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박사의 경배(마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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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박사의 경배
마2:1-12
Merry Christmas!
요즘엔 별로 성탄카드를 잘 만들지 않아요. 그런데 오래전에는 성탄카드가 비싸니까, 종이를 잘라서 그림도 그리고 붙이고 해서 성탄 카드를 나누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요즘에는 온라인 이미지로 성탄카드를 나누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탄절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이미지들이 있지요? 뭐 말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이라든가 또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에게 나타난 천사들이라든지…많은 이미지가 있는데요.
제가 한가지 그림자 이미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PPT보여주기) 여기 그림을 보시면, 각각의 인물들이 누구일까요?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성경과는 좀 맞지않는 이미지가 들어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그리고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동방박사의 이미지가 있는데요. 바로 낙타를 타고 오는 동방박사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이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찾아온 유일한 이방인들입니다. 이 박사들은 현자라고도 하며, 또 별과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라고도 하고요.
자 그럼 여기서 넌센스 같은 한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박사들이 동방에서 온 이유는 무엇일까요?(네 그게 오늘 말씀의 제목)… 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방으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가서 메시야에 대한 소식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그리스도 메시야를 알지도 못하던 이방인들이 갑자기 나타난 별을 보고, 왕으로 오신 아기께 경배하러 온거죠.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의 성탄을 별을 통해 보고, 소망을 가진 이방인의 대표입니다. 그래서 동방박사의 이미지는 곧 이방인인 우리들을 대표하는 이미지인겁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라고 했지, 사실 동방박사가 몇 명인지 성경은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단지 그들이 보배합을 열어서 세가지 예물(황금, 유향, 몰약)을 드렸기 때문에 아마 3명이지 않겠는가 하고 추측하는 거지요. 뭐 그 정도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는데, 결정적으로 틀린 것은 동방박사들은 금방 태어난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하러 베들레헴에 왔는데, 여관에 묵을 데가 없어서 마굿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을 본 사람들은 들에서 양치던 목자들이었지, 동방박사들은 아닙니다
오늘 말씀엔,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왔는데, 박사들은 헤롯에게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헤롯 왕과 온 이스라엘이 난리가 난겁니다. 그러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서 자세히 묻습니다. 언제 이 별이 나타났느냐? 아기가 태어난 때가 언제냐는 거지요.
그러니까 박사들은 동방에서 살다가 갑자기 위대한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동방에서부터 그 별을 보고 예루살렘까지 온거죠. 여기 동방이 도대체 어디인지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페르시아 지역 일수도 있고, 또 아라비아 반도일 수도 있고…어쨌든 예루살렘 기준으로 동쪽에서 온 것만은 확실합니다. 아마도 지금의 시리아, 이란, 이라크, 사우디 아라비아 정도 될 것이라 학자들은 추측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유대 땅까지 오려면 비행기 타고 휙 오는 것도 아니고 또 그냥 맨몸으로 걸어서 사막을 지나올 수는 없으니 아마도 낙타를 타고 왔겠죠. 그러니 어디 세 명만 달랑 왔겠어요? 또 황금과 유향과 몰약 같은 귀한 것을 보배합에 넣어가지고 오는데, 어디 보디가드도 없이 왔겠어요? 긴 여행을 하는데 함께 온 사람들이 있을 꺼 아닙니까?
그래서 브를클린 박물관에 동방방사에 대한 제임스 티소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는게 있는데, 이런 그림입니다. (그림 보여주기)여러 일행들과 사막을 건너 예루살렘까지 긴 여행을 했겠지요. 그러니 아마도 최소한 한달에서 수개월이상 걸렸을 겁니다. 이 그림이 좀더 사실적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태어난 날 큰 별이 하늘에서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 별을 보고 예루살렘에 왔을 때는 이미 아기 예수님은 적어도 갓태어난 아기가 아니라 조금 자란 아기가 되었지 않겠어요? 그땐 이미 마굿간에서 나와서 집에서 살고 있었겠지요.
그래서 11절에도, 동방 박사들이 마굿간에 들어갔다고 하지 않고, 집에 들어갔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마굿간에 들어간게 아닙니다.
그럼 동방박사들이 뭐하러 온것입니까? 한가지 이유였습니다. 왕으로 오신 아기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동방에서 멀리 별을 보고, 경배하기 위하여 긴 여행을 했습니다. 이들은 유대인의 왕이 오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있냐고(2절) 물은 것이죠.
물론 헤롯도 똑같이 경배라는 말을 쓰기는 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태어났냐고 묻는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위치를 위협할 수 있는 왕을 제거하기로 마음을 먹죠. 헤롯은 경배라는 말을 똑같이 쓰면서도 실상은 자기말고 왕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다 모아서 그리스도가 도대체 어디서 태어나느냐 물으니까, 미가서 5:2, 삼하5:2의 말씀을 근거로 베들레헴이라는 것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거짓말을 합니다. 가서 아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나한테 알려줘서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정확히 아기에 대한 정보를받으면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같은 경배라는 말을 쓰는데, 실제 그 목적이 완전히 정반대인거죠.
