들에게도 예수님을 믿는 것은 모든 사회의 가치관과 문화를 뒤로하고 홀로 외로운 길을 가게 되는 선택이었죠.
빌레몬이 바로 바울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거에요.
왜 그랬을까요?
자기의 삶을 던져도 좋을 만큼 소중하고 귀한 생명을 구원 받는 일이라고 실제로 믿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빌레몬에게 바울은 생명의 은인과도 같이 여겨질 수 밖에 없죠.
2차세계대전 당신 독일의 나치일당이 유대인을 6백만명이나 학살한 사건이 있었어요. 홀로코스트라고 하죠.다른 이유가 없어요. 유태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남녀 노소 가리지 않고 다 죽였어요. 그런데 쉰들러 라는 독일인이 자신의 전 재산을 다 바쳐서 유대인 1100명을 학살 현장에서 빼낸 일이 있었어요.
그 이야기가 영화로도 만들어졌죠. 비참하게 죽을 나를 또는 내 아이를 얼굴도 모르는 어떤 사람이 자기 전재산을 바쳐서 나를 살려주고 내 아이를 살려 주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그 사람이 생명의 은인으로 여겨지지 않겠어요?
빌레몬에게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런 구원의 문제였기 때문에 바울은 생명의 은인으로 여겨졌었죠.
여러분이 교회에 나올 수 있도록 또는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돕거나 전도해준 사람이 생명의 은인으로는 커녕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이 우리에겐 별 큰 의미가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일거에요.
이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는 날이 빨리 오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해요.
이렇게 바울과 빌레몬의 관계는 정말 엄청난 은인과 수혜자의 관계였어요.
그런데 이 빌레몬은 그 당시 부자여서 노예들을 데리고 살았어요. 정말 이해가 안 되죠?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아직 노예를 데리고 있었던거에요.
그당시 노예는 인구 네명중 1명일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도시에 따라서는 노예가 더 많은 곳도 있었어요. 노예는 일상생활의 당연하게 여겨지는 재산이었던 것이죠.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예수님을 믿으면서 부자이기 때문에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것과 비슷한 정도의 느낌이었을 거에요.
그런데 그 노예중 한명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빌레몬에게 도망쳐서 바울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당시 노예가 도망치는건 목숨을 건 행동이고 따라서 숨어지내기 위한 돈이 필요하였고 주인의 돈을 훔쳐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이 도망친 노예가 오네시모라는 사람인데 오네시모도 어떤 이유인지는 알수 없으나 빌레몬의 돈을 훔쳐 달아났고 바울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되죠.
주인 빌레몬이 그당시 골로새라는 지역에서 가정교회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었고 당연히 자신에게 예수님을 전해준 바울의 이야기는 그 가족과 주변사람들에게 자주 들려졌을 거에요.
어쩌면 오네시모도 당연히 바울에 대해 듣게 되었을 것이고 노예로 겪는 어려움을 바울에게 이야기 해서 해결하려고 일부러 도망쳤을지도 몰라요.
왜냐면 그당시 문화에서는 은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개입해서 의견을 밝히면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잘 듣는 문화가 있었거든요.
이걸 후견인 문화라고 불러요.
은인이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하는 문화였죠.
도망가다 잡히면 죽는 신세인 오네시모가 어떤 목적으로 바울을 만났는지 모르지만 바울을 만난후 예수님을 믿게되었어요.
그리고 바울은 그를 옥중에 낳은 자식이라고 편지에 썼어요.
감옥에 갇힌 죄수 신세의 바울이 ( 가택연금 ) 곧 잡혀 죽을지 모르는 노예인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것이죠.
우리가 생각하는 통행 금지구역인 감옥이 아니라 가택 연금처럼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지만 사람들이 왕래할 수 있는 그런 감옥이었어요.
그리고 바울은 오네시모에게 다시 주인에게 돌아가라고 하며 편지를 한통 써준거에요.
그게 오늘 읽은 빌레몬서이죠.
바울에게 빌레몬은 자신을 생명의 은인으로 모시는 사람이었고 그 빌레몬의 노예가 오네시모이니까 오네시모 입장에서 바울은 감히 쳐다볼수도 없는 존재와도 같았겠죠.
하지만 바울은 오네시모를 옥중에 낳은 자식으로 그리고 자기 심복으로 심지어 사랑하는 형제라고 불러주고 있어요.
그리고 빌레몬에게도 그를 사랑 받는 형제로 대하라고 편지로 이야기 하고 있어요.
바울을 통해 예수를 믿게된 두 사람.
각자 개인으로 보면 예수를 믿게 되었으니 참 잘 된 일이에요.
그러나 한 사람은 도망친 노예로 주인에게 돌아가면 당연히 법적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신세 였어요.
