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92 viewsNotes
Transcript
Sermon Tone Analysis
A
D
F
J
S
Emotion
A
C
T
Language
O
C
E
A
E
Social
(시 126:1-6)
저는 보통 신학 서적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는데 아내는 인문학 서적을 좋아하고 많이 읽다 보니까 가끔 좋은 책을 소개해주곤 합니다. 어느 날 저녁을 먹으면서 아내가 팟캐스트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를 나누어주었습니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저자인 김영서 작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김영서 작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때부터 대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 참혹한 시간들을 어떻게든 이겨보고자 어릴 때부터 100일 기도를 17번이나 했습니다. 어느 날 눈물로 기도하며 그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 눈물에 빛이 비치면서 반짝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슬픔의 눈물, 괴로움의 눈물에 하나님이 개입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그 자매의 상한 마음을 만져주시고 회복시켜주셨다. 결국 김영서 자매는 그 모든 아픔을 신앙으로 이겨내고 지금은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도와주는 상담사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상처 입은 자에서 그 상처를 치료해주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된 것이죠. 그 일대기를 기록해놓은 책이 바로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신앙 생활도 눈물 없이는 말할 수 없는 위대한 간증의 스토리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 어느 유명한 사람의 간증이 아니라 바로 저와 여러분의 간증 이야기 말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 세상에서 방황하다가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지며 흘렸던 눈물, 남들과 같은 평범한 일상을 살지 못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내 인생의 고단함으로 인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내 사랑하는 친구, 가족의 영혼을 위해 흘렸던 눈물, 누구에게 말 못할 사정으로 아파하고 신음하며 흘렸던 눈물.. 세상의 죄와 유혹 때문에 매번 넘어지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흘렸던 눈물..
그렇게 흘렸던 눈물을 닦아주는 많이 이들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그 어느 한 사람도 내 눈물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찌되었든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나의 눈물을 진정으로 닦아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눈물은 닦아 줄 수 있지만 거기까지입니다. 그 이후에 인생은 그 누구도 책임져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나의 슬픔의 눈물을 거두어 기쁨의 눈물로 바꾸어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나의 절망의 눈물을 거두어 소망의 눈물로 바꾸어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누구에게도 말 못할 아픔의 눈물을 거두어 회복의 눈물로 바꾸어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입니다.
시편 126편이 바로 눈물의 간증 노래입니다. 눈물이 빛을 만나 반짝이는 노래. 함께 들어보실까요?
(본문 배경 설명) 오늘 이 간증을 하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보통 시편하면 다윗이 지었던 시, 다윗이 불렀던 노래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총150편의 시편 중에서 다윗이 지은 시편은 약 73개 정도라고 합니다. 시편은 보통 총 5개의 파트로 구성되어집니다.
Book 1 (시편 1-41): 다윗 언약
Book 2 (시편 42-72):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
Book 3 (시편 73-89): 다윗 언약의 회복
Book 4 (시편 90-106):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
Book 5 (시편 107-150): 108-110, 138-145은 다윗의 시, 111-118, 135, 146-150은 할렐루야 시편, 120-134는 순례자 시편 (pilgrim psalms),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오늘 나눈 시편 126편은 바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중에 한 편입니다. 어느 성도가 1절에서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여기서 시온의 포로,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려보내 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기뻐했는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가는 것입니다. 이때의 상황을 좀 더zoom in 해서 살펴보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
(본문 역사) 북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하고 바벨론이 남유다를 BC 586년에 함락시켰습니다. 남유다가 완전히 멸망하기 전에 이미 1차, 2차 침공이 있었는데 이때 포로로 끌려간 사람 중에 우리가 잘 아는 선지자 에스겔, 다니엘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 예루살렘에서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까지의 거리가 1,500km가 넘습니다. 서울까지 부산이 440km인데 부산을 찍고, 평양을 찍어서 저기 러시아 시베리아까지 가는 거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시편 1절에서는 그렇게 시간이 흘러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 칙령으로 인해서 돌아오는 포로들의 귀환을 말합니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말이죠. 불가능할 것 같던 일이 일어나니까 "우린 꿈꾸는 것 같았도다" 말합니다.
2절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이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이요, 큰 일이었는지 다른 나라에서도 이스라엘 포로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다" 찬양합니다.
(연관성) 예전에 국제 시장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1950년대 한국 전쟁 이후에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정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했던 한 평범한 아버지의 위대한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이산가족이 만나는 장면이 나왔는데 울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 어렸을 때 있잖아요 이발소 집에 맡겨놓고 갔었어요" "네 맞아요" "날씨는 흐렸구요" "네 맞아요" "오빠~~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이처럼 헤어졌던 아버지, 어머니, 오빠, 누나, 동생 만난다면 얼마나 큰 감격의 도가니에 빠지겠습니까? 포로가 되어 끌려간 내 가족과 절대 만날 수 없었을 것 같은데 그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이 내 눈 앞에 나타난다면, 영원한 포로 생활일 줄 알았는데 포로에서 해방이 되었다면 꿈 같은 일 아닙니까? 무명의 성도는 2절에 이어 3절에서도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고 재차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짧은 적용) 오늘 우리도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큰 일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불신자들도 우리를 통해, 순복음 반석위에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큰 일을 보기 원합니다.
4절에 보니까 아직 돌아오지 않은 포로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호와와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단어 연구) 여기 남방이라는 단어는 "Negeb"라는 단어인데 히브리어로 건조한 땅, 사막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혹은 남쪽 이스라엘 땅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런데 광야에도 홍수가 난다고 하면 믿겠습니까? 그런데 네게브 사막에는 홍수가 납니다. 며칠 전 북쪽 지역에 내린 비가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다 네게브 광야로 쏟아져 내려온 것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홍수가 생기는 것이다.
무슨 뜻일까요? 네게브 사막에 갑자기 예기치 못한 때에 홍수가 나서 급류가 흘러 내려가듯이, 그렇게 예기치 못하는 때에 속히 포로들을 고국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NLT 번역에는 조금 다른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Restore our fortunes, Lord, as streams renew the desert."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야훼여, 저 네겝 강바닥에 물길 돌아오듯이 우리의 포로들을 다시 데려오소서."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명의 성도에게 가장 큰 기도 제목이 있었는데 바로 포로에서 해방되어 조국에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조국으로 돌아가 다시 무너진 성전을 세우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날들을 눈물로 지새웠습니다. 그러나 그저 눈물만 흘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앞에서 눈물의 씨앗을 뿌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눈물의 씨앗을 통해 큰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처럼 성경 곳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믿음의 선진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