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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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이후에 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저주하시고 그리고 이후에 그 저주가 이루어진 것을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이 본문을 보게되면 12절부터 14절까지 무화과 나무에 대한 저주가 나오고 그리고 15절부터는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을 쫒아내사 성전을 깨끗케 하시는 장면이 나오며 이후에 20절부터 다시 무화과 나무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 앞서 저주했던 그 무화과 나무가 마르게된 순서를 구조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무화과 나무 저주 이야기 사이에 성전을 꺠긋케 하신 사건이 들어있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전을 깨끗케 하신 사건이 이 구조의 중심을 이루고 결국 이 이야기에서 강조하고 또한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케 하신 사건에 있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하신 행동은 마치 무화과 나무에게 저주를 하였듯이 심판에 대한 선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성전을 청결하게 하는 사건에서도 메시아적 권위를 가지고 행동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왕으로 오셨고 왕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첫 번째 예루살렘 성전을 봉헌하고 유다의 다른 왕들이 성전 예배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제단을 파하고, 율법을 선포하고 제사와 성전을 회복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지금 그러한 유다의 왕들과 마찬가지로 예배를 방해하는 매매하는 자들을 쫒아내시고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서 성전을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행동은 구약의 왕들과 같이 성전을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큰 권위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것은 유다의 다른 왕들과는 다른 모습니다.
그것은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깨끗케 하시는 사건앞에 무화과 나무를 저주 하였습니다… 그것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우상 숭배와 불의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선언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서 5장 1-7절에 나오는 포도원의 노래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으로 그분은 포도원 벽을 허무사 민족의 원수들 (앗수르인)이 몰려와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수 있게 하십니다.
3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1]
[1]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사 5:3–6.
예수님은 마치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모습과 같이 신실하지 못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시면서 하나님의 역할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성전을 정결하게 하고 심판하시려고 자신의 성전에 임하시는 “여호와”의 모습입니다.
무화과 나무가 저주를 받고 책망을 받은 이유는 그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는 마치 이스라엘과 그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무화과 나무와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행동은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보게 합니다. 그 비유에서 포도원 관리인들 즉..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먼 타국에 간 주인의 소식을 전하는 주인의 사신들과 결국에는 주인의 아들을 죽이고 주인의 것을 돌려주기를 거부하면서 심판을 당하고 맙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인 포도원을 짓밟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했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또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 비유에서 말씀의 씨는 그 말씀을 듣는 많은 사람 안에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 당시 타락한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은 씨앗이 싹을 낼 기회를 갖기도 전에 사탄에게 빼앗긴 씨와 같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이 입성하실 때 같이 환호하고 나뭇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기뻐했던 수많은 사람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놀랐던 수많은 백성들은 돌밭에 뿌려진 씨와 같습니다…
그들은 메시지를 기쁨으로 받으나 곧 넘어지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첫째로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제자들이 결국에는 열매를 맺을 것인가? 아니면 결국 그들도 돌밭에 뿌려진 씨엇처럼 곧 넘어지고 말 것인가??
또한 이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열매를 맺을 것인가?
결국에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 말씀은 무거운 책임과 사명을 던져줍니다… 우리에게 열매를 맺을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맺는 열매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력을 나타냅니다..
무화과 나무의 열매를 거리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었듯이 우리가 맺는 그 열매들은 산 위에 빛 처럼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열매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열매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데려오는 것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거듭나는 열매 그리고 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동들이 이러한 열매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과연 열매를 맺을 것인가? 오늘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서 돌밭에 뿌리워진 씨앗과 같지 아니하고.. 저주받은 무화과 나무와 같지 아니하고… 결국에는 많은 열매를 맺었던 제자들과 같이 오늘 우리의 삶을 통해 성령의 열매..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