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2새벽] 답정너 신앙이 아닌,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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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425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본문 마 13:53-58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은혜로 2022년을 시작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작년 한해 동안 주께서 은혜로 붙드셨던 것처럼, 이제 시작되는 2022년에도 주님의 은혜로 어루만져 주옵시고, 부어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힘 있게 달려가게 하여 주옵소서. 때로 내 생각과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답답하고 괴로운 상황에 직면한다 할지라도 그 상황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하여 주옵시고,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도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만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때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신조어들이 있었다. 중고등학생 자녀들을 키우시는 분들은 들어보셨으리라 생각이 든다. ‘돈쭐낸다’ 라는 말의 의미를 아시는가? 사회적으로 선행을 베푸는 기업이나 가게에게 소비자들이 돈으로 그 제품을 많이 구입해줌으로서 선한 의미로 혼쭐낸다는 의미이다. 또한 ‘핑프족'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분 계신가? 이 단어는 손가락을 의미하는 핑거와 공주를 의미하는 프린세스의 합성어로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아주 쉽게 검색만 해보면 알 수 있는 정보를 스스로 찾지 않고 남에게 물어보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세번째로 ‘알잘딱깔센' 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분 계신가? 이 말의 의미는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라는 의미라고 한다. 예를 들어서 “부장님, 음료 뭐드실래요?” “알잘딱깔센 하게 해와" 이런 의미이다. 여기까지 들은 여러분들은 아마도 ‘별걸 다 줄인다’ 생각하실 것이다. 그래서 ‘별걸 다 줄인다’ 라는 말도 줄여서 ‘별다줄’ 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이제는 이런 신조어라던지 신문명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분위기이다. 이제 한가지 신조어 질문을 더 드리려고 한다. 오늘 설교와 관련이 있는 단어이기도 한데, 혹시 ‘답정너’ 라는 말을 들어보신 분 계신가? 이 말의 의미는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따르기만 하면 돼’ 라는 것이다. 이 말의 요점은 이미 마음 속에 답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 속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처럼 말이다.
마태복음 13장의 세번째 강화인 천국에 대한 비유말씀이 끝이 난 후에 예수님께서는 어릴적 고향인 나사렛으로 돌아가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다. 누가는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설교하시는 장면을 기록하는데, 그 때에 동네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계획 가운데 이방인도 포함되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분개하여 예수님을 죽이려 하기도 했음을 기록한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고향 사람들은 놀라며 54절처럼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고 묻는다.
그들은 마치 가버나움의 바리새인들처럼 예수의 권능의 근원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과연 그분이 하나님의 권위로 이 일을 하시는가, 아니면 다른 근원으로부터 이런 일을 행하고 있는가? 그러나 그들은 이미 마음속으로 그 대답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의 신적근원에 대해서 ‘답정너’의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예수님께서 설령 그 신적권위를 설명해 주셨어도 들을 리 만무했다. 그들은 목수 아버지와 그 모친 마리아와 형제들과 가정을 이룬 예수님의 혈통적 뿌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예수는 단지 목수의 훈련을 받아온 사람이기에 지혜의 근원이 될 수 없고, 초자연적 능력도 행할 수 없다고 결론 짓는다. 주님의 지혜와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확신했기에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기 시작한다. 굳은 마음으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주님께 마음을 열지 않는다. 따라서 주님도 그곳에서 많은 능력을 행하시지 않는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가? 성숙한 신자들은 신앙생활 가운데 때로는 알 수 없는 기근이 밀려오고, 거대한 장벽이 가로 막으며, 앞길을 알지 못한 채로 방황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곳에 두신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구하게 된다. 그럴 때 빠지기 쉬운 가장 큰 유혹은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에 이미 마음 속에 나름대로의 답을 정해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하면서 이미 마음 속으로 답을 정해놓는 태도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 본문 속의 나사렛 고향 사람들이 그러하지 않는가? 그들은 이미 예수님의 소문에 대해 익히 들어왔을 것이고, 또한 회당에서 선포되는 주님의 가르치심을 들은 자들이다. 그들이 진정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 곧 신적 기원에 대해 알지 못해서 이와 같이 물은 것인가? 본문 55절은 결코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예수님의 친족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그 가르침을 듣고서도 예수를 배척하기에 이르게 된다.