흔히 쓰는 말 중에 “예배를 본다” 라고 말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심지어는 어떤 목사님 중에서도 예배를 본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맘에 걸리더라구요. 예배는 구경하는 게 아니잖아요? 예배는 보는게 아니라 예배는 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배는 경배를 드리는 겁니다.
동방박사와 헤롯이 똑같이 경배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 목적은 천지차이가 났던 겁니다. 물론헤롯이나 대제사장 서기관들이 구약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보고, 그리스도의 탄생지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그들도 역시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삶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방인인 동방박사는 오직 왕으로 나신 그 분께 소망을 두고 별을 따라서 왔습니다. 우리선교사들도 역시 별을 보고 경배하기 위해 길을 떠난 동방박사들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경배자로서 어떻게 경배를 드려야 하는지 동방박사들을 통해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동방박사들이 어떻게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 경배했나요?
1) 첫번째로, 2절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많은 댓가를 치뤘습니다. 그들은 그 먼거리를 정말 힘들게 여행하여 왔습니다. 이들은 오직 별하나만 바라보고 왔습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을 것입니다. 또 여행하면서 온갖 어려움과 위험도 감수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주님 앞에 경배자로 서기 위해서 자신이 치뤄야할 댓가를 철저하게 감수할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별이 가리키는 왕으로 오신 예수님만을 소망하며 왔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겐 주님을 경배하기 위해서는 댓가를 치루겠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경배자로 서기 위해서는 오직 주님께만 소망을 둘 때만이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습니다.
2) 두번째로 경배자의 자세를 볼 수 있는데요. 10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뭐 이 보다더 확실하게 그 기쁨을 강조하여 표현할 말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앞서 인도하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기뻐하고 기뻐했어요. 그것도 크게요. 거기다가 매우까지 붙였어요.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어요. 기쁨의 최고표현입니다. 이 기쁨은 단순한 기쁨이 아닙니다. 경배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기쁨입니다. 그래서 한번 그들은 어떻게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을까? 생각해 보니, 아마도 이렇게 했을 꺼 같아요. 오! 예! 한번 따라해 볼까요?
우리가 성탄 인사를 할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죠? 기쁘고 즐겁게 그리스도를 경배하자는 인사입니다. 얼마나 좋은 인사인줄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 다시 메리 크리스마스를 못쓰게 하고 있어요. 우크라이나는 그 나마 메리크리스마스라는 말을 그냥 쓰는데 말이죠. 저는 메리 크리스마스를 미국에서 못쓰게 하려는게 단순히 종교평등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생각치 않습니다. 저는 그 배후에는 사탄이 있다고 봅니다. 왜 사탄은 메리 크리스마스를 못하게 하려는 걸까요?
사단은 그리스도를 경배하며,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최고의 기쁨을 표현하는 게 너무나 싫은겁니다. 그래서 그 말을 못하게 하고자 하는 겁니다. 성탄절은 주님을 만나는게 정말 중요한 건데, 주변의 것에 마음을 쓰게 만듭니다. 산타 클라우스가 더 주인공이 되어가고, 선물을 주고 받는 것에 더 마음쓰게 만들고, 연말 분위기에 휩쌓여 쇼핑하고 뭔가를 더 소유하는 것에 사람들이 더 신경을 쓰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아예 인사도 해피 홀리데이스라고 인사를 바꾸어 말하게 하는 겁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저 연말을 맞아 몇일동안 편히 쉬는 날이니 너 자신이 행복하면 땡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겁니다. 사탄은 어뗗게 해서든지, 이 성탄의 계정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을 사람들로부터 지워버리길 원하는 겁니다.
우리가 성탄의 계절을 지내면서, 정말 이 동방박사 이방인 경배자의 그 기쁨이 있는가 하는 겁니다. 우리 마음에 정말 예배드리러 오면서 과연 주님을 만나는 기쁨,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는 동방박사들의 그 기쁨이 있는지요? 물론 우리가 서로 얼굴보고 만나서 교제하고 나누는 것이 기쁘긴하죠. 그런데 정말 주님 만나는 이 경배의 시간을 얼마나 기쁘게 주님께 표현하고 있는지요?
어쩌면 이런 기쁨은 아마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완전히는 그 아무도 다 보여주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가장 최고의 기쁨을 표현하게 될 그 날이 있죠? 계7;9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흰 옷을 입고 선 무리들이 큰 소리로 외쳐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습니다” 그렇게 찬양하며, 기뻐하겠지요.
여러분 우리가 그 날의 기쁨을 생각하며, 예배 때마다 우리가 함께 경배자로 예배자로 모였을 때 그 기쁨이 우리 가운데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3) 그리고 세번째로, 동방박사들은요, 엎드려 경배했어요. 동방박사들이 집에 들어갔는데, 아기와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마리아와 아기 모두에게 인사를 한게 아니라 오직 아기께만 인사를 했어요. 카톨릭이나 정교회에서 이 말씀을 아마도 강조하지 않고 싶을 것 같아요. 마리아 숭배 사상이 있으니깐요. 마리아도 경배하길 원하니깐요.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단순히 고개를 간단히 숙여 인사를 한게 아니라 바닥에 엎드려 경배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엎드린다는 것은 간단히 머리를 숙이는 게 아닙니다. 얼굴을 땅에 대고 바닥에 쫙 엎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 준비를 하다가 어떻게 엎드렸을까 해 봤습니다.