또 한 사람은 괘씸하게 도망간 노예를 용서도 모라자 형제 이상으로 즉 생명의 은인인 바울을 대하듯이 대해주라는 부탁을 받고 있는 사람이에요.
오네시모와 빌레몬의 관계이죠.
오네시모는 죽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을 이기고 편지를 전하러 다시 주인에게 가야하고 빌레몬은 죽여도 시원치 않은, 자기돈까지 훔쳐 달아난 노예를 생명의 은인 대하듯 대해야 하고 이후로는 평생 형제와 동역자로 대해야 하는 상황이 이 편지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죠.
그 당시 도망치다 잡히면 죽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현실을 잘 알던 오네시모.
그는 그런 상황에서도 자기 주인이 예수 안에서 형제와 동역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선택하고 편지를 들고 갑니다.
그리고 빌레몬은 어이없고 기가차지도 않는 오네시모를 동등한 형제로 아니 바울처럼 극진히 대하며 받아들이게 됩니다.
실제로 받아들였는지 성경에 그 결과는 없지만 다른 역사기록을 보면 후에 오네시모라는 교회 지도자가 등장하고 빌레몬도 네로시대에 돌에 맞아 순교까지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받아들여진것 같습니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뭘까요?
그리고 왜 바울은 노예제도를 없애라고 사회적 운동을 펼치거나,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하면 안되라고 강하게 가르치면서 쉽게 일을 해결하지 않고 개인적인 부탁으로 이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것 때문이고 오네시모와 빌레몬에게도 같은 것을 바라고 계셨기 때문이에요.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를 몸처럼 만드셔서 떼어낼수 없는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주셨는데 그 방법이 용서였고 희생이었고 사랑이었기 때문이에요.
불순종하고 우리 맘대로 살고 싶어하는 죄인.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우리를 위해 죽으셔서 함께 할 수 없는 우리와 하나가 되시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죄를 용서하셨던 분이 예수님이세요.
그리고 우리도 서로 그렇게 받아들이고 용서해서 한 몸 한 공동체 즉 교회가 되기를 그토록 바라신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한 몸이 될 수 있는 비결은 다른 어떤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에요.
예수님이 나를 받아들이신것 처럼 나도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용서함으로써 진정한 한몸 한 공동체 즉 교회가 될 수 있는 거에요.
서로 즐겁고 유쾌하고 행복한 방식으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에요.
내 고집 내 억울함 내 생각을 버리고 상대를 받아들이고 용서할 때 교회가 세워지는 거에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인에게 바라는 것도 있으시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여 교회라는 공동체를 이루기 원하시는 분이에요.
그리고 교회가 세워지고 이루어지는 비결은 내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그 사람 그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에요. 이것이 교회가 세워지는 비밀이에요.
오늘 여러분이 정말 보기도 싫은 어떤 사람 어떤 모습이 있나요? 아마 계속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예수님이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존재인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셨다는 걸 생각해보고 믿으세요.
그리고 예수님 처럼 우리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 바로 그것이 예수님이 정말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연습해보세요. 시도해보세요. 실패할수도 있지만 도전해보세요.
기도하세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예수님이 보이신 것 처럼 저도 용서할 수 있게 받아들일수 있게 그래서 용서와 사랑으로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해보세요.
쉽지 않아요. 고통 스러울 수 있어요. 하나님의 교회는 그렇게 세워지는 거에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예수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을 하게 되는거에요.
오늘 설교를 시작할때 이야기 했던 살인사건. 그리고 그 재판이 유명해진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어요.
잠시 그 영상을 한번 볼까요? 대화 내용은 보고 나서 전도사님이 이야기 해줄게요.
....... 영상.....
권총으로 살해당한 그것도 다른 이유 없이 인총차별때문에 죽은 26살 보텀의 동생 브랜트는 형의 ‘원수’인 백인 여자 경찰에게 눈물을 머금으며 말했어요.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용서해달라고 요청하면 하나님께서도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 우리 형이 나 우리 가족을 대표해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당신을 다른 누구와 마찬가지로 사랑한다. 우리 형처럼 그냥 죽어 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개인적으로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이 생기기를 바란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는 것이다. 감옥에 가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이 그리스도에게 가는 것이 형 보텀이 바라는 최상의 일일 것”이라고 말했어요.
https://youtu.be/NkoE_GQsbNA
우리는 누군가에에 오네시모이고 누군가에게 빌레몬이고 누군가에게 바울이에요.
오네시모처럼 가기 싫은 사람에게 믿음으로 가야할때가 있어요
빌레몬처럼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거기서 멈추는게 아니고 형제처럼 대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리고 바울처럼 이런 일을 위해 중간에서 애써야 할 때가 있어요.
이렇게 예수님이 보여주신 방식으로 우리는 교회를 세워 가는 거에요.
우리도 각자의 생활 속에서 이렇게 용서와 사랑으로 교회를 세워가는 연습을 해봐요.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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