우리의 신앙생활 중에서 때로는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가 있고, 때로는 앞날을 알지 못하는 막연함 가운데 놓일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그럴 때 우리가 유혹에 넘어져서 이미 마음 속으로는 길을 정해놓고 그분의 뜻을 구하는 태도는 어떠한가? ‘하나님, 제 생각에는 이 길로 가는 것이 좋게 보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세요. 하나님, 제 생각에는 이 쪽이 더 선하게 보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내 결정을 존중해 주시고, 내 결정대로 움직여주세요. 하나님, 마땅히 사랑하는 자녀에게 도와주셔야 하는 것 아시죠? 그러니 내 결정대로 움직여주세요’ 그런데 여러분, 이와 같은 신앙은 결코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신앙은 이방신들을 섬기던 신앙과 동일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신앙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은 마땅히 예배자의 뜻대로 움직여주고 도와주고 필요를 공급해주는 수동적이자 유한한 신이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결코 그렇지 않다. 인간의 뜻에 제약을 받지 않으시고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홀로 존귀하시고 영화로우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분의 선하신 뜻대로 만물을 움직이시고 다스리시며 통치하시는 분이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은 내가 정한 뜻대로, 내가 정한 답대로 하나님이 움직여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으로 나아가서는 안된다. 마음 속에 이미 답을 정해놓는 태도는 하나님께서 내 뜻대로 움직여주시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내 생각과는 다른 길을 제시하실 때, 하나님께서 내 원대로 도우시지 않을 때, 결국 그분을 배척하는 단계로 발전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다. 주님께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하셨다. 이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이란, 내가 미리 답을 정해놓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움직여주시기를 간구하는 태도가 결코 아니라, ‘하나님, 제 생각에는 이 길이 좋게 보입니다만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움직여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설령 이 길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움직여주시는 그 길이 나에게 가장 복됨을 알기에, 하나님께서 어느 길로 나를 인도하시든 그 길에 순복할 수 있는 제가 되게 하여 주십시요’ 라고 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의 모범을 우리는 어디서 발견할 수 있는가? 바로 주님이시다. 주께서 십자가를 앞두시고, 그 십자가의 무게를 처절하게 느끼시며 땅에 납작 엎드리시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 고난의 잔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우며 괴롭고 처절한지 주님은 너무나도 잘 아셨다. 그래서 인간적인 생각으로 그 잔을 피하고 싶으셨을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주님은 마음 속의 본능이 이와 같이 주장하여도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이끌어주시기를 간구하셨고, 결국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복하여 십자가 위에 자신을 화목 제물로 올려드리셨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보여주신 신앙의 모범까지 자라가자. 답을 정해놓고 하나님께서 내 뜻대로 움직여주시기를 바라는 태도가 아니라, 내가 좋게 보이는 길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멈추라 하시면 멈추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한다. 내가 아무리 이리 저리 계산해보고 재어도 답이 안나오는 일이지만, 주님께서 하라 하시면 순종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우리의 기도제목은 나의 소원들을 하나님 앞에 보따리 풀듯이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것이고, 이러한 나의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두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의 소원들을 들으시고 그에 대해 움직여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아 그 뜻에 합당하도록 변화시켜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우리 신앙의 기초가 사람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하루의 시작 시간에, 특별히 2022년 첫 새벽예배로 나아오시면서 하나님 앞에 많은 소원의 보따리를 가져오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자. 내가 마음 속에 정한 답을 뒤로 미루어놓고, 먼저 이 형편 속에 나를 두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자. 지금 나의 형편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 무엇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를 먼저 구하자. 그리고 그 뜻에 나의 의지와 생각과 마음과 지성과 감정까지 모두 순종하여 올려드릴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하자. 선하신 하나님께서 먼저 그분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참 만족을 주실 것이다. 이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는 이 자리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길 축원한다.
기도하자.
주님, 때로 여러 문제들, 걱정거리들, 고민들, 답답한 상황들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과 자리 가운데 두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를 이 상황을 지나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이 답답한 때를 지나가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주님을 기뻐하게 하시고, 주님께 감사하게 하시며, 주님께 영광 올리게 하여 주옵소서. 먼저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구하는 우리의 영혼에 참된 만족을 주실 하나님을 붙들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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