여러분 혹시 엎드려서 주님께 경배를 드려본적 있으세요? 엎드려 경배한다는 것은 우리의 영혼과 몸이 완전히 왕되신 주님 앞에 순종하겠다는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겁니다.
엎드려 경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해달라는 믿음의 고백인 동시에 왕이신 하나님 앞에 철저히 종으로서 엎드리는 것입니다. 헬라어 프로스퀴네오는 절하다. 예배하다. 경배하다라는 뜻입니다. 엎드린다라는 말은 fell down. 바짝 엎드리는 겁니다.
4)마지막 네 번째로, 동방 박사의 경배는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어요. 이상하게 성탄절이 되면, 주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보다, 선물을 주고 받는데 더 신경을 쓰고 있어요. 드려야 하는데 오히려 받는 것을 생각하고 있단 말입니다. 동방박사는 그동안도 많은 희생과 헌신을 했지만, 최종적으로 예수님께 최고의 예물을 드리며 경배했어요. 어떤 의미에서 최고의 선물인가요?
그들이 드린 것은 황금과 유향과 몰입니다. 이 세가지는 어떤 의미를 가지요 있나요? 이것을 설명해 주는 찬송가가 있어요. 바로 찬송 116장 “동방에서 박사들”입니다. 우리가 이따 함께 부를 겁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아마도 많은 설교를 들어보셨을것 같아요. 황금은 예나 지금이나 가치의 척도로 쓰입니다. 또 왕이신 통치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주님을 통치자인 왕으로 섬기며 살고 있는가?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레고리 1세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로 밝게 빛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아기예수님께 황금을 바치는 삶이 되는 것이라고 했어요.
또 유향은 거룩하신 구주께 드린 다고 하는데요. 유향은 신성한 예물이며, 향유, 치료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귀한 것입니다. 냄새를 없애는 거죠. 죄악의 냄새나는 인간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향기로운 존재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또 우리가 거룩한 열망으로 하나님께 거룩한 기도로 우리의 인간적인 마음을 살라 버릴 때 예수님께 유향을 바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몰약은 방부제처럼 죽은 자에게 바르기도 하고, 또 약으로 치료제로 사용합니다. 에센셜오일입니다. 여자분들 에센셜 오일 하나정도는 다 가지고 계실 건데요. 이 몰약이 에센셜 오일의 여왕이라고 합니다. 또 우리가 세상에 속한 욕심과 정욕을 하나씩 극복해 나갈때 우리는 예수님께 몰약을 바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 세가지 선물 모두가 다 그만큼 귀한 것인데요.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 드린 귀한 선물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3가지 예물보다 저의 눈길을 끄는 단어가 하나 있어요. 바로 보배합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바로 보배합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보배합은 무엇입니까? 가장 값지고 귀한 것을 넣어두는 곳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보배합을 열었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열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우리도 다 귀중히 여기는 보배합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이 귀하고 소중한 가요? 소중한 것을 꽁꽁 싸매서 보관하는 보배합이 있죠?
글쎄 어떤걸 귀하게 여기는 것인지 아닌지 쉽게 알 수 있는 질문이 있어요. 만약 집에 불이나서 급하게 단 한가지만을 들고 나갈 수 있다면 여러분 무엇을 가지고 나가시겠어요?
집문서를 들고 나가시겠습니까? 아니면 현금 뭉치를 가지고 나가시겠어요? 네 저라면 아내를 업고 나가겠습니다.
오늘 주님께 경배를 하는 진정한 자세는 과연 난 무슨 보배합을 열어 주님께 경배를 드릴수 있느냐는 겁니다. 각자마다 귀하게 여기는 게 조금씩 다를 겁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요. 나의 보배합을 연다는 이야기는 나의 가장 귀한 것을 우리 주님께 여는 겁니다.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을 주님께 내어 놓는 것입니다.
이시간 나의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각자마다 귀하게 여기는 것이 다를 수 있는데 공통적으로 귀한 것이 바로 나의 생명입니다. 내가 가진 최고의 보배합은 바로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주님을 위해 주님의 나라를 위해 드릴 수 있다면, 최고의 선물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동방박사의 경배를 통해 우리 자신의 거울이 되길 소망합니다. 내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경배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획일되고 똑같은 예물을 주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각자 서로 다른 예물로 드렸습니다.
나는 무엇을 주님께 드릴 수 있을까요? 시간, 물질, 몸, 관심사, 나의 말과 행동, 나의 생각 과연 무엇으로 예수님께 최고의 경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 각자가 주님 앞에서 생각하고 결단하고 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판 동방박사가 되어 주님께 최고의 경배를 드리는 복된 지